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마2:1-23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9-06 |
20260906 주일오전설교 (왕으로 오신 예수)
제목: 왕으로 오신 예수
본문: 마2:1-23
I. 서론
성도 여러분, 누군가 우리 집이나 우리 삶에 귀한 손님으로 찾아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기대와 설렘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거나, 어떤 이는 예기치 않은 방문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왕이 오셨을 때 등장하는 인물들의 반응이 제각각이었다는 점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기쁨으로 그분께 경배하러 달려왔고, 당시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두려워하며 소동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단순히 한 아기가 태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역사에 개입하셔서 참된 왕을 보내신 구속사의 절정 중의 하나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왕의 다스림을 받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참된 왕을 향한 참된 경배 (1-12)
동방의 박사들은 당시 바벨론으로 추측되는 동방나라에서 별을 연구하는 점성학자, 천문학자들입니다. 유대민족이 70년간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가면서 모세 오경의 두루마리도 함께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 당시 바벨론에도 모세 오경이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민24:17절에 ”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동방박사들은 평소에 별에 대한 천체를 연구하던 중에 갑자기 나타난 특별한 한별을 발견하자 민수기에 나오는 한 별임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박사들이 본 별은 일상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적 현상이었습니다.
여기에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의 천문학에 관한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시킴으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지만 그 말씀을 순수하게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일행은 드디어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들이 본 별을 따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있는가 헤롯왕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 나시겠느냐고 물어보니 그들이 구약 미5:2절을 인용하여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헤롯왕이 매우 놀라고 불안했지만 속 마음을 감추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찾거든 자기에게 알려주면 자기도 경배하겠다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그들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아기 예수를 보고 그가 유대인의 왕이요 만민을 구원할 주님이심을 믿고 경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지고 온 가장 보배로운 보배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당시 황금은 여전히 귀한 보석이었고, 유향은 희귀한 나무에서 채취한 값비싼 향수이고, 몰약은 애굽사람들이 장례식에서 미이라를 만들 때 방부제로 사용했던 고급 물품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표로 제일 귀중한 이 보물을 그리스도께 바친 것입니다. 황금은 왕권을, 유향은 신성과 제사장직을, 몰약은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실 구속주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이 예물은 나중에 헤롯왕이 만2세 이하의 유아를 학살하라는 명령을 했을 때 요셉가족이 애굽으로 피난가면서 요긴하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런 재산이 없었던 그들이 애굽에서 피난생활을 하는데는 많은 생활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자신들의 명예나 지위보다 높으신 참된 왕 앞에 진정한 경배를 드렸습니다. '경배'는 나의 주권을 하나님께 양도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경배한 후에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자 하나님의 뜻에 즉각적인 순종하여 다른 길로 자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동방박사 일행은 세사람이 아니라 많은 일행이 함께 왔기 때문에 헤롯왕 뿐 아니라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고 할 정도로 소문이 널리 널피 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가는 길에 그들 일행을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율법을 잘 알고 메시아의 예언을 통달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떠했습니까? 4절에 모든 대제사장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원래 대제사장은 아론 혈통에 따라 한사람이어야만 하는데 대제사장이 여러 명이라는 것은 로마제국 당시 유대에는 대제사장직을 사고 파는 타락한 종교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인 미 5:2절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히 있느니라“는 말씀을 정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까지의 단 9km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지식은 있었으나 참된 경배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아는 자기 유대나라를 로마로부터 정치적, 경제적으로 해방시킬 엄청난 왕권을 가지고 오실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처럼 말씀에 대한 지식만 갖지 말고 말씀의 지식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있어야 그 말씀이 진리임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할 때는 즉시 순종해야 계속해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깨달은 만큼 순종해 감으로써 점점 더 큰 은혜를 받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무신론자였던 C.S. 루이스는 자신의 지식과 지성을 삶의 왕좌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지식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던 그 밤, 나는 영국 전체에서 가장 가라앉고 주저하는 회심자였다.
"루이스는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왕좌에서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할 때 참된 자유와 삶의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경배는 내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일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에 나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헤롯왕처럼 내 삶의 왕좌를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거나, 서기관들처럼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고 삶의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지적 안일함'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참된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여러분의 삶과 가장 귀한 시간과 물질을 예물로 드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세상의 저항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 (13-18)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지만, 이 세상은 그 왕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로부터 다윗의 후손인 유대인의 왕이 새로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왕권을 위협받을까 심히 불안하고 두려워하여 왕으로 나신 아기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날 것이라고 했는가 물었습니다. 그들은 구약 미5:2절의 예언을 들어 베들레헴이라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에게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자기에게 알려주면 자기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그들을 안심시켜 보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돌아오지 않자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끔직하고 잔혹한 마귀적 폭력을 휘드른 것입니다.
16-18절은 당시의 슬픔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렘31:1절의 예언을 인용하여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라마는 바벨론 포로들이 있던 곳인데 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가면서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인 라헬의 묘 곁을 지나갈 때 그녀가 슬퍼하며 통곡하는 모습이 베들레헴 근처의 어린이 학살과 비교하여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그녀들의 애곡을 달랠 수 있는 위로자는 오직 ”능히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 뿐이십니다. 마리아는 그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보고 마음을 찌르는 슬픔에 잠겼지만 오히려 이 십자가를 통해 부활을 본 것 같이 그 여자들은 이 애통을 통해 메시아의 활동시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비극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둠과 세속 권력의 승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사태를 피할 길을 알려주셨고, 예수님 가족을 애굽으로 피신시키셨습니다. 이는 호세아 11: 1절의 예언인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러냈다"는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구속사적 역사의 과정이었습니다. 원래 이 말씀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출애굽시켜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이지만, 이것이 그리스도께도 적용되는 이중적인 예언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실 때는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을 주셔서 순종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동방박사들의 예물을 통해 애굽 피난생활의 경비가 조달되게 하셨고, 요셉가족이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피난감으로서 구약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애굽 피난 생활에서 돌아오는 말씀의 성취를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 권력과 어둠의 세력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간계나 인간의 잔혹함도 하나님의 선하신 작정과 구원 계획을 결코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도모를 무력화하시고, 역사의 순간마다 당신의 백성을 친히 보존하십니다.
20세기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선교 역사을 살펴보면 과거 아프리카의 극심한 인종 갈등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수많은 선교사와 현지 교인들이 탄압을 받았습니다. 한 선교사는 독재 정권과 폭력 세력의 위협 속에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계속해서 밤에 도주해야 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악이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자신을 핍박하던 이들이 복음 앞에 무릎 꿇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훗날 고백하기를, "인간의 광기가 가장 치달을 때에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세상을 다스리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성도들을 압박하며,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권세를 쥔 자들의 무서운 세력도 결국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아래에 있을 뿐이며, 하나님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3. 낮아짐과 순종으로 성취되는 하나님 나라 (19-23)
헤롯이 죽은 후, 하나님은 다시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요셉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다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유아살해의 위험이 있었던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게 됩니다. 마태는 23절에서 사11:1절 예언을 인용하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했습니다. 사11:1절은 원래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싹’이란 말이 바로 ‘나사렛’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아켈라오 왕의 위협을 피하여 갈리리 지방 나사렛 동리에 살게 됨으로 이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나사렛'은 당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던 가난한 시골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요 1:46을 보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는 말씀이 나오는데 당시 사람들은 나사렛을 형편없는 시골동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세상은 화려한 예루살렘 왕궁을 메시아의 보좌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변두리 나사렛에서, 낮고 천한 모습으로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나사렛에서 성장하여 ‘나사렛 예수’라고 멸시와 천대를 받았지만 결국 온 세계가 우러러보는 가장 높은 왕의 가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신학적 역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세상의 화려함이나 힘의 과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던 요셉의 침묵하는 순종, 그리고 지극히 낮은 자리인 '나사렛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요셉은 자신의 뜻이나 안전을 먼저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에 매 순간 '순종'했습니다.
하버드와 예일 대학교의 저명한 교수이자 신학자였던 헨리 나우엔은 명예와 성공의 탑을 쌓아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삶의 깊은 회의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은 채 중증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Daybreak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왜 그 높은 자리에서 스스로 '나사렛' 같은 밑바닥으로 내려가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애인들의 곁을 지키며 대소변을 받아내고 그들을 섬기는 삶 속에서 비로소 참된 하나님 나라의 평안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낮아짐과 순종이 있는 곳에 진정한 왕의 다스림이 임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세상의 화려한 스펙이나 성공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소박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즉각 순종하며 겸손히 주님을 따라가는 '나사렛의 순종'을 찾으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장은 우리에게 2,000년 전 베들레헴에 오신 왕을 소개함과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십니까? 그리고 당신은 그분을 어떻게 맞이하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우리가 얻어야 할 영적 교훈과 실제적인 적용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내 삶의 왕좌를 주님께 드리십시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나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요 왕으로 믿고 순종하며 경배했던 것처럼 우리의 참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내 삶의 왕좌를 주님께 내어 드립시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주님, 오늘 하루도 내 삶의 왕좌에 주님이 앉아 주시고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라고 고백하십시오.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내 계획과 재정, 시간의 주권을 날마다 주님께 맡겨드리는 영적 습관을 바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둘째, 세상의 불안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십시오.
헤롯과 같은 세상의 위협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 계획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삶의 위기나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 찾아올 때, 세상의 뉴스나 사람의 말에 흔들리기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집중하십시오. 매주 주어지는 말씀 속에서 내 삶의 방향을 조정하는 영적 선율을 놓치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낮아짐의 자리에서 세밀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예루살렘의 화려함이 아닌 나사렛의 겸손과 순종을 통해 확장됩니다. 내가 거하는 가정, 직장, 교회가 바로 나의 '나사렛'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섬기고, 드러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 자신의 지식이니 경험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굴복시킬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은혜의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도 그들이 천문학을 연구하던 중에 특별한 ‘한 별’을 발견하다 성경에 나타난 말씀에 일치시킴으로써 그리스도를 찾아가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나의 재능이나 능력이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고 그것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사용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함을 받아 왕이신 예수님을 만나 기뻐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온전한 왕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헤롯처럼 불안해하거나 서기관처럼 무감각하게 살지 않고, 요셉처럼 온전히 순종하며, 박사들처럼 온 마음으로 주님을 경배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 129 | 왕으로 오신 예수 | 마2:1-23 | 2026-09-06 | 홍기칠 목사 |
| 128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 마1:1-25 | 2026-08-30 | 홍기칠 목사 |
| 127 | 승리하는 성도의 삶 | 히13:1-25 | 2026-08-23 | 홍기칠 목사 |
| 126 | 믿음의 증거 | 히12:1-29 | 2026-08-16 | 홍기칠 |
| 125 | 믿음이란 무엇인가? | 히11:1-40 | 2026-08-09 | 홍기칠 목사 |
| 124 | 뒤로 물러서지 않는 믿음 | 히10:1-39 | 2026-08-02 | 홍기칠 목사 |
| 123 | 단번에 이루신 완전한 속죄 | 히9:1-28 | 2026-07-26 | 홍기칠 목사 |
| 122 | 새 언약의 대제사장 | 히8:1-13 | 2026-07-19 | 홍기칠 목사 |
| 121 |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 | 히7:1-28 | 2026-07-12 | 홍기칠 목사 |
| 120 | 천국소망의 닻을 내리라 | 히6:1-20 | 2026-07-05 | 홍기칠 목사 |
| 119 |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와 영적 성숙 | 히5:1-14 | 2026-06-28 | 홍기칠 목사 |
| 118 | 믿음으로 누리는 참된 안식 | 히4:1-16 | 2026-06-21 | 홍기칠 목사 |
| 117 |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 | 히3:1-19 | 2026-06-14 | 홍기칠 목사 |
| 116 |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라 | 히2:1-8 | 2026-05-31 | 홍기칠 목사 |
| 115 | 천사보다 뛰어난 옉예수 그리스도 | 히1:4-14 | 2026-05-24 | 홍기칠 목사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