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 설교본문 | 신15:1-23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10-04 |
20261004 주일오후설교 (은혜의 선순환)
제목: 은혜의 선순환
본문: 신15:1-23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유'와 '집착'의 원리로 움직입니다. 하나라도 더 가져야 안전하고, 손에 쥐고 놓지 않아야 빼앗기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의 경제학은 "너의 것을 굳게 지키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은 세상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뒤엎습니다. 오늘 본문인 신명기 15장은 '안식년'과 '종의 해방', 그리고 '초태생(첫 새끼)의 바침'에 관한 규정을 다룹니다.
이 세 가지 규정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은혜로 받은 것을 흘려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은혜의 선순환이라고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은혜의 선순환 원리를 함께 나누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재조명해 보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손을 펴서 놓아주는 은혜 (1~11)
본문 1~11절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 관한 규정입니다. 레위기 25장에는 안식년에 대한 규례가 자세히 나옵니다. 제7년에는 농사를 짓지 말고 땅도 쉬도록 하고, 집의 종들도 돌려보내며, 빚도 탕감해주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원상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걱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제6년째에 복을 주셔서 그 소출이 3년동안 쓰기에 풍족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안식년에 농사짓지 않아도 풍족히 먹을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에도 평일에는 만나를 그날 하루분만 거두어야 하지만, 안식일 전날에는 만나를 두배로 거두어 안식일에 먹도록 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 때문에 이 7년째의 안식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은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빚진 자의 채무를 면제해 주고, 빚을 받아내기 위해 억누르던 손을 거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안식년에는 농사를 짓지 않아 수입이 없으므로 채무자에게 빚 독촉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명령은 단순한 금융 제도가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창조의 안식'과 '출애굽의 구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6년 동안 토지를 경작하고 경제 활동을 하더라도, 7년째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손을 떼어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6:1의 비율로 노동과 휴식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창조질서입니다. 이 안식년은 단순한 휴식 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생활과 일체성을 재정비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고 했습니다.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빚을 면제해 주면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가난한 자가 없어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빚을 탕감해주면 가난한 사람이 없게 됨으로써 극심한 빈부격차로 사회적 혼란이 없어질 것입니다. 본문 6절에는 더 나아가 그렇게 하면 여러 다른 나라에 꾸지 않고 그 나라를 다스리는 복을 누리게 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로마가 열심히 세계에 복음을 전할 때 ‘세계는 로마로’가 되었고, 영국이 세계 선교사를 많이 보낼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을 때에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이를 방해합니다. 9절에 보면, 안식년이 가까워지는 6년째 되는 해에 가난한 형제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곧 면제년이 되어 돈을 받지 못할까 봐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는" 간사한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은 11절에서 단호하게 명령하십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서 네 형제 곤궁한 자와 가난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고 명령했습니다. 이 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웃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가지게 함으로써 돈과 물질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완전히 없애지 않고 남겨두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성도들로 하여금 '손을 펴는 훈련'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웃에게 구제의 손을 펼 때,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만석꾼이었던 경주 최부잣집(경주최씨 문파) 가문에는 “나그네에게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는 땅을 사지말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좋은 교훈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안식년의 면제 제도는 나에게 찾아온 가난한 이웃의 채무를 내가 대신 짊어지고 손을 펴주는 거룩한 연대 책임을 말합니다. 내가 움켜쥔 손을 펼 때, 그 빈손으로 하나님의 더 큰 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대가 없이 자유를 주는 사랑 (12~18)
12~18절은 히브리 종의 해방에 관한 규정입니다. 당시에 빚을 갚지 못하면 자기 자신이나 자녀를 종으로 팔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히브리 동족이 종이 되었을 경우, 6년 동안 섬기고 7년째에는 조건 없이 자유인으로 놓아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인은 동족인 그 종을 다른 이방인과는 달리 노예로 취급해서는 안되고 품꾼처럼 대우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똑같이 지음 받았을 뿐 아니라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똑같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한 공동체였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13~14절을 보겠습니다.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종을 내보낼 때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립할 수 있는 밑천인 되는 양과 곡식과 포도주를 후히 주어 내보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빈손으로 내보내면 다시 극빈상태가 되어 다시 종으로 팔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자립할 수 있도록 넉넉히 주어서 내보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규례였습니다.
15절에 그 신학적 이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기억하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과거 애굽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종노릇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무 자격 없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권능의 손으로 속량하여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금은패물을 애굽사람으로부터 받아 나오게 하셨고 가나안 땅까지 주신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큰 은혜를 받았으므로 그들로 종을 해방시킬 때도 후하게 주어 내보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16~17절에는 종이 주인을 사랑하고 그 집이 좋아서 영원히 종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주인은 그의 귀를 집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영원한 종으로 삼습니다. 억압과 자본에 의한 종속이 아니라, 그를 형제처럼 환대해준 주인이 너무 좋아서 '사랑에 매인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손해와 상관없이 실천해야만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순종의 댓가로 더 많은 것으로 보상해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종도 자기를 형제처럼 대해주는 주인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자발적으로 충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장차 우리를 위해 스스로 낮아지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우리의 참된 주인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 순종과 사랑을 예표합니다.
18세기 영국, 노예매매가 온 나라의 중요한 수입원이던 시절,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라는 하원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바쳐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정적들의 살해 협박, 의회에서의 수없는 거부, 건강의 악화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국의 기득권자들은 노예를 해방하면 나라 경제가 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면, 그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대가 없이 자유를 얻었듯이, 우리도 저들에게 자유를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라고 호소했습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833년, 영국 전역에서 노예제도가 완전히 폐지되는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대가 없이 받은 하나님의 구원 은혜에 빚진 자로서, 평생을 바쳐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물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죄와 사망의 종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아무 대가 없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내 직장의 직원들, 나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나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유케 하고 존중하는 인격체로 대하고 있습니까?
3. 최고의 것으로 드리는 거룩한 예배 (19~23)
19~23절은 가축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리는 법에 대해 다룹니다. 소나 양의 첫 태생 수컷은 사람의 힘으로 거두어들인 첫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이 첫 새끼를 구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리고, 거기에 아무런 인간적 노동이나 이익을 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소의 첫 새끼로 부림을 하지 말고, 양의 첫 새끼의 털을 깎지 말라는 것은(19)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하라는 의미입니다. 처음 난 짐승의 희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유월절 사건으로 구원받았을 때를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의 마지막 재앙인 초태생이 모두 죽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태생만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즉 소의 첫새끼는 밭을 갈지 말아야하고 양의 첫새끼는 털을 깎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그 짐승들이 전적으로 구별된 하나님의 것임을 상기시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매우 엄격한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소경이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라고 경계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리를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병든 가축은 제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물로 바칠 때 가장 좋은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내가 가지기엔 아깝고 버리기엔 아까운 '차선책'이나 '재고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첫 새끼를 드리는 의미는 "나의 모든 소유와 생명이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전체를 대표하여 '첫 번째 것'을 드림으로써 나머지 모든 소유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집에서 먹을 수 있었지만 그 피는 먹을 수 없었습니다. 피는 생명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 피는 먹지말고 땅에 쏟으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규례는 온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피흘리신 흠없고 죄가 없는 완전한 대속제물로 바쳐지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아들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를 입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봉사할 때, 찌꺼기나 남는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귀한 '첫 자리'와 '최선의 것'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몇 푼의 돈이나 형식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담긴 '가장 좋은 것', 곧 흠 없는 첫 열매를 원하십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은 몇 번째에 위치해 있습니까? 남는 시간, 쓰고 남은 물질, 하다 만 열정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과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명기 15장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경제 원리와 삶의 법칙을 배웠습니다. 손을 펴서 가난한 형제를 놓아주는 면제년의 은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타인에게 자유를 주는 종 해방의 은혜, 그리고 가장 귀한 흠 없는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의 삶에 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별개의 명령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는 그분의 은혜로 산다"는 하나의 진리로 귀결됩니다. 그렇다면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3가지 적용 전략을 제안합니다.
첫째, 나의 손을 펴는 '나눔의 훈련'을 시작하십시오.
우리의 통장 잔고 중 일부분을 '은혜의 펀드'로 구별해 보십시오. 나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이나 형제가 있다면,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무이자나 조건 없는 나눔을 실천해 보십시오. 작은 액수라도 좋습니다. 물질을 쥐고 있는 손을 펼 때, 비로소 세속적 물질주의의 사슬이 끊어지고 하나님이 채우시는 초연한 평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둘째, 타인을 내 유익의 수단이 아닌 '자유케 할 대상'으로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사업장에서 여러분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십시오. 가정주부는 집안일을 돕는 이들에게, 사업가는 직원들에게, 소비자는 아파트 경비원이나 택배 기사님들에게 격려와 후한 배려를 베풀어 보십시오. 성도는 사람을 '그리스도께서 피 값 주고 사신 존귀한 인격체'로 대해야 합니다. 복음의 자유를 나누는 통로가 되십시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우선하여 구별하십시오.
주일에 드릴 예배, 기도하는 시간, 물질의 십일조와 봉사를 '남는 것'으로 처리하지 마십시오. 하루의 가장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한 주간의 첫날(주일)을 거룩히 구별하며, 내 소유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기쁨으로 올려드리십시오. 흠 있는 짐승이 아닌, 내 삶의 가장 온전하고 순결한 첫 마음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전체를 거룩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는 그분의 은혜로 산다“고 고백하며 최고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리며 이웃에게 헌신하는 은혜의 선순환을 이루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참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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