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고전1:1-31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9-09 |
20260909 수요설교 (능력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성도)
제목: 능력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성도
본문: 고전 1:1~31
I. 서론
지난 주 수요예배까지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보았는데 오늘부터는 고린도전·후서를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유럽의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각종 문화와 종교가 혼합되어 있었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도시인데 여기에 세워진 고린도교회는 성도들이 아직 성숙되지 못한 믿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바울이 쓴 편지가 고린도전·후서입니다.
본서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머물고 있었던 끝 무렵인 주후 55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는 주변의 타락한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분열과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황을 듣고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성숙한 성도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은 교회분열과 분쟁문제, 도덕적, 윤리적 무질서 문제, 결혼, 우상, 공적 예배와 영적 은사문제, 부활문제 등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거룩한 빛을 발해야 했지만, 고린도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자랑거리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성도들을 갈라놓았습니다. 누구는 바울파, 누구는 아폴로파, 누구는 게바파, 심지어 자신들은 신령하다며 그리스도파라고 주장하며 분열했습니다. 각자 자신이 따르는 지도자의 학식, 지위, 언변, 혹은 자신의 신앙적 경험을 자랑하며 타인을 판단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도 고린도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세상은 출신 지역, 학벌, 재산, 정치적 견해, 혹은 개인의 능력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나누어 세웁니다. 슬프게도 이러한 세상의 평가 기준이 오늘날 교회 안에도 스며들어 성도 간의 이질감을 만들고, 자랑과 비교, 나아가 분열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심각한 문제 앞에서 분열을 치료하는 단 하나의 명약인 ‘십자가의 복음’을 제시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거룩한 교회로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를 기억하라 (1:1~9)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숱한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성도의 정체성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일깨워 줍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름받았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회 성도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가 되었고 성령에 의해 점차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되어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진 것은 우리의 도덕적 완벽함이나 뛰어난 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받은 거룩한 무리’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본문 4-7절에서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언변과 지식이 풍족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게 되어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5~7절)고 했습니다. 그 감사의 이유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4).
은혜는 죄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구원의 은총을 말합니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 있어서 풍성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든 말이란 복음을 입으로 말하는 설교나 전도, 교리나 전파된 진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지식이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한 구체적인 지식이나 진리를 말합니다. 실제로 고린도 성도들은 오든 은사들과 지식과 연관된 교리나 진리를 깨닫고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견고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파한 복음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심겨져서 굳게 뿌리를 내렸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은사든지 부족함이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은 수많은 신령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은혜의 출처를 잊어버린 데 있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선물인데, 그들은 그것을 마치 자기의 소유인 양 착각하여 자랑거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고린도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때 까지 그 믿음을 굳세게 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은혜(Charis)’라는 말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 건강, 물질, 직분, 신앙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타인을 향한 비교와 자랑이 사라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뿌리인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공급받는 가지일 뿐입니다. 내가 가진 능력과 직분을 내 자랑으로 삼는 순간, 영적 분열이 시작됩니다. 나의 나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다 (1:10~25)
바울은 문안과 감사의 말을 전한 후에 이제 전해들은 소식에 근거하여 10-17절까지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일어난 중요한 원인은 지나치게 말이 많아 말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말다툼을 중단하고 같은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같은 말을 하라는 것은 순수한 복음만 말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말하고 복음을 말할 때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지도자를 따르거나 당을 짓는 분열을 멈추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한마음 한 뜻이 되려면 서로가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서로 믿음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소망으로 위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고 예수를 위해 살고자 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12절에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4가지 당파가 나오는데 여기 언급된 인물들 사이에는 당파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당파를 유지 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숭배를 절대로 금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 말씀하면서 오직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바울은 분열의 원인을 직시하며, 그 해결책으로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제시합니다. 18절의 말씀은 본문의 핵심 요절입니다. 같이 봉독해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렐루야! 여기서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게 되는 진리를 말합니다. 이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고 멸망당할 사람들에게는 그 십자가 복음 메시지는 매우 어리석고 무가치하고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그 십자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를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로 구분시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지혜를 대조하기 위해 예를 들고 있습니다. 19절에 지혜롭다고 하는 자의 지혜도 종종 미련한 것이 되고, 총명하다고 하는 자의 총명도 버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적 지혜에 따라 애굽과 동맹을 맺었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간섭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 산혜립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자신의 군사들이 멸망하여 갑자기 퇴각했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실패했을 때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의 지혜를 믿는 신앙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1절에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태도가 전도이기 때문에 자기를 나타내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는 진정한 사랑도 진리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진리가 내 속에 들어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만을 의지하여 이 십자가의 복음을 부지런히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2-25절에 보면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는 신적 능력을 가진 메시아를 기대하며 예수님에게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 세계에서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처형 도구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메시아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신 21:23)라는 율법적 관념 때문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기적과 표적을 구했습니다.
또한 헬라인들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수용하지 않았고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무시했습니다. 헬라인에게는 죄수로 십자가형을 받아 무력하게 죽은 예수가 세상의 구주가 된다는 주장 자체가 미련하고 터무니 없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미련한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 밖의 영적 어둠 속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4절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세상의 지혜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습니다.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연약함이 오히려 부활로 말미암아 인간의 그 어떤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미련하다'고 치부하는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인간의 힘으로 구원에 도달하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절망과 교만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가장 낮은 자리,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통해 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무능해 보이는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완벽한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지점이자, 궁극적인 능력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은 능률, 재력, 스펙, 눈에 보이는 성과를 지혜와 능력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성도들조차 교회의 부흥이나 영적 승리를 세상적인 방식으로 이루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혜로 신앙생활을 하려 할 때 교회에는 시험과 파당이 생깁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십자가의 겸손과 희생만이 교회를 바로 세우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 정권에 맞서 싸우다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일화입니다. 당시 독일의 수많은 교회들이 히틀러의 강압과 세상적인 권력, 안정이라는 세상의 지혜에 굴복하여 나치를 찬양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신앙의 안전과 영향력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회퍼 목사와 고백교회 성도들은 나치정권을 거부했습니다. 본회퍼 목사는 수감되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권력이나 화려함 속에서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가장 무력하고 수치스러운 방식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다. 성도가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어린 양처럼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는 철저한 낮아짐 속에서만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도 1938년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결국 장로교총회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가의 의식을 뿐이라고 변명하며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았습니다. 주기철 목사 등은 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했습니다.
당시 세상은 본회퍼의 선택을 미련하다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나치의 권력이 망하고, 십자가의 순결함을 지킨 그의 신앙이 오늘날 전 세계 성도들에게 진정한 영적 능력이 되었음을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화려한 지혜에 눈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하지만 무력해 보이고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 속에 세상을 이길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3. 연약한 자를 택하사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 (26~31)
마지막으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구원의 근본이요 하나님의 지혜인데 교회분쟁은 세상지혜를 좇는 어리석은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26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다수는 사회적 신분이 낮고, 학식이 부족하며, 세상적 영향력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물론 몇몇 부유하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처럼 세상에서 연약하고 천한 자들을 택하셨을까요? 27절과 28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원리는 세상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세상은 우월한 자를 택해 인재로 쓰지만, 하나님은 약하고 부족한 자를 택하사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남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자기가 가진 조건이나 신앙적 공로를 자랑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30절과 31절은 성도가 자랑해야 할 유일한 대상을 제시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아멘. 우리의 의로움, 거룩함, 구원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왔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랑은 나의 업적이나 지위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자랑하려면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오직 하나님만 찬송받으실 분임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린도전서 1장 본문은 우리에게 명확한 신학적 도전과 교훈을 던져줍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복음을 붙든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 교회 안의 비교와 파당을 차단하고 '일치'를 이루십시오.
우리가 세상의 기준(학벌, 재력, 정치 성향, 봉사의 연조)으로 다른 성도를 판단하거나 끼리끼리 파당을 만드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은혜를 기억한다면,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형제 자매를 그대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적 자랑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힘써 지키시기 바랍니다.
둘째, 세상의 방식이 아닌 '십자가의 지혜'로 삶의 문제를 풀어가십시오.
우리는 삶의 위기나 갈등을 만날 때 세상의 권력이나 수단방법을 쓰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진짜 능력은 낮아짐, 희생, 용서, 그리고 기도에 있습니다. 미련해 보일지라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놀라운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주 안에서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삶'을 사십시오.
매일의 삶 속에서 나의 자랑거리를 십자가 밑에 묻으십시오. 내가 이룬 성공, 자녀의 잘됨, 교회의 성장까지도 내 공로로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입술에서 나와야 할 유일한 자랑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바울의 고백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평생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그 능력으로 세상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거룩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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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 믿음에 굳게 서라 | 골2:1-23 | 2026-06-17 | 홍기칠 목사 |
| 106 | 교회의 참된 일꾼 | 골1:24-29 | 2026-06-03 | 홍기칠 목사 |
| 105 | 복음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 | 골1:13-23 | 2026-05-27 | 홍기칠 목사 |
| 104 | 복음 안에서 성숙해지는 성도의 삶 | 골1:1-12 | 2026-05-20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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