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행9:32-10:48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5-11-30 |
주일오전설교 251130 베드로의 사역
본문: 행9:32-10:48
제목: 베드로의 사역
I. 서론
행9:1-31까지는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다메섹에서 전도하다가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공모하자 그 핍박을 피해서 밤에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와 3년간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에 바나바의 소개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만나고 거기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역시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자 그 형제들이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 항구로 보내서 배를 타고 그의 고향인 다소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사울은 고향에서 7년간 있으면서 묵상하면서 조용히 복음운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울이 7년간 조용히 지내는 동안 사도 베드로의 이방인 사역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어떻게 복음을 전하게 했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고침(9:32-36)
사울이 다소로 간 이후 베드로는 순회사역을 시작하면서 단지 복음전파만 아니라 이스라엘 각지에 흩어진 성도들을 방문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룻다로 갔는데 그곳은 주로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룻다는 애굽과 수리아를 이어주고 욥바와 예루살렘을 이어주는 교차지점으로 상업도시였습니다.
거기에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8년동안 중풍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 대 곧 일어나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과 성령의 능력으로 그 중풍병자를 낫게 했습니다. 이 치유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친구들이 데리고 온 다른 중풍병자를 만나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하시며 치유하신 것을 회상하게 합니다. 룻다와 인근의 사론지역 많은 사람들이 그 치유기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지난번 사마리아인 전도에 이어 이제 이방인 전도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2. 죽었던 다비다를 살림(9:36-43)
지중해 쪽 항구도시인 욥바에 다비다라고 하는 여제자가 있었는데 다비다는 아람어이고 헬라식 이름으로는 도르가라고 합니다. 그녀는 평소에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했는데 병들어 죽게 되자 사람들이 그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눕혀 두었습니다. 아마도 애니아의 치유소문이 욥바까지 퍼져나갔기 때문에 베드로가 온다면 죽은 그를 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 것 같습니다. 룻다가 욥바에서 16km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보내어 룻다에 있던 베드로에게 속히 와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도르가의 시신이 있는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울며 도르가가 평소에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이면서 도르가가 살아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도르가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했기에 그곳에는 조문을 온 사람들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본문 40절을 보니 “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것처럼 베드로는 먼저 울고 있는 사람들을 그 방에서 다 내보냈습니다. 그 다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에,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과 거의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아람어로 ‘달리다 굼’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아이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도 아람어로 ‘다비다 굼’ (다비다야 일어나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죽은 도르가가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막5:35-43절에서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던 장면과 매우 비슷합니다. 베드로는 그 기적을 직접 목격한 바 있습니다. 베드로는 눈을 뜨고 일어나 앉은 다비다에게 손을 내밀어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그녀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그 친구들과 많은 조문객들은 얼마나 놀라워하고 기뻐했겠습니까? 이 놀라운 기적의 결과로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시몬이라는 피장의 집에 여러날 머물면서 복음의 온전한 뜻을 좀 더 상세하게 전했을 것입니다. 단지 기적에 대한 경험만으로는 믿음이 쉽게 흔들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피장은 짐승의 가죽으로 가방이나 신발 등 생필품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 작업은 죽은 동물과 접촉하게 되는데 당시 유대법은 그것을 부정한 직업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이방인이며 더구나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이 있었다는 것은 유대관습에 대한 편견을 깨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당시 유대인 제자 중에는 이처럼 이방인 전도의 개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질병과 죽음의 도전에 담대히 응했습니다. 이러한 두 기적은 모두 예수님의 모범을 따른 것이고 예수님의 권능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두 기적은 모두 예수님의 구원을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베드로는 병든 사람과 죽은 여인 모두에게 같은 명령어를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기적은 모두 예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애니아가 고침 받았을 때 룻다와 샤론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를 보고 주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고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었습니다. 이러한 표적의 목적은 바로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3. 고넬료의 회심(10:1-48).
사도행전 10장에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이사랴에 이방인 로마군대 장교에게 나타난 성령의 주권적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이방인 개종자인 고넬료의 회심은 복음이 이방인에게 까지 확장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북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였습니다. 이곳은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무할례자의 교회가 있었던 첫 번째 도시였습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으로 그 지역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이란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오늘날 중대장급 장교인데 이때 이탈리아 부대는 보통 여섯 개의 백인대로 이루어진 보병부대로 육백명 정도의 군사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지역에는 폭동이 자주 발생해서 치안유지를 위해 이스라엘 전역에 로마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대부분 정복자로서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 백성들과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로마장교로서 입장이 난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명성과 함께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본문 10:2절을 보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여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고넬료의 인격에 대한 특성을 네가지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많은 구제를 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믿음은 실천적이었습니다, 그는 정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활동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잘 모르고 영접한 적은 없었습니다.
본문 3절에 고넬료가 정시기도하는 시간인 제구시 즉 오후 3시에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본문 4절을 보니 고넬료가 두려워하며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라고 질문하자 천사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신실한 기도를 주시하고 계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히11:6절 말씀처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들의 신실한 기도에 대해 적절한 때에 적합한 사람을 보내시거나 적당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 상황과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듣고 깨닫고 반응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슨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거나 설교말씀을 들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음을 주실 때 즉시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욥바에 있는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욥바는 가이사랴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곳인데 거기가서 베드로를 찾으라는 지시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피장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하인 둘과 종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욥바로 보냈습니다. 그는 천사의 메시지에 순종하여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하인들을 보내어 베드로를 청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대하고 우주적인 계획을 가지고 이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진하는 마음이 있고 순종적인 종들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은 위대하신 지휘자 하나님께서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또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지혜나 은사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오늘 여러분에게 맡기실지 모르니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벧전3:15절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했습니다. 전도할 때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지,예수 믿으면 무엇이 좋은지 그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고넬료의 하인들이 베드로를 청하러 가던 바로 그때, 사도 베드로는 제육시 즉 정오에 평평한 지붕이 달린 집에서 그 지붕으로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침과 저녁에 기도하는데 베드로는 점심시간에도 정시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형식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는 하나님과 사랑과 신뢰의 표현으로 교제하는 것이라 가르쳤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런 기도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처음으로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된 의미심장한 사건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지만, 그 두 사람이 경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규칙적으로 찾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자신을 더 많이 계시하실 때는 그들이 기도 중에 있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도 전도하기 위해 늘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를 놓고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그와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면 그가 교회에 나오는 때가 있을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1-13절을 보니 베드로는 환상중에 보자기 같은 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각색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큰 소리가 났습니다. 베드로는 “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보자기에 구약에서 금한 부정한 짐승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소리가 있어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있은 후에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유대인의 음식법을 폐지하고 계셨으며, 이를 통해 베드로가 부정하다고 생각한 이방인을 만나도록 그를 준비시킨 것입니다.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은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강한 유대인적 사고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참다운 계시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반복은 베드로가 ‘부정한 무리들’이라고 생각하는 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납득시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이었습니다. 이 뜻밖의 환상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에덴동산의 배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와 논쟁하지 않고 그 진리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미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과 논쟁하려고 한 적은 없습니까? 논쟁 대신에 겸손히 순종하고 실천함으로 그 주시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을 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그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해 생각할 때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사람은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입니다. 베드로가 환상 중에 본 것을 적용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정확하고 복음 전파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은 분명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람들에게 고넬료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고 그 고넬료의 환상과 자신의 환상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들과 함께 유숙하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고넬료가 있는 욥바로 떠났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지혜롭게 욥바에서 온 성도들 몇 명을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베드로는 행8: 15-17절에서 사마리아인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새롭게 증거하게 하실 때는 다른 신자들이 그것을 직접 목격하는 것이 믿음의 확신을 갖게 하는데 최선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고넬료 집으로 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기를 얼마나 기대하고 간절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보자 그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고넬료는 이렇게 직접 찾아와준 베드로 사도가 너무 고맙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즉시 그를 일으키며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인간에게 절하고 경배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은 집 밖에서 단 둘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잠시 이야기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쩌면 고넬료가 절하는 이 행위는 베드로를 교만하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유혹에 넘어가는 대신 고넬료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칭찬하고 추켜세울 때 자신의 약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기회들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 세례요한 처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는 자가 되십시오. 베드로는 그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과 그가 겪은 일들을 설명했습니다. 고넬료도 그가 본 환상을 이야기 함으로써 이 극적인 만남의 배후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분명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고낼료가 베드로의 방문을 감사하면서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 이제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으므로 복음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말씀에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단순하고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재림에 대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메시아 사역을 위해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셔서 그가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사도들이 그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장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재판장으로 오실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고 구원얻는다고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이 베드로의 설교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복음 메시지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하고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44-48절에 보니 베드로가 이 말씀을 증거할 때 성령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자 방언도 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성도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부어 주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모였던 유대인 신자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정확히 동일하게, 이방인 개종자들이 배우지도 않은 방언까지 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표적이 없었더라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진심으로 회심하고 성령이 그들에게도 임한 사실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시적인 표적이 있었기에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이르렀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성령은 맨 처음 오순절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셨습니다. 안수도 없었고, 성령임재를 위한 기도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마음으로부터 전해지는 정확하고 긴박한 설교는 성령이 없었더라면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깨달음과 확신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설교자는 그 도구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능력을 믿고 주신 은사를 사용하기기 바랍니다. 이방인 신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새로운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베드로에게 수일을 더 머물기를 청했습니다. 아마도 방금 일어난 사건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새생명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은 가르침을 듣기 원했을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으로 8년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치유하고, 죽었던 다비다를 다시 살렸으며 이방인 고넬료와 그 친척들에게 복음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 까지 널리 확산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을 통해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처럼 모든 종교적 관습이나 문화나 인종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오직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 먼저 말씀묵상과 기도와 제자훈련으로 성령충만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과감히 현장으로 나가서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므로 질병과 죽음과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말씀충만, 성령충만, 능력충만 받아 대구교대와 남구 주민 그리고 대구시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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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베드로의 선교보고와 안디옥교회 | 행11:1-30 | 2025-12-07 | 홍기칠 목사 |
| 90 | 베드로의 사역 | 행9:32-10:48 | 2025-11-30 | 홍기칠 목사 |
| 89 | 사울의 회심 | 행9:1-31 | 2025-11-23 | 홍기칠 목사 |
| 88 | 빌립의 전도 | 행8: 1-40 | 2025-11-16 | 홍기칠 목사 |
| 87 | 스데반의 설교 | 행6:8-7:60 | 2025-11-09 | 홍기칠 목사 |
| 86 | 초대교회 일곱집사의 임직 | 행6:1-7 | 2025-11-02 | 홍기칠 목사 |
| 85 |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들 | 행5:17-42 | 2025-10-26 | 홍기칠 목사 |
| 84 | 교회성결과 치유역사 | 행5:1-16 | 2025-10-19 | 홍기칠 목사 |
| 83 | 전도를 위한 함심기도와 헌신 | 행4:23-27 | 2025-10-12 | 홍기칠 목사 |
| 82 | 공회 앞에서 증언한 베드로 | 행4:1-22 | 2025-10-05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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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오순절에 시작된 초대교회 | 행2:37-47 | 2025-09-21 | 홍기칠 목사 |
| 79 | 오순절에 임한 성령 | 행2:1-36 | 2025-09-14 | 홍기칠 목사 |
| 78 | 내 증인이 되리라 | 행1:6-26 | 2025-09-07 | 홍기칠 목사 |
| 77 |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행1:1-5 | 2025-08-31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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