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행25:1-26:32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3-18 |
20260318 수요설교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한 바울
본문: 행25: 1-26:32
제목: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한 바울
1.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믿음을 지키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 권력 앞에서도 복음을 말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는 한 사람의 담대한 믿음의 증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지금 죄수가 되어 재판을 받는 상황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고, 로마 총독들은 그를 심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아그립바 왕과 그 누이 버니게 앞에서 변론하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바울은 죄수이고 왕은 재판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왕이 바울의 설교를 듣는 자리가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복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해야 한다. 간증은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복음 앞에서는 누구도 중립일 수 없다” 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도 복음의 기회로 사용하신다
바울의 상황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25장은 바울이 2년 동안이나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그를 고발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총독 베스도가 벨릭스 총독 후임으로 부임해오자 3일 만에 이렇게 요청합니다.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십시오.” 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무엇입니까? 가는 길에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계획을 막으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울은 단순한 재판이 아니라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베스도 총독은 가이사랴로 내려와서 재판 자리에 앉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하여 여러 가지 고발을 했으나 증거를 대지 못했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바울에게 변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한마디로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죄를 범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을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한다고 하자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 왕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아그립바왕과 총독과 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바울이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줍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이 스스로 왕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왕 앞에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고난도 하나님은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한 선교사가 공산국가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절망했습니다. “하나님, 왜 제가 여기 있습니까?” 그러나 감옥에서 그는 깨닫게 됩니다. 이곳에는 선교사가 한 명도 없구나.” 그는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감옥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선교지에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교지를 감옥 안에 준비하셨습니다.” 바울의 상황도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람 관계 속에서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상황을 복음의 기회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어려움을 통해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의 간증을 말해야 한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무엇을 말했을까요? 그는 신학 강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자신의 간증을 말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은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삶과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사건, 그리고 예수를 만난 후의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
1) 예수 믿기 전의 삶
바울은 솔직하게 말합니다. “나는 엄격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모욕한다고 생각했던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심지어 성도들을 죽이는 일에도 동의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간증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자기의 생활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간증할 때 예수 믿기전에 하나님 말씀과는 상관없었던 생활을 솔직하게 고백하면 됩니다.
2)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사건
바울은 대제사장의 권한을 위임받아 예수 믿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강한 빛이 비춰지고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는 말씀이 들렸고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때 바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환상으로 나타나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시며 얼마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자기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불렀다는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예수 믿는자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와 사도가 된 것입니다.
3) 예수를 만난 후의 삶
바울은 베스도 총독과 로마 고위관리들, 천부장들, 그리고 아그립바 왕과 유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모인 앞에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과 자기에게 부여한 사명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본문 16-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자신을 본 일과 장차 바울을 통해 나타날 일에 증인을 삼고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예수를 믿고 거룩한 성도의 기업을 얻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분명하게 증언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보이신 이 놀라운 사실을 증거하는 사명을 거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간증하면서 거기에 모인 유대인과 이방인과 왕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D. L. 무디는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자신이 예수를 만난 이야기는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설교보다 간증을 통해 마음이 열립니다. 왜냐하면 간증은 살아있는 실제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강력한 전도의 도구가 됩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난 후의 변화된 삶의 모습을 이야기 하면 그 간증을 듣던 사람도 희망을 품고 주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3. 복음 앞에서는 누구도 중립일 수 없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1) 베스도의 반응
베스도 총독은 구약에서 예언했던 그 메시아가 자기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가 온 세상의 빛으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는 것을 실제로 믿는다는 것이 로마총독의 인본주의적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미친 게 틀림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정신착란에 빠졌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가장 뛰어난 스승인 가마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엘리트였고 구약성경을 가장 철저히 공부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아마 서울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처럼 구약성경을 학문으로 공부하여 매우 깊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큰 소리를 지르며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믿는 사람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왜 교인들이 주일날 놀러가지 않고 교회에 가는지, 왜 십일조헌금을 교회에 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는 것이라고 다시 주장했습니다. 세상은 항상 그렇습니다. 십자가도 부활도 믿음도 세상 눈에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2) 아그립바 왕의 반응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로서 주전 40년에서 주후 100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했던 헤롯왕조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방금 말한 모든 내용에 대한 확인을 받기 위해 아그립바왕에게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모든 활동들에 대한 책임이 아그립바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명히 보고받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구약성경도 잘 알고 있었고 예수님의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결과 초대교회가 시작된 것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을 잘 알고 있었지만 바울의 말을 직접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교회가 시작된 것이 한편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아그립바왕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아그립바 왕의 지식과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 후 스스로 답했습니다. 사실 아그립바왕은 이제까지 바울이 말한 내용이 사실이고 그의 메시지가 유대교의 주류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질문에 아그립바왕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만약 선지자를 믿지 않는 다고하면 유대인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지자들을 믿는다고 하면 복음 전도자인 바울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아그립바 왕은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더 정확히 번역하면 “그대는 그렇게 쉽게 나를 설복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대답입니다. 다시말해서 바울이 다른 사람들은 그런 말로 쉽게 예수 믿도록 했을지 몰라도 자신은 그렇게 쉽게 설득당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대답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복음을 이해했지만 핑계를 대고 결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베스도와 아그립바왕은 그 소송에 대해 의견을 조율하고 바울이 무죄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유대인의 동조자이며 유대인 문제에 정통한 인물이었던 아그랍바왕은 초대교회 운동에 대해 법적으로 지지 평결을 내린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핍박받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큰 위로와 유익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복음화를 위해 가이사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했기 때문에 결국 로마로 호송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복음을 증거할 때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반응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거부하거나 나중으로 미루거나 아니면 믿겠다는 반응 중의 어느 하나입니다. 그러나 중립은 없습니다. 나중으로 미룬 사람은 결국 예수를 믿거나 혹은 거부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니 결국 중립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오래 다녔습니다. 설교도 듣고 성경도 읽었습니다. 그러나 늘 말했습니다. “나중에 믿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고가 났습니다. 그때 그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다음에 믿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믿겠습니다.”라고 하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때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지만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들었을 때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내일로 미루는 순간 사탄이 그 틈을 타서 결국 믿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을 보았습니다. 세 가지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첫째,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도 복음의 기회로 사용하십니다. 바울이 핍박을 받았으나 하나님은 그 상황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평소에 만나기 힘들었던 베스도 총독이나 고위관리들, 그 부하들과 아그립바 왕, 대제사장과 유대지도자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가 되었고 로마 황제 앞에가서도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복음을 증거하면 하나님께서 그 복음을 받을 사람을 예비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간증은 복음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내가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다해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솔직하게 말하는 간증은 어떤 면에서는 한편의 설교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간증을 한 평신도가 자신과 비슷 환경에서 예수믿게 되었기 때문에 더 실제적인 도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 앞에서는 누구도 중립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믿던지, 아니면 거부하거나 미루던지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미루던 사람도 결국 그 복음을 믿거나 거부하게 됩니다. 구원을 얻을 기회가 언제나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의 설교나 평신도들의 간증이나 전도자가 전해주는 전도지 한 장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반드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미루지 않고 지금 성령께서 마음의 감동을 주실 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이 가장 유익합니다. 전도현장에서도 그렇게 권해야합니다.
바울은 죄수였지만 실제로는 왕에게 설교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나처럼 예수를 믿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기처럼 결박된 것 외에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믿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죄수 신분이고 피고인의 입장이었지만 자신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마음 속에는 왕복을 입고 앉은 아그립바왕 조차 그 영혼이 너무 불쌍해 보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귀와 죄의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볼 때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 앞에서도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바울처럼 언제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자들”에게 대답할 말, 즉 복음을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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