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빌4:10-23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5-13 |
20260513 수요설교
제목: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
본문: 빌4: 10-23
I. 서론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돈이 조금 있으면 더 많은 돈을 원하고, 인정받으면 더 큰 명예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많이 가질수록 만족은 더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쓴 바울의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지금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내일의 생사를 알 수 없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입니다. 그런 그가 편지의 마지막에서 "기뻐하라"는 권고를 넘어, 자신의 삶에 흐르는 놀라운 평안과 감사를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빌립보 교회의 후원에 대한 감사 인사를 넘어, 그리스도인이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핵심 비결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헌금에 감사하면서 단순히 물질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족”, “하나님의 공급”, “은혜 안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참된 만족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에게 공급하시는지, 그리고 성도는 어떤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도 바울이 누렸던 그 기쁨이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본론
1. 자족의 비결: 어떤 형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10-13절)
바울은 본문 10절에서 먼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에게 보내준 헌금에 대해 기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바울이 돈에 탐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고린도에서는 예루살렘교회를 대상으로 자신을 위한 기금을 모으려고 제자 디도를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바울은 보수를 받지 않고 손수 천막 제작하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신뢰하고 이해했고 복음사역을 돕기 위해 계속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바울의 로마 일정이 불확실하거나 헌금을 전달할 사람이 없어 후원금을 제때 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가 마침내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헌금을 보내왔습니다.
여기에 대해 바울이 기뻐하며 감사했는데 그의 감사는 단순히 "돈이 생겨서 좋다"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11절에서 그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배웠노니”라는 말은 훈련을 통해 터득했다는 의미입니다. 자족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훈련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풍부할 때도 있었고, 굶주릴 때도 있었습니다. 높아질 때도 있었고, 낮아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만족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또 여기서 '자족(Self-sufficiency)'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내 힘'으로 버티는 인내심이 아닙니다. 13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13절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성공의 주문처럼 잘못 사용합니다.
하지만 문맥상 이 구절의 문맥상 진짜 의미는 12절에서 밝히듯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인해 견딜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주리고 목마르고 모자라는 경험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는 생활이 궁핍해질 때 그것을 견디고 생활수준을 낮추었고, 때로는 배부르고 풍족함을 맛볼 때도 있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풍족하다가 가난하게 되면 낙심하고 자포자기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바울은 어느 경우에도 결코 교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본받아 헌신적으로 살면서 스스로 그 비결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바울의 능력은 환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능력 주시는 주님에게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으로 공급해주시는 능력을 통해서만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사역할 때였습니다. 너무 가난한 환경 속에서 사역하다 보니 점점 불평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현지 성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 우리는 가진 것은 없지만 예수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선교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평했지만, 그 사람은 아무것도 없어도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환경 따라 신앙이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낙심합니다. 건강이 나빠지면 원망합니다. 일이 잘 안 되면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만족하라.” 고 하십니다. 행복은 얼마나 가졌는지 소유의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임재에 달려 있습니다.
유명한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의 작사자 호레이쇼 스팬포드 교수는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다 재산을 잃었고, 2년 뒤 여객선 사고로 네 딸도 모두 잃었습니다. 슬픔에 잠겨 딸들이 수장된 바다 위를 지나갈 때, 하나님은 그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는 그 고통의 현장에서 "내 영혼 평안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자족'입니다. 환경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환경을 압도하는 주님의 임재가 그를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비교를 멈추십시오. 비교는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어려운 상황마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물질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우선순위에 두십시오.
지금 여러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핍'은 무엇입니까? 돈, 건강, 관계입니까?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텐데"라는 생각은 자족을 방해하는 독소입니다. 매일 잠들기 전, 오늘 있었던 일 중 주님의 '능력'으로 환경을 이긴 일이나 감사한 일 3가지를 기록해 보십시오. 이 과정을 3주간 지속하며 내 안의 원망이 감사를 바뀌는 것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2. 선교적 동역이 된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향기로운 제물 (14-19절)
바울은 14절에서 빌립보 교회의 헌금을 단순한 선교헌금이 아니라 '복음에 동역하는 일'로 규정합니다. 바울이 복음 때문에 겪는 고난에 함께 참여했기 때문에 동역자로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바울이 2차 전도여행시 마게도냐를 떠날 때 헌금을 모아 주며 그를 도운 유일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두 번이나 헌금을 하고 쓸 것을 보내주었습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를 지속적으로 후원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남는 돈을 준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것을 나누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바울은 그러한 빌립보 성도들이 보낸 것에 대해 단순한 선물로 보낸 것이 아니라 그 헌금이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풍성하게 받는데 유익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인들이 복음 전도자에게 사랑을 베풂으로써 하늘에 상급을 쌓아두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 디도를 통해 보내준 선교헌금은 필요한 것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성했다고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헌금을 가리켜 18절에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불렀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보내 준 헌금은 겉으로는 돈이나 물질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복음 사역에 사용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드리는 제사의 향기로운 제물의 냄새를 흠향하셨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신 것을 기쁘게 받으신 것처럼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사역을 위해 헌신적으로 보낸 헌금을 향기로운 제물로 기꺼이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물질과 헌신이 단순히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이 아니라, 하늘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물질 자체보다 믿음과 사랑으로 드리는 헌신을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19절의 위대한 약속을 선포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것이 헌금이든지 헌물이든지 믿음과 감사, 사랑과 기쁨이라는 동기가 없으면 자기만족이나 외식과 교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헌금이나 헌물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에게는 유익을 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릅니다. 빌립보 교회를 포함해서 마게도냐 지방의 성도들은 극도로 가난한 가운데 바울에게 헌금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므로 무한히 부요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풍성하게 보답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의 물질적 보상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에게 갚아 줄 수 없지만 나를 대신하여 “내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19절 말씀은 무조건 부자가 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필요를 책임지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언제나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손을 펼 때, 하나님은 하늘 창고를 열어 우리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하늘 경제학'의 원리입니다.
5만 번 이상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조지 뮬러는 평생 고아들을 돌보며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수백 명의 고아들이 먹을 빵이 전혀 없었습니다. 식탁은 비어 있었지만 뮬러는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근처 제빵사가 “밤새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감동하셔서 빵을 만들었습니다.”라고 하며 많은 빵을 가져왔습니다. 잠시 후 우유 배달 마차가 고장이 나서 우유를 모두 기부하겠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일을 위해 헌신하는 자를 책임지십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채웠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을 반드시 채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교회를 개척하고 이런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물질 문제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삶보다 움켜쥐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께 드림은 손해가 아닙니다. 헌신은 하나님 나라의 씨앗입니다.
물질 사용에 믿음을 적용하십시오. 수입 가운데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훈련을 하십시오. 선교와 구제에 참여하십시오. 하나님은 흘려보내는 사람에게 채우십니다. 내게 있는 물질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라는 청지기 정신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재정을 사용할 때 '소비자'입니까, '동역자'입니까? 물질의 사용처를 보면 그 사람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달 지출 내역 중 '나를 위한 지출'과 '하나님 나라(선교, 구제, 이웃 사랑)를 위한 지출'의 비율을 체크해 보십시오. 소액이라도 '고정 선교 헌금'이나 '이웃 돕기' 항목을 예산에 먼저 책정하십시오. 물질을 흘려보낼 때 하나님이 내 삶의 필요를 어떻게 채우시는지 매달 기록하며 확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복음의 승리 증거인 가이사 집 사람들 (20-23절)
마지막 인사말 속에는 놀라운 반전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22절에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고 했습니다.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란 당시 로마 황제의 친척들 중에 예수 믿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 재판받으며 복음을 전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13절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던 황제의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때 황족들이 배심원이고 재판관들입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재판 받으면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설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심장부인 로마 황실 안에도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고난당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복음이 황실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복음은 묶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공동체를 세워 갔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함께 기도했고, 함께 헌신했고, 함께 고난받았고,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닙니다. 은혜를 나누는 영적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장소와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최악의 현장이라도 주님의 은혜가 머물면 그곳은 교회가 됩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 처참한 고통을 겪었던 코리 텐 붐 여사는 벼룩이 들끓는 수용소 막사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벼룩 때문에 간수들이 막사에 들어오지 않았고, 덕분에 마음껏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실 안의 성도들처럼, 그녀는 수용소라는 지옥 같은 공간을 천국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이사의 집'은 어디입니까? 믿지 않는 가족들입니까, 아니면 신앙을 조롱하는 직장입니까? 그곳이 바로 당신이 '성도'로 부름받은 선교지입니다. 내가 속한 가장 힘든 환경(직장, 가정 등)을 위해 매일 아침 1분만이라도 중보 기도하십시오. 그곳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친절'을 주 1회 이상 베푸십시오. 커피 한잔이나 격려의 포스트잇 등도 좋습니다. 그들이 "당신은 왜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내 안의 '자족의 비결'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준비를 하십시오.
바울은 마지막으로 2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며 편지를 맺습니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은혜'입니다. 결국 교회를 세우는 힘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빌립보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자신을 위해 보내준 헌금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도들에게 축도한 것입니다.
초대 한국교회는 가난했지만 서로 돌보는 공동체였습니다. 한 성도가 너무 가난하여 겨울을 날 수 없게 되자 교인들이 조금씩 쌀과 장작을 가져왔습니다. 누군가는 자기 이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정말 가족 같구나.”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증명됩니다. 오늘날 교회는 점점 개인주의화되고 있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돌아갑니다. 서로의 아픔을 모릅니다. 함께 울고 웃는 공동체성이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가족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성도 한 사람 이상을 정해 꾸준히 격려하십시오. 어려운 성도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소그룹과 공동체 모임에 적극 참여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섬김의 사람”이 되십시오. 말로 상처 주기보다 은혜의 말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우리 성도들이 낙심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에게는 환경을 초월하는 자족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만족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서로를 돕고 복음을 위해 헌신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헌신하는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에서 복음 전하기에 가장 어려운 곳까지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은혜 안에서 서로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어떤 형편 속에서도 자족하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고, 은혜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기쁨이 되었듯이,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고백을 하면서 주님이 모든 쓸 것을 풍성히 채우시는 은혜를 맛보는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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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바울의 3차 선교여행 | 행20:1-38 | 2026-02-11 | 홍기칠 목사 |
| 91 | 바울의 에베소 선교 | 행19:1-41 | 2026-02-04 | 홍기칠 목사 |
| 90 | 바울의 고린도선교 | 행18:1-28 | 2026-01-28 | 홍기칠 목사 |
| 89 | 바울의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선교 | 행17:1-34 | 2026-01-21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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