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믿음이란 무엇인가?
2026-08-09 20:05:27
홍기칠
조회수   6
설교본문 히11:1-40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8-09

20260809 주일오전설교 (믿음이란 무엇인가)

제목: 믿음이란 무엇인가?

본문: 11:140

 

I. 서론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장 중 하나인 히브리서 11, 일명 믿음의 장을 함께 펼쳤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둘러보십시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그리고 수치로 증명되는 것만을 실재라고 말합니다. 통장 잔고, 부동산 가치, 건강 검진 결과, 자녀의 대학 타이틀처럼 눈으로 보는 것의 지배를 받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합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박해와 사회적 소외 속에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절망적이었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도들의 마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과연 믿고 따라 갈 가치가 있는가?라는 깊은 회의가 밀려왔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고난받는 성도들을 향해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하고 이 믿음으로 살아간 믿음의 선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며,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구약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길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믿음이란 무엇인가? (1-3)

본문 1,2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에 대한 정의를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여기서 실상으로 번역된 단어는 건물을 받치는 기초석이나 법적 서류에서의 보증서를 의미합니다. , 믿음이란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이미 우리 영혼에 주어진 주권적 보증서이자 확실한 현실이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바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체임을 확신하게 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주관적, 개인적 확신 이상의 것이며, 미래에 속한 영원한 것을 지금 가진 것처럼, 아직 갖지 않은 것을 가진 것처럼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확신하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되고 실체와 실상이 됩니다.

 

둘째,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또한 증거에 해당하는 원어는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하는 확고한 증거를 뜻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마치 보이는 것처럼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확신입니다. 믿음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육체의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감각적 지식에는 감추어져 있는 실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죄의 용서, 몸의 부활, 영원한 생명, 미래의 기업, 만물창조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역사 등은 우리의 소망임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것, 그리고 아직 눈으로 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것들이 확실히 존재하며 참되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지식이나 과학은 눈에 보이고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만 다루지만, 믿음은 지식과 과학을 초월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이성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합니다. 믿음은 어떤 소망도 실현시키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실체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만들어 줍니다.

 

셋째, 옛 믿음의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좋은 증거를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의 역사성을 아브라함 이전의 인류 초기 역사부터 끌어올립니다. 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물질이 우연히 결합하여 우주가 생겼다고 말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세계 너머에 하나님의 창조적 음성이 있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현재의 천지만물이 창조된 것임을 인정합니다. , 창조는 믿음이 보지 못하는 증거라고 말하는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 언급된 믿음의 선조들이 체험한 것은 이 사실을 실제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옛 선조들은 현상을 보고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믿음의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에 의해 만물이 계획되고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결국 성취하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옛 믿음의 선조들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믿음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4~7)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참된 예배로 표현됩니다. 4절의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벨은 단순히 제물의 종류가 달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 같이 제물을 드렸지만 아벨이 드린 제물은 믿음으로 드렸다는 것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의인이라는 증거를 얻은 것은 자신이 드린 제사를 통해 나타난 믿음 때문입니다. 23:35절에서 예수님도 아벨의 의로운 피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을 예로 들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성경의 핵심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 말했듯, 믿음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인간의 전인적 포기입니다. 아벨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그의 믿음은 본보기로 기억되고 증거되고 있습니다.

 

또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여기서 동행했다는 것은 그를 기쁘시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에녹은 믿음의 순종으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연합함으로써 하나님 자신의 영적 생명을 공유하였으며 그가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으므로 죽음이 그에게 손댈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생을 얻은 믿음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6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신앙적 명제를 던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믿음이 없으면 에녹뿐 아니라 그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를 섬기면서 그와 동행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살아계시며,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은혜로 응답하시는 분임을 믿고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지고 마지막 때에 성육신하신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구속사역에 근거해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는 즐거움과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노아 역시 아직 보이지 않는 일, 즉 경고받은 홍수를 대비하여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120년간 방주를 준비하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방주를 준비하여 그의 여덟식구가 그 속에 들어감으로써 홍수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홍수가 임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노아의 믿음도 입증되었습니다. 결국 노아는 믿음으로 얻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주되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John Knox)의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여왕 메리 1세의 잔혹한 개신교 탄압으로 수많은 성도가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권력과 무력은 여왕에게 있었고, 개혁자들은 무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존 녹스는 골방에 들어가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옵소서!” 피의 여왕 메리는 훗날 나는 스코틀랜드의 그 어떤 군대보다 존 녹스 한 사람의 기도를 더 두려워한다.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군사력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로 동행했던 한 사람의 믿음이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와 기도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맞닿아 있는 가장 위대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3. 믿음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며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8~22)

이어서 저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 야곱, 요셉의 삶을 조명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믿음장인 본 장에서 중심인물이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으로 산 생애였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로 들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람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언제해야 할지, 왜 해야할지 모를 때에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모든 계산이 끝나고 안전장치가 마련되었을 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실한 근거 하나만을 붙들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 거룩한 모험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궁궐을 짓고 왕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9절에 보면 장막에 거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장막(Tent)은 언제든지 거두어 이동할 수 있는 임시 거처입니다. 약속에 땅에는 이미 원주민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평야지대는 살 곳이 없어 산지에 머물면서 장막을 치고 자주 이동하며 살아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약속을 받았지만 헤브론 근처 막벨라 밭을 사라의 매장지로 산 것 외에는 발붙일 땅도 얻지 못하였고, 동일한 약속을 받은 이삭, 야곱, 요셉도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으나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아브라함이 100, 사라 자신은 90세때 이미 생식능력이 없는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크게 번성했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고 영적 이스라엘이 된 수많은 성도들을 통해 그 약속이 실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영원한 도성 천국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땅에서 고된 나그네 생활을 믿음으로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13은 이들의 삶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아멘. 아브라함은 헷족속에게, 야곱은 바로에게 각각 자신이 외국인과 나그네로 소개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를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 사이의 종말론적 긴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이 땅의 도성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본향, 즉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땅에서 나그네 삶을 살지만 영원한 본향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눈앞의 성공이나 이 땅에서의 번영만을 목적 삼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수했던 이삭의 축복, 야곱의 얍복강변의 기도, 그리고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나가라고 유언한 요셉의 믿음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들은 죽음을 뛰어넘어 이행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보고 있었습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성 C.S. 루이스(C.S. Lewis)는 그의 저서 나니아 나라 찬가와 여러 글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그림자 땅에 비유했습니다. 루이스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이 땅의 물질과 쾌락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직 '진짜 현실'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고 놀던 아이가 바다 너머에 엄청난 휴양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루이스가 사랑하는 아내 조이(Joy)를 암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극심한 슬픔에 빠졌을 때, 그는 비로소 이 땅의 삶이 완성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본향만이 진짜 실체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거룩한 나그네입니다.

 

4. 믿음은 고난과 연단 속에서도 승리하는 능력이자 견딤입니다 (23~40)

본문 23-40에서 저자는 모세의 선택을 시작으로 여호수아 시대의 기생 라합, 그리고 구약의 수많은 유명·무명의 영웅들을 포괄적으로 언급합니다. 2426에 나오는 모세의 결단을 보십시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와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각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받고 믿음으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선포하고 마지막 유월절에 피뿌리는 일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예표되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이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서 구원받았다면 지금 우리는 이미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문 32절 이후부터는 믿음의 두 가지 양상이 극적으로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첫 번째 양상(3335a)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부활의 기적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승리자들입니다.

 

두 번째 양상(35b38)은 전혀 다른 종류의 믿음의 사람들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더 나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면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고, 시련과 채찍질, 옥에 갇힘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광야와 산중과 동굴에 유리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실패자라고 부르고 불쌍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8에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위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라.할렐루야! 참된 믿음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의 능력일 뿐만 아니라, 환경이 변하지 않을 때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난을 참아내는 인내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3940절은 가슴 벅찬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구약의 이 모든 선진들은 훌륭한 믿음의 증거를 받았으나, 완성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신약의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구원을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도들과 신약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완전함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에콰도르의 아우카 족에게 복음을 전하려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창에 맞아 순교한 짐 엘리엇(Jim Elliot) 선교사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가 명문 위튼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로 떠나려 할 때, 세상 사람들은 인재의 낭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짐 엘리엇은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다른 순교자들의 아내들은 어린 자녀들을 안고 다시 그 아우카 족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자신들의 남편을 죽인 부족민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 복음을 전했고, 결국 그 부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부족장이 목회자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죽음을 비극이라 불렀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히브리서 11장은 우리에게 당신은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의 법칙에 끌려다니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은 물질주의와 비교 의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현대판 애굽이자 바벨론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 본문은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매일 믿음의 시각을 회복하는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시다. 가시적인 세상 너머에서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안경을 매일 아침 새로 고쳐 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둘째, 삶의 자리에 거룩한 단절과 선택을 결단합시다.

모세처럼 성도들은 세상의 불의한 타협이나 죄악 된 즐거움을 거절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고, 남들이 이기심을 부릴 때 나누고 베푸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세속적 가치관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땅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나그네의 영성을 소유하십시오.

건강의 문제, 재정의 위기, 자녀의 어려움이 찾아올 때 낙심하여 무너지지 마십시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거할 영원한 도성, 주님이 준비하신 더 나은 본향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기쁠 때도 겸손하고, 슬플 때도 소망을 잃지 않는 삶, 즉 이 땅의 형편에 흔들리지 않고 하늘의 상 주심을 바라보는 평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수많은 선진들은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12:1)이 되어 지금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도 그 길을 걸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십시오!”라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눈에 보이는 현실에 좌우되는 인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눈으로 보는 듯이 의지하며 담대히 승리하시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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