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2026-08-02 20:53:40
홍기칠
조회수   6
설교본문 살전4:1-18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8-05

20260805 수요설교

제목: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본문:살전4:1-18

요절: 살전4: 1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사도 바울이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권면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문 기간은 불과 3주 정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신생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모범적인 신앙 공동체로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데살로니가는 헬라-로마 문화의 중심지로서 영적, 윤리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음란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신화 속 신들을 숭배하는 신전 예배에는 성적 타락이 종교적 행위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었고, 노동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오해로 인해 교회의 일상적 삶마저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현대 사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성적 가치관의 붕괴, 이기주의로 인한 인간관계의 갈등, 세속적 가치관에 뒤흔들리는 삶의 현장, 그리고 죽음과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확실성이 성도들의 신앙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절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부탁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풍성히 하라" 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란 단지 구원의 확신에 머무르는 정적인 삶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반응은 바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성화과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거룩한 생활과 이웃사랑과 성실한 노동, 그리고 재림과 부활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세 가지 주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 바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II. 본론

1.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생활을 하라 (1~8)

본문1,2절에서 바울일행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으니 그대로 본받아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뜻을 행하며 그를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실제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렇게 행하고 있지만 계속 노력할 것을 권면하면서 이것은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로 권면한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매일의 삶이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 한번 성찰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대할 줄 알고" 아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명확한 뜻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의 거룩함"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단순한 정서적 거룩이나 도덕적 우월감이 아닙니다. '거룩'의 본질은 '구별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가치관과 양식으로부터 나를 구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한 그릇으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먼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성적인 부도덕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매우 부도덕한 신과 여신들을 믿었으므로 자연히 도덕적 표준은 낮았고 순결은 부당한 구속으로 여겼으며 성적 범죄도 대수롭잖게 여겼습니다. 혼외정사나 음행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죄로 여겨지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이방종교 예식에서는 음란행위들이 조장되어 여사제들이 남자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신전에 상주할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결혼약속은 가볍게 여겨졌고 이혼은 손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명합니다. 이러한 음란을 버리고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단순한 성욕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거룩하고 존귀한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5-6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성적 순결과 거룩함은 개인의 윤리적 결단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형제를 해하지 않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성적인 부도덕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형제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속이는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음행은 타인의 인격과 가정을 파괴하며, 결국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인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너무 많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8에서 바울은 성적 타락에 대해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버리고 세상의 음란을 좇을 때, 그것은 단순한 윤리적 실수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척하는 불신앙임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부르셨는데 만일 음란한 행동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한 삶을 위하여 성령을 주신 하나님과 성령을 동시에 거스르고 거부하는 것이 됨으로 성령거부와 훼방죄에 해당하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성욕을 극복하는 일은 인간적 노력이나 고행이 아닌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기독교적 순결과 거룩에 대해 탁월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한 극장에서 식탐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극장에 모였는데 무대위에서 양고기와 베이컨 한 조각을 살짝 보여주자 그들이 환호하며 침을 흘린다고 가정해보자고 했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즐기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음식이 주된 관심사가 되어 음식사진이나 영상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침을 흘린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식욕이라는 본능이 왜곡되어 이상한 쾌락의 수단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먹방이라는 유트브 영상이 인기를 끌고 마음에 들면 별점을 보냅니다. 루이스는 당시 로마사회 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성적 타락이 이와 같다고 지적합니다. 스트립쇼나 포르노, 혼음 등 성에 대한 집착이 바로 이 음식 스트립쇼와 정확히 같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거룩한 본능과 부부간의 아름다운 결합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의해 왜곡되고 파괴된 것입니다.

 

루이스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빼앗으려고 성적 순결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직 원본 그대로의 온전한 기쁨,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정결하고 아름다운 가치와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거룩을 명하신다." 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거룩함은 세속적 즐거움을 빼앗는 억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혼과 육체를 마귀의 더러움과 왜곡으로부터 지키는 방파제입니다. 세상 문화가 아무리 음란을 정상이라 우기고 타락을 자유라 포장할지라도,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거룩한 그릇으로서 자신뿐 아니라 이성을 존귀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2. 형제를 사랑하고 성실하게 일하라 (9~12)

바울은 거룩함의 영역을 일상생활과 인간관계로 확장합니다. 9절과 11-12절을 보겠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9)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1-12) 아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이미 서로를 향한 사랑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마게도냐 전역에 소문이 날 정도로 형제 우애가 깊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욱 그렇게 하라"고 권면하며, 그 사랑이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상의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잘못된 재림관에 빠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시는데 일을 해서 무엇하나?"라며 생업을 포기하고, 믿음에 들어선 기쁨에 도취되어 자기 일조차 잊고 떠들며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도움에 의존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며 소란을 피우는 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해 강하게 경고합니다. 본문 11절에서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고 했습니다. 떠돌아다니던 상황에서 조용히 있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말씀과 기도 등을 통해 믿음생활에도 큰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로마 사회에서 육체노동은 노예들이나 하는 비천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땀 흘리는 육체노동을 귀하게 여겼고 모든 유대인 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직업훈련을 받습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축복이므로 멸시하지 않고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남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도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함으로써 모범을 보였습니다. 본문 11,12절에서 그렇게 성실하게 일함으로써 믿지 않는 외부사람들에 대해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고, 생활에 부족함도 없게 된다고 권면했습니다.

 

기독교는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거룩한 가치를 복원했습니다. 성도가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일하여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나아가 가난한 형제를 돕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뛰어난 신앙적 행위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는 것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강력한 전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함은 교회 마당을 벗어날 때 진짜 시험대에 오릅니다. 여러분이 매일 대하는 가족, 일터의 동료들, 사업장의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용히 자기 일을 행하고 정직하게 땀 흘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3. 재림과 부활의 소망을 품으라 (13~18)

마지막으로 바울은 성도의 삶을 받쳐주는 궁극적인 신앙의 기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의 소망"을 선포합니다. 13절과 14을 함께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아멘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주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기 전에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둘 죽음을 맞이하자, 큰 슬픔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미 죽은 이들은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해 죽음을 '멸망'이나 ''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잠시 '자는 것'이라고 교정해 줍니다. 잠든 자는 아침에 반드시 깨어나듯,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온전히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죽는다 해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 산자들 보다 먼저 주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고 주님이 재림할 때 살아있는 성도들도 주님과 함께 영화로운 몸으로 변하여 구름 속으로 이끌려 공중에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16-17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장엄한 종말론적 승리의 광경을 묘사합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접견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아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은밀하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온 우주가 들을 수 있는 당당한 왕의 귀환입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성도들의 몸이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살아남은 성도들도 변화되어 함께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은 단지 천국이라는 장소에 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항상 주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8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참혹한 핍박 속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 시신을 안치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이교도 로마인들의 무덤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자조적이고 절망적인 문구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나는 있었다, 나는 없었다”/ 나는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슬프다, 모든 것은 끝났다. 영원한 어둠이여.“

 

그러나 성령과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했던 그리스도인들의 무덤 비석에는 전혀 다른 고백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주님 안에서 안식하다. 아침에 다시 만나리라."/ "아가페,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다. 주님께서 다시 부르실 때까지." 그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소망 없이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주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잠시 누리는 거룩한 휴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이나,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기에, 우리의 부활도 확실합니다. 이 재림과 부활의 소망이 오늘의 고난과 슬픔을 이기게 하는 견고한 아침 닻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세 가지 삶의 기준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정욕에 휩쓸리지 않는 거룩한 신자여야 하며, 일상의 삶을 부지런히 살아내는 신실한 직업인이어야 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종말론적 소망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를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3가지 실천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시선의 거룩함''가정의 거룩함'을 결단하십시오.

매일 접하는 스마트폰, 인터넷, 미디어 속에서 음란하고 세속적인 콘텐츠를 끊어내십시오. 거룩함은 무의식적으로 보는 것을 통제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본문 4절의 가르침대로, 자기 아내와 남편을 존중하고 거룩함으로 대하십시오. 부부 관계의 순결을 지키고 서로를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동역자로 존중하는 것이 거룩의 첫 번째 검증대입니다.

 

둘째, '일터의 성직화''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십시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기: 자신이 맡은 직장 업무, 사업, 가사 노동을 하나님께 하듯 성실하게 수행하십시오. 게으름과 헛소문, 남의 말 옮기기를 멀리하고, 정직한 땀 방울로 경제적 독립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십시오.게 하십시오. 불신자들 앞에서 단정하고 정직하게 행함으로써, "역시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흘러나오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매일 아침 '마라나타'의 신앙을 고백하고 서로를 위로하십시오.

고난이나 슬픔, 죽음의 그늘이 밀려올 때 세상 사람처럼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 다시 오십니다. 부활의 날이 다가옵니다"라는 소망을 가슴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외롭고 병들고 슬픔 당한 성도들을 찾아가 영광스러운 재림과 부활의 말씀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위로하십시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땅에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면서 성실히 일하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모두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뵙고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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