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세상 속에서 구별된 성도의 거룩한 삶
2026-09-27 20:46:10
홍기칠
조회수   6
설교본문 신14:1-29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9-27

20260927 주일오후설교

제목: 세상 속에서 구별된 성도의 거룩한 삶

본문: 신14:1-29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명기 14장 전체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는 광야 40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 거대한 가나안 문명과 마주할 백성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희는 과연 누구인가?” 오늘 본문 1절과 2절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정체성을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거룩함’의 핵심 의미는 ‘분리’와 ‘구별’입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로부터 구별되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함’이라는 거창하고 구속사적인 주제를 설명하시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신 지침들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는 슬픔을 표현하는 장례 문화, 3-21절에서는 매일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 문화, 22-29절에서는 재물과 수입을 다루는 경제 생활에 대한 거룩함의 구체적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거룩함이 우리가 매일 숨 쉬고 살아가는 가장 일상적인 영역인 ‘장례식장’, ‘식탁’, 그리고 ‘통장 잔고’에서 증명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일에 예배당 안에서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의 일상을 통해 하나님 백성다움을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3가지 대지로 나누어 살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깊이 있게 묵상해 보겠습니다.

 

II. 본론

1. 문화적 구별로서 세상의 문화와 절망을 거절하는 거룩한 정체성 (1~2)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장례 시에 애도하는 방식에 대해 지침을 주십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고 했습니다. 당시 가나안 이방 민족들은 친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극단적인 슬픔을 표현하면서 죽음의 신을 달래며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칼이나 돌로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고 머리털이나 눈썹을 미는 미신적 행위를 하는 우상숭배적· 주술적 장례 풍습이 있었습니다. 사망을 삶의 완전한 종말이자 비극으로 보았기에 통제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몸을 학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이 풍습을 엄격히 금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이자, 영원하신 생명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의 것이요 그리스도의 거룩한 지체이므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절망의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백성에게 죽음은 영원한 삶의 또 다른 시작이요, 부활과 영생이라는 소망의 통로입니다. 따라서 부활과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절망에 몰두하여 스스로를 파괴하는 문화적 습속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학자 고든 웬함(Gordon Wenham)은 정결법을 해석하면서 “이스라엘의 거룩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과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며, 죽음과 관련된 결단적 비탄이나 이방의 신비주의적 장례 의식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성도의 구별됨은 세상이 절망하는 순간에 '소망'을 선택하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 속에는 3세기 로마 제국에 불어닥친 ‘키프리안 대역병(Plague of Cyprian)’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하루에만 수천 명씩 죽어나가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 이방교도들은 시신을 길거리에 버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신의 가족마저 버린 채 도망쳤습니다. 절망과 혼란이 도성을 덮쳤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이 컸지만, 죽음 너머에 계신 부활의 주님을 믿었기에 절망에 파묻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성껏 성도들의 시신을 거두어 정결하게 장례를 치렀을 뿐만 아니라, 버려진 이방인 환자들과 시신들까지 목숨을 걸고 돌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이 절망을 표현하고, 돈을 추구하며, 실패에 대처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실패 앞에서 삶을 포기하려 할 때, 성도는 “내 아버지께서 여전히 날 사랑하신다”는 믿음으로 털고 일어나는 구별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비록 죽음이 닥친다해도 영원한 부활과 천국소망으로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생활적 구별로서 가장 일상적인 식탁에서 드리는 구별된 예배 (3~21)

두 번째로 모세는 레11장의 내용을 다시 반복하면서 먹는 문제, 곧 '음식 규례'를 다룹니다 (3-21). 하나님은 먹을 수 있는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명확히 구분하셨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라"고 하시고, "어린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독특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어린 염소를 어미의 젖에 삶는 행위’는 당시 가나안 토착민들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며 행하던 주술적 요리법이었습니다. 어미의 젖은 새 생명을 양육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수단인데, 가나안 사람들은 그것을 도살과 욕망의 도구로 악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생명에 대한 잔혹함과 이방 풍요 종교의 비윤리성을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음식 법이 가진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구별의 상징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 세 번, 식탁에 앉을 때마다 “내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하루 중 가장 본능적이고 일상적인 순간인 '식사 시간'마다 스스로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상기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둘째는 ‘우상숭배적 친교의 봉쇄’입니다. 당시 이방인들과의 식사는 곧 이방 신전의 제사 음식을 나누는 우상숭배적 교제와 직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음식 규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숭배적 문화와 타협하는 기회를 근본적으로 차단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막7:19절에서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하셨고, 사도 바울 역시 롬14: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레위기나 신명기의 문자 그대로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시기에 좋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조항 속에 담긴 ‘신학적 정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도는 먹고 마시는 본능적인 영역, 소비하는 음식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 10: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크리스천 정치가이자 노예폐지운동가인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의 삶에서 일상 속 거룩함의 본보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18세기 영국 상류사회와 정치권은 밤마다 술파티와 도박, 사치스러운 연회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정계에서 출세하려면 그러한 음란하고 방탕한 식탁 문화에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인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회심 후 윌버포스는 자신의 식탁과 교제 문화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는 방탕한 연회를 거절하고, 자신의 집 식탁을 정치적 야욕을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돕고 노예제 폐지를 위해 기도하며 거룩한 담소를 나누는 장소로 개방했습니다.

동료 의원들은 처음엔 그를 "독선적"이라며 비난하고 따돌렸으나, 윌버포스는 절제되고 정결한 삶, 절제된 식습관과 물질 사용의 유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깨끗하고 구별된 일상의 삶은 영국의 수많은 정치가들에게 깊은 영적 도전을 주었고, 무려 46년간의 투쟁 끝에 대영제국 내 노예제 폐지라는 위대한 신앙의 열매를 맺는 거룩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 우리가 소비하는 매체,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가장 본능적인 식탁과 소비 생활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경제적 구별로서 마땅히 드림과 나누어 섬김으로 증명하는 믿음 (22~29)

본문 22절부터 29절은 구약의 거룩함이 '경제 생활'을 통해 어떻게 완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십일조 규례’를 설명합니다. 십일조에 대한 규례는 레27:30-34, 민18:21-31절에도 이미 나왔습니다. 십일조는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십일조는 레위인과 제사장을 위한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득의 1/10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으로 분배받은 땅이 없이 성소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의 생계를 돕기 위한 십일조입니다. 레위인은 또 그중의 1/10을 다시 제사장에게 바쳐 그들의 생계를 돕습니다. 오늘날에 드리는 십일조 헌금은 역시 목회자의 생활비와 교회운영비로 사용됩니다.

 

둘째 십일조는 축제와 교육으로서의 십일조입니다 (22-27).

본문 22-27절에 나오는데 한해의 소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제에 소용되는 경비로 사용되었는데 흔히 축제 십일조라고 합니다. 매년 소산의 별도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성소에 가지고 올라가, 온 가족들과 종, 그리고 레위인과 함께 축제를 열고 음식을 함께 먹고 즐거워하는 십일조입니다. 이때 백성들은 제사장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식사함으로써 음식과 생활 전부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베푸신 것임을 고백하고 감사했습니다. 23절 하반절은 이 십일조의 목적을 명확히 밝힙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확한 곡식과 기름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 모든 풍요가 내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온 몸으로 배우고 고백했습니다.

 

셋째 십일조는 구제와 나눔으로서의 십일조입니다 (28-29).

셋째 십일조는 28-29절에 나오는데 이것은 안식년을 기준으로 제3년과 6년에 별도의 십일조를 저장하여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비용으로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사는 성중에 사는 이방인들과 나그네, 고아,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구제 십일조'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는 제,1,2 십일조는 매년내고 세 번째 십일조는 3년마다 추가하여 냄으로써 전체적으로는 매년 수입의 약23.3%를 십일조 형태로 드린 셈이 됩니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의 십일조나 헌금은 나의 모든 소유와 생명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따라서 십일조라는 특정비율을 넘어 전체를 드리는 고백으로 확장됩니다. 정해진 액수나 비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각자의 경제적 형편에 맟추어 균형있게 드리는 것을 권장합니다. 신약에서는 억지나 의무감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마음에 결정한 대로 기쁘게 드리는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고후 9:7절을 보면 “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아까워하거나 강요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경건한 성도들은 구약의 십일조 정신을 이어받아 소득의 1/10을 드리기를 즐겨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놀라운 신학적 반전을 목격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돈은 ‘자신의 자존심을 높이고, 세력을 쌓으며,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물질을 끌어 모으고 움켜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의 재정 관리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물질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는 도구’이자 ‘소외된 이웃을 살리는 사랑의 통로’로 사용하라고 명하십니다. 물질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나누는 행위는, “내 삶의 주인은 돈이 아니라 오직 만유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강력한 신앙 고백입니다.

 

29절 끝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내려 주시리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3:10절에도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것을 떼어 약자에게 흘려보내는 손길을 결코 가난하게 두지 않으시고, 그 손으로 하는 모든 범사에 신실한 복을 약속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돈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의 지혜로운 청지기가 됨으로써 거룩한 재정의 능력을 온 세상에 증명해 보여야 하겠습니다. 물질을 쥐고 있는 손을 펼 때, 비로소 하나님의 손이 일하기 시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신명기 14장 전체는 우리에게 세 가지 커다란 신학적 도전과 일상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백성입니다. 레위기의 정결법이 신명기 14장에 이르러 재해석되었듯이, 오늘날 우리도 구원받은 성도로서 세상 속에서 거룩한 구별됨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3가지 구체적인 적용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문화적 구별로서 ‘슬픔과 실패의 현장에서 부활 소망을 선포하십시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고난 앞에서 절망하고, 실패 앞에서 타인을 원망하며, 고통스러운 장례의 현장에서 소망 없는 자처럼 통곡하지 마십시오.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평안을 유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서 부활의 소망을 나눔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성도가 가진 구별된 영적 품격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생활적 구별로서 ‘가장 일상적인 소비와 식탁을 정결하게 파수하십시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인테넷, 유튜브 내용, 매일 나누는 대화, 식탁에서의 절제된 삶을 점검하십시오. 세상의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인 문화, 남을 헐뜯는 대화의 자리를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주일에만 성도가 아니라, 평일 여러분의 가정 식탁과 직장 휴게실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듯 정결하고 구별된 언행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구별로서 ‘청지기 정신으로 재정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고 이웃을 섬기십시오.’

십일조와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시혜가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거룩한 주권 선포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구별된 십일조 예물을 기쁨으로 드리십시오. 나아가 여러분의 소득 중 일부를 떼어 주변의 소외된 이웃, 가난한 교우, 외로운 독거노인이나 미자립교회를 위해 흘려보내는 ‘구제 십일조’의 삶을 실천하십시오. 움켜쥐면 내 손의 물질로 끝나지만, 흘려보내면 하나님의 풍성한 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거룩함을 세상과 격리된 산속이나 기도원에서 찾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여러분의 가정, 식탁, 직장, 그리고 통장 잔고를 다루는 순간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증명하길 원하십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거룩한 성도로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나눔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설교본문 설교일 설교자
122 세상 속에서 구별된 성도의 거룩한 삶 신14:1-29 2026-09-27 홍기칠 목사
121 우상숭배를 철저히 제거하라 신13:1-18 2026-09-20 홍기칠 목사
120 하나님 중심의 예배와 삶믕 신12:1-32 2026-09-13 홍기칠 목사
119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신11:1-32 2026-09-06 홍기칠 목사
118 다시 시작하는 신앙 신10:1-22 2026-08-30 홍기칠 목사
117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도 신9:1-29 2026-08-23 홍기칠 목사
116 은혜를 잊지 않는 신앙 신8:1-20 2026-08-16 홍기칠 목사
115 거룩한 구별과 승리의 비결 신7:1-26 2026-08-09 홍기칠 목사
114 네 하나님만 사랑하라 신6:1-25 2026-08-02 홍기칠 목사
113 우리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 신5:1-33 2026-07-26 홍기칠 목사
112 오직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말라 신4:1-49 2026-07-19 홍기칠
111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라 신3:1-29 2026-07-12 홍기칠 목사
110 광야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신2:1-37 2026-07-05 홍기칠 목사
109 하나님의 약속과 불신앙의 갈림길 신1:1-46 2026-06-28 홍기칠 목사
108 성막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 출40:1-38 2026-06-21 홍기칠 목사
1 2 3 4 5 6 7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