주일오후설교
설교본문 | 출2: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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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8-31 |
주일오후설교 250831 갈대상자
본문: 출2: 1-25
제목: 갈대상자
I. 서론
지난 주에 살펴본 바와같이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이 죽고 난 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고센 땅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강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자 200만명 이상으로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약 적군이 쳐들어오면 그 편을 들어서 자기 나라를 정복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겨서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고 산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태어난 남자 아이는 모두 나일강에 던져버리라고 다시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위기 가운데 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이 모세가 건짐을 받아 왕궁으로 들어가서 성장한 후에, 미디안 광야로 가서 결혼하고 자녀를 얻게 된 내용이 나오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모세를 인도하셨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모세의 출생과 갈대상자
본문 1,2절을 보면 레위 족속 중 한 남자가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남자아이 모세를 낳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레위지파는 나중에 이스라엘의 제사장 지파가 됩니다. 모세는 부모가 다 레위지파인 가정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이 말은 그 부모가 모두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 요게벳은 매우 믿음이 강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태어나 그 아이를 보니 ‘잘 생긴 것을 보고 석달동안 그를 숨겼다’고 했습니다. 행7장에서 스데반의 설교 가운데 모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행7:20절에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달동안 길리더니”라고 기록했습니다. 히11: 23절에는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모세가 잘 생겼다고 했는데 행7:20절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다고 했고, 히11:23절에서도 아름다운 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가 보기에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인물같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아마도 요게벳이 그 위험한 분위기 속에서 임신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아이를 낳고 보니 그 아이가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자로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믿었고 목숨을 걸고 아기 모세를 지켰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세가 기도하는 부모, 믿음이 있는 가정에서 지혜로운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를 임신하고 양육할 때 요게벳처럼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양육해야 그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석달 동안 모세를 숨겼지만 아이 울음소리가 나게 되므로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를 만들어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거기에 아기를 담아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버리되 믿음으로 버렸다는 증표입니다. 바로 왕은 태어나는 남자 아이를 보자기에 싸서 나일강에 던지라는 명령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악어가 와서 잡아 먹게 됩니다. 그러나 요게벳은 갈대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아이를 담았습니다. 여기 갈대는 우리나라 갈대와는 달리 파피루스라는 갈대인데 높이 2-3m, 잎은 길고 예리하고 줄기의 심으로는 파피루스 종이를 만들었고, 줄기와 잎은 엮어서 상자나 배를 만들 정도로 섬유질이 많고 단단한 것입니다. 갈대로 상자를 만들고 물이 스며들지 않게 역청과 나무 진을 칠했다고 했습니다. 역청은 천연 아스팔트와 같은 것이고 나무 송진은 니스와 같은 것인데 이것으로 갈대상자를 칠했기 때문에 물이 스며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물이 스며들지 않게 갈대상자를 만든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려주시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도 남자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인데 그들은 하는 수 없이 그냥 보자기에 싸서 나일강에 던졌을 것입니다. 만약 모두가 요게벳처럼 갈대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던졌다면 바로 공주가 모세가 담긴 갈대상자를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를 담은 갈대상자라는 단어와 노아의 방주라는 단어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믿고 맡기되 우리가 해야할 일은 철저히 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게벳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결과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2. 바로 왕궁에서 양육된 모세
본문 4절을 보면 요게벳이 그의 딸 미리암에게 그 갈대상자가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시는지 살피게 했습니다. 이것도 요게벳의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영적 민감성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5-6절을 보면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려 나일강에 나왔다가 갈대 사이에 있는 갈대상자를 보고 시녀를 시켜 가져오게 하고 뚜껑을 열자 아이가 울었습니다. 이 아이는 건질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뚜껑을 여니 울었다는 것은 그 순간 공주의 마음에 그 히브리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 아이가 아버지 왕이 강에 버리라는 히브리 아기 중 하나임을 알았을 때 여성으로서 따스한 보호본능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셨고, 이토록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춰 인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가장 적절할 때에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본문 7-10절을 보니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불쌍히 여기며 우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을 본 미리암이 가서 “ 공주님 아이를 달래려고 해도 젖이 없으면 달랠 수 없으니 히브리 유모를 소개해 드릴까요?”라고 자연스럽게 접근했습니다. 공주가 좋게 여겨 유모를 불러오라고 하니 요게벳을 불러왔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요게벳에게 맡기며 젖을 먹이도록 하며 그 삯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입니까?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나일강에 던져 죽게되는 상황에서 모세는 오히려 그런 명령을 내린 바로왕의 궁전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입양되어 자기 생모의 젖을 먹으면서 양육받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은 젖떼는 시기가 생후 8개월 정도이지만 그 당시에는 다섯 살 때까지 오랫동안 젖을 먹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도 “유치원을 우리에게 맡겨라 그러면 가톨릭 신자를 만들리라”라고 합니다. 그만큼 어릴 때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이 그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요게벳은 모세에게 젖을 먹이면서 그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사람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왕의 압제에서 해방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요게벳이 만약 자기의 정체가 탄로나면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자기 아들 모세를 정성을 다해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바로의 공주는 나일강의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의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이름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의 고통에서 건져내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녀를 양육할 때 요게벳처럼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부모와 자녀들간의 갈등으로 인해 가족간에도 원수처럼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 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 부모가 자녀를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바르게 양육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믿음의 성도들의 가정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양육하며 그 자녀의 달란트를 잘 발견하여 개발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2. 장성한 모세의 실수
본문 11-1절을 보면 모세가 왕궁에서 왕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40세가 될 때까지 당시 세계 최대 강대국이었던 애굽 왕궁에서 정치, 산술, 기하학, 천문학, 철자법, 문법, 역사, 의학, 무예 등 이집트 학문의 다양한 분야를 통달하는 지도자 교육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까지 가는데 결정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들을 제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외동 딸 공주는 합법적으로 모세를 양아들로 삼아 왕족이 받는 모든 혜택을 누리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철저히 교육받았고, 바로왕궁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나이가 40세가 되었을 때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밖에 나가서 보니 애굽의 노예감독이 자기 유대민족의 형제가 벽돌을 빨리 만들지 않는다고 채찍질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철저히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 광경을 보고 품삯도 안 받고 고되게 일하는 것만 해도 원통한데 빨리 안한다고 채찍으로 치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민족적 감정이 앞서서 좌우를 살펴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애굽 감독을 쳐죽여 모래 속에 파묻어버렸습니다. 좌우를 살폈다는 것은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이 정당하지 못한 일이라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알면서 그 애굽관리를 쳐 죽인 것은 살인죄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감추려고 모래에 파묻은 은폐하는 죄를 또 저질렀습니다. 죄는 죄를 낳게 합니다. 그 죄를 감추려고 또 다른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튿날 다시 나가니 이번에는 어제 맞았던 그 형제가 같은 동료 유대 형제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제 맞은 그 형제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치니까 왜 그렇게 치느냐고 하며 화해시키고자 하였는데 그 형제가 모세를 밀어뜨려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하는냐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행7: 23-25절을 보면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그 형제 이스라엘을 돌볼 생각이 나서 한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사람을 쳐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바로왕이 모세가 한 일을 알고 모세를 죽이고자 그를 수배하자 모세가 왕궁을 탈출하여 도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모세의 실수는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애굽 노예감독을 살해한 일은 어리석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애굽사람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으로는 애굽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둘째, 자기 동족 두 사람의 다툼을 무마하려는 시도는 그들의 적대감만 불러일으켰을 뿐입니다. 셋째, 모세는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숨길 수 있다고 여기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어떻게 모세 혼자서 바로왕의 힘에 맞서 그것을 전복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모세의 모든 행동은 이미 시작부터 실패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힘으로 동족을 구하려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성도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목적과 방법이 일치되어야 하고 말씀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 목적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선한 목적이 있었지만 그 방법은 자기 분노를 참지못하고 감정대로 처리했기 때문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만약 그 애굽감독에게 자기가 바로왕궁의 왕자인 것을 말하고 타일렀다면 그 애굽관리는 꼼짝 못하고 그런 부당한 억압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이 앞서 자기가 재판관처럼 행세하는 바람에 왕궁에서 도망쳐 나와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그가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말씀에 비추어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야 하겠습니다.
3. 미디안 광야에서 영적 성숙을 훈련받는 모세
본문 16절에서 25절까지는 모세가 왕궁을 탈출하여 미디안 광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만나게 되고 십보라를 아내로 맞아 아들을 얻게 되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 세월이 40년이나 흘러 모세가 80세가 됩니다. 본문 15절을 보니 모세가 바로왕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 우물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미디안 제사장 루우엘의 딸 일곱명이 양떼들에게 물을 주려고 그 우물가로 오게 됩니다. 그때 다른 목자들이 와서 그 딸들을 쫓아내고 자기들이 먼저 양떼들에게 물을 먹이려 하자 모세가 그들에게 위엄있는 모습으로 이 여인들이 먼저 왔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충고하고 그 딸들을 도와 양떼들에게 물을 먹도록 합니다. 당시 광야에는 양떼들에게 물을 먹일 우물이 파져있고 사막바람으로 모래나 쓰레기가 그 우물에 들어가지 않도록 우물두껑을 돌로 막아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옮기려면 상당히 무겁습니다. 모세는 여기서 왕자의 신분을 내려놓고 약자를 돕는 섬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모세가 자발적으로 자기를 낮추어 남을 도와주는 자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을 얻게 됩니다.
그 딸들이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루우엘에게 모세가 자기들을 도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빨리 가서 그 사람을 데려와 음식을 대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드디어 모세를 그 집으로 데려와서 그들과 동거하고 그 제사장의 딸 십보라를 모세와 결혼하도록 허락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남을 섬기는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거꾸로 섬김을 받도록 해 주십니다. 모세는 그 집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또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결혼해서 낳은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는데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나그네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 나그네된 생활 속에 자기를 위로해주셨다고 해서 그 이름을 ‘나그네’라고 지은 것입니다. 여기서 결혼했다는 말은 모세가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야심을 다 버리고 여기 미디안 광야에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충실하게 하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자기 민족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는 훈련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40년을 살면서 자기자신을 내려놓고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광야사막의 환경에 철저히 적응하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할 지도자로 훈련시키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절에 ‘여러 해 후에’ 라는 말은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쳐 나온지 40년이 지나 그의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때 모세를 죽이려 했던 애굽왕이 죽었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출애굽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약 200만명 이상으로 번성하였고 출애굽을 위한 연단과 준비과정이 거의 끝나 본격적으로 시행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지도자로 세우실 모세를 미리 택하시고 지금까지 80년간 꾸준히 훈련시켜 오신 것입니다. 첫 40년은 호랑이 굴과 같은 애굽왕궁에서 지도자로서의 모든 학문과 무예와 정치적 역량을 훈련시키시고, 미디안 광야에서 영성과 섬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걸어갈 40년의 광야생활을 미리 경험하고 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25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소리를 들이시고 그들을 돌보셨고 그 조상과의 언약대로 출애굽하실 계획을 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실수와 미디안에서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가 실수하고 실패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며 돌보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세는 일을 완전히 망쳐놓았지만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드러나지 않는 섭리로 준비해 두신 집과 가족, 그리고 안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디안에서 모세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전에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했던 야심을 묻어버렸고,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여 실패를 인정하고 자신이 머문 곳에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물론 다른 뜻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24-2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부르짖자 하나님이 들어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뢸 기회이며 우리는 망설임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닌 필요는 그 자체로 기도의 근거가 되고, 그 필요가 기도하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반영하면서도 하나님이 목적하신 일을 진행시키게 됩니다. 기도응답도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되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에 근거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해야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 되어 약속대로 응답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말씀에 우리가 각자가 경험하는 모든 환경과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약속한 말씀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본질을 잘 알고나면 내가 지금 행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대로 적용해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더 정확히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고아의 아버지였던 조지 뮬러는 “성경에 과부와 고아의 아버지”라는 말씀을 부여잡고 이 약속대로 내게 응답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응답되더라고 하면서 5만번 기도응답을 받은 것을 책으로 남겼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게벳의 신앙에서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요게벳은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를 준수하게 본 것도 믿음이었고, 왕을 명령을 어기면서 모세를 감추고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운 것도 믿음이었고, 왕궁에 들어가 유모로 모세를 키운 것도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두려움을 물리치면서도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요게벳은 아이를 숨겼고, 갈대상자를 만들고, 모세의 유모로 가장하여 바로의 왕궁으로 들어가 모세에게 젖을 먹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과 더불어 우리가 해야할 일을 믿음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요게벳처럼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말씀의 약속을 잡고 기도하고 행함으로 이러한 기도응답의 체험을 누리기시를 바랍니다.
또한 모세가 자기 힘으로 자기 민족을 구하려다가 실패하고 미디안 광야로 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훈련을 철저히 받고 지도자로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인도를 보았습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모세와 같이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인도하시고 훈련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기꺼이 이러한 훈련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지 그 속에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결말을 볼 때까지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요게벳과 모세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대하고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우리를 정확하게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므로 요게벳과 모세와 같은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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