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설교본문 | 출4: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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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9-21 |
주일 오후설교 250921 소명에 합당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출4:1-17
제목: 소명에 합당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I. 서론
출3,4장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지난 주에 살펴 본 출3장에서는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며 광야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도 타지 않는 신기한 광경을 보고 가까이 가보니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모세를 출애굽 지도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시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며 출애굽 지도자로 갈 수 있는 능력을 약속하시고 그 약속의 신실함을 증거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핑계를 대며 주저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도자로 부르실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살펴보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 기적을 행하도록 증거를 주심
본문 1절에 “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지난 주 출3장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갔을 때 누가 당신을 보냈느냐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라고 하나님께 질문했던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스스로 있는 자가 보냈다고 하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에게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3일 동안 그 길을 가도록 요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왕이 그 요청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여러 이적으로 그들을 친 후에야 너희들을 보내줄 것이고, 나오면서 애굽 사람들의 금은패물을 취하여 나오라”고 앞으로 있을 일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이쯤되면 모세가 기꺼이 가겠다고 해야 할텐데 모세는 “하나님이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그들이 모세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모세가 여기서 착각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되는데 그들이 내가 하는 말과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전도하러 갈 때 나를 보고 믿으라고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해야 합니다. 사실은 자기 자신이 이 복음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담대히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고, 이 사실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장차 천국에 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말 믿고 있습니까? 이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당당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 디엘 무디가 전도하러 갈 때 마다 ”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하면서 전도했는데 어느 친구가 무디와 싸우려고 왔다가 싸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디가 ”내 생각에는, 이런 학자가 말하기를“이라고 시작했다면 당장 반박하려고 했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고 시작하니 싸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내가“가 아니고 ”하나님이“ ”여호와께서“라고 하면서 증거했더라면 책임은 하나님이 지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 없이 두려워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두가지 증거를 직접 보여주십니다. 본문 2절에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기를 지팡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실 때는 언제나 지금 내가 있는 것을 가지고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건강과 재능을 가지고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지팡이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4-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두가지 기적을 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던져 보라고 하여 던졌더니 뱀이 되어 기어 다닙니다. 모세가 놀라서 그 뱀을 피하니까 그 꼬리를 잡으라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꼬리를 잡으니 그 뱀이 다시 원래의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무생물인 지팡이가 생물인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로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좌우하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또한 성경에서 뱀은 사탄, 마귀를 상징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믿고 뱀의 꼬리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는 것은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의 권세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 얼마든지 꺾을 수 있고, 지팡이를 다루듯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면 세상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지팡이가 뱀이 되고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되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들과도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또한 시23:4절을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니다“라는 목동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목자가 양을 치는 데 사용하는 지팡이지만 모세가 하나님을 지팡이처럼 계속 의지하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지하던 지팡이를 던지라는 것은 홀로 서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옛 뱀, 마귀 앞에 무력함을 즉시 발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탄을 정복하는 비결은 우리의 지팡이 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단순한 신뢰와 의지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았을 때 다시 지팡이로 변한 것은 사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의 지팡이가 그들의 목전에서 뱀이 된다는 것은 그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즉각 증명해줍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매 다시 지팡이가 된 것은 모세가 이 기적을 사탄의 도움으로 행하고 있지 않음을 증명해줍니다. 또 다른 교훈은 죄인은 전적으로 마귀의 권세 아래 놓여있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이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고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만이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표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다른 한가지를 더 보여주심으로 그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너 손을 품에 넣어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손을 품에 넣었다 빼보니 갑자기 그 손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 빼보라고 하셨는데 그대로 하니 나병이 깨끗하게 나은 것입니다. 이 또한 놀라운 기적입니다. 성경에 이 나병은 죄를 상징합니다. 우리의 죄 문제는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었고 그 죄로 인하여 죽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죄문제를 해결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모세가 나병에 걸린 가슴은 죄가 감추인 것을 상징하고, 나병 걸린 손은 그 죄악의 노출을 상징합니다. 모세도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명백히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즉각 질병이 걸리게도 하시고 낫게도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사람들의 손으로부터 그의 백성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를 모세에게 증명해 보인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 기적을 믿지 않으면 두 번째 기적을 보여주라 하셨습니다. 당시 애굽의 마술사들은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드는 마술을 부릴 수는 있어도 손에 나병이 들고 낫게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것은 믿지 않을지 몰라도 둘째 기적은 반드시 믿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할 자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 죄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두 번째 표적은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가지 이적을 보여주시고 나서 다시 한 가지 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두가지 이적을 보아도 믿지 않고 모세의 말을 듣지 않거든 나일 강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면 그 강물이 피가 된다고 했습니다. 나일강은 애굽백성들에게는 신이었습니다. 그 나일강물로 농사를 짓고 생활용수로 사용했으니 나일 강물은 그들의 생명줄과 같기 때문에 그 나일강에 가서 절을 하고 신처럼 경배한 것입니다. 나일강이 매년 범람하면 강물은 둑을 넘어서 비옥한 진흙을 땅위에 덮어 놓습니다. 그 비옥한 땅은 풍성한 추수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러나 강물이 피가 되는 표적은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무서운 재앙으로 바꾸실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결실 대신에 썩음을 가져오게 할 것입니다. 나일강은 살아있는 생수이지만 그것이 피가 되었다는 것은 죽은 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끝까지 대적하면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심판하시겠다는 표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할 때도 복음을 전하되 끝까지 믿지 않으면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전도하러 갈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떠나면서 네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능력을 주실 뿐 아니라 그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과 사용했을 때 일어나는 반응에 대해서도 대처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2. 아론을 동역자로 붙여 주심
이쯤되면 모세가 ”주여 나는 부족하지만 이런 능력을 주시니 내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하겠습니다“라로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세는 또 다시 핑계를 대며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본문 10절에 ”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행7:22절을 보면 모세가 애굽에서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왕이 되는 수업을 40년간 받았기 때문에 당시에 최고, 최선의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학문과 기능과 무예를 완전 습득한 엘리트 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 자기의 실력과 능력으로 자기 히브리 백성을 구하려 하다가 애굽사람을 죽이고 모래에 파묻는 범죄를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온 것입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영성훈련을 받으며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도자가 될 지적, 영적 훈련을 이미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철저하게 익힌 애굽의 지혜나 광야의 고독도 모세가 영적 활동을 대비하는데 있어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집착과 두려움과 불신앙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과거에 실패한 것을 생각하니 나이 40에 말을 잘 할 때도 안되었는데 이제 나이 80세 노인이 된 지금은 더 할 수 없겠다는 좌절감에 사로 잡힌 것입니다. 자신의 말재주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과거의 실패경험에 메어 있으면 안됩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과거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본문 11,12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시면 어떤 말이라도 유창하게 하실 능력의 하나님 되심을 이렇게 간절하게 모세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신 것입니다. 앞에서 두가지 기적을 직접 보여주시고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하리라는 예언까지 해주시면서 용기를 주시고, 이제 그에게 할 말을 가르쳐주시겠다고 까지 설득하셨음에도 모세는 뒤로 물러섭니다.
본문 13절에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자를 보내소서“라고 거절합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불신입니다. 과거 자신의 실패에 대한 좌절감에만 사로잡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전혀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자기가 맡을 사명이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만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직접 이적을 보여주시기 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주저하고 있으니 화를 내셨습니다. 본문 14절에 ”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불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설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설득해도 안되는 모세에게 그 진노가 불붙듯했지만 그 진노는 연민으로 절제 되었습니다. 그를 끝까지 설득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치 부모가 못하겠다고 떼를 쓰는 어린 자녀를 어떻게든 설득하고 달래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연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공을 알려 줄 또 다른 표적을 허락하셨습니다. 모세게 애굽으로 돌아가면 아론이 자신을 만나러 오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헤어진 형 아론을 그 애굽에서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시니 이 또한 기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만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본문 15,16절에 ”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거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형 아론을 모세의 대변인으로 붙여주시겠으니 걱정말고 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것과 대변인이 말하는 것과는 신뢰와 강도가 다릅니다. 예컨대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변인이 간접적으로 전달하면 그 설득력, 신뢰성, 강도 등이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직접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담대하게 말하면 더 효과적일 것인데 그것을 못하겠다고 하니 차선책으로 형 아론이 그의 말을 대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4:12절에서 이미 ”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말을 가르치리라“고 약속했음에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13절에 보낼 만한 자를 보내시가고 하니 이제 그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붙여주시겠다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론이 모세를 도와준다고 하면서 동역했지만 사실 모세의 사역에 방해가 된 적도 많았습니다. 예컨대 모세게 호렙산에 율법을 받으러 올라가 40일동안이나 내려 오지 않으니 백성들의 원망이 쏟아졌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40일 동안이나 내려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애굽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들에게도 그런 우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원성이 두려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금반지, 금목걸이, 금팔지 등 금붙이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그것을 녹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줍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을 인도해주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유부단한 아론이 한 일입니다. 호렙산에서 내려 온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던져 버리며 책망하고 그 우상을 가루로 만들고 물에 풀어 하나님을 배신한 백성들에게 마시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런 백성들을 레위지파에게 시켜 3천명이나 죽이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도록 합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이처럼 아론은 광야 40년간 종종 모세의 말을 거역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주여 내가 가겠나이다“하고 믿음으로 순종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잘 인도했을 것입니다. 16절에 모세가 아론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는 말은 아론이 모세를 하나님처럼 존중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자기가 대신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40년 광야에서 영성훈련을 받았음에도 하나님께 기꺼이 ”예‘라고 순종하지 못했으니 참으로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막상 모세와 같은 자리에 놓인다면 장담할 수 없는 나약하고 불신앙하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입히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권위는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한 말씀의 권위가 나타나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에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고 하시며 드디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십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은 지팡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 하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수 있도록 능력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광야로 인도할 때 이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가르기도 하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도 했습니다. 지팡이 하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동안이나 인도하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 내가 가진 것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전도 사명자로 부르실 때 그 소명과 사명에 합당한 능력을 반드시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절대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일하라고 시키지 않으시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명을 감당하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구약에서 삼손은 나귀 떡뼈 하나로 천명이상의 적군을 물리치게 하셨고, 사르밧 과부가 가지고 있던 밀가루 한 웅큼을 엘리야선지자에게 바치니 계속 밀가루가 나오게 하시고 가난을 해결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어린 아이가 바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도 남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르실 때 내가 가진 것으로 주님께 드리며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날 날의 실패나 좌절을 더듬어 기억하지 말고 오직 내게 능력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담대하게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뜻을 행하시고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전도와 선교의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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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 소명에 합당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 출4:1-17 | 2025-09-21 | 홍기칠 목사 |
72 | 모세를 통한 출애굽의 약속 | 출3:13-22 | 2025-09-14 | 홍기칠 목사 |
71 |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 출3:1-12 | 2025-09-07 | 홍기칠 목사 |
70 | 갈대상자 | 출2:1-25 | 2025-08-31 | 홍기칠 목사 |
69 | 애굽 속의 이스라엘 | 출1:1-22 | 2025-08-24 | 홍기칠 목사 |
68 | 야곱과 요셉의 장례식 | 창50:1-26 | 2025-08-17 | 홍기칠 목사 |
67 | 야곱의 마지막 축복기도 | 창49:1-33 | 2025-08-10 | 홍기칠 목사 |
66 | 요셉을 위한 야곱의 축복 | 창48:1-22 | 2025-08-03 | 홍기칠 목사 |
65 | 고센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 | 창47:1-31 | 2025-07-27 | 홍기칠 목사 |
64 | 내가 너와 함께 가겠노라 | 창46:1-34 | 2025-07-20 | 홍기칠 목사 |
63 | 언약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 창45: 16-28 | 2025-07-13 | 홍기칠 목사 |
62 | 요셉의 신앙고백과 하나님의 섭리 | 창45:1-15 | 2025-07-06 | 홍기칠 목사 |
61 | 목숨을 건 중보기도 | 창44:1-34 | 2025-06-29 | 홍기칠 목사 |
60 | 진퇴양난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 | 창43:1-34 | 2025-06-22 | 홍기칠 목사 |
59 |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의 통치 | 창42: 18-38 | 2025-06-15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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