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 설교본문 | 출14:1-31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5-12-14 |
주일오후설교 251214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
본문: 출14:1-31
제목: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
I. 서론
출14장은 구약성경에서 기록된 것 중에 이스라엘 역사와 연관된 이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적인 홍해사건입니다. 구약에서 홍해의 이적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차지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의 표준처럼 제시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기적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본문 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비하히롯은 자유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오랜 세월동안 당해온 잔인한 얽매임으로부터 마침내 구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믹돌이란 탑 혹은 성벽이란 뜻입니다. 이는 여호와가 무기력하게 공격당한 그의 백성에 대해 자신이 그들의 성벽이라는 뜻입니다. 바알스본은 북쪽의 왕이란 의미인데 북쪽은 심판과 관련됩니다. 이곳 홍해에서 여호와는 마치 심판의 왕처럼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갇힌 바 되었고 홍해가 그들 앞에 가로놓여 있었으므로 그들이 도망한다고 하는 것은 애굽의 기병대와 마차 앞에서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히사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한 이유가있습니다. 애굽에서 내려진 징계들은 혹독했지만 여전히 오만한 바로왕과 그 신하들은 확실히 느꼈던 하나님의 징계 밑에서 겸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가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긴급 동원하여 그 유명한 애굽 기병대가 위용을 떨치며 무장하고 출격을 감행했습니다. 하나님의심판이 더 이상 그들의 땅에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보낸 손실을 생각한 끝에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을 따르려고 안간 힘을 다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문 10-12절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낫겠다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자신들을 위하여 행하신 그 열가지 재앙을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이제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또 다시 하나님을 불신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같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지난 과거에 몇 번이나 우리를 구해주셨든 간에,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게 우리를 위하여 발휘되었든지 간에 새로운 시련이 닥치기만 하면 하나님이 과거에 개입하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현실의 긴급사태의 위력 앞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원망이 나옵니다. 제대로 못 기다리겠거든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원망하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하고 언제 주실지 앙망하고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3절에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사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첫마디는 ‘두려워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말라는 말은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여호수아 기도온, 다니엘에게도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시편 23:4절에는 “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서서’라는 말은 모세가 그 다음에 한 말입니다. 이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해보겠다는 모든 시도를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 앞에선 믿음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믿음은 영혼을 역경에서 하나님께로 일어나게 하고 그를 가만히 서게 합니다. 우리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키를 한치라도 크게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홍해를 마르게 할 수도 없고 애굽군대를 멸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때입니다. 무대배경으로부터 불신앙에서 물러나면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행하심을 뚜렷이 보기 위해 ‘가만히 서’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라’는 말은 단순히 홍해에서 물이 갈라지는 것을 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 통찰력으로 심령의 눈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나타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11:27절에 모세에 관하여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를 믿음으로 본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려면 우리는 먼저 가만히 서서 모든 육신적 활동을 멈추어야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때 빠진 사람이 허우적 거릴 때 그를 잡으면 함께 빠지게 됩니다. 그가 힘이 빠져 가만히 있을 때 건져야 둘다 살아나올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서 하나님 됨을 알려면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은 그들의 믿음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단독 역사입니다. 우리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을 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승리를 너의 것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가 받으면 내것이 됩니다. 믿으면 내것이 됩니다. 그래서 1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응답될 때 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15절에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기 전 까지는 앞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이 있기 전에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구원에 대한 약속이 먼저 있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거룩한 약속에 근거해야 하며 이러한 믿음의 결과로서 명령에 대한 순종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반드시 먼저 보아야 합니다. 히11:8절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했습니다. 믿고 난 다음에는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행동이 이어져야 합니다. 기도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믿음 생활은 믿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고 믿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히11:29절에는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이 홍해 물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홍해물이 갈라지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눈으로보고 건넜지 믿음으로 건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바다가 전체적으로 단번에 나누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명백합니다. 홍해 바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전진함에 따라 열렸고 발걸음으로 옮길 때 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내디뎌야 했습니다.이러한 걸음이 곧 그가 친히 인도하심에 따라 걸어야 할 여호와의 백성들이 나아갈 길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따라 행하였지 최고의 속도로 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질서있게 홍해를 건넌 것입니다.
본문 19-20절을 보면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가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하지 못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기병으로 추격해오던 애굽군대의 빠른 속력을 막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쪽으로 이동하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애굽군대가 바로 뒤쫓아 올 때에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구름기둥 불기둥이 이스라엘 뒤로 가서 애굽 군사 쪽은 캄캄하게 하여 그들의 추격을 방해하고 이스라엘 쪽은 낮처럼 환하게 하여 계속 행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산은 우리의 계산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같은 것이니 감히 인간이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 중에는 급박할 때 그 고비를 못 넘기고 인간적으로 아등바등 하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되는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제는 할 수없다”라고 포기하고 원망하게 되면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23-28절을 보면 애굽군대가 그들을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자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고 병거 바퀴가 벗겨져서 달리기 어렵게 하시니 그제애 애굽군대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싸운신다는 것을 알고 빨리 도망가자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사람들과 그들의 마병들 위에 흐르게 하라고 하시니 모세가 그대로 했습니다. 결국 애굽군대는 다 홍해에서 수장되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신자들이 믿음으로 달성한 일을 믿음없이 시도하는 자들은 확실히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화평을 누리지만, 자신들의 노력으로 화평을 얻으려는 불신자들의 모든 수고는 절망의 파멸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홍해를 건넘은 그리스도께서 그 백성에게 죽음을 통하여 한 길을 마련해주심을 말합니다. 홍해란 사탄의 권세의 영역 곧, 죽음의 모형입니다. 모세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지팡이는 그의 능력과 권세의 상징입니다. 홍해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탄의 능력을 완전히 파괴시켰습니다. 히2:14절에 “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민 사실은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같이 건너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는” 참으로 복된 결과를 산출했습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바다가 그들을 애굽사람들로부터 구원하는 방편이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홍해 바다에 빠져 죽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그의 신념으로 죽음을 대면하는 것은 분명한 파멸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구원도 철저하게 하시고 심판도 철저하게 하십니다.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구원받았고 애굽군대는 한사람도 살아난 사람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도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를 행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하다는 것을 알고 나부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우리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사회가 점점 하나님을 떠나 타락해 갈 때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속히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적 의미에서 홍해을 건넌다는 것은 구원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것은 유월절 밤에 이어 두가지 경우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을 온전히 파악하는데 필요합니다. 히9: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자에게는 그 대속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그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세시간의 무서운 흑암속에계시는 동안 우리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불같은 진노를 통과하기 위해 예수님은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셨습니다.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 보복하는 천사들로부터 피로 말미암아 숨겨진 것을 보았고, 여기 홍해에서는 그들이 죽음의 장소로부터 안전하게 인도됨을 보았습니다. 불신자에게는 그 순서가 죽음 후에 심판이라는 순서가 그대로 적용되지만 신자에게는 구원이 보장됩니다.
홍해를 통과하는 것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무사히 건넌 것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롬6:5절에 “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 했으며 또한 엡2:5,6절처럼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킴”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오늘날에도 신자들이 사방으로 우겨 싸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련과 역경의 홍해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크나큰 역경과 위험 속에서 보호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그들을 이끌어 낼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43:2절에 “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시대적 구분 면에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그들의 장래에 있을 구원과 회복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이방 즉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방 가운데 아브라함의 씨는 오랬동안 흩어져 있었기에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세상에 완전히 삼킨바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유다를 보존했습니다. 바다가 그를 삼키지 못했습니다. 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지만 세계복음화가 완성될 때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홍해의 놀라운 구원과 심판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는 믿음을 가지고 전진할 때 홍해와 같은 죽음의 골짜기도 통과하여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흑암권세를 깨따리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이 땅 위를 믿음으로 걸어갈 때 보호해주시고, 간섭해주시는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듯이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끝까지 믿음의 행진을 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나의 공로나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진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말씀에 약속하신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와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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