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행11:1-30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5-12-07 |
주일오전설교 251207 베드로의 선교보고와 안디옥교회
본문: 행11:1-30
제목: 베드로의 선교보고와 안디옥교회
I. 서론
지난 주일 행10장에서 베드로가 8년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치유하고, 죽었던 다비다를 살리고, 이방인이었던 로마장교 고넬료 가정을 구원한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 선교가 확장되도록 역사하시는 놀라운 결과를 보았습니다. 오늘 행11장에서는 베드로가 이방인을 선교한 사실을 유대인들이 듣고 무할례자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성령에 의해 일어난 사건임을 설명한 내용과 이방인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의 설립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방인 선교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베드로의 이방인 선교보고(1-18)
이방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본문 1-3절에 보니 예루살렘교회에 있는 유대인 할례파 신자들은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들도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베드로에게 무할례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은 대부분 하나님이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을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선택하여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파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비난 받은 이유는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은 후에 바을과 베드로 사이에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가 분열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이 이 식사교제를 통해 터지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4-17절을 보면 베드로가 그 사건을 아주 상세하게 하나씩 차례로 설명했습니다. 베드로는 그가 기도하는 중에 겪었던 환상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베드로 자신에게도 그의 인종적, 종교적 편견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네 번 연속적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첫 번째는 짐승들과 기어다니는 짐승들과 새들을 담고 있는 보자기의 신적 환상이었습니다. 그 환상이 나타난 후에 베드로에게 한 소리가 그것을 잡아먹으라는 깜짝놀랄 만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베드로가 그것을 잡아 먹을 수 없다고 하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해서는 안된다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그 명령과 꾸짖음을 포함한 전체 환상이 세 번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늘의 소리는 그에게 기본적으로 짐승과 부정한 짐승들은 깨끗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 즉 할례를 받은 사람과 할례받지 못한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을 고넬료를 만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를 데리러 가이사랴에 온 세사람과 함께 가라는 신적 명령이었습니다.왜냐하면 마침 그 환상이 끝난 직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유하는 집에 도착했으며, 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아무 의심말고 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실로 지금 베드로를 포함한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온 형제 세명과 고넬료가 보낸 세하인 7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애굽법률에는 어떤 사실을 입증하려면 7명의 증인이 필요했으며, 로마법률에서도 유언장처럼 중요한 서류가 진짜임을 보증하려면 7개의 봉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7명이 이방인 선교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고넬료 환상을 통한 신적 준비였습니다. 베드로 일행이 고넬료 집에 들어섰을 때 고넬료는 하나님이 그들의 방문에 대해 어떻게 준비시켰는지 말했습니다. 한 천사가 나타나 욥바로 시몬 베드로를 찾으러 보내면 그가 구원의 말씀을 갖고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교회에 두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되풀이 하면서, 그는 일이 일어난 시간적 순서에 의해 새롭게 감명을 받았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고넬료와 베드로 두사람이 만나도록 조정하시고, 각자에게 며칠간 연속적으로 특별하고 독자적이며 적절한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써 그 만남을 준비시키면서 양 끝에서 일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해석했으며 신중하게 순종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세례를 베풀라는 계시는 신적 행동이었습니다. 그가 아직 복음을 말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하신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즉, “요한은 물은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다시말해서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유대인의 오순절에 대응하는 가이사랴에서 이방인이 맞이한 오순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인 베드로에게 이방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네 개의 결정적인 성령의 계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곧 환상, 명령, 준비, 그리고 행동입니다. 그것들은 이제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대등하게 하나님의 가족으로 맞이하셨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한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도 유대인들과 같이 성령의 선물을 주셨다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유대인 신자들에게 임한 것처럼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임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과 병행되는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새롭게 개종한 사마리아인과 이방인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순절 사건을 반복하셔서 그 이방인들을 구원받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임하신 것을 보고 하나님은 유대인만 편애하시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초청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기존 유대인 신자들과 화목을 유지하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수고를 했습니다. 때로는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본질적인 대화를 하되 서두르거나 건너뛰지 않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이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마음을 열고 베드로의 지도력에 그토록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례파 유대인 신자들이 베드로를 비난하던 데서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에 대해 몇가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연합입니다. 고넬료 이야기의 근본적인 강조점은 하나님은 그분의 새로운 공동체 내에서 어떤 구별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교회공동체 내에서 그러한 구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주의, 민족주의, 아프리카에서는 부족중심주의, 인도에서는 카스트주의가 존재하고 성차별 등의 사상이 교회에 계속 밀려들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고 이런 차별을 철폐해야 합니다.
둘째, 성령의 선물입니다. 고넬료 이야기에서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방언은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복은 아니지만 성령 내주의 선물은 보편적 복입니다. 고넬료가 받은 성령세례 뿐 아니라 물세례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바 오순절 날처럼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둘 다 포함해서 완전한 구원을 나타내고 인친 것입니다. 예수 믿은 자에게는 누구나 성령을 받을 수 있고, 성령내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비기독교 종교들의 위치입니다. 고넬료가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요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행10:31절에서 그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의 구제를 기억한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민족이나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도 절대로 그가 경건하고 정직하다고 해서 칭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지하고 관대한 사람인 고넬료도 결국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회개하며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받고 성령의 선물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인종차별을 하지 않으시며 믿음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누가는 사울과 고넬료의 회심에 대해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인종 면에서 사울은 유대인이었고,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문화 면에서 사울은 학자였으며 고넬료는 군인이었습니다. 종교 면에서 사울은 율법주의자였으나 고넬료는 구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둘 다 세례를 받고 대등하게 그리스도의 가족으로 영입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여전히 롬1:16절 말씀처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에 대한 증거이며, 그 복음은 편견이 없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입니다.
2.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시작(19-30)
1) 그리스 선교가 이름없는 전도자들에 의해 시작됨(19-21)
본문 19-21절을 보니 베드로가 이방인이었던 고넬료를 전도하기 위해 만났다는 사실이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누가는 사도행전을 쓰면서 안디옥에서 일어난 복음의 확산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했습니다. 구브로는 안디옥에서 떨어진 지중해 섬이며, 구레네는 북 아프리카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신자들의 노력에 하나님의 권능과 축복이 임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이방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베드로의 증언을 받아들이자 기독교는 이방인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이방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신자가 된 것입니다.
누가는 이처럼 외부를 향한 복음운동이 지리적, 문화적으로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리적으로 선교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서 오늘날의 레바논에 해당하는 페니키아(구레네)와 키프로스(구브로) 섬, 그리고 시리아의 안디옥까지 북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문화적 선교는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 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이제는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가 새로운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480km 정도로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중요한 상업중심지이며 로마제국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인구가 약 50만명이 되었습니다. 이 안디옥은 주전 300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들 중 한 사람인 셀레우쿠스 니카토르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그는 자기 아버지 안티오쿠스의 이름을 따라 그 도시를 안디옥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비록 그 도시 설립자는 그리스인이었지만 적어도 50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동등한 시민권을 주겠다는 셀레우쿠스의 제안을 듣고 온 유대인의 거대한 이민촌이 있었으며 또 페르시아, 인도, 중국에서 온 동양인들도 있어 그 도시를 ‘동방의 여왕’이라는 이름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도시는 주전 64년에 폼페이우스에 의해 로마 제국에 흡수되었고 시리아 지방의 수도가 되었으므로 그 주민들 가운데 라틴 민족도 포함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인들, 유대인들, 동양인들, 로마인들이 요세푸스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세 번째 도시라 부른 이 도시의 다민족 시민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은 이교도들 가운데 성행하던 악한 풍조들과 성적 부도덕을 부추기는 여러 가지 이교적 제사를 위한 우상도시였고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이제 이 도시는 새로운 전도자 바울의 주도 아래 앞으로 10년 동안 교회성장을 주도해 나가고 선교헌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신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세우신 교회는 바울을 위임하고 그가 세계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지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2) 그리스 선교가 바나바에 의해 승인됨 (22-24)
본문 22-23절을 보니 헬라인의 부흥으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을 조사할 사람을 시급히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사도를 보내지 않고 대신에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냈습니다. 그는 ‘위로의 아들’이란 이름에 걸맞게 교회에서 가장 관대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구브로 출신이던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복음운동을 시작했던 전도자들과 자연스런 민족적 연대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는 안디옥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고했습니다. 본문 24절에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바나바의 권면을 통해 큰 무리가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신자의 숫자가 증가하여 교회가 부흥한 것은 바나바를 통해 주님께서 역사하신 것 입니다.
3) 그리스 선교가 바울에 의해 공고해짐(25-26)
본문 25-26절에 “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울과 함께 사역하기 원했던 바나바의 겸손함과 전략에 대한 그의 판단력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 사역이 증가하자 혼자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다소에 있는 바울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신자들을 체계적으로 신앙의 기본원리를 가르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부활, 승천, 성령의 임재, 현재의 통치, 재림 등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 안디옥교회는 헬라파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인 곳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에서 1년을 보내며 새신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신앙훈련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이 이들을 처음으로 신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추종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4) 그리스 선교가 선행에 의해 인증됨 (27-30)
본문 27-28절에 “ 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디오때에 그렇게 되니라”고 했습니다. 아가보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온 선지자들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가보는 성령으로 천하가 흉년 들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아가보는 후에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될 것을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누가는 이 기근이 실제로 글라우디오 때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글라우디오는 주후 41-54년까지 다스렸습니다. 누가의 관심은 아기보의 예언이 성취된 것보다 안디옥 교회의 구제헌금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9-30절을 보면 그들은 이를 바로 실행에 옮겨 바바바와 사울을 통해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그 헌금을 보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는데 안디옥 교회는 이제 바나바와 사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낸 것입니다.
이 시기에 기근으로 인해 식량난이 심각했기 때문에 안디옥 신자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습니다. 지교회는 모교회를 도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장한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그 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했습니다. 그것은 주후 46년 쯤에 있었던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교회 방문이었습니다. 이 헌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형제라는 결속을 다지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롬15:27절에서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한 말처럼 안디옥 교인들이 그 말씀대로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참다운 성도의 본을 보인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여러 가지 핍박을 받을 수 있으나 끝까지 인내하며 성령의 인도따라 차분하게 복음을 증거하면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문을 열어주시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하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일로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곳에 안디옥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 사도들의 파송을 받아 안디옥에 가서 성도들을 더욱 권면하자 주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이 많아지자 다소에 있던 바울을 데리고 와서 같이 복음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때부터 안디옥교회가 이방선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은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세계선교의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사역자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예루살렘에 기근이 들자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구제헌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바나바와 같이 복음사역을 할 때 혼자가 아니라 팀을 이루어 복음을 전하면 더욱 효과적임을 알고 함께 협력하여 복음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인들이 체계적으로 말씀공부를 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듯이 우리 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세상사람들이 볼 때 정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되어 그들이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말씀을 실천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베드로와 바나바와 바울처럼 오직 복음증거를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우리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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