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골1:13-23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5-27 |
0260527 수요설교 복음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
본문:골1: 13-23
제목: 복음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자 삶의 영원한 기초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선포하는 골로새서의 가장 핵심적인 본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다"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고백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보낸 골로새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는 겉으로는 평안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치명적인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거나, 엄격한 율법과 금욕주의를 지켜야 신령해진다는 이단 사상, 그리고 철학과 세상의 초등학문이 교회 침투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거짓 가르침의 공통점은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믿고, 다른 것도 더해야 온전해진다는 이 교묘한 유혹 앞에 바울은 단호하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요, 교회의 머리이시며,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라고 외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뒤흔드는 세상의 유혹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깊이 깨닫고, 복음의 소망 위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본론
1. 우리를 건져내신 구속의 주님 (13-14절)
바울은 먼저 사도적 선포를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구원의 격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선언합니다. 본문 13-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알기 전 우리의 상태를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죄의 종노릇을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어둠의 소용돌이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어둠 속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건져내사'라는 단어는 단순히 위험에서 구출하는 것을 넘어, '사자의 입에서 찢어내듯 강력한 힘으로 빼내어 구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를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지옥의 백성에서 천국 시민으로,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한 이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14절 말씀처럼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속량 또는 구속이란 노예를 값을 치르고 사서 해방시킨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죄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거기서 건져내셔서 완전한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한 어린 소년이 새장 속에 참새 몇 마리를 가두고 괴롭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년은 잔인하게도 새들의 날개를 잡아당기며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얘야, 그 새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느니?" 소년은 무심하게 대답했습니다. "가지고 놀다가 지치면 고양이 먹이로 던져줄 거예요." 목사님의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소년에게 제안했습니다. "내가 돈을 줄 테니 그 새장과 참새들을 나에게 팔지 않겠니?" 소년은 쓸모없는 참새를 비싼 돈을 주고 사겠다는 목사님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돈을 받고 새장을 넘겨주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소년이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새장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참새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오 주님, 사탄의 손아귀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던 저를, 당신의 고귀한 피 값을 치르고 사셔서 하늘나라의 자유를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참새처럼 사탄의 새장 속에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이라는 가장 비싼 값을 치르고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죄와 죽음의 절망에서 나를 건져 내신 예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이 구원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며 감사합니까? 삶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이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고,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묵상하며 감사일기를 써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옮기신 그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감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만물과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창조의 주님 (15-19절)
두 번째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 만물과 교회의 통치자요 머리가 되심을 선포합니다. 15절부터 18절까지는 그리스도의 신적 신성과 탁월함을 찬양하는 '그리스도 찬가'의 핵심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다면 예수님을 보면 됩니다. 그분은 하나님 자체요 그와 본질이 같은 분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모든 만물이 있기 전에 계셨고, 만물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우주 은하계부터 지상의 모든 권세자나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분의 다스림 아래서 유지되고 존속됩니다. 과학자들도 자연의 법칙인 창조의 질서를 연구하지만 실제 그 법칙을 창조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모든 만물이 존재하므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은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설계와 가치관을 그리스도의 모습과 계획에 맞추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이 장엄한 만물의 통치자께서 바로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주와 세상의 통치자이실 뿐 아니라 우리가 모인 이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뜻입니다. 이 교회란 보이는 조직교회뿐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보이지 않는 우주적 교회를 말합니다. 몸은 머리의 지시에 순종해야 하듯이 교회는 머리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해야 합니다. 머리와 몸이라는 관계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가 아니라 생명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것보다도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침투했던 거짓 교사들은 천사를 숭배하고 신비한 지식을 깨달아야 높은 영적 단계에 이른다고 속였지만, 바울은 만물의 으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하므로 다른 것은 필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을 때의 일입니다. 연주가 끝나자 장내에는 폭풍 같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관객들은 환호했고, 단원들도 지휘자인 토스카니니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때 토스카니니는 벅차오르는 감동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단원들을 향해 손을 젓고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에게 박수를 보내지 마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베토벤만이 모든 것입니다!" 그는 위대한 음악 천재의 작품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감추고 오직 원작자의 위대함만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모습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목사도, 장로도, 그 어떤 대단한 사람이나 프로그램도 교회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권위 아래 복종하고, 그분만을 높이는 인생이 가장 안전하고 복된 인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십자가로 화목을 이루신 화평의 주님 (20-23절)
마지막 세 번째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곧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치르신 대가와 그 결과에 대해 말씀합니다. 20절과 22절을 보십시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었습니다(21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은 결코 나아갈 수 없으며, 그 진노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행하신 방법은 '그의 십자가의 피'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육체를 입고 오셔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주만물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특히 교회의 머리요 부활의 첫열매로서 십자가로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이 화목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 뿐 아니라 인간 죄 때문에 허무한데 굴복하고 있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만물 전체에 까지 미칩니다. 골로새교인들과 같이 우리가 믿음에 들어오기 전에는 죄로 인해 악한 행실에 사로잡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죄악된 행위를 일삼고 사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증오하는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구속함으로 얻어 하나님과 완전히 화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목의 참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단순히 구원하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당당히 세우기 위함입니다. 법정으로 치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너는 무죄다! 너는 완벽하다!"라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때문에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23절에서 간곡하게 권면합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고 했습니다.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려면 계속적으로 믿음을 지키고 그 믿음의 기초위에 굳건히 서서 그리스도 왕국에서의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거짓 가르침이 몰려올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위에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결코 흔들리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과거의 원수된 자체로 있는 부분이 없는지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거룩한 신분을 삶에서 누리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관문인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건설할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다리가 놓이는 곳은 바닷바람이 거세고 물살이 세차서 공사 초기에는 작업 환경이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안전장치가 미비했던 공사 전반기에는 높은 곳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이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부들은 공포에 질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공사 진행 속도는 너무나도 더뎠습니다. 고심 끝에 건설 책임자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다리 아래 전체에 촘촘하고 튼튼한 '그물망(Safety Net)'을 설치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부들의 마음에 "떨어져도 저 그물망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확신과 평안함이 생기자, 공사 속도가 이전보다 무려 20% 이상 빨라졌고 사고율도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물망이 주는 안전함이 그들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능률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우리의 인생 아래 펼쳐진 영원하고 견고한 안전 그물망과 같습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여 넘어지고 삶의 폭풍 속에서 흔들릴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이루어 놓으신 화평과 구원의 은혜는 결코 찢어지거나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복음의 소망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에, 우리는 세상 속에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흑암에서 건져내신 구속의 주님이시며, 온 우주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창조의 주님이십니다. 또한 그분의 육체의 죽음과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화평의 주님이십니다. 이 위대하고 탁월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신데, 우리가 세상의 작은 유혹과 형편 앞에서 흔들릴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강력히 도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이번 한 주간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구체적인 세 가지 실천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실천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피로 사신 이 신분에 걸맞게,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도, 직장과 가정의 은밀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불꽃 같은 눈동자로 나를 보고 계심을 인식하며 거룩함을 지키십시오. 한 주간 미디어 시청을 절제하거나 언어의 행실을 정돈하는 구체적인 거룩의 훈련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내가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 행동하고 있는지 기도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매일 감사와 고백의 기도를 통해 거룩하고 흠없는 자로 살아가도록 스스로 점검하며 주일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 믿음의 기초를 굳건히 세우십시오.
둘째, 가정과 일터에서 '화목의 메신저'가 되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이루셨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 역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자(Trouble Maker)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먼저 손 내밀고 용서하며 피스메이커(Peace Maker)로 살아가십시오. 이번 주간, 나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관계가 어색해진 누군가에게 먼저 따뜻한 격려의 문자나 전화를 건네며 화평의 씨앗을 심으시길 바랍니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화해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고 먼저 용서를 구하거나 먼저 화해를 도모하십시오.
셋째, 매일 아침 '복음의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너는 부족해, 돈이 더 있어야 해, 스펙이 더 필요해"라며 복음의 소망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골1: 13절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예수님이 나의 창조주요 나의 주님이시다, 나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고백하십시오. 이 고백이 나의 영적 터전이 될 때 세상의 어떤 유혹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터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굳게 서서, 이 한 주간도 복음의 능력을 세상 속에 흘려보내는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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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바울의 3차 선교여행 | 행20:1-38 | 2026-02-11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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