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고전5:1-13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10-07 |
20261007 수요설교
제목: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을 지키라
본문: 고전5:1-13
I.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 고린도전서 5장 말씀을 통해 "교회의 거룩성과 순결"이라는 다소 무겁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바닷물이 배 안으로 밀려들어 오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그 배는 침몰하고 맙니다. 오늘날 교회가 맞닥뜨린 가장 큰 위기는 세상 속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과 타락한 문화가 교회 내부로 무분별하게 침투하여 교회의 거룩함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목회적 심정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당시 고린도라는 도시는 고대 항구 도시로서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웠으나, 동시에 도덕적으로 극도로 부패한 곳이었습니다. '고린도인처럼 되다'라는 말이 당대에 '음란하고 방탕하게 살다'라는 뜻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러한 세속적인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고린도교회 안에 세상 이방인들조차 차마 행하지 않는 충격적인 죄악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자기 아버지의 첩이나 후처와 근친상간을 저지른 사건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도 손가락질하는 도덕적 타락과 비윤리적인 문제들이 교회 안에서 터져 나올 때, 우리는 진정으로 아파하며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며 통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요즘 세상에 그럴 수도 있지',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다 용서하실 거야'라며 은혜를 핑계로 죄를 방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구분된 거룩한 공동체로서 교회가 어떻게 거룩함과 순결을 회복하고 유지해야 하는지 분명한 지침을 주신 것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II.본론
1. 죄에 대한 거룩한 비통함과 영적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1~5)
우리는 공동체 안의 죄에 대해 도덕적 무감각을 버리고, 거룩한 비통함으로 단호한 영적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러한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첩이나 후처와 근친상간의 음란죄를 저지른 교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타락하면 교회 안에서 가장 형편없는 범죄가 나옵니다. 중세시대 타락한 교황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교회 안에서도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통한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러한 명백한 죄악보다, 그 죄를 대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태도였습니다. 바울은 2절에서 그들이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라고 강력히 책망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유를 누린다'는 그릇된 은혜관에 빠져, 영적 방종과 도덕적 무감각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죄를 보고도 아파하거나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들의 넓은 포용력과 자유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죄를 범한 자를 보고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통한히 여기다'는 말은 ‘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끼며 울부짖는 애통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교회의 한 지체가 죄에 빠진 것은 단순히 남의 불행이나 남의 허물이 아니라,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썩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죽음의 비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교만해졌습니다. 자신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은혜가 넘쳐서 어떠한 죄도 다 용서하고 품을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단호히 배격하며, 3~5절에서 사도적 권위로 이미 판결을 내렸다고 선언합니다. 주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그를 사탄에게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을 미워해서 쫓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공식적인 '권징'을 시행하라는 명령입니다.
권징의 최종 목적은 무엇입니까? 5절 후반절에 그 명확한 신학적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그를 교회에서 출교하여 교회와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며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징은 징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죄인을 깨우쳐 회개하게 함으로써 그의 영혼을 최종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마지막 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당뇨병 환자의 '당뇨발(당뇨병성 괴사)' 합병증을 생각해 보십시오. 발가락 끝에 균이 침투하여 썩어 들어가기 시작할 때, 명의는 환자를 아낀다는 핑계로 "괜찮습니다. 조금 참으시면 자연히 좋아질 겁니다"라며 방치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사는 환자가 고통스러워할지라도, 썩은 부위를 단호하게 절제하거나 잘라내는 수술을 결정합니다. 발가락 하나를 잘라내는 것은 비정함이 아니라, 발가락 때문에 손상될 전체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고의 사랑이자 단호한 결단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권징과 죄에 대한 처단도 이와 같습니다. 죄를 품고 가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방관이며, 영적 방임이자, 공동체 전체를 죽이는 무서운 독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죄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는 영적 불감증을 회개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2. 묵은 누룩을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6~8)
둘째로, 우리는 오염시키는 죄의 확산성을 경계하고, 유월절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워진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본문 6절에서 바울은 매우 익숙한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 했습니다. 유대 문화에서 누룩(효모)은 종종 부패와 죄, 악한 영향력을 상징합니다. 빵을 만들 때 아주 작은 양의 누룩을 밀가루 반죽에 넣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반죽 전체가 부풀어 오르고 성질이 변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공동체 안에 회개하지 않는 한 사람의 죄, 혹은 내 삶 속에서 소홀히 여긴 한 가지 조그만 죄악이 방치되면, 그것은 누룩처럼 조용히, 그러나 완고하게 공동체 전체와 내 영혼 전체를 오염시키고 무너뜨립니다.
바울은 구약의 유월절과 무교절의 구속사적 의미를 가져와서 교회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7~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희생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 했습니다.
묵은 누룩을 버리라는 말은 옛사람의 성품인 죄를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계속 퍼져나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을 때, 그들은 십자가 구원의 표상인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 안에서 모든 누룩을 철저히 제하여 버린 채 누룩 없는 떡(무교병)을 먹으며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영원한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새 덩어리'가 된 성도는 마땅히 과거의 죄악된 습관, 즉 '묵은 누룩'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여기서 '순전함'은 햇빛에 비추어 보아 아무런 결점이 없는 상태를 뜻하며, '진실함'은 위선과 거짓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온 동네 사람들이 마시는 깨끗하고 투명한 대형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그 우물에 치명적인 독극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수천 리터의 깨끗한 물이 있다고 해서 그 단 한 방울의 독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단 한 방울의 독이 우물 전체를 마실 수 없는 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이 정도 작은 타협쯤이야 괜찮겠지", "남들도 다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데..." 하며 방치하는 작은 죄의 누룩이, 거룩해야 할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마귀의 놀이터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자답게 날마다 내 삶의 구석구석을 살피어, 숨겨진 묵은 누룩을 털어내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이라는 거룩한 떡을 나누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교회 내부의 거룩성을 정결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9~13)
셋째로, 교회의 사명은 세상과의 도피나 분리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나아가되 교회 내부의 거룩함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8절까지의 설명을 들은 성도들 중에는 '그렇다면 세상의 죄인들과는 아예 관계도 맺지 말고 출입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오해를 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9~13절을 통해 매우 지혜롭고 균형 잡힌 영적 원리를 제시합니다.
본문 9~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이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불신자들, 세상의 죄인들과 연옥처럼 분리되어 사막이나 산속으로 들어가는 '은둔주의'나 '금욕주의'는 성경이 말하는 거룩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셨듯이, 우리는 불신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경계하는 것은 11절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형제라 일컫는 자', 즉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하며 교회에 다니면서도,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음행, 탐욕, 우상숭배, 비방, 술 취함, 사기 등의 죄를 저지르며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므로 우리가 판단할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실 영역(12-13절)이지만, 교회 안에서 성도라 불리면서 죄를 가볍게 여기고 거룩함을 짓밟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상종하지 말고 교제를 금하라는 것입니다.
13절 하반절의 명령은 단호합니다.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신명기에 무려 10번 이상 반복되는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공동체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입니다.
바닷속 깊은 곳을 항해하는 잠수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잠수함이 바다 밑 깊은 물속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바닷속에 담겨 있지만, 바닷물이 잠수함 내부로 단 한 방울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해치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잠수함의 철갑에 균열이 생겨 외부의 바닷물이 내부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잠수함은 얼마 못 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수중에서 파괴되고 맙니다.
성도와 교회는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잠수함입니다. 우리는 세상 한복판으로 깊숙이 들어가 불신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속의 부패한 문화와 타락한 가치관이 교회 내부로 들어와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막아내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 교회는 존재 이유와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상으로부터 짓밟히는 소금이 될 뿐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시는 고린도전서 5장의 말씀은 오늘날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한국교회와 우리 각자의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 아픈 경고이자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영향력을 잃어버린 진짜 이유는 세력이 약해서도 아니고, 재정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바로 '거룩함'과 순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맺으며, 우리가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세 가지 구체적인 적용 전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개인적 적용으로 내 안에 숨겨진 '묵은 누룩'을 날마다 십자가 앞에 고백하고 단절하십시오.
남의 허물을 비판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탐욕, 음란한 생각,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말, 물질에 대한 속임수 등 작은 누룩들을 은혜라는 핑계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서서 죄를 아파하며 통회하는 회개의 제단을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공동체적 적용으로 죄를 용인하는 '거짓 사랑'을 버리고, '거룩한 순결'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십시오.
교회 내에서 성도 간에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인간적인 온정주의로 죄를 덮어주는 것은 그 영혼을 죽이는 길입니다. 영적 진실함과 안타까운 애통함의 마음을 가지고, 필요하다면 권면하고 돌이키도록 도와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거룩함을 격려하는 건강한 구역과 모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 속에서의 적용으로 세상 속으로 나아가되,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세상의 불신자들을 정죄하거나 피하는 독선적인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따뜻한 사랑과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음란하고 이기적인 유행과 가치관이 내 삶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에 침투할 때는 단호히 해치를 닫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의 능력을 통해 나 자신 뿐 아니라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을 지키고 세상을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참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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