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마9:1-38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10-25 |
20261025 주일오전설교
제목: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
본문: 마 9: 1~38
I. 서론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9장에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를 안고 예수님께 나온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전신마비로 침상에 누운 채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온 중풍병자, 사람들에게 극심한 미움을 받던 세리 마태, 딸의 죽음 앞에 절망하며 무릎 꿇은 회당장 야이로, 12년 동안 불치의 혈루증을 앓던 여인, 앞을 보지 못해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두 맹인, 그리고 귀신 들려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 된 사람 등 여섯가지 사례가 나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모두 인간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한계와 절망, 죄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들의 삶에는 단순한 육신의 치유를 넘어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 역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나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며 살아가고 있는가?" 라고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마태복음 9장 본문을 통해, 죄인을 용서하시고 영육을 치유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신 사실을 살펴보고, 우리 삶에도 동일한 은혜와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치유현장을 살펴보겠습니다.
1. 죄 사함과 질병을 치유하신 예수 그리스도 (1~17)
오늘 본문 1절부터 8절을 보면,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째 예수님께 메고 옵니다. 이와 동일한 사건을 좀더 자세히 기록한 막2:4절과 눅5:19절을 보면 그 중풍병자는 전신이 마비되어 침상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계신 곳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예수님이 계시던 집의 지붕을 뚫고 위에서 그 중풍병자를 침상 채 달아 내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던지신 첫 마디는 "일어나 걸으라"가 아니었습니다. 본문 2절에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병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중풍병자 자신도 방탕한 생활로 인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심한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의 병을 고치시기 전에 먼저 그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사망은 근본적으로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초래되었지만 예수님은 그 근본적 원인이 되는 죄를 없애 주셨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죄사함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곁에 있던 서기관들은 마음 속으로 "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라고 분개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의 생각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셔서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단지 인간 예수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고 생각 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자신이요, 메시아(Messiah)이심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서기관들의 마음 속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육신의 질병과 고통도 안타깝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죄의 상태야말로 인간을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넣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신 후에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권위를 지닌 메시아이심을 입증하시고, 중풍병자를 침상에서 일으켜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그 중풍병자에게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고 그 사죄받은 증표로 육신적 질병의 치유하신 것입니다. 그 중풍병자는 주님께서 자신의 영육을 치유하실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즉시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침상에 실려왔던 그가 이제는 그 침상을 스스로 들고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어서 9-13절에는 세리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가 부과한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유대 동족들에게 부과하여 더 많이 부과한 돈을 자신이 착복하고 나머지 돈을 로마의 세금으로 바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창기와 더불어 세리를 가장 싫어하고 경멸하며 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기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 즉시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마태에게 죄를 회개하고 오라든지 집에 가서 가족과 의논해 보고 오라는 말씀을 하지 않고 바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마태는 동족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형편없는 죄인 취급을 받았는데 예수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기를 따르라고 하니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믿음으로 즉시 일어나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는 당시 동족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지만 부와 명예가 보장된 세리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즉시 주를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즉시 자기 집에서 예수님과 다른 동료 세리들과 죄인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고 함께 식사했습니다. 그는 전에는 그가 가진 소유물이 당연히 자기 것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그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여긴 증거로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세상 재물과 영광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기록한 고귀한 사도직과 하나님 자녀의 영광된 명예를 얻은 것입니다.
11절에는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예수님께는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드시느냐"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우상제물을 먹는 이방인이나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죄악시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이방인과 함께 먹지말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영적 의사가 되어 약하고 무식한 백성들을 율법과 교훈으로 치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오히려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우고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악질적인 돌팔이 의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의 영과 육을 치유하는 만능의사로서 친히 병든 자를 찾아 고치시고 죽은 자까지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13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야 쓸 데 있느니라/ ...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스스로 의인이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롬3:10절과 23절에는 의인은 한사람도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죄인은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소망 없는 ‘죄인’이며 ‘병든 자’임을 겸손히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셔서 의인 삼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종교적인 의나 자신의 도덕적 깨끗함을 자랑하는 바리새인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악 됨을 철저히 깨닫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영혼의 의사이자 구원자로 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우리와 바리새인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유대교의 3대 행동규범은 금식, 구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슬퍼할 수 없고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을 신랑에 비유하고 장차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를 신랑이 빼앗길 때라고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6,17절에 그 유명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주의와 자기 의라는 '묵은 부대'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십자가 복음과 은혜의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습니다. 오직 통회자복하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갈망하는 심령이라는 '새 부대'만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작시한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은 원래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짐승처럼 입찰하고 수송하던 노예선 선장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흑인노예들을 학대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던 극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던 1748년 5월, 그가 탄 배가 폭풍우를 만나 침몰 직전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들었던 하나님을 떠올리며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저 같은 죄인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셨고, 그날 이후 존 뉴턴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존 뉴턴은 자신을 찾아오셔서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죄 사함의 감격'과 '은혜에 대한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죽은 자를 살리시고 불치병을 고치신 예수님 (18~31)
이어지는 18절부터 31절은 주님을 만난 이들의 간절한 믿음이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내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8절에는 어느 날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와 그 발 아래 엎드려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간청했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딸을 살리기 위해 믿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으로 가시는 길에, 또 하나의 극적인 사건이 끼어듭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이 무리 속에 섞여 예수님의 뒤로 다가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혈루증 환자는 '부정한 자'로 분류되어 타인과 접촉하는 것조차 금지되었고 성전에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발견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21절에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는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둘러싸 밀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믿음으로 만진 단 한 사람'의 손길을 알아채셨습니다. 주님은 돌아서서 여인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말씀하시고 그녀를 치유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질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12년 동안 사람들의 눈총과 고립 속에서 찢겨 나간 그 영혼을 "딸아"라고 부르시며 인격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은 많으나 믿음으로 접촉한 자만이 주님의 구원과 치유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12살 난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고, 사람들은 곡을 하며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24절에 예수님은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며, 소녀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야이로와 주님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달리다굼’ 즉 ‘소녀야 일어나라’ 고 하시자 죽었던 소녀가 다시 일어나 걸었습니다! 할렐루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죽은 소녀를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27절 이하에서는 두 맹인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이 외침은 맹인들이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서 약속하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이심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 질문하시며 그들의 믿음을 다시 확인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러하오이다 주여"라고 믿음으로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고 하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맹인들은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끝까지 주님을 따라감으로 놀라운 치유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32-34절에는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니 귀신들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치유장면을 놀랍게 여기는데 비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적을 부인하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성령의 역사를 거부함으로써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성령훼방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여섯가지 치유사례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공통된 열쇠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중풍병자, 세리 마태, 혈루증 여인은 절망이었고, 야이로 딸의 죽음은 불가능이었으며, 맹인들의 어둠은 끝없는 절망이었고,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는 영육이 모두 불치병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의 절망적 소리에 귀를 닫고, 오직 만유의 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간절한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절망은 기적으로 바뀌었고 죽음은 생명으로 역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인간의 영육간의 모든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믿음으로 그 앞에 나가기만 하면 다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시요, 구원자와 치료자 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3. 주님의 심장을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 추수할 일꾼이 되라. (32~38)
오늘 본문의 마지막 단락인 32절부터 38절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베푸신 궁극적인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혀줍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Teaching),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Preaching),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Healing)”고 했습니다. 즉,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이적을 행하는 요술사가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시며, 죄와 질병에 신음하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구원자이셨습니다.
그리고 36절에는 이러한 사역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는 주님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시니'라는 원어의 뜻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긍휼과 통증을 느끼며 아파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유리방황하는유대 백성들을 바라보실 때,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애통함과 불쌍히 여김을 느끼셨습니다. 짓눌리고, 피폐해지고, 영적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을 향해 목자 되신 주님의 심장이 뜨겁게 고동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엄숙히 선언하십니다. 37-38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진짜 만난 사람은 나 혼자 죄사함 받고, 나 혼자 문제 해결을 받아 평안을 누리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며 영적으로 죽어가는 세상사람들을 바라볼 때 주님의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내 심장 속에서도 불타오르게 되고, 그들에게 주님을 따라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치유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적 추수의 때를 맞이했습니다. 세상에는 복음에 목말라하고 생명을 갈망하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영적 일꾼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너희가 바로 그 추수할 일꾼이 되지 않겠느냐? 목자의 심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겠느냐?" 라고 묻고 계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마태복음 9장의 말씀은 단순히 2천 년 전 갈릴리 땅에서 일어났던 기적의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저와 여러분을 향한 구원과 치유를 베푸시는 주님께서 복음전도자로 부르시는 초청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핵심 교훈과,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3가지 적용 전략을 가슴에 깊이 새기기를 바랍니다.
첫째,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죄 사함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러 오신 영혼의 의사이십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나를 비추어 보며, 내 안에 쌓인 죄를 ‘통회하는 심령’으로 새 부대를 준비하시고, 매일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와 치유를 묵상하며 감사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모든 문제를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믿음으로 그 옷자락을 잡으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인간적 한계와 절망의 순간에 오직 믿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을 누르고 있는 절망의 문제(건강, 재정, 자녀, 인간관계)가 무엇입니까? 이들 처럼 "주님이 나를 치료하시면 내가 살아나겠나이다"라고 믿음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심장을 품고, 추수할 현장으로 나아가십시오.
주님은 우리만 은혜받고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목자 없이 유리방황하는 세상 영혼들을 향해 '불쌍히 여기며 애통하는 마음'을 품고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내 주변에 영적으로 고통받고 있거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전도대상자의 이름을 적어놓고 지속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긍휼한 마음을 담아 그들에게 따뜻한 안부 전화, 작은 섬김의 선물, 그리고 복음의 초청을 실천하십시오. 여러분이 서 있는 가정, 직장, 일터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영적 추수의 현장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을 믿고 그 앞에 나아가 은혜를 받고, 세상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주님의 추수할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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