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골1:1-12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5-20 |
20260520 수요설교
본문: 골1:1-12
제목: 복음 안에서 성숙해지는 성도의 삶
I. 서론: 감옥에서 피어난 감사와 기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기록한 이른바 ‘옥중서신’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사방이 가로막힌 어둡고 습한 감옥, 언제 처형당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육신의 질병과 외로움이 엄습하는 그곳에서 사람이 뿜어낼 수 있는 감정은 보통 무엇이겠습니까? 원망, 불평, 낙심, 혹은 억울함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가장 먼저 쏟아놓고 있는 고백은 놀랍게도 ‘감사’와 ‘기도’입니다. 본문 3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당시 골로새라는 도시는 에베소나 빌립보 같은 대도시와 비교하면 점차 쇠퇴해 가던 작은 소도시였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그곳에 가본 적도 없었고, 직접 교회를 개척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라를 통해 세워진 작은 성도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작은 교회 안에 신비주의, 금욕주의, 율법주의 같은 온갖 거짓 이단 사상들이 침투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걱정하고 책망하며 한숨을 쉬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영적인 눈을 들어 그들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뜨거운 격려와 본질적인 신앙의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고 복음 위에 굳게 서기를 원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 선포한 '성도가 걸어가야 할 참된 삶의 세 가지 이정표'를 마음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II. 본론
1. 복음 안에서 믿음, 사랑, 소망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1~8절)
바울과 디모데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소식을 들으며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축복했습니다. 그 감사의 구체적인 내용이 4절과 5절에 등장합니다.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 삼각대라고 할 수 있는 ‘믿음, 사랑, 소망’입니다. 본문 4-5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보고 감사한 이유는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람을 향한 사랑이 넘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말미암음이니’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고, 서로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하늘에 쌓아 둔 소망’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망은 이 땅의 썩어질 물질이나 권력, 세상의 평안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예비된 영원한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영광이었습니다. 이 소망이 확실하니까, 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소망을 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지만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믿음으로 살고 사랑으로 섬기게 됩니다.
바울의 동역자 애바브라는 골로새 성도들에게 이러한 복음을 전했고 성도들의 사랑을 바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역사는 6절 말씀처럼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시작되어,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이며, 반드시 삶의 열매로 증명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믿음, 사랑, 소망으로 이웃을 섬기니 그 소문이 골로새 지역 뿐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퍼져나갔습니다. 복음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라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성숙해집니다.
주후 250년경, 로마 제국 전역에 '키프리안 역병'이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갔고,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교도들과 로마의 귀족들은 자신의 가족이 감염되면 길거리에 내다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시체들이 거리에 방치되어 썩어갔습니다.
그때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버려진 이교도들의 시신을 묻어주었고,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물을 먹이고 간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감염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저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가?" 답은 하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늘에 쌓아 둔 소망“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요,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믿었기에 이 땅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모든 성도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이 행함을 보고 로마 제국은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복음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 열매는 어떠합니까?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배터리가 방전된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시선이 다시 이 땅의 소망에 매여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파트 평수, 통장 잔고, 자녀의 세상적 성공이라는 '이 땅의 소망'은 우리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고 이웃을 시기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번 한 주간, 내 시선을 '하늘 소망'에 고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소망에 빚진 자로서, 가족이나 교회 안에서 먼저 화해의 말을 건네고, 어려운 사람 한 명을 실제로 섬겨보십시오.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 영육 간에 낙심해 있는 사람이있다면 구체적인 격려의 메시지나 작은 선물을 통해 사랑의 열매를 직접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예수님의 성품이 드러나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 차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십시오 (9~10절)
바울은 감사를 넘어 이제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쏟아 놓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우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만이 특별하고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며 그런 지식이 있어야 구원받는다고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맞서 "진짜 너희가 채워야 할 지식은 그런 음침하고 신비주의적인 헛된 망상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성경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10절에 그 목적이 명확히 나옵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지식은 반드시 ‘삶의 행함’으로 이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내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내 발끝으로 내려와 나의 일상적인 삶의 걸음걸이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왕의 자녀가 왕실의 법도를 배워 왕세자답게 걷고 행동하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주께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조종사들이 구름이 잔뜩 끼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비행기를 조종할 때, 아주 위험한 현상을 겪는다고 합니다. 바로 '비행 착각'입니다. 사방이 캄캄하면 몸의 평형감각이 마비되어, 비행기가 거꾸로 뒤집혀 땅으로 처박히고 있는데도 조종사는 자신이 하늘로 똑바로 올라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입니다. 이때 자신의 느낌과 직관을 믿고 조종간을 잡으면 여지없이 추락합니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훈련을 받습니다. 내 느낌, 내 경험, 내 눈에 보이는 환경을 철저히 불신하고, 오직 조종석 앞에 있는 비행 계기판 숫자만을 보고 조종하는 '계기비행'입니다. 계기판이 수평이라고 하면 내 몸이 뒤집힌 것 같아도 수평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거센 풍파와 유혹의 안개가 낄 때, "내 생각에는 이게 맞아", "내 감정에는 이게 편해"라며 내 직관을 따라가면 영적으로 추락합니다.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인생의 계기판, 즉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에 나를 통째로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주께 합당한 행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재물을 사용할 때, 사람을 대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으십니까? "내게 이익이 되는가?" 혹은 "남들은 어떻게 하는가?"가 기준입니까?, 아니면 " 이것이 주님께 합당하며 범사에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가?"가 기준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삶이 변화되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기 전 10분 동안 휴대폰을 켜지 말고, 오늘 주신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마음속으로 세 번 질문하십시오.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내 감정과 고집을 내려놓고 말씀의 계기판에 순종하는 훈련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3.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며 감사하십시오 (11~12절)
마지막으로 바울은 성도가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힙니다. 11절입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강력한 힘'이라고 하면 홍해가 갈라지고, 병자가 벌떡 일어나고, 사업이 대박 나는 기적적인 현상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정의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의 힘은 예상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입니다. ‘견딘다는 것’은 힘든 환경과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내며 굴복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상황에 대한 인내를 말합니다. 그리고 ‘오래 참는다는 것’은 나를 아프게 하고 실망하게 만드는 인간관계 속에서 보복하지 않고 끝까지 품어주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인내를 말합니다,
여러분,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를 괴롭히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견디는 것'이며, 내 속을 뒤집어놓는 사람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지 않고 기쁨으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수양이나 인격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만 가능한 최고 수준의 기적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참고 견뎌야 할 일이 많습니다. 때로는 기도해도 응답이 늦어지고, 섬겨도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견디는 성도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새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12절에서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 했습니다. 이 인내의 종착역이 원망이나 억울함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여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그것이 성령의 능력 입은 자의 최종 모습입니다. 감사는 상황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은혜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감사의 이유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큰 고난 속에서도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라고 했습니다. 환경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코리 텐 붐 여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나치의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코리 텐 붐 여사와 그녀의 언니 벳시의 일화입니다. 그들이 배정받은 수용소 막사는 좁고 불결하기 짝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온 사방에 '벼룩'이 가득 끓었습니다. 물리고 가려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지옥 같았습니다. 언니 벳시는 성경 구절 (범사에 감사하라)을 기억하며 "코리, 이 벼룩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말했습니다. 코리는 화가 났습니다. "언니, 아무리 그래도 이 끔찍한 벼룩을 어떻게 감사해? 하나님도 이건 이해 못 하실 거야." 그러나 몇 달 후, 자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간수들의 감시를 피해 수많은 여성에게 비밀리에 성경을 읽어주고 복음을 전했는데도, 악독한 나치 간수들이 유독 그들의 막사에는 단 한 번도 검사를 하러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간수들이 그 막사에 가득한 '벼룩'에 옮을까 봐 무서워서 근처에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벼룩 때문에 그들은 가장 안전하게 예배드리고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을 견디게 하시고 인내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순간, 그 지옥 같은 수용소는 감사와 찬양의 처소로 변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을 밤잠 못 이루게 찌르는 '벼룩'은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압박입니까, 직장 상사의 괴롭힘입니까, 혹은 풀리지 않는 자녀의 문제입니다. 내 힘으로 그것을 바꾸려 하면 지치고 원망만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도우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때 내 삶의 고난 목록을 적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옆에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주님, 내 힘으로는 견딜 수 없으니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능하게 하사 기쁨으로 견디게 하옵소서." 더불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환경이나 사람의 이름을 적고, 오히려 그 상황 속에 숨겨진 감사의 조건 3가지를 찾아 노트에 적어보는 '역발상 감사 일기'를 시작해 보십시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비록 작고 흠이 많았으며 이단의 위협 앞에 흔들리던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해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심겨진 복음의 씨앗이 가진 위대한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 역시 이와 같습니다.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했던 바울의 기도가 바로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첫째, 복음 안에서 믿음, 사랑, 소망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천국 소망을 바라보며 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옆으로 이웃을 위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 차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십시오 (9~10절)
내 기분과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방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머리와 가슴을 채워 우리의 매일의 일상 속에서 주께 합당하게 행하십시오.
셋째,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며 감사하십시오
내 성질과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무릎을 꿇고, 성령의 영광스러운 힘을 공급받아 모든 환난을 묵묵히 견디며 끝까지 오래 참음으로 승리하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원망을 찬송으로, 불평을 감사로 바꾸어 내십시오.
이 세 가지 삶의 이정표를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번 한 주간도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복음의 증인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 104 | 복음 안에서 성숙해지는 성도의 삶 | 골1:1-12 | 2026-05-20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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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 | 행21:1-22:29 | 2026-02-18 | 홍기칠 목사 |
| 92 | 바울의 3차 선교여행 | 행20:1-38 | 2026-02-11 | 홍기칠 목사 |
| 91 | 바울의 에베소 선교 | 행19:1-41 | 2026-02-04 | 홍기칠 목사 |
| 90 | 바울의 고린도선교 | 행18:1-28 | 2026-01-28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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