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참된 사역자와 성도의 정체성
2026-09-30 10:24:52
홍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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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고전4:1-21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9-30

20260930 수요설교

제목: 참된 사역자와 성도의 정체성

본문: 고전4:1-21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4장 전체를 통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던지는 가장 아프면서도 철학적이고 깊은 신학적 권면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혜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방언, 예언, 지식, 영적 체험이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편에는 심각한 병폐가 가득했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파벌을 나눴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쪼개고, 자신들의 지도자를 자랑하며 타인을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지혜와 화려한 말씨, 외형적인 권위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은연중에 세상의 평가 기준을 들여옵니다. 목회자의 스펙, 교회의 규모, 성도의 사회적 지위, 외형적인 성과를 가지고 서로를 비교하고 판단합니다. 내가 속한 그룹을 은근히 자랑하며 다른 이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영적 교만이 우리 안에 찾아오곤 합니다.

 

오늘 본문 4장에서 바울은 이러한 교만과 분열의 먼지를 완전히 걷어내며, 하나님 앞에서 '참된 사역자와 성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선포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역설을 다시 들고 나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만물의 찌꺼기 같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비밀을 맡은 자의 삶이 바로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판단 기준이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이동하고, 참된 충성과 겸손의 영성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본론

1. 판단의 주권은 오직 주님께 있다 (1-5)

첫째로, 우리는 사람의 평가나 자신의 자만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심판대만을 의식하며 사는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1절에서 사역자와 성도의 정체성을 두 단어로 정의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본래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뜻합니다.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노를 젓는 노예가 아닙니다. 오직 선장의 명령에 따라 그저 노를 저을 뿐입니다. 또한 '맡은 자'를 뜻하는 원어는 청기기를 말합니다. 주인의 재산과 가정을 관리하는 대리인일 뿐, 집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든,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든,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종이며,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잠시 위탁받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청지기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화려한 성과나 사람들의 찬사가 아니라 오직 '충성'입니다. 그래서 2절에 “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충성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충성의 핵심을 '판단 권한의 내려놓음'에서 찾습니다. 바울은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스스로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경계했습니다. 3-4절에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스스로를 의롭다고 판단하거나, 반대로 과도한 자책과 열등감에 빠집니다. 혹은 남을 향해 비판의 칼날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때가 이르기 전, 즉 주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어둠에 숨겨진 것들을 밝히시고, 마음의 뜻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19세기 영국의 한 경건한 구두수리공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시골 마을의 작고 어두운 상점에서 평생 타인의 낡은 구두를 수리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어떤 화려한 성공도 이루지 못했고,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삶은 너무나 평범하고 허무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두 안쪽에 자신만의 작은 문구를 새겨놓고 일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바느질을 보고 계신다” 고 새겼습니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신발 바닥의 숨겨진 실밥 하나를 꿰매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을 의식했습니다. 자기를 향한 세상의 비난이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이 마지막 날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실지만을 생각하며 충성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평판에 목말라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칭찬에 우쭐할 필요도 없으며, 사람들의 비난에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마음의 동기를 아시고 어둠 속의 비밀을 밝혀내실 오직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가만을 두려워하며 오늘 하루의 삶에 신실하게 노를 젓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십자가의 약함이 영적 교만을 깨뜨린다 (6-13)

하나님 나라의 역설은 세상의 자랑과 권세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고 낮아지는 십자가의 길에 있습니다.

본문 6절부터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교만을 향해 매우 날카롭고 거룩한 질문과 역설을 던집니다. 7절에 "너에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거저 주신 영적 은사와 지식을 마치 자신이 잘나서 얻은 독점적 자산인 양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영적으로 배가 부르고, 이미 풍성하며, 사도들 없이도 왕 노릇 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8절).

 

이러한 고린도 성도들의 자만심을 깨뜨리기 위해, 바울은 당대 로마의 '승전 퍼레이드' 비유를 들고 나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머릿 끝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라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화려한 행렬을 벌였습니다. 맨 앞에는 장군과 승리한 군대가 서고, 그 행렬의 맨 마지막, 즉 가장 뒤편에는 전쟁 포로들 중 원형경기장에서 짐승의 밥으로 던져져 '죽이기로 작정된 죄수들'이 끌려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손가락질하고 구경거리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참된 사역자들의 모습이 바로 그 행렬의 맨 끝에 선 죄수와 같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10절부터 13절까지, 세상에서 왕 노릇 하려는 고린도 성도들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사도들의 삶을 대비시킵니다.

"우리는 어리석으나 너희는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라고 대조했습니다.

 

사도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합니다. 박해를 받으면 참고, 모욕을 당하면 비방을 받으면서도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도들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학적 역설입니까? 세상은 능력과 화려함, 지배력을 자랑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낮아짐과 섬김, 고난을 통해 일합니다. 교만이 들끓는 곳에는 분열이 일어나지만, 십자가의 약함을 지고 만물의 찌꺼기처럼 낮아지는 곳에서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몰로카이 섬의 성자로 불리는 다미안(Damien) 목사의 삶이 이 신학적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9세기 하와이 몰로카이 섬은 치유되지 않는 문둥병(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되어 버려진 '죽음의 섬'이었습니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던 그곳에 다미안 목사는 스스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그를 경계했습니다. "당신은 건강한 사람이지 않소.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척하지 마시오." 다미안 목사는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고름을 짜내며,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미안 목사는 아침에 차를 끓이다가 발에 뜨거운 물이 쏟아졌는데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신마저 한센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날 주일 설교에서 다미안 목사는 이전과 다른 인삿말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신, "우리 한센병자들은.." 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비천해지고, 찌꺼기처럼 낮아져 그들과 같은 한센병자가 되었을 때, 섬 전체에 완악했던 마음들이 녹아내리고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능력은 높은 곳에서 군림할 때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낮아지고 찌꺼기가 되는 약함 속에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조금 무시당하고, 손해 보고, 어리석어 보인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주님의 참된 제자라는 증거이며, 영적인 능력이 흐르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3. 말이 아닌 능력으로, 아비의 심정으로 살라 (14-21)

영적 권위는 화려한 언변이나 지식이 아니라 복음의 삶으로 증명되는 아비의 사랑과 능력에 있습니다. 14절 이하에서 바울의 어조는 날카로운 비판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부모의 심정으로 변화합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자신이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아버지'임을 선언합니다.

15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 했습니다.

 

'일만 스승'은 당대 아이들의 등하교를 돕고 지식을 가르치던 '노예 관리인'을 의미합니다. 스승은 보수를 받고 지식을 전달하지만, 아이의 생명과 영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피와 눈물로 낳고,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쳐 양육하며, 자녀의 허물까지도 끌어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계와 사회에 지식과 말재주를 자랑하는 '스승'은 넘쳐납니다. 어디를 가나 가르치려 하고, 평가하려 하고, 비판하는 말꾼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영적 자녀를 위해 기도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안으며 복음으로 낳아주는 '영적 아버지', '영적 어머니'는 너무나 희귀합니다.

 

바울은 아비의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16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 했습니다. 어떻게 바울은 감히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신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낮아지신 것처럼, 자신도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만물의 찌꺼기처럼 낮아지는 아비의 삶을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행동은 따르지 않는 삶이 아니라, 삶 전체로 복음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영적 자녀 디모데를 먼저 보내어 자신의 신앙의 삶을 재확인하게 한 후, 자신이 직접 방문할 때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확인하겠다고 선포합니다.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능력'은 단순한 기적이나 신비한 은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 즉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만들고, 분열된 자를 하나 되게 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견뎌내게 하는 십자가의 삶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묻습니다. 21절에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가랴?"라고 했습니다. 참된 영적 권위는 군림하는 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입증된 사랑과 온유함에 있습니다.

 

 

18세기 영국, 노예매매 폐지 운동을 이끌었던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뒤에는 존 뉴턴(John Newton) 목사라는 영적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명, 당시 영국 사회를 거룩하게 바꾼 '한나 무어(Hannah More)'라는 여성 교육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식인들의 화려한 사상적 논쟁과 입으로만 외치는 '말의 종교'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탄광촌의 버려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평생을 바쳐 주일학교를 세우고 글을 가르쳤습니다.

 

주변의 수많은 지식인과 귀족들이 비웃고 비판할 때, 그녀는 말로 싸우지 않고 그 가난한 아이들의 어버이가 되어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이 영국의 거룩한 지도자들로 자라났고, 영국의 도덕적 대각성을 일으켰습니다. 세상의 이론과 화려한 언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아비의 심정으로 흘린 눈물과 복음의 삶은 시대를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사상이나 말장난에 있지 않습니다. 아비의 심정으로 영혼을 품고, 삶으로 십자가를 져내는 성도의 진짜 '능력'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전서 4장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얼룩진 교회를 향해 던지는 엄중하면서도 따뜻한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음 세 가지 구체적인 교훈과 적용 전략을 우리의 삶에 채택해야 합니다.

 

첫째, '남을 향한 비판'과 '세상의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십시오.

오늘부터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정지하십시오. 타인을 향해 쉽게 비판의 라벨을 붙이던 손가락을 거두십시오. 오직 나를 심판하실 분은 주님 한 분뿐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 나는 사람의 칭찬을 구했는가, 하나님의 인정을 구했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주님 앞에서 '비밀을 맡은 자'로서의 충성만을 점검하는 거룩한 독대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둘째,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받은 은혜'임을 인정하고 교만을 버리십시오.

내게 있는 지식, 재물, 영적 은사, 직분 중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교회와 가정, 직장에서 나의 권리와 주장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손해 보고 낮아지는 '만물의 찌꺼기'와 같은 섬김을 실천하십시오. 누군가 나를 무시하거나 억울하게 할 때, 맞서 싸우기보다 "주님, 제가 그리스도를 위해 이 작은 고난을 받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복으로 빌어주는 성숙함을 보이십시오.

 

마지막으로 말꾼인 '스승'이 되려 하지 말고, 영혼을 품는 '영적 아비'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판단하고 가르치려 드는 지적 지적질을 멈추고, 한 영혼을 슴에 품고 피 눈물로 기도하는 아비의 심정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구역, 혹은 가정 안에서 방황하고 있는 한 영혼을 지정하십시오. 그들의 허물과 연약함을 비판하지 말고, 내가 영적 부모가 되어 그들의 허물을 덮어주고, 복음으로 그들을 돌보는 사랑의 수고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성도 여러분, 세상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더 화려해지라고, 자신을 더 증명하고 자랑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배 밑창으로 내려가 노를 저으라고,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더라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라고, 영혼을 위해 아비가 되어 낮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참된 일꾼으로, 비밀을 맡은 자로, 아비의 심정으로 충성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나라의 능력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 거룩한 충성의 길, 십자가의 영광스러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쁨으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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