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가나안에 들어갈 성도의 삶
2026-10-11 21:09:26
홍기칠
조회수   5
설교본문 신16:1-22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10-11

20261011 주일오후설교 (가나안에 들어갈 성도의 삶)

제목: 가나안에 들어갈 성도의 삶

본문: 신16:1-22

 

I. 서론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16장은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제2세대 백성들에게 삶의 영적 이정표이자 거룩한 리듬으로서 ‘3대 절기’와 ‘공의로운 재판 및 순결한 예배’에 대한 법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반복해서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예배나 제물에 목말라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절기를 명령하신 이유는 그 절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지켜주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언약 공동체에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의 3가지 핵심 원리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리듬에 맞추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II. 본론

1. 유월절(무교절)의 규례를 지킴으로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는 삶을 살라 (1–8)

본문 1~8절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절기인 유월절(Passover)과 무교절을 다룹니다. 1절에서 모세는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고 선포합니다. 유월절은 아빕월에 일어났는데 아빕월은 가나안 이름이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는 바벨론 이름으로 니산월이라고도 합니다.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되며 이스라엘은 이 날을 종교력 1월로 삼았습니다. 아빕월 1월 14일밤에 이스라엘 백성은 흠없는 1년된 숫양을 잡고 누룩없는 빵인 무교병을 온 식구가 먹었으며,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랐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멸하는 천사가 문설주의 피를 보고 그 집은 넘어갔으므로 유월절이라 했고, 누룩없는 빵을 먹었으므로 무교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무교절은 구분되지 않고 혼용됩니다. 그 이유는 유월절 의식이 곧바로 무교절 의식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유월절 음식이 무교절에 먹는 무교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아빕월 1월 14일 하룻밤만 의식을 거행하는 절기인데 무교절은 14일 저녁을 포함하여 1주일간 무교병을 먹고 제7일에 성회로 모였습니다. 누룩없는 빵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때 누룩을 띄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떠나올 때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급히 나와야 했던 긴급성과 고난을 나타냅니다. 첫 번째 유월절은 각 개인의 집에서 지켰지만 나중에 중앙 성소가 건립된 후에는 그곳에서만 지킬 수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3대 절기 중에 가장 중요한 절기입니다. 이 기간 백성들은 7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 즉 ‘고난의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3절). 부풀어 오르지 않은 딱딱하고 밋밋한 빵을 먹으며 그들은 애굽에서 급히 탈출했던 순간과 자신들이 본래 비참한 종이었음을 기억했습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 유월절 어린 양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무교병은 죄 없으신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나타내며, 누룩을 제하는 행위는 신자의 삶에서 죄악과 부패를 날마다 버리는 거룩한 영적 성화를 의미합니다. 은혜는 '잊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의 은혜를 잊을 때 교만해지고 우상숭배에 빠졌듯이, 오늘날 성도 역시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합니다. 그리고 누룩과 같은 죄를 멀리해야 하고 죄를 지었다면 속히 회개하여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엡4:23-25절에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거짓을 버리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예수 닮은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운명의 밤, 그의 주머니 속에는 몇 가지 소지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손수건, 작은 칼, 그리고 안경집과 함께 다소 색바랜 신문 스크랩 조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신문 기사는 "링컨은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지도자 중 하나이다"라는 칭찬이 적힌 짧은 기사였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과 온갖 정치적 비난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낙심할 때마다, 그 신문 조각을 꺼내 읽으며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명을 받았는가'를 스스로에게 되새겼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신문 조각보다 비교할 수 없이 선명한 ‘십자가의 흔적’이 있습니다. 삶의 고난과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주머니 속에, 아니 우리 심장 속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구원의 은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무교병을 먹듯이 십자가를 묵상하고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이 신자 삶의 첫 번째 원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맥추절과 수장절의 규례를 지킴으로 받은 복에 감사하며 약자와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라 (9–17)

칠칠절은 유월절부터 7주가 지난 후의 50일째 절기이므로 오순절, 그리고 보리 혹은 밀추수를 하여 첫 번째 열매를 거두므로 초실절, 맥추절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태양력으로는 5월 말이나 6월초가 됩니다. 맥추절은 첫 수확한 것을 감사하여 제물을 자원하여 드리는 절기인데, 특히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속받고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큰 추수를 하게 되었으므로 추수한 것을 하나님께 넘치도록 바치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칠칠적, 혹은 맥추절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께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듯 임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절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배의 구약제도가 끝나고 신약제도가 시작되었음을 상징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성도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좋은 것을 베푸시는 것이 성령의 선물임을 나타냅니다.

 

앞서 유월절은 봄 절기라면 맥추절은 여름 절기, 수장절은 가을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장절 즉, 초막절은 가을에 모든 과일과 곡식의 추수를 끝내고 지키는 절기로 수장절 혹은 장막절이라고 합니다. 이 절기는 태양력으로 9-10월에 7일간 지키는 일종의 추수감사제입니다. 이때 일주일 동안 나뭇가지 세 개와 잎사귀로 지은 초막에서 지냈기 때문에 초막절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은 특히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생활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이 절기가 여호와의 절기라고 불릴만큼 3대 절기 중 가장 성대했음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절기 첫날에는 성회를 모으고 안식하였으며 7일 동안 제사장은 금항아리에 실로암 물을 길어다가 제단 서편에 부었는데 광야생활에서 물을 마신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3대 절기는 모두 출애굽의 역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데, 그것은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이웃과 함께 기뻐하는데 각 절기들의 궁극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세 절기를 요약하면서 이스라엘 모든 남자는 일년에 세 절기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중앙 성소에서 여호와를 뵐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형식적이 아니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물을 드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원리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10절, 16-17). 이는 율법적 강요나 억지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에 주신 은혜를 헤아려 응답하는 ‘성도의 기쁜 헌신’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의 시간과 물질의 가장 귀한 것을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 전부를 주장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약자들과의 함께함과 나눔’입니다. 11절과 14절을 보십시오. 절기를 즐거워할 대상에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결코 자기들끼리의 폐쇄적인 잔치가 아니었습니다.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당대 경제적 기반이 없던 이들을 초청하여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거저 나누는 ‘은혜의 평등 공동체’를 구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원래 절기는 한 주간을 지켰습니다. 감사예물을 드리고 기뻐하고 그 다음에 생활 속에 들어가 일년 동안 받은 은혜를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주위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구제하고 나누어 줄 때 하나님께서 더 많이 넓고 크게 나눌 수 있도록 우리의 심령과 생활과 일터에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와 <순전한 기독교>로 유명한 기독교 지성 C.S. 루이스(C.S. Lewis)는 생전에 막대한 책 인세 수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검소하게 살았으며, 자신에게 들어오는 인세의 2/3 이상을 은밀하게 자선기금에 기부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길을 가다가 한 구걸하는 거지에게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주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루이스, 자네가 준 돈으로 저 사람은 아마 술이나 사 마실 걸세!"라고 말하자, 루이스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그 돈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나 역시 나만을 위한 허영이나 유흥에 썼을 걸세. 하나님이 내게 풍족함을 주신 것은 저 사람과 나누라고 주신 것이라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진짜 아는 사람은 물질의 소유권이 내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 혼자만의 창고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의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 이웃의 영적·물질적 소외자들에게 손을 펴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절기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3. 공의를 행하고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순결한 예배를 드리라 (18–22)

앞서 3대 절기에 이어 공정한 재판과 우상숭배 금지를 명한 것은 의식적인 절기 준수에는 그에 합당한 참된 신앙과 공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8~22절은 공정한 재판관을 세우라는 지침과, 제단 곁에 아세라 목상이나 석상을 세우지 말라는 우상 숭배 금지 명령으로 마무리됩니다. 절기 규정(1-17) 직후에 재판과 예배의 순결성 문제(18-22)가 연결되어 나오는 것은 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19절은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고 엄히 경고합니다. 재판장이 공정하게 재판하려면 판결을 치우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 혈연이나 지연 등 어떤 유혹이나 외압에도 흔들려서는 안되고 객관적 사실여부를 공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므로 재판을 공정하게 못하고 왜곡된 판단을 내리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뇌물을 받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신다고 했으므로 반드시 공의로운 재판을 해야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지속적으로 누리려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또한 21~22절에서는 하나님의 제단 곁에 풍요의 상징인 아세라 목상과 석상을 은근슬쩍 함께 세우는 혼합주의를 철저히 금하십니다. 이 둘은 별개의 내용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와 ‘일상 속 공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 족속이 섬기던 대표적인 우상인 아세라 상은 풍요의 여신이며 석상은 풍요의 남신인 바알을 새긴 석상입니다. 공의로운 재판과 우상숭배 제거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쉽게 지을 수 있는 죄악일 뿐 아니라 공의와 신앙이 이스라엘을 지탱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두가지 두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의와 불신앙 가운데 살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북왕국 이스라엘은 망했고 남 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성전에서 아무리 화려한 절기 제사를 드리고 기뻐할지라도, 일상의 재판과 삶의 현장에서 뇌물을 받고 불의를 행하거나 세상의 풍요와 성공이라는 아세라 우상을 하나님 제단 옆에 겸하여 섬긴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가짜 예배라는 것입니다.

 

바닷가를 지키는 거대한 콘크리트 방파제는 파도를 막아주는 든든한 구조물입니다. 그러나 거친 파도 자체가 방파제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일은 드뭅니다. 방파제가 무너지는 진짜 이유는 내부의 아주 미세한 균열 사이로 바닷물이 침투하여 철근을 부식시키고, 겨울철 물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구조를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타협이라는 죄도 이와 같습니다. "남들도 다 뇌물 받고 타협하는데", "하나님도 섬기지만 세상의 성공에서라도 좀 챙겨야지" 하며 제단 옆에 아세라 상을 슬그머니 올려놓는 작은 타협이 성도의 거룩한 영성을 안으로부터 부식시킵니다. 공의를 버린 예배, 세속과 타협한 신앙은 결국 삶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명기 16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과 이웃 사랑, 그리고 정직한 삶이 하나로 아우러진 '거룩한 영적 리듬'을 회복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일상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3가지 실행 전략을 제안합니다.

첫째, '은혜의 일기'를 통한 구원 감격의 매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아침이나 저녁,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단 한 줄이라도 기록하거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보혈의 은혜를 날마다 고백할 때, 일상의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무교병의 순전함이 삶을 채우게 됩니다.

 

둘째, 주일 성수와 '나눔 헌금'의 생활화하시기 바랍니다.

맥추절, 수장절의 핵심은 주님이 주신 복을 헤아려 자원하여 드리고 약자와 나누는 것입니다. 주일을 단지 쉬는 날이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축제의 날로 구별하십시오. 또한 매월 구제 헌금이나 작은 이웃 섬김을 정기적으로 실천하여 하나님이 주신 복이 나를 거쳐 타인에게 흐르는 통로가 되게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삶의 현장에서의 '정직과 순결의 가이드라인' 구축하십시오.

직장과 사업체, 가정에서 세상의 편법이나 불의한 이익에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선을 그으십시오. 물질이나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정직한 공의를 행할 때 하나님은 그 땅을 차지하게 하는 참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며, 세상 속에서 공의를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과 가정, 우리 교회에 온전한 기쁨과 복을 가득 채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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