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사랑으로 행하여 덕을 세우라
2026-10-31 22:39:23
홍기칠
조회수   7
설교본문 고전8:1-13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10-28

20261028 수요설교

제목: 사랑으로 행하여 덕을 세우라

본문: 고전8:1-13

 

I. 서론

사도 바울 시대의 고린도는 당시 온갖 신전과 우상이 가득했던 거대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고린도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고기는 신전에 바쳐진 후 시장으로 흘러들어온 우상의 제물이었습니다. 이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졌습니다. ‘말씀에 지식이 있는 자들’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은 영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과거 우상 숭배의 습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위 자체에 큰 양심의 가책과 영적 두려움을 느끼던 성도들이었습니다.

 

지식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옳음'과 '신앙적 자유'를 주장하며 연약한 자들의 주저함을 무지하고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8장은 바로 이 영적 우월감과 갈등에 대해 사도 바울이 던지는 깊은 신앙적 훈계이자 사랑의 권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성숙한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 본문말씀을 통해 깊이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1-3절)

본문 1-3절에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서두에서 고린도 교회의 우상숭배 문제를 핵심적으로 짚어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스스로 '지식이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우상은 실체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시라는 진리를 알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그들의 행위를 보고 우상숭배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 당황하면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우상제물이란 우리나라 같으면 제사음식을 말하는데 예수 믿은 사람은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그 제사음식 먹는 것 조차 귀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우상숭배에 대하여 특히 민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상숭배하다가 하나님의 채찍으로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70년이나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대해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상제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음으로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시험에 들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식을 가졌으나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배려하는 사랑이 없으면 오히려 그들을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교만하게 한다'는 말은 '거품을 불어넣어 부풀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사랑이 결여된 지식은 영적 실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부풀려 타인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교만의 도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덕을 세운다'는 말은 '건물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라는 뜻입니다. 사랑은 영적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세워가는 건설적인 힘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은 늘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조차 완전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아는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알려진 바 되어 그분의 사랑으로 덕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지식을 자랑하였고 바울도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적 지식 때문에 교만해졌고 참 지혜인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사랑이 결여된 지식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무시하게 되고 교만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봉사함으로써 덕을 세우게 됩니다. 마치 집을 지을 때 모든 재료들이 서로를 지탱시켜 주듯이 사랑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전체를 서로 이어주는 구실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제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자를 특별히 아시고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뜻을 계시 하십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은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고 그 깊은 뜻을 더 잘 알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고 알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이 가진 성경 지식과 신앙의 경험이 다른 성도를 판단하고 가르치려 드는 '교만의 거품'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식의 목적은 자랑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의 근본요소는 남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많이 가질수록 다른 사람의 실수와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해하고 받아주며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식과 함께 사랑이 겸비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식을 가지고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성도 간에 덕을 쌓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2. 참된 영적 자유는 진리 위에서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는 것입니다 (4-8)

본문 4,7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 라고 했습니다.

 

본문 5절에 많은 신들과 주가 있다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명칭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헬라, 로마 세계는 여러 가지 형태로 우상숭배가 성행하고 있었으며 겉으로 보면 많은 신들과 주가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죽은 나무나 쇳조각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마귀나 악령들의 세력이 있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섬기는 신은 많지만 그것들은 참 신이 아니라 마귀가 속임수로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일으켜서 영적 눈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일본에는 800만 귀신이 있다고 하는데 그 거짓 신을 섬기며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지금 무속인들이 버젓이 언론에 나와 자기를 과시하는가 하면 타로점은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 오락처럼 널리 퍼져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6절에서 바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만물의 근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선언입니다. 우상은 단지 인간이 만든 돌이나 나무에 불과하며 아무런 영적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 자체는 그저 음식일 뿐입니다. 따라서 아무 것도 아닌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믿음이 약한 형제가 실족하지 않도록 우상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고합니다.

 

본문 6절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심이심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우리 아버지는 최고의 실제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고 섭리하시는 성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에 대한 믿음 속에는 우상숭배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음식물 그 자체가 더럽히는 일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해 영원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의 전생애를 다 바쳐드려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7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도의 영적 성숙도와 신앙의 분량이 같지 않습니다. 방금 우상 숭배의 삶에서 돌이킨 초신자들은 제물을 볼 때마다 과거의 죄악된 기억과 우상에 대한 공포를 떠올립니다. 그들에게 그 고기를 먹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여전히 우상과 타협하는 괴로운 행위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양심의 갈등으로 고민하게 되고 그 때문에 양심이 약해져 더럽게 되어집니다. 그들은 의심하면서 우상제물을 먹음으로써 양심이 약해졌을 뿐 아니라 양심을 거슬려 먹음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음식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제사 지내는 습관이 있어서 제사음식을 대할 때 꺼림직하게 여기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하는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야 하는 줄 알고 음식도 정성을 다하여 차립니다. 또 제사 지낼 때 귀신이 오다가 걸릴까 싶어 마당에 있는 빨래줄도 걷습니다. 빨래줄에 걸리는 귀신이라면 그 귀신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본문 8절에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일과 그것을 멀리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음식여부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고려하지 않고 우상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 자유가 있다고 하게 되면 우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양심이 약한 자들을 범죄케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기를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하나님을 더 가깝게 하거나 멀어지게 하지 않습니다(8). 그렇다면 왜 나의 자유를 주장함으로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만들어야 합니까? 신앙의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성숙함이 아니라 영적 교만입니다. 사랑없이 지식에 따라 행동한다면 믿음이 약한 자에게 죄를 낳게 되고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믿음이 강한 자의 지식에 의한 행위를 믿음이 약한 자가 똑같은 지식없이 흉내를 내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신앙의 본질에 대해 깊은 묵상을 남겼습니다. 그가 당시 교회 안에서 종교적 의식이나 비본질적인 문제로 파당이 나뉘어 다툴 때 교인들에게 남긴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자유와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형제가 아직 어린아이 같아서 단단한 음식을 씹지 못한다면, 나는 평생 그 형제를 위해 따뜻한 젖을 준비하는 종이 될 것입니다. 형제의 영혼을 얻기 위해 나의 지식과 자유를 기꺼이 감옥에 가두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진짜 자유입니다.“ 존 번연의 고백처럼, 진정한 영적 대가는 자신의 권리를 마음껏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 어린아이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제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형제를 위해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이 성숙한 사랑입니다 (9-13).

본문 9,12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연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연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결론 부분에서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영적 경고를 던집니다. 우리가 무심코 행한 '지식에 근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영적으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연약한 자가 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연약한 성도를 가리켜 단순히 '신앙이 약한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 부릅니다.

 

십자가의 가치를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연약하고 부족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물과 피를 쏟으셨고,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진리를 안다고 자랑하는 우리가, 한 조각의 고기를 먹을 권리를 포기하지 못해서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하고 실족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그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그늘에 계신 그리스도께 직접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깊은 신학적 깨달음 앞에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위대한 신앙적 선언을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스스로 음식을 선택할 완벽한 자유가 있었지만, 단 한 사람의 연약한 형제가 시험에 들지 않을 수만 있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자발적 포기를 결단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사랑의 완성입니다. 롬15:1절을 보면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 은사를 사용할 때 일반 성도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것으로 자기도 모르게 신앙의 교만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또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도 죄가 되지는 않겠지만 만약 성도나 목회자가 믿음이 약한 성도나 불신자들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면 그들을 실족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유익이 없는 음주나 흡연을 끊고 절제하는 것이 신앙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과거 아프리카의 오지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간 하워드 가이피(Howard Guify)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 부족은 서구 문명이나 외부인에 대한 깊은 경계심을 갖고 있었고, 선교사님이 착용한 시계, 구두, 그리고 고급 의복은 그들에게 신기함이자 동시에 커다란 위화감과 거리감을 주는 요소였습니다. 선교사님은 자신의 문명적 권리와 편의를 누릴 권리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족민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 이유가 자신이 가진 물질적·문명적 우월함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아끼던 구두와 시계를 벗어 두고, 부족민들과 똑같이 맨발로 흙바닥을 밟으며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편의와 권리를 포기하고 맨발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부족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당신이 전하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집니다. 당신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졌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의 권리 포기가 굳어있던 영혼들의 마음을 녹이고 복음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린도전서 8장의 말씀은 2천 년 전 고기 먹는 문제에 국한된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 이웃,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매일 일어나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신앙적 확신, 정치적 견해, 삶의 방식, 교회 봉사의 스타일을 가지고 타인을 쉽게 판단하곤 합니다. "왜 저 성도는 저렇게 신앙생활을 하지?", "성경을 알면 저렇게 행동할 수 없는데!"라며 나의 '지식'으로 형제를 비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의 옳음과 지식이 형제를 세우고 있느냐, 아니면 넘어뜨리고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신앙의 깊이는 곧 사랑의 넓이와 자유의 제한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권리를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듯이, 우리도 성숙한 성도로서 그 사랑을 실천할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첫째, '지식의 언어'를 '사랑의 언어'로 바꾸십시오.

내가 맞고 상대가 틀렸음을 증명하려 하지 말고, 나의 말이 상대의 영혼을 세워주는지 먼저 점검하십시오.

 

둘째, 비본질적인 문제에서 '지혜로운 연약함'을 선택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구원과 복음 등과 같은 본질적인 일 외에 비본질적인 일에 내 주장과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는 거룩한 양보를 실천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내 주변의 '연약한 형제'를 구체적으로 배려하십시오.

초신자나 시험에 들기 쉬운 성도의 눈높이에 맞춰 내 언어, 태도, 소비, 문화생활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제한하십시오. 지식은 자랑을 낳지만 사랑은 공동체를 세웁니다. 나의 지식으로 남을 이기는 성도가 되지 마시고, 나의 사랑과 권리 포기로 한 영혼을 살리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나의 권리를 내려놓고 연약한 형제의 손을 잡을 때,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가장 선명하게 증거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님의 삶 가운데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설교본문 설교일 설교자
125 사랑으로 행하여 덕을 세우라 고전8:1-13 2026-10-28 홍기칠 목사
124 거룩한 관계, 아름다운 부르심 고전7:1-40 2026-10-21 홍기칠 목사
12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20 2026-10-14 홍기칠 목사
122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을 지키라 고전5:1-13 2026-10-07 홍기칠 목사
121 참된 사역자와 성도의 정체성 고전4:1-21 2026-09-30 홍기칠 목사
120 하나님의 성전된 성도의 삶 고전3:1-23 2026-09-23 홍기칠 목사
119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라. 고전2:1-16 2026-09-16 홍기칠 목사
118 능력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성도 고전1:1-31 2026-09-09 홍기칠 목사
117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 살후3:1-18 2026-09-02 홍기칠 목사
116 흔들리지 않는 믿음 살후2:1-17 2026-08-26 홍기칠 목사
115 고난 속에 빛나는 믿음 살후1:1-12 2026-08-19 홍기칠 목사
114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 살전5:1-28 2026-08-12 홍기칠 목사
11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살전4:1-18 2026-08-05 홍기칠 목사
112 환난중에도 굳건히 서는 은혜와 사랑 살전3:1-13 2026-07-29 홍기칠 목사
111 참된 복음 사역자의 기쁨 살전2:1-20 2026-07-22 홍기칠 목사
1 2 3 4 5 6 7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