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 설교본문 | 출37:1-29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5-17 |
20260517 주일오후설교
본문: 출 37:1-29
제목: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를 짓는 사람들
I. 서론
우리는 오늘 출애굽기 37장을 본문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를 짓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37장을 읽다 보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보았던 성막 기구들의 설계도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이 내용을 반복해서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여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는 브살렐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성소의 핵심 기구들을 직접 제작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제작 기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건물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처소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며, 어떤 예배를 기뻐하시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가 만든 법궤, 상과 등잔대, 그리고 분향단을 살펴보며, 우리 마음의 성소를 어떻게 가꾸어야 할지 세 가지 영적 원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인생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법궤 1-9)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언약궤를 만들고 순금으로 안팎을 쌌습니다. 그 위에는 속죄소를 만들어 두 그룹이 날개를 펴서 덮게 했습니다. 지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는 단연 '법궤(언약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특이한 점은 재료입니다. '조각목'은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볼품없고 단단한 아카시아류의 나무입니다. 우리 인생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볼품없는 나무를 '순금'으로 안팎을 쌉니다. 이것은 연약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덮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법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십계명 돌판)이 있고, 그 위를 하나님의 자비(속죄소)가 덮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안을 얻습니다. 우리가 속죄의 은혜를 받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속죄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의지하야 죄용서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언약궤는 성막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가장 거룩한 기구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반복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브살렐은 자기 마음대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취향이나 창의성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히 순종했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 마다 옮겨가야 하기 때문에 금고리를 4개를 그 법궤 밑 사방에 만들어 그 고리에 긴 장대를 꿰어서 네사람이 메고 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고리가 법궤 밑에 있으니 어깨에 메면 머리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성이나 생각 이상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머리로 이해되면 순종하고 그렇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우리는 무지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엘리 제사장때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옛날에 우리가 법궤를 메고 나가서 이겼는데 이 법궤를 메고 가자고 해서 메고 갔으나 졌습니다. 지금도 자기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먹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큰 고통이 됩니다. 그런데 이 법궤를 블레셋이 빼앗아 갔으나 그 법궤를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 신상 앞에 두고 자고 일어나니 그 우상이 다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법궤가 가는 곳 마다 문제가 일어나니 블레셋이 그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주게 됩니다. 돌아온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이 소가 모는 수레에 실어서 옮기다가 소가 타작마당에 와서 뛰니까 법궤가 떨어지지 않도록 잡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맙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거룩하신 임재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다윗왕이 그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그 법궤를 사람이 메고 가도록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취급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우리 어깨 위에 두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우리의 이성이나 생각보다 더 높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기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말씀을 기준으로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 감정과 환경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둘째, 작은 순종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브살렐은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 말씀대로 만들었습니다.
셋째, 가정과 교회에서 말씀 중심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순종의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돈입니까, 자녀입니까, 아니면 불안입니까? 그 자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오늘 제 마음의 보좌에 앉아 주십시오"라고 1분간 고백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2. 말씀의 양식을 먹고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10-24)
본문 (10-24절): 조각목으로 떡상을 만들어 진설병을 두고, 순금을 쳐서 일곱 등잔대를 만들었습니다. 브살렐은 법궤를 만든 후에 '떡상'과 '등잔대'를 만듭니다. 떡상은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와 공급하시는 생명의 양식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떡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 안은 창문이 없어 캄캄합니다. 오직 이 순금 등잔대만이 빛을 밝힙니다. 이것은 성령의 조명하심과 성도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등잔대를 만들 때 '쳐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고난과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세상을 밝히는 정금 같은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등잔대는 일곱 개로 되어 있는데 일곱 등잔 불이 연합해야만 올바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목회자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연합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증거할 때 복음의 빛이 제대로 비치게 됩니다.
이러한 진설병 상, 등잔대와 같은 기구는 예배와 관계가 있습니다. 즉 성막의 중심은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형식적인 종교생활이 아니라 거룩한 예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형식은 있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 중심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양은 하지만 마음은 세상에 있고, 기도는 하지만 진실함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예배는 단지 주일 한 시간 드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롬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과거 영국 런던에 가로등을 하나하나 켜고 다니던 등불지기들이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한 노인이 긴 장대를 들고 마을의 등불을 켭니다. 그는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아도,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빛의 길'이 남았습니다. 성도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생명의 양식이 있고 내 삶이 등잔대가 되어 내가 지나간 자리에 그리스도의 빛이 남게 하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 가운데서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카타콤 지하무덤에서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예배를 드렸을까요? 그들에게 예배는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위로와 능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쉽게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첫째, 예배를 준비하며 나오시기 바랍니다. 토요일 밤부터 마음을 정돈하십시오.
둘째,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등잔대처럼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을 비추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진설병 상처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십시오.
3. 기도의 향연이 끊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25-29)
또 브살렐은 조각목으로 분향단을 만들고 안팎을 순금으로 쌌으며, 거룩한 관유와 향기로운 향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작된 것은 '분향단'입니다. 여기서 피어오르는 향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계 8:3-4). 분향단은 법궤 바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또한 29절에는 관유(기름)와 향이 나옵니다. 성소의 모든 기구는 이 기름이 발라져야 거룩해집니다. 우리의 봉사와 헌신도 내 열정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하며, 우리의 삶에서는 세상의 악취가 아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의 향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열어야 합니다.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조지 뮬러 목사님은 돌아가신 후 그의 방에서 두 개의 깊은 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평생 기도의 무릎을 꿇었던 마룻바닥이 패인 자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위대한 사역을 칭송했지만, 그 사역을 가능케 한 것은 분향단의 향기처럼 끊이지 않았던 그의 기도의 무릎이었습니다. 향은 타버려 없어지지만, 그 향기는 하늘 보좌에 상달됩니다. 우리의 기도도 자신의 욕심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기 위한 기도라야 응답받습니다. 말씀의 언약대로 기도하며 순종할 때 그 기도가 천사들의 금 향로에 담겨서 향기로운 향연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고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정결한 향이 됩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향은 지금 꺼져 있습니까, 아니면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까?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정해진 '기도의 골방'을 만드십시오.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운전석, 부엌 한편, 침대 맡 어디든 좋습니다. 하루 10분이라도 하나님께 향을 피우는 시간을 사수하십시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출애굽기 37장의 모든 기구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언약궤도, 등잔대도, 향단도, 모두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성막의 목적은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고전10: 31절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교회 봉사도, 직장 생활도, 가정생활도, 결국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브살렐은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진짜 충성된 일꾼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어느 성당에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감탄하며 물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어디에도 작가 이름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십시오. 브살렐처럼 묵묵히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내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십시오. 사업도, 직장도, 가정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숨은 헌신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충성을 기억하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오늘 브살렐이 만든 법궤, 상, 등잔대, 분향단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향합니다. 바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은혜와 복을 주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산 제사, 산 예배가 되도록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또한 출애굽기 37장의 반복되는 제작 과정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대충 짓는 법이 없으시다. 너희 인생도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정교하게 빚어지고 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성막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법궤)를 모시고, 말씀의 양식(상)을 먹으며, 성령의 빛(등잔대)을 비추고, 기도의 향기(분향단)를 올립시다. 비록 우리는 광야의 조각목처럼 거칠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라는 순금으로 우리를 싸 주실 때 우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성소가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 37장은 단순한 성소 기구 제작 기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백성을 원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브살렐의 손은 단순한 기술자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손이 기도하는 손, 섬기는 손, 순종하는 손, 예배하는 손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하며 하나님이 거하실 아름다운 성소를 지어가는 거룩한 브살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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