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히5:1-14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6-28 |
20260628 주일오전설교
본문:히5:1-14
제목: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와 영적 성숙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연약함'이라는 무거운 짐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도덕적인 실패, 영적인 무기력,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조차 부끄러운 죄책감이 우리를 짓누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이 연약함의 문제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과 자신 사이를 중재할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을 허락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 사이의 다리를 놓는 존재였습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참된 안식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된 안식은 속죄의 은혜를 받지 않고는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양심이 늘 일깨워주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속죄의 은총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5장은 바로 이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해 속죄를 위한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의 완벽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서 당시에 극심한 박해와 유혹 속에서 다시 구약의 제사 제도와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영적 침체와 배교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연수는 더해가지만, 여전히 삶의 고난 앞에 흔들리고 영적인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되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어떻게 영적 정체 상태를 벗어나 장성한 분량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인간 대제사장의 자격과 한계 (1-4절)
본문1-4절은 구약의 대제사장과 예수님을 비교해서 예수님이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대제사장인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선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인간 대제사장의 자격과 그 본질적인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갖추어야 할 네가지 일반적인 자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대제사장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힌 자라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할 이유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이 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둘째, 대제사장은 속죄와 연관된 일을 하도록 임명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르는 인간의 죄를 사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 직분은 매우 영예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직은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아론의 자손만 임명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대제사장은 죄 때문에 예물과 희생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제물을 가지고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예물과 희생제물을 바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식하고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용납해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제물을 규정대로 착오없이 바치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자신이 대신하여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동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문 2절에 '용납하다'라는 단어는 감정을 절제하며 상대방을 부드럽게 대하는 온화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인간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부지중 혹은 연약함으로 지은 죄를 온화하게 용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2절 하반절에 나오듯,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죄를 정죄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자신도 동일한 죄인임을 인식하는 겸손한 중재자였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40일동안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불안하여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달라고 하여 그 금송아지를 애굽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며 섬겼습니다. 그 우상숭배의 책임은 아론에게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 대제사장 아론은 자기도 연약하여 범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 대제사장의 결정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3절을 보면, 그는 백성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레위기를 읽어보면 백성 전체를 위해 속죄제를 드릴 때 송아지를 드립니다. 제사장 자신을 위해 드릴 때도 송아지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장 한사람을 위해 드리는 제사를 백성을 위해 드리는 제사와 동일한 비중을 두고 드리는 이유는 그만큼 제사장의 책임이 무거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아무리 거룩한 옷을 입었다해도 그 본질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직분은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4절)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수동적인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거의 모든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은 자격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는 불량배나 강도수준의 삯꾼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2.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5-10절)
본문 5-10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대제사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선언과 그리스도 자신의 순종을 통해 성취된 완벽한 대제사장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론과 예수님이 다같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지만 예수님이 더욱 우월하시고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아론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임명 기간과 권위에 있어서 제한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기간이나 권위에 있어서 전혀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임명하셨다는 사실을 뒷받침 하기 위해 저자는 5절과 6절에서 시편 2: 7절과 시편 110: 4절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신학적 정당성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영광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다"라는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 아론의 자손만 제사장이 됩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의 원주민 중의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10편에 다윗이 예언하기를 앞으로 완전한 제사장이 오시는데 그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신다고 예언했습니다.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은 족보도 없고 태어난 기록도 없는 특별한 분입니다. 히브리서 7장에 가면 멜기세덱 반차라는 말은 유대인 가운데 본래 제사장의 혈통이 아닌 특별한 제사장이 오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즉 '멜기세덱의 반차'라는 것은 아론처럼 혈통이나 인간적 계보를 따라 임시로 임명된 것이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는 신적이고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의미합니다.
멜기세덱은 창14:18절에 단 한번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사장직도 단 한번으로 영원히 이루어졌습니다. 멜기세덱이 시작도 끝도 없는 신비한 인물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요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멜기세덱이 제사장이요 왕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요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가 율법 이전의 인물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율법 이전에 계셨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기 떡과 포도주를 바쳤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를 쏟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론의 족보를 따라 오신 인간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영원한 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육체로 이땅에 오셔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셨습니다.
이 영원한 대제사장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이 7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하나님께 십자가를 지는 일에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땀이 피방울이 되도록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받으셨습니다. 신적 권위를 가지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완전한 고난과 죽음의 공포를 몸소 겪으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이 겪는 모든 유혹과 아픔을 몸소 겪으시며 드디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8절의 말씀은 신학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순종을 '배우셨다'는 것은 지식의 결핍을 채우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인간의 삶 속에서 고난이라는 구체적인 시험을 통과하심으로, '순종의 전 과정을 몸소 경험하여 완성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9절 말씀처럼 온전하게 되셔서,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대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인간이 되시고 대제사장직을 맡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갚으시기 위해 대속제물이 되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의 기도를 드리시고 응답받으셨습니다.
또한 9절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통해 순종을 체험하심으로 부활 승천하여 대제사장으로 완전한 자리에 나가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구원하실 수 있는 구주, 곧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10절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유일한 제사장 계열의 멜기세덱 계열의 머리로 임명받으셨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랐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특별한 반열을 좋은 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구원은 예수님의 순종으로 얻어진 것이지만 그것은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영원합니다. 할렐루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막시밀리아노 콜베(Maximiliano Kolbe)라는 신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수용자가 탈옥하자, 수용소장은 본보기로 다른 수용자 10명을 굶겨 죽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중 지목된 한 사형수가 "내게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콜베 신부가 앞으로 걸어 나와 말했습니다. "내가 저 사람 대신 죽겠소. 나는 처자식이 없는 가톨릭 신부요."라고 하자 수용소장은 이를 수락했고, 콜베 신부는 감옥에서 타인을 위해 대신 굶어 죽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했습니다. 콜베 신부의 희생은 감동적이지만 단 한 사람의 육신만 살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고 십자가라는 엄청난 고난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분은 한 사람의 대속을 넘어, 주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온전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3. 영적 어린아이의 정체 상태를 벗어나라 (11-14절)
히브리서 저자는 이 위대한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 깊이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독자들의 영적 둔감함 때문에 탄식하며 대신에 몇가지 엄한 훈계와 경고로영적 성장을 촉구합니다. 구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었던 멜기세덱에 대해 설명하려다가 아직 믿음이 어려서 너무 깊은 이야기를 하면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 말씀을 뒤로 미룹니다, 히브리서 7장에 가면 멜기세덱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자세히 나옵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을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둔하다'는 말은 '게으른, 마비된, 움직이지 않는'이라는 뜻입니다. 듣지 못하는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영적인 진리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영적 나태함을 의미합니다.
12절에서 저자의 책망은 정점에 달합니다. 시간으로 보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지 오래되어 신앙적으로 성장했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원리가 무엇인지를 다시 배워야 할 한심스러운 처지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들은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하는 영적 갓난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기서 ‘젖’은 성경의 초보적인 원리를 말하고 ‘단단한 음식’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같은 높은 수준의 깊은 진리나 교훈을 말합니다. 그들은 장성한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화하기 쉬운 젖이나 쉽게 요리된 음식밖에 먹지 못하는 아기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13절과 14절은 영적 어린아이와 장성한 자를 날카롭게 대조합니다. ‘영적 어린아이’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 즉 영적 분별력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반면에 ‘장성한 자’란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 즉,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를 말합니다. 여기서 '연단을 받아'라는 말은 운동선수가 옷을 벗고 몸을 단련하는 체조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즉, 영적 성숙은 가만히 앉아서 시간이 흐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훈련하는 치열한 영적 연습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미숙한 성도라도 지속적으로 영적 훈련을 받기만 하면 경험적인 지각을 통해 영적 분별력을 가짐으로써 좋고 나쁜 것을 분명히 구별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범죄치 않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영적 성숙은 매일 삶의 현장에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거룩한 연습'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간 대제사장의 한계와 이를 온전히 극복하시고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입은 자로서 우리가 영적 초보에 머무르지 말고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영적 어린아이의 상태를 탈피하고 장성한 자로 나아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구체적인 말씀 통독과 '단단한 말씀' 묵상의 훈련을 하라.
매일 내 귀에 달콤하고 위로가 되는 말씀만 편식하는 '젖 먹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 십자가의 고난, 종말론적 심판과 전도에 대한 명령 등 때로는 부담스럽고 소화하기 힘든 '단단한 음식'과 같은 말씀도 깊이 읽고 연구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삶의 현장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훈련을 하라.
매일 아침 삶의 자리로 나아갈 때,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십시오. 대인 관계에서의 갈등, 물질적인 유혹 앞에서 내 감정과 이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죄와 타협하지 않는 영적 체력 훈련을 매일 반복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영적 대제사장이신 예수께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훈련을 하라.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고치시고 체휼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이 계십니다. 낙심될 때마다 나의 공로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시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기도의 자리에서 나의 연약함을 고백할 때, 주님은 온화함으로 우리를 용납하시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영적 정체 상태를 깨뜨리고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소화해 내며, 이 세대 속에서 선악을 능히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군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 119 |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와 영적 성숙 | 히5:1-14 | 2026-06-28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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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 | 히3:1-19 | 2026-06-14 | 홍기칠 목사 |
| 116 |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라 | 히2:1-8 | 2026-05-31 | 홍기칠 목사 |
| 115 | 천사보다 뛰어난 옉예수 그리스도 | 히1:4-14 | 2026-05-24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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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승천과 재림 사이를 사는 성도의 삶 | 행1:1-11(마24:1-51) | 2026-04-12 | 홍기칠 목사 |
| 108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 요20:1-31 | 2026-04-05 | 홍기칠 목사 |
| 107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 요19:17-37 | 2026-03-29 | 홍기칠 목사 |
| 106 | 하나님의 뜻 | 롬12:1-2 | 2026-03-22 | 홍기칠 목사 |
| 105 | 나는죄인인가? | 롬3:23 | 2026-03-15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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