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고전6:1-20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10-14 |
20261014 수요설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제목: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본문: 고전6: 1-20
I. 서론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치열한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내 몸은 내 것"이라 말하며, "나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는 것이 최고"라고 가르칩니다. 때로는 세상의 법정과 가치관이 교회의 가치보다 더 합리적이고 세련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6장은 바로 그러한 세상의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이 던지는 강력한 신앙적 경고입니다. 당대 고린도는 상업과 철학의 중심지였으나 동시에 물질주의, 소송 남발, 그리고 극심한 음란 문화가 팽배했던 도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들을 둘러싼 고린도의 세상적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고 들어왔습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 두 가지 극단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성도 간의 법정 소송 문제(1-11)이고, 둘째는 음행과 몸의 거룩함에 관한 문제(12-20절)입니다. 바울은 단지 몇 가지 윤리적 지침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과 성령의 거주하심이라는 구원론적· 성령론적 기반 위에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법원에 가지 말라"거나 "음란하지 말라"는 표면적 금기를 넘어,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성도의 정체성을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값으로 산 존재이자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증명해 나갈 수 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II. 본론
1. 종말론적 정체성으로 세상을 판단하라 (1~11)
바울은 1절에서 분노에 찬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회는 소송이 일종의 사회적 특권이자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상류층 성도들은 자신의 기득권과 재산상의 이익을 위해 형제를 세상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성도가 가진 '종말론적 정체성'을 일깨웁니다.
성도는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하고, 심지어 타락한 천사들까지 심판할 권세를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교회 내의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서 세상 법의 기준으로 판단받으려는 것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다툼이 생겼을 때 믿음에 근거하여 교회 안에서 판결을 받지 않고 세상법정으로 가서 서로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원론적으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참여할 영광스러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세상과 천사도 심판할 자들이, 이 세상의 사소한 물질적 다툼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법관(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판단을 받는다는 것은 영적인 본말전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 나아가 본문 7절에서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도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불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속아 넘어가시듯 희생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화평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따르는 성도의 참된 권세입니다.
바울사도는 세상의 불신 법정에 송사하는 것보다 교회 판단에 맡기는 것이 더 좋고 또 물질적 손해를 본다고 해도 부당한 처사와 속임을 당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낫다고 했습니다. ‘불의한 일을 당하고도 속아주라’는 것은 돈과 이권이 거의 절대시 되던 상업도시 고린도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마5:39절 말씀처럼 무저항 교훈일 뿐 아니라 악에 대한 승리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4세기 교부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부부간, 성도간 갈등이 생겼을 때 결코 세상의 힘이나 비방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니카의 이웃이나 교우들이 재산과 자존심 문제로 법적 다툼을 벌이려 할 때마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그들의 상처를 들어주었습니다.
한쪽 편을 들며 억울함을 부추기는 세상 법정의 방식 대신, 모니카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친히 억울함을 당하는 편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결국 소송 직전까지 갔던 많은 이들이 모니카의 희생적인 중재와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보고 스스로 소송을 취하했으며,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다투지 않고 스스로 용서하는 모습이야말로 참된 신의 도성"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재산권을 내려놓은 모니카의 거룩한 양보가 세상의 법정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더 강한 법적 대응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치 아래 우리의 권리를 내려놓는 사랑의 포기입니다. 본문 9~10절에는 불의한 자들의 구체적 행동 10가지 목록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즉 음행하는 자, 우상숭배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질,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되고, 성령의 역사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불의한 삶의 목록을 버리고, 11절의 말씀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깨뜨리지 말라 (12~18)
12절부터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또 다른 치명적인 오류인 음행의 문제를 다룹니다. 당시 고린도에 퍼졌던 "영은 거룩하고 육은 악하거나 무가치하다"는 헬라 철학의 잘못된 사상은 두 가지 극단으로 나타났는데, 하나는 금욕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방탕주의였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구원의 자유를 오용하여,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는 것처럼, 몸의 성적 욕구도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창기와 연합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식욕과 성욕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서 인간생활에 모두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한계를 벗어나게 될 때는 방종이 되어 나를 얽어맴으로써 참된 자유를 빼앗아 가 버립니다. 바울을 비록 그 자체가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지배되거나 종속되지 않을 것임을 결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히 선언합니다. 본문 13절에서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성경적 기독교는 육체를 썩어 없어질 껍데기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창조하셨고, 주님은 우리의 몸을 구속하셨으며, 장차 주님의 부활처럼 우리의 몸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14). 따라서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바울은 15~16절에서 파격적인 신학적 선언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가 창기와 한 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 창기의 지체로 만드는 영적 모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 됩니다(17).
다른 죄들은 몸 밖에 있지만, 음행은 그리스도의 지체인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8절에서 "음행을 피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음행은 싸워 이기는 대상이 아니라 즉시 도망쳐야 할 파괴적 유혹입니다. 다른 죄에 대해서는 싸워야하지만 음행은 요셉처럼 맹수나 독사를 피하듯이 도망가야만 합니다.
20세기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찰스 스펄전의 일화입니다. 당시 영국 사회에도 음란과 유혹의 문화가 강하게 불어닥쳤을 때, 한 청년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목사님, 유혹이 올 때 그것을 묵상하며 영적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 진정한 믿음 아닙니까?"
스펄전 목사는 집안에 켜져 있던 촛불에 손을 가까이 대며 말했습니다. "청년이여, 불이 뜨겁다는 것을 알면서 손을 불 위에 올려놓고 '내가 참아내겠다'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어리석음입니다. 유혹이 올 때 유혹의 장소에 머물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39장의 요셉처럼 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이자 영적 연합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고백하며 피했습니다. 자신의 몸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기에, 유혹의 현장에서 주저하지 않고 도망쳤던 것입니다. 마치 맹수나 독사를 보고 도망치듯이 음란의 유혹은 싸워 이길려고 하지 말고 빨리 도망치고 피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은 우리의 영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 손, 발, 그리고 우리의 성적 정결함까지도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거룩한 연합을 깨뜨리는 세상의 모든 음란한 유혹으로부터 피하는 거룩한 결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값으로 산 존재로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9~20)
바울은 본문의 클라이맥스인 19~20절에서 기독교 인간론과 성령론의 정수를 선포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는 기독교 신학의 세 가지 핵심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구약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렀으나,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성도의 몸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지성소가 되었습니다.
둘째, 우리는 주인의 소유권을 고대 노예 시장의 비유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는 '최고의 값'을 치르고 우리를 죄의 노예 시장에서 사서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나의 몸, 나의 재능, 나의 시간,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소유권이 마귀와 죄에서 하나님께로 완전히 이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목적은 "어떻게 하면 내 뜻대로 내 몸을 즐겁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몸을 가지고 나를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롬 12:1)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가장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명령입니다. 성도는 소극적으로 몸을 음란의 도구로 쓸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현장에서 그 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전인격적인 삶을 통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적극적 결론은 기독교 윤리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엄청난 부와 명예가 보장되었던 윌리엄 보든(1887~1913)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보든 밀크(Borden Milk) 회사의 후계자로서 수천만 달러의 유산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 자신의 몸과 인생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모든 재산을 선교 단체에 기부하고, 이슬람 지역인 중국 신장 지구의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이집트 카이로에서 언어와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카이로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수막염에 걸려 2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재능과 돈을 허비했다.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그가 쓰던 성경책 맨 뒤에서 세 구절의 글귀가 발견되었습니다.
No Reserves (남김없이) -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남겨두지 않는다.
No Retreats (후퇴 없이) - 세상 유혹 앞에 영적으로 후퇴하지 않는다.
No Regrets (후회 없이) - 나의 몸을 피 값으로 사신 주님께 드렸으니 후회가 없다.
이처럼 윌리엄 보든은 자신의 몸이 성령의 전임을 알았고,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바 된 인생임을 명확히 인지했기에 자신의 몸으로 최고의 영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몸을 정결하게 유지하고, 거룩한 도구로 드릴 때, 우리의 삶 전체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명확합니다. 세상의 법정과 유혹에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다운 품격과 거룩함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세 가지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십자가의 권리 포기'를 삶에서 실천하십시오.
교회 내부의 갈등이나 성도 간의 물질적 이해관계가 생길 때, 세상 법정으로 달려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 말씀의 원리로 돌아가십시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나와 다툼이 있는 형제자매에게 먼저 다가가 억울함을 십자가에 묻고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둘째, 음행의 유혹을 '피하는' 거룩한 환경을 구축하십시오.
음란한 문화가 음달에서 양지로 나와 스마트폰과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안방까지 들어왔습니다. 싸우려 하지 말고 피하십시오. 음란한 영상이나 유혹을 유발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즉시 차단하십시오. 시각적, 청각적 유혹이 오는 환경에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 거룩한 결단을 실행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도구'로 드리십시오.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지성소입니다. 건강을 해치는 악습이나 중독(알코올, 약물, 과도한 유흥)을 끊어내십시오.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우리의 입으로 찬양과 덕을 세우는 말을 하며, 우리의 손과 발로 낮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우리의 몸을 기꺼이 사용하십시오.
저와 여러분 모두 우리의 몸과 모든 생활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도록 내 주장을 내려놓고 거룩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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