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 설교본문 | 신7:1-26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8-09 |
20260809 주일오후설교 (거룩한 구별과 승리의 비결)
제목: 거룩한 구별과 승리의 비결
본문: 신7: 1~26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융합'과 '포용'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이 섞이고,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현대 사회는 문화적 진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섞는 것이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요단강 건너편,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 땅은 문화적으로 화려하고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동시에 우상숭배와 도덕적 부패가 극에 달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거대한 풍요와 유혹의 바다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 아주 강렬하고 명확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7절에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 땅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속주의의 거센 물결이 우리 믿음의 자리를 위협하는데, 신명기 6장에서는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제1계명을 다루었다면 오늘 7장은 제2계명인 우상숭배 하지말라는 말씀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에게 어떻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영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세 가지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를 소망합니다.
II. 본론
1. 세상의 유혹을 철저히 단절하라 (1~5)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세상의 유혹과 가치관을 철저히 단절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본문 1,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보다 힘이 세고 많은 가나안 7족속을 넘겨주실 때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라고 엄히 명령하십니다(3절). 이 가나안 7족속은 이스라엘 보다 조직화되었고 강력한 거인민족으로써 이스라엘은 그들에 비하면 한낱 메뚜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볼 때 진멸하라는 명령은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까지 모두 죽이라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으로서는 무자비하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죽어야 마땅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종교와 문화, 고고학적 유물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그들이 당시 도덕적으로 가장 부패한 민족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고집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니느웨 백성들처럼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려주셨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도덕적 죄악으로 가득차 그들 중 아이 하나라도 살려둔다면 우상숭배와 부도덕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매우 컸습니다. 또한 가나안 족속이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진멸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도 똑같은 죄를 지었을 때는 똑같이 멸망당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는 의미도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그들과 결혼도 하지말라는 것은 믿음없는 가나안 족속과 결혼하게 되면 우상숭배문화가 누룩처럼 쉽게 전염되고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족보가운데 적어도 이방인 다말, 라합, 밧세바 등이 있지만 가나안 여자들은 뿌리깊은 우상숭배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결혼을 전적으로 금지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는 우상제단을 모조리 헐고 불태우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메마른 지역으로 비와 풍요를 비는 우상예배가 크게 성행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도 쉽게 빠져들어갈 위험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아세라는 다산이나 대지의 여신으로서 돌기둥으로 된 바알우상의 아내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돌로 된 단이나 우상들은 깨뜨리고 나무로 된 목상들은 불에 모두 태워버림으로써 우상숭배으 터전과 뿌리까지 다 없애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멸하라'는 것은 단순한 군사적 학살이 아니라,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이자 영적 오염을 막기 위한 방역 조치입니다. 가나안의 우상숭배와 성적 부패는 그대로 두면 이스라엘 전체를 병들게 할 영적 바이러스와 같았습니다. 4절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힙니다. "그가 네 아들을 미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조금의 타협, 조그마한 허용이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타협은 영적 사형선고와 같습니다.
치명적인 전염병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의료진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완전 격리'와 '방역'을 실시합니다. "에이, 조금만 닿는 건 괜찮겠지"라며 무균실 문을 슬쩍 열어두는 의사는 없습니다. 작은 공기 방울 하나로도 온 병동이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문화와 타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에 예배 한번 빠지고 세상 모임 가는 것 쯤이야", "사업을 위해 작은 거짓말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그 작은 유혹의 문을 열어둘 때, 세상의 세속적인 가치관이라는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우리의 영혼을 침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병들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제단을 허물고 주상을 깨뜨리라고 명하신 것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작은 죄의 싹까지도 완전히 베어내라는 영적 방역의 명령입니다.
2. 택하심의 은혜와 정체성을 기억하라 (6~11)
본문 6-11절에는 가나안 땅의 7족속을 멸망시켜야 할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을 더럽히고 여호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위태롭게 하는 가나안 족속을 멸망시켜야 했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은 수가 더 많아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무조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그들 후손이 막강한 나라를 이루어 가나안 땅을 상속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집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알아야했고, 신실하신 분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의 언약을 실행하고 인애를 베풀지만 자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지체없이 보응하여 멸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계명과 법도들을 잘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구별될 수 있는 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택하심을 기억하는 데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세상보다 대단해서 택함을 받았을까요? 본문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도리어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인간적 조건이 없었습니다. 8절에서 오직 그분 스스로 작정하신 '사랑'과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 지적했듯,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스라엘은 잘나서 성민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셨기에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의 유혹에 흔들리는 이유는 나의 가치를 세상의 기준(재력, 학벌, 성공)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이 목숨 바쳐 사랑하신 존귀한 자"라는 정체성을 깨달을 때 세상의 자랑과 유혹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십니다.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한 고아가 왕의 은혜로 왕자로 입양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아이는 이제 길거리에서 빵 한 조각을 위해 싸우거나 남의 물건을 슬쩍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신분이 '왕자'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품위 있게 행동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왕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미 아무 자격 없는 나를 피 값으로 사셔서 "너는 내 거룩한 백성이다"라고 불러주신 그 놀라운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답입니다. 내 정체성이 세상의 노예가 아니라 하늘 왕국의 왕자요 공주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세상의 저급한 유혹을 능히 거절할 수 있습니다.
3. 말씀 순종을 통해 주시는 복을 누리라 (12~26)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는 자에게 완전한 승리와 복을 약속하십니다. 12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백성에게 줄 복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은혜와 자비, 긍휼 등의 인애를 풍성히 베풀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토지 소산과 곡식, 포도주, 기름의 복과 같은 물질적 풍요, 자녀의 번성과 가축의 번식과 같은 생명력의 복, 그리고 모든 질병이 떠나가는 건강의 복 (15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15절의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신다"는 약속은 당대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애굽의 우상들과 세상적 안전망이 결코 줄 수 없는 참된 보호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준수하는 것이 인간의 마땅한 도리일 뿐 아니라 축복을 받는 비결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라는 생각에 이르자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보일 때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이때 모세는 과거 애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큰 권능과 광야 40년 동안 보여주신 하나님의 기적과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고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18-19).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가나안 족속들에게도 똑같이 행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군사훈련이나 막강한 조직을 갖추지 못했고 변변한 무기도 없었을 뿐 아니라 광야 40년 동안의 생활에 지쳐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나안 족속들은 말벌에게 공격당하여 도망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을 한꺼번에 다 쫓아내지 않으시고 "조금씩" 쫓아내시겠다고 하십니다(22절). 이것은 들짐승이 번성하여 백성을 해칠까 봐 백성의 수준과 상황에 맞게 차근차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입니다. 중요한 것은 승리의 속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느냐(21절) 하는 것입니다.
25,26절에서는 다시 한번 가나안의 우상들을 철저히 제거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더욱이 그 우상들에게 입힌 금이나 은을 취하지 말고 그대로 불사르도록 한 것은 그 금은이 올무가 되어 우상까지 탐하게 되고 결국에는 우상숭배로 이끌려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가나안 족속을 멸망시키고 우상을 배척하는 것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원을 그리는 '컴퍼스'를 사용해 보셨을 것입니다. 컴퍼스로 완벽한 원을 그리려면 한쪽 뾰족한 다리를 종이에 깊게 고정해야 합니다. 중심점이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박혀 있을 때, 다른 쪽 연필 다리가 돌아가며 아름다운 원을 완성합니다. 우리 인생의 복과 승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의 중심점에 '하나님의 말씀과 순종'이라는 컴퍼스 축을 깊이 박아두면, 삶의 환경이 아무리 흔들려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아름답고 풍성한 원으로 그려주십니다. 세상의 능력이나 내 경험을 중심에 두면 원은 이내 일그러집니다. 오직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때, 모든 질병과 두려움을 이기는 참된 복이 시작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신명기 7장은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속화의 파도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져진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는 은둔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거룩한 구별된 성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삶의 현장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어떠한 적용과 실천 전략을 가져야 할까요?
첫째, 내 삶의 '우상 제단'을 단호히 철거하십시오.
우리의 가정과 일터, 디지털 삶 속에 은밀히 들어와 있는 우상의 요소가 없는지 점검합시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재물, 미디어 중독, 타협하는 정직하지 못한 사업관행을 십자가 앞에 내어놓고 끊어내십시오. 이번 한 주 동안 나의 영성을 침해하는 미디어나 습관 하나를 정해 '영적 금식'을 실천해 봅시다.
둘째,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매일 확인해야 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했듯,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매일 묵상합시다. 매일 아침 "나는 하나님이 피 값으로 사신 거룩한 백성이다"라고 선포하며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조금씩'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작은 순종을 쌓으십시오.
영적 전쟁은 단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조금씩" 성장을 이루어 가십니다. 한 번에 완벽해지려 조급해하지 말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작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루 10분 성경 읽기와 기도, 작은 나눔 등 작지만 지속 가능한 순종의 습관을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크고 화려해 보이지만, 온 우주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구별되게 살아가는 한 사람, 그 거룩한 성민을 찾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유혹 앞에서는 단호히 거절하고,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담대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복과 승리를 삶의 현장에서 매일 경험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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