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성도의 정체성과 삶의 태도
2026-09-27 20:40:44
홍기칠
조회수   6
설교본문 마5:1-48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9-27

20260927 주일오전설교

제목: 성도의 정체성과 삶의 태도

본문: 마5:1-48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무리와 제자들을 향해 선포하신 그 유명한 ‘산상수훈’의 시작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율법주의, 그리고 로마 제국의 강압적인 통치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하나님 나라는 언제 오며,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산 위에서 구약의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것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법과 가치관을 직접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행위를 다듬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과 가치관의 뿌리부터 뒤흔드는 거룩한 혁명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삶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5장 전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져야 할 세 가지 핵심적인 삶의 태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은혜로 변화된 거룩한 성품을 품으라 (1–16)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첫 번째 특징으로 ‘팔복’을 제시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세상이 흔히 말하는 건강, 장수, 재물, 명예나 권력 등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팔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적이고 근원적인 기쁨과 거룩한 성품을 의미합니다.

 

먼저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신의 영적 결핍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자입니다. 이들에게는 천국을 상속해주신다고 했습니다.

 

4절에 ‘애통하는 자’란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신의 죄를 생각할 때 너무 슬퍼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회개하는 자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모르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불신자들의 영혼을 바라볼 때 안타까워 울면서 그들이 구원받도록 중보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 애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참된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됩니다.

 

5절에 ‘온유한 자’ 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를 말합니다. 미래의 새하늘과 새땅을 받게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함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일용할 의로움의 양식을 공급받게 됩니다.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 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불쌍히 여기며 동정을 베푸는 친절과 자비심이 있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비의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게 되고, 그것을 나누어 줄수록 하나님의 자비도 더해지게 됩니다.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 란 진정한 회개를 통해 마음이 깨끗해지고 청결한 영적 눈을 가지게 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청결하신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청결하신 하나님은 청결한 자의 마음에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란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이 하나님과 화평케 되도록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평을 도모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마지막 10절에 ‘의를 위해 박해 받는 자’ 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가지 핍박을 받는 자를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천국이 그 보상으로 주어지고 장차 천국에서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이 여덟가지 팔복의 성품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정서적 덕목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영혼 안에서 자연스럽게 맺히는 ‘천국 백성의 성품’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성품을 가진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13–14절)고 선언하십니다. 소금은 맛을 내고 부패를 막으며, 빛은 어둠을 밝힙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고 부패를 방지하지 못한다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생명처럼 귀중한 신앙의 맛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지 못한다면 가치없는 무용지물이 될 뿐 아니라 마귀와 사람에게 조롱거리가 되어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를 세상의 빛이라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빛을 비추는 근원이시고 모든 만물 위에 영원히 빛나는 인격적, 윤리적, 도덕적 광채의 근본이신데 성도는 그 빛을 받아 세상에 반사하는 작은 빛들입니다.

 

그래서 어둠을 밝히는 빛을 곡식을 되는 말 아래 숨겨두면 빛을 비출 수 없고 등경위에 두어야 모든 사람에게 비치듯이,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닮아 착한 행실로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질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빛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을 닮아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 속에서 착한 선행으로 복음의 빛을 비출때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금과 빛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너희가 소금이요 빛이 되었다는 ‘성도의 정체성 선언’이라는 점입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어둠을 밝히는 능력은 바로 팔복으로 다듬어진 성도의 거룩한 성품에서 나오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외식적 행위를 넘어서 말씀을 순종함으로 율법을 완성하라 (17–32).

예수님께서는 구약 율법과의 관계를 정립하십니다.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벽하게 하려 함이라” 고 하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조항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20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바리새인의 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제하고 기도하며 십일조를 바치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이었지만,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의는 마음의 중심에서 나오는 내면적 순종입니다. 19절에서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이란 십계명 중에 가장 짧은 구절인 “살인, 간음,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말하고 가르치면서도 자기들은 형식적으로 그 계명대로 행하는체 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율법의 참된 의미를 파헤치십니다. 21-26절에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이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단순히 육체적 생명을 빼앗는 것만이 살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고귀한 인격이요 특권이므로 사람이 마음대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이라는 것은 직접 타인을 살인하는 것 뿐 아니라, 형제에게 화를 내고, 유대인의 욕설인 ‘미련하고 어리석은 바보’ 라는 뜻의 “라가‘라고 욕하거나,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살인이라고 재해석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옥불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23-26절에서는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생각나면 그 예물을 두고 즉시 형제와 화목한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고발한 사람이 있다면 가서 즉시 사과하고 화해를 함으로써 감옥에 갇히는 화를 면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일점일획도 변경할 수 없고 그 심판에서 피할 사람이 없으니 미리 형제를 욕하거나 미워하거나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27-32절에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행위로서의 간음뿐만 아니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금지된 생각과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그 생각이 자신을 괴롭힐 때는 마치 죄를 미워하여 눈을 빼버리고 손을 잘라버리듯이 결단성 있게 거기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다윗왕은 어느날 한가하여 왕궁 옥상에 올라갔다가 목욕하는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의 벗은 몸을 보자 음욕이 일어나 그녀를 데려와 간음하고 그 죄를 숨기기 위해 그 남편 우리아 장군까지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가 들어올 때 과감하게 결단하고 거기서 돌아서고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이혼을 못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절대적인 관계가 부부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내보내는 자는 그 아내가 재혼함으로 간음죄를 행하게 한 것이 되고, 반면에 이혼한 여자를 아내로 취하면 그 또한 간음한 자라고 간음의 범위를 더 넓게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성 어거스틴은 음행한 아내까지도 용서하지 못하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용서하시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고 돌려보내셨기 때문입니다.

 

33-37절에 “맹세”에 대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악용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마음을 숨기려고 거창한 맹세를 남발하는 허위를 경계하셨습니다. 사실 맹세 자체는 이미 허위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하늘로도 땅으로도 머리로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과 우리의 머리를 포함한 세상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그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7절에서 “오직 너희 말은 예, 예, 아니오, 아니오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선한 사람은 맹세할 필요가 없고 오직 예, 아니오만 진실하게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으로 스스로를 ‘의롭다’ 착각하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을 깨뜨리시고, 우리의 은밀한 동기와 마음의 깊은 뿌리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조명 아래 두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수도원 시절, 율법의 조항을 완벽하게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금식을 하고, 밤새 기도하며, 자신의 작은 죄까지도 모두 고해성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내면의 깊은 죄의식이 더 커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로는 마음속에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미움, 음욕, 탐심을 제어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그가 로마서와 마태복음을 연구하면서, 율법의 요구는 인간의 외형적 노력으로 채울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벽히 성취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통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을 갈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율법의 완성은,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완벽해지라는 엄포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안에서 새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은혜의 초청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보복을 넘어 원수까지 품는 완전한 사랑을 하라. (33–4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보여주어야 할 사랑의 최고봉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세상의 공평과 보복의 원리를 넘어서는 ‘아카페의 사랑’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38절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을 인용하여 개인적인 보복을 정당화했습니다. 원래 이 법은 과도한 보복을 금지하기 위한 사법적 기준이었으나, 사람들은 이를 개인적 복수의 구실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파격적인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39절에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라고 하셨고, 40절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41절에 “누구든지 너로 하여금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기력하게 당하라는 수동적 굴종이 아닙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선으로 극복하는 강력한 영적 승리의 방식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자는 원수보다 강합니다. 더구나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포용하는 것은 그 원수와 싸우는 것 보다 더 위대한 일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기독교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이 사랑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아가페 사랑입니다. 45절에 하나님께서는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고 했습니다. 선인과 악인의 구별 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의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8절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완전함’이란 흠이 없는 도덕적 완벽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그 비차별적인 사랑의 성숙함에까지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한국 교회의 사랑의 상징이 된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마5: 44절의 말씀이 어떻게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인 동인과 동신은 안재선이라는 공산주의 광기에 사로잡힌 청년에 의해 잔인하게 피살당했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아비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손 목사님은 장례식장에서 하나님께 9가지 감사기도를 드렸고,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 안재선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자, 구명운동을 벌여 그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에게 ‘안신선’이라는 새 이름을 주고 친아들처럼 돌보며 목회자로 길러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손 목사님을 향해 “미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친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원수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거룩한 삶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이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령을 울렸고, 오늘날까지 한국 교회의 거룩한 영적 자산으로 남아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새 생명을 얻은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거룩한 특권을 지닌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천국 백성의 헌장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삶에 적용해야 할 3가지 거룩한 실행 전략을 제안합니다.

첫째, 내면의 정결을 위한 '매일의 말씀‘으로 자기 마음을 점검하십시오.

매일 밤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겉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하루 동안 내 마음속에 있었던 미움, 탐심, 거짓, 음욕의 생각들을 성령의 조명 아래 내려놓고 회개하는 경건의 습관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둘째, 관계의 회복을 위한 '먼저 손 내미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거나 관계가 틀어진 형제나 이웃이 있습니까?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용서의 한마디, 화해의 악수를 건네십시오. 정직하고 진실한 언어를 사용하여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면서 신뢰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마지막으로 세상 속에서의 '손해 보는 십리가기를 실천하십시오.

성도는 직장과 가정,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에게 억울하게 요구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기꺼이 '오 리를 넘어 십 리를 가주는' 거룩한 낭비를 실천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 뒤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산상수훈의 팔복을 묵상하면서 참다운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는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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