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참된 복음 사역자의 기쁨
2026-07-22 22:17:56
홍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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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살전2:1-20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7-22

20260722 수요설교 (참된 복음 사역자의 기쁨)

제목: 참된 복음 사역자의 기쁨

본문: 살전2: 1-20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진정성의 기근'을 겪고 있습니다. 마케팅 기법이 고도화되고 개인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기술은 화려해졌지만, 정작 그 이면에 있는 내면의 진실함과 희생적 사랑을 발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슬프게도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말은 무성하지만 삶의 열매가 없다"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 앞에,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2은 이러한 영적 기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도 바울이 '참된 복음 사역자의 기쁨'을 제시합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번창하는 항구 도시이자 로마의 주요 간선도로가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종교와 철학, 그리고 순회 철학자들의 거짓 주장들이 가득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에서 모진 고난과 핍박을 당한 후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야손의 집에 머물며 불과 3주 동안(17:2) 복음을 전했으나, 유대인들의 시기와 폭동으로 인해 쫓기듯 베뢰아로 피신했다가 아덴을 거쳐 고린도로 와야만 했습니다. 그곳을 떠난 후 마음이 아팠던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동시에 자신을 '사기꾼'이나 '이기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순회 철학자'로 매도하는 대적자들의 비방에 맞서 자신의 사역이 얼마나 진실했는지를 변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과정과 그들이 이 복음을 받아들인 태도와 복음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참된 복음의 전달자가 걸어가야 할 세 가지 길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과 사역의 동기를 점검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의 능력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본론

1. 복음 전파자의 동기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1-6)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들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상기시킵니다(1). 바울은 빌립보 뿐 아니라 이곳 데살로니가에서도 강력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겉만 번지르한 말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는 거짓된 속임수나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 복음에 근거한 참 진리에 근거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에 복음전파 사역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비결은 사역의 '동기'에 있었습니다. 본문 4절을 읽어봅시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은 세 가지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아첨의 말, 탐심, 그리고 사람에게서 구하는 영광입니다(5-6). 당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지혜자들은 말재주로 청중을 현혹해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위탁'받은 청지기로서 자신을 인식했습니다. 청지기의 유일한 기준'주인의 기쁨'입니다. 바울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아첨꾼이 아니라, 사람의 깊은 속마음을 헤아리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아프리카 대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평생을 헌신했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의 일화입니다. 그가 영국으로 잠시 귀국했을 때,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며 연설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그에게 "선교사님, 그 수많은 질병과 맹수들의 위협, 그리고 고독이 가득한 아프리카 오지에서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습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리빙스턴은 자신의 쇠약해진 몸과 사자에 물려 성치 않은 한쪽 팔을 들어 보이며 나지막이 대답했습니다. "저를 지탱해 준 것은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약속,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의 어둠 속에서 오직 나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 한 분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걸었습니다. 그분의 기쁨이 되는 것 외에 제게 다른 동기는 없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교회 봉사와 헌신의 동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누군가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으면 열정이 식어버리지는 않습니까? 참된 사역과 신앙 '코람 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박수가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실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복음 전파자의 태도는 목숨까지 주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7-12)

동기가 순수했다면, 사역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당시 로마제국 안에서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는 철학자들이나 웅변가들이 있었고,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는 거짓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칭찬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 매우 부드럽고 따뜻한 '가족적 비유'를 듭니다.

 

첫째로, 바울은 자신들을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행하였다고 고백합니다(7). 여기서 유모는 단순히 삯을 받고 남의 아이를 돌보는 이가 아니라, '젖을 먹이는 어머니'를 뜻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젖을 짜내어 아기에게 줍니다. 그것은 생명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먹고 그것을 젖으로 바꾸어 내놓는 것처럼 바울은 자신이 먹은 하나님의 말씀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어 성장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품에 앉고 젖을 먹이듯이 바울도 그 성도들을 늘 가슴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본문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말만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까지 주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진실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생명까지 바치는 사랑인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아가페 사랑이 아닙니까? 바울이 이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그렇게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헬라인들은 육체노동은 노예나 하는 것으로 알고 경시했지만 바울은 복음을 더 잘 전하기 위해 밤낮으로 천막을 짜면서 노동하여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 눈물겨운 희생을 감내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잡힐데 없이 처신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수고와 헌신, 그리고 그러한 삶 자체가 그 성도들에게 소리없는 복음의 산증거가 되었고, 그 성도들은 그 삶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습니다(11). 어머니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품어줌과 영양 공급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은 자녀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지도하는 책임감 있는 사랑입니다. 그들을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습니다.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잘못된 것을 일깨워줘서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잘못된 길로 갈 때는 경계했습니다. 그 목적은 12에 나타납니다.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천국 시민의 신분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경계했습니다.

 

고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이 '부모의 심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국 교회의 보석 같은 사례입니다.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며 자식처럼 돌보았던 그의 사랑은 어머니의 품과 같았습니다. 1948년 여순사건 때 자신의 두 아들(동인, 동신)을 죽인 좌익 청년 원수 안재선을 양아들로 삼아 목회자로 길러낸 사건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수를 사랑하며 목숨까지 내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 가문에 순교자의 영광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열 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을 둘이나 죽인 청년을 품어 안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극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대속적 사랑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해낸 복음 전파자의 실제적 태도였습니다. 이러한 아비와 어미의 심정이 있었기에, 핍박 속에서도 한국 교회의 초대 신앙의 기초가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양육하는 영혼들을 향해 어떤 태도를 품고 있습니까?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훈수꾼"입니까, 아니면 "상처를 감싸 안고 생명을 나누는 부모"입니까? 영적 부모의 심정으로 영혼을 낳고 기르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3. 복음 전파자의 열매와 소망은 말씀의 역사와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13-20)

지금까지 바울은 복음이 어떻게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전했졌는가에 대해 설명했고, 13절 이후부터는 그 성도들이 어떤 태도로 복음을 받아들였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자기들에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내면에서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자 속에 갇힌 죽은 글이 아니라, 믿는 자의 삶 속에서 초자연적인 에너지로 꿈틀거리며 일하는 살아있는 인격적 실체입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삶으로 실천하는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또한 유대교인들에게 박해를 받았던 예루살렘 교회들처럼, 자신들의 동족에게 동일한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는 견고한 교회가 되었습니다(14).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으면 예수 믿는 목적이 이 땅에서 잘되고 복 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은혜가 감사하여 주님을 위해 고난과 역경이 있을 지라도 오직 주님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15,16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핍박했던 유대인들의 죄목 5가지를 열거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울 일행을 내쫓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모든 이방인들을 대적했고,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바울 일행 뿐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까지 핍박하고 대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원을 방해하고 자기 죄를 항상 채우므로 그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고 했습니다. 전도현장에서 고난은 말씀이 역사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말씀은 고난을 당할 때 그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복음이 살아 역사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보고 싶어 온갖 애를 다 썼지만 사탄의 방해로 인해 가는 길이 막혔다고 했습니다.(18). 그래서 성도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속히 성도들과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의 눈은 이미 이 세상 너머 종말의 때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본문 19-20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이 받게 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자신이 전도한 데살로니가 성도들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당대 고대 세계에서 황제나 승리한 운동선수에게 주어졌던 영광의 면류관은 썩어 없어질 나뭇잎이나 금속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주어지는 진정한 면류관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 앞에 함께 서게 될 '구원받은 데살로니가 성도들 자체'였습니다. 사람의 영혼이야말로 영원히 남는 유일한 사역의 열매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의 삶에 있어서 보람이었고 사역에 대한 수고의 열매였고, 하나님이 주신 복의 상징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되면 그 전도자인 바울에게 지금뿐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 앞에서 그들이 자랑스런 면류관이 되고 큰 기쁨과 영광을 가져다 줄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유명한 건축가들이 지은 건물도 시간이 흐르면 풍화되고 허물어집니다.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영원에 잇닿아 있는 유일한 통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영혼'입니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평생을 교단에서 보내고 은퇴식 날 강단에 섰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그중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의사, 변호사도 있었지만, 삶의 고통 속에서 방황하다가 선생님의 따뜻한 편지 한 통과 격려로 다시 일어선 평범한 청년도 있었습니다. 은퇴하는 늙은 교사는 제자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평생에 남긴 가장 위대한 작품은 제 서재에 있는 책들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삶 자체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제 삶의 면류관이자 훈장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주님 보좌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면류관은 우리가 쌓아 올린 아파트 평수나 은행 잔고나 세상의 직급이 아닙니다.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워낸 전도하고 양육한 그 한 사람의 영혼이 바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을 통해 참된 복음의 길을 걸어갔던 전도자 사도 바울의 진정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진실한 동기를 가졌고, 목숨까지 내어주는 부모의 태도로 성도를 섬겼으며, 주님의 재림 때에 함께 설 영혼들을 자신의 면류관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바울의 고백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가져와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세 가지의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제안합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의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하루의 첫 10분을 잠잠히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코람 데오 시간'으로 구별하십시오. 나의 사역과 봉사, 직장 생활의 동기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것인지 정직하게 묻고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둘째, 한 영혼을 위한 '영적 부모'가 되십시오.

우리 가정, 혹은 교회에서 내가 전도하려고 기도하고 있는 '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십시오. 이번 한 주간 그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며,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영원한 가치'에 투자하십시오.

세상의 썩어질 면류관을 얻기 위해 우리의 온 에너지를 쏟아붓는 삶에서 벗어나, 주님 다시 오실 날에 빛날 영원한 영혼의 면류관을 예비해야 합니다. 아직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의 재정과 시간을 투자하도록 구체적인 헌신을 결단하십시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강단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살아있는 하나님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서도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실 그 영광스러운 날에,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요, 소망이요, 자랑의 면류관이 되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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