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거룩한 관계, 아름다운 부르심
2026-10-21 21:59:36
홍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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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고전7:1-40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10-21

20261021 수요설교

제목: 거룩한 관계, 아름다운 부르심

본문: 고전7:1-40

 

I. 서론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7장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보내온 현실적이고 아주 구체적인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는 장입니다. 고린도는 당대 로마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상업 도시였으나, 동시에 도덕적으로나 성적으로 매우 부패하고 무질서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그릇된 사상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첫째는 ‘금욕주의’입니다. 영은 거룩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적 영지주의 영향으로,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하고, 이미 결혼한 부부라 할지라도 성적 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방탕주의’입니다. “육체는 어차피 썩어 없어질 것이니 몸으로 무슨 짓을 해도 영혼의 구원에는 영향이 없다”며 음행과 방탕을 정당화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현대 사회는 어떻습니까? 가치관의 혼란, 가정의 해체, 성적 타락, 그리고 개인주의의 극대화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결혼, 부부관계, 독신,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7 전체를 통하여, 여기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부부는 서로에게 속한 거룩한 사랑의 동반자입니다 (1-16)

바울은 먼저 결혼과 부부관계의 본질에 대해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금욕주의자들은 결혼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바울은 음행을 피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룩한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각자 아내와 남편을 두라고 권면합니다(2절).

 

창1:27,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 하와를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부부가 된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결혼을 통해 자손의 번영과 만물을 관리하고 가꾸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은 원래 깨끗하고 좋은 것이었지만 타락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금욕주의와 방탕주의가 가정을 파괴하며 성적 타락을 부추겼습니다. 건전한 가정생활만이 음행과 방종한 성생활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3-4절에서 바울은 당시 가부장적이었던 고대 고린도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혁명적인 선언을 합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쪽만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의무’와 ‘상호 주권의 양도’를 말씀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몸에 대한 주권을 상대방에게 위임한 관계입니다. 따라서 부부간의 친밀한 성적 교제는 죄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선물이자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가정생활과 기도를 위해 합의 하에 잠시 분방하는 것 외에는 서로를 멀리하여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당부합니다(5절).

 

부부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기도에 몰두해야 할 때입니다. 이 경우에는 엄격한 세가지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서로 합의해야하고,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기도가 끝난 후에는 속히 합쳐야 합니다. 이렇게 주의 깊은 조건을 붙이는 이유는 인간은 연약하지만 사탄은 강하기 때문에 잠시 부부가 떨어져 있는 틈을 타서 사탄이 유혹하는 기회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엡6:22-33절에도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해서 부부는 한 몸이므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독신을 옹호하지도 않고 결혼을 반대하지도 않으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 안에서만 결정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9절에 절제의 은사가 없고 정욕이 계속 불타오른다면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권면할 정도로 부부간의 건전한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본문 10-11절에서는 결혼한 부부는 이혼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울의 권고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마19:6절에서 주님은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간음한 이유 외에는 결코 이혼하지 말라는 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만일 헤어졌으면 혼자 그대로 지내다가 다시 남편과 화해하여 합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역시 남편도 아내를 버려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12-16절에서는 바울은 믿지 않는 배우자를 둔 성도들에게도 권면합니다. 불신자와 결혼한 성도라 할지라도,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갈라서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배우자와 헤어지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참 사랑을 보여주고 실천한다면 언젠가는 그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아내나 믿는 남편을 통해 불신 배우자와 자녀가 거룩하여지고, 궁극적으로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을 통해 상대방 배우자에게 거룩함과 축복을 전달하는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더구나 부부 사이의 건전한 신앙이 자녀에게 미치게 되면 자연히 그들도 부부의 영향을 받아 거룩하게 되어질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시대를 생각해 봅시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성직자의 독신만을 거룩한 것으로 높이고, 결혼과 부부관계는 영적으로 단계가 낮은 세상적인 것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을 통해 결혼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제도임을 깨달았습니다.

 

루터는 수녀원 탈출을 도왔던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수녀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사랑하며, 수많은 신학도와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대접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었습니다. 루터는 “결혼 생활만큼 깊은 사랑과 신뢰, 거룩한 의무가 요구되는 관계는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중세의 잘못된 금욕주의를 깨뜨리고, 가정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임을 삶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과 부부관계는 단순히 육신적 결합이나 세상적 계약이 아닙니다. 서로를 섬기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며, 거룩한 구원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부르신 삶의 자리가 곧 은혜의 자리입니다 (17-24)

본문 17절에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 했습니다. 두 번째 대지에서 바울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바로 ‘부르심’의 원리입니다. 17절부터 24절까지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무려 9번이나 반복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후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으니, 나의 사회적 신분이나 환경을 당장 바꾸어야 하는가? 할례를 받은 유대인은 할례를 취소해야 하는가? 종의 신분인 사람은 당장 종의 신분을 벗어나야만 참된 그리스도인인가?”라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단호하게 답합니다. 할례를 받았든 안 받았든 그것은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며,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19절). 또한 종의 신분으로 부르심을 받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종일지라도 주 안에서는 자유인이며, 세상에서 자유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의 종이기 때문입니다(22절).

 

바울이 강조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자신의 외적 조건이나 사회적 신분을 능동적으로 완전히 파괴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았던 그 상태로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인이나 노예는 차이가 없으므로 각 사람은 주어진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역전이 가능한 것은 죄값을 치르고 그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댓가는 노예를 자유인으로 해방시키고 자유인은 그리스도 자신의 노예로 사들이게 됩니다. 노예상태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참 주인이 누구신지 알기 때문에 참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편 자유인인 그리스도인도 참주인이 누구이신지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노예로서 복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즉 사도바울은 어떤 형편에서 부르심을 받았든지 간에 그 주어진 상황과 위치에 만족하고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과 함께 머물면서 그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인 직장, 가정, 신분, 환경 속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의 신학은 훗날 종교개혁자들의 ‘소명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거룩함은 특정한 신분이나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태도에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회심한 후, 회의감에 빠져 정계를 은퇴하고 목회자가 되려고 고민했습니다. 그때 그의 영적 스승이고, 찬송가 3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시한 존 뉴턴(John Newton) 목사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윌버포스 의원, 하나님께서 당신을 정치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의회야말로 당신이 하나님을 섬겨야 할 거룩한 성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윌버포스는 자신의 정치적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의 현장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불이익과 위협을 무릅쓰고 영국 의회에서 억압받는 흑인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 싸웠고, 마침내 노예제 폐지라는 위대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버리는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참된 소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서 계신 삶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때로는 힘들고, 만족스럽지 못하며, 벗어나고 싶은 직장이나 환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내가 서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입니다.

 

3.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25-40)

본문 29,31절에는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대지에서 바울은 처녀들과 독신자들, 그리고 결혼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삶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바울은 당시 “임박한 환난”(26절)과 영적 전투의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주님을 섬기기에 더 유익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32-35절). 결혼한 자는 세상 일과 배우자를 어떻게 기쁘게 할까 염려하지만, 독신자는 오직 주님의 일에 집중하여 몸과 영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혼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결혼하는 것도 잘하는 것이요, 독신으로 지내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잘하는 것입니다(36-38절). 핵심은 결혼 여부가 아니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간다”(31절)는 종말론적 의식입니다.

 

29-31절의 말씀은 오해하기 쉽습니다.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 같이 하고, 슬픈 자들은 슬프지 않은 자 같이 하라”는 것은 삶의 관계나 감정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유한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얽매이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가라는 거룩한 절제의 메시지입니다. 세상의 기쁨도, 세상의 슬픔도, 세상의 재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성도는 이 땅의 것에 매이지 않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심전력하게 됩니다.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C.S. Lewis)는 종말을 바라보는 성도의 삶을 책의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은 책의 ‘서문’에 불과합니다. 진짜 본문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시작됩니다. 종말론적 소망을 가진 사람은 서문에 너무 연연해하거나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서문이 조금 힘들거나 풍족하더라도, 곧 펼쳐질 영원하고 위대한 본문 이야기가 되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오늘을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이 땅이 끝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도, 고통과 슬픔도 지나가는 바람과 같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이라는 시간에 주님만을 온전히 섬기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을 통해 결혼과 부부관계, 부르심의 소명, 그리고 종말론적 삶에 대한 깊은 신학적 통찰과 실천적 지혜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은사와 부르심의 자리에서, 주님을 향한 거룩함과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우리의 가정을 바로 세우며, 어떠한 처지에서든 주님만을 바라보는 거룩한 삶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배우면서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 3가지 거룩한 삶의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가정을 거룩한 예배와 섬김의 장소로 세우십시오.

부부는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나의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번 한 주간, 배우자의 영적·육적 필요가 무엇인지 깊이 관찰하고, 먼저 섬기는 언어와 행동을 실천하십시오.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내 삶의 거룩함과 따뜻함으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을 반사하는 통로가 되기를 결단합시다.

 

둘째, 지금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소명의식을 회복하십시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지금 내 환경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며, 오차 없이 여러분을 지금의 그 자리(직장, 가정, 신분, 환경)에 두셨습니다. 내가 일하는 직장과 일상이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지’임을 기억하십시오. 매일 아침 “주님,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의 종으로,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당당하게 일터로 나아가십시오.

 

마지막으로 지나갈 세상을 넘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십시오.

이 세상의 기쁨도, 재물도, 고통도 다 지나갑니다. 세상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는 거룩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독신이든, 결혼한 사람이든 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오직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세상의 자랑거리나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루 10분이라도 말씀묵상과 기도로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며 영원한 가치에 나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삶을 사십시오.

 

저와 여러분 모두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부부간에 서로 존중하고 헌신하며, 각각 서 있는 장소가 사역자임을 기억하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며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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