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설교본문 | 출3: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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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홍기칠 목사 |
설교일 | 2025-09-07 |
주일오후설교 250907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본문: 출3:1-12
제목: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I. 서론
오늘 본문은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모세 시대에 80세는 오늘날 50세 쯤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 자신이 쓴 시편 90:10절을 보면 “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는데 그 당시에도 보통 70년을 살고 좀 건강하면 80을 산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노인이 된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시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불붙는 떨기 나무 앞에 선 모세
본문 1절에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창2:18절의 루우엘과 동일 인물인데 이름이 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루우엘이 자기 딸을 애굽 왕족 출신 모세에게 결혼시킨 것을 영예롭게 생각해서 그 이름을 ‘풍부, 탁월’을 의미하는 이드로로 바꾸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궁전에 있던 모세가 양떼를 친다는 것은 모세에게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양떼를 친다는 것은 노예가 된 민족의 해방자가 될 모세에게는 이상한 준비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들이 우리들과 얼마나 틀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사명자들을 세상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목축의 장소로 인도합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사명자를 훈련하는 훌륭한 수련장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거짓된 색깔이 없으며 모방한 장식들이 없으며 허구한 주장도 없고 오직 모래, 바람, 식물 등 실체들 뿐입니다. 애굽의 야망과 황금과 인간의 박수갈채도 없고 잡음과 소음, 부산함과 혼란은 그 멀리 떨어진 그곳의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물러가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조용함과 빛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만 들을 수 있고, 그의 빛을 즐기며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하나님만 바라 볼 수 있는 광야와 사막같은 기도처입니다.
모세는 은둔의 장소, 하나님과 교제하는 모든 기회를 공급해 준 그곳에서 그의 생애 두 번째 40년을 보낸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의 자원이 완전히 허무한 것과 하나님께 철저히 의지할 필요를 배워야 했습니다. 선지자들의 훈련, 세례요한, 바울의 아라비아 훈련 등은 하나님께서 개별적인 사명을 위해 그들을 훈련하시는 방법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도록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호렙은 산맥의 이름이고 시내산은 그 산맥의 특정한 한 꼭대기였습니다. 이 시내산은 하나님께서 모세뿐 아니라 수세기 뒤에 엘리야에게 사명을 당부한 곳도 바로 이 산이었으며 갈4:25절을 보면 바울에게 영광의 복음을 주신 것도 아마 같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 호렙 즉 시내산에서 여호와를 만나면서 위대한 지도자와 구원자로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호렙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에게 근본적으로 삶을 뒤바꾸는 진정한 회심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한 이곳에서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40년이 지났지만 모세는 여전히 양치기였습니다. 양은 머리가 둔해서 목자가 반드시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런 양을 40년이나 돌보았다는 것은 인내와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사람들은 목축을 천한 직업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처럼 서두르지 않으시고 때가 되었을 때 자기 백성을 돌볼 목자를 원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다른 사람의 양을 돌보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자신을 내려 놓는데 40년이나 걸릴 정도로 훈련받은 것입니다. 그 양치기 40년이 장차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인도하는데 필수적인 훈련과정이었습니다. 그가 인내하며 이드로의 양떼를 돌보았기에 하나님의 때가 임했을 때 그는 제시간에 정확한 장소에 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지닌 경이로움과 정확성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각자의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면서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불러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맡기십니다. 양치기였던 모세를 부르셔서 출애굽 지도자로 세우셨고, 목동이었던 다윗을 불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본문 2-3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지라/ 이에 모세게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가 아니라 바로 성자 예수님의 임재인데 그것은 4절에 여호와의 사자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명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 하기 전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모세가 그 중대한 사역을 받아 보냄을 받기 전에 그는 반드시 먼저 말로 다할 수 없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섬기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한결같은 눈으로 일해야 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능동적 거룩함을 상징하는데 자신의 거룩함을 거스르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두려운 존재입니다. 언약이라는 배경에서 불의 상징이 나타난 첫 번째 경우는 창15:17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연기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로 자신의 임재를 알리신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불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연기는 그분이 사람들 가운데 임재하실 때 그 거룩함을 은혜롭게 가리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백성이 광야생활을 할 때 그들을 지키고 인도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면서도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거룩함이란 ’가까이 하지 못할 빛‘으로 분리를 나타냅니다. 여호와의 거룩하심은 능동적인 힘으로 그 힘에 순응하면 포용하지만 거스르면 모두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은 이 거룩한 능력을 불로 상징하는데 이 상징은 출애굽기 곳곳에 나타납니다. 불은 하나님의 멸절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인간을 차단하는 일에 연관이 됩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모세가 여호와의 종이 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떨기나무는 시내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아 종류의 키 작은 가시덤불로서 불붙은 떨기나무는 애굽에서 고통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불같은 고통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존속하게 될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고 있는 고통 속의 이스라엘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불붙는 떨기나무에 계신 것 같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불같은 고통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세밀히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 속에 있다 할지라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4,5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고 했습니다. 2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을 나타내는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분이 절대 유일하시고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사명자를 불러 자신의 일을 맡기시는데 두 번씩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상황의 긴급성, 사명의 중요성, 애정어린 관심 등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명하여 소명을 확실하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리려고 할 때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다급하게 두 번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예수 믿도록 부르실 때도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또한 특별한 소명을 주실 때도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그 음성을 마음으로 들을 때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신을 벗으라’는 말은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거룩한 곳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또는 존경과 겸손을 나타내기 위해서 신을 벗었는데, 지금도 무슬림들은 모스크 사원에서 신발을 벗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는 것은 땅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려는 자는 오물과 먼지가 묻은 신발, 혈기와 교만의 신발, 세상적 욕구와 자랑의 신발들을 미련없이 벗어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옛 사람, 옛 자취, 옛 생활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맨발로 서서 그분만 의지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십니다.
본문 6절에 “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에게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 언약에 근거하여 계속 출애굽의 역사를 신실하게 진행시켰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불러 그의 택한 백성의 열조로 삼으신 것은 그들의 우수함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이삭을 능력있게 소생시켰으며, 야곱의 간사함에도 오래 참으시며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택하시고 온전케 하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고 결코 버리지 않고 구원할 것을 약속해셨습니다. 또한 여기 시제가 모두 현재형이므로 육체적으로는 죽었으나 천국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모두 하나님 앞에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구원자로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0세의 모세 너도 얼마든지 일꾼으로 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서니 도저히 그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얼굴을 가렸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바로 알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연약하고 죄악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훈련받아 이렇게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 7-8절에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내려가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고, 듣고, 알고 있으니 너는 내가 가르쳐 주는대로 믿고 가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동일하게 보고 계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땅이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라는 뜻이 아니라 목초지가 많은 산악지방을 말합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양과 염소가 영양분 있는 목초를 많이 먹어 우유가 풍부하고 꽃들이 만발하여 벌들이 꿀을 많이 모읍니다. 혹은 종려나무 열매의 달콤한 시럽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7,8절을 요약하면 여호와께서 내 백성들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 건져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명확한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겠다는 적극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거룩하신 성육신의 예언적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내가 내려가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불쌍한 형편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1,500년 후에 여호와이신 예수께서 하늘나라를 떠나 인간의 죄와 고통이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오시는데 세상을 상징하는 그 땅에서 건져내어 심령의 즐거움이 있는 부활의 장소로 우리를 인도하시겠다는 예언입니다.
사십년 전에 모세는 이 일이 지연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의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자 했으나 결국 구원의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창15:13절에 아브라함에게 400년 동안 애굽이 네 자손을 괴롭히리라 하셨던 그 정해진 기한이 다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구원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천사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인간 사역자 모세를 지명하신 것입니다. 그때 그렇게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사명자를 사용하십니다. 지금도 세상사람들은 하나님 은혜없이 온갖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보고, 듣고,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저들에게 속히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인도하고,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고통과 죄와 사망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들에게 모세처럼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2. 모세를 부르심과 그의 응답
본문 9-10절에서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는 이미 한번 실패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그 백성들과 만난지는 40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볼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11절에 “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육신의 힘으로 나아갔을 때는 그는 사역의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은 행7:25절을 보면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40세 때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광야로 도망쳐 온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는 그 부르심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역설적으로 광야 40년의 훈련이 자기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누구이기에 그 최강국의 바로왕 앞에 가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겠습니까?”라고 엄청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생명을 찾던 바로왕은 죽었지만 분명히 자신의 과거 행적을 알고 있을 최고 권력자 또 다른 바로왕 앞에 간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므로 두려운 게 사실이었습니다. 실패한 경험과 40년의 오랜 망명생활은 그의 자신감을 꺾어 놓았습니다.
그때 본문 12절에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세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혼자 가도록 요구하지 아니하시고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모세의 염려에 대한 응답으로 “하지만 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너는 나를 계산에 넣고 있느냐? 네 시선은 어디에 고정되어 있느냐?”라고 반문하시면서 그를 신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머무는 일, 여호와가 자신에 관해 계시된 진리를 단순하게 증언하는 일, 하나님이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전제 아래서 그분의 명령대로 행하는 일, 부족한 점을 극복하게 하시는 여호와의 도움을 받고 필요에 따른 능력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신다는 여호와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일이 포함됩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소명을 받은 모세는 “나는 할 수 없으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순종입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온갖 불안과 약점과 결함을 지닌 사람으로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원치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올 때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신실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맹세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지킥자 하셨고, 때가 되었을 때 실제로 지키셨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영성훈련을 받으며 맡은 일에 충실할 때 출애굽 지도자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는 무능하고 부족한 자임을 인정할 때, 더 큰 능력과 은혜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보증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옛사람, 옛 생활의 구습의 신발을 벗어버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와 선교하는 사명자로 부름받아 지금도 사탄의 지배 아래 온갖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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