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
2026-07-12 22:01:02
홍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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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히7:1-28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7-12

20260715 주일오전설교

제목: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

본문: 7: 1~ 28

 

I. 서론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일차적인 수신자들은 유대교의 거센 박해와 유혹 앞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 대를 이어 내려오는 아론 혈통의 제사장들, 매년 피를 흘리며 드려지는 가시적인 제사 시스템은 그들에게 거대한 안정감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반면,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지상 성전의 제사장도 아니었으며, 단 한 번의 죽음으로 하늘로 떠나버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영적 침체와 함께 다시 구약의 율법과 제사 제도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심각한 신앙의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흔들림을 막기 위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야말로 참 제사장되심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히브리서는 7장부터 10장까지는 히브리서의 핵심주제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다루고 있는데, 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서 레위계통의 인간 대제사장보다 더 나은 계통에서, 8장은 더 나은 언약 아래서, 9장은 더 좋은 성소에서, 10장은 더 좋은 제물에서 훨씬 뛰어나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 볼 7장에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멜기세덱 계통을 따라 레위계통의 제사장보다 더 뛰어나신 이유를 시간을 초월하고 중보기도를 하고, 온전한 제사를 드린다는 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 성경 창14장과 시편 110편 단 두 곳 밖에 등장하지 않는 신비로운 인물, ‘멜기세덱이라는 렌즈를 통해, 왜 예수 그리스도가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며, 왜 그분만이 우리 영혼의 영원한 닻이 되시는지를 설명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율법주의적 한계를 깨뜨리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은혜를 깊이 깨닫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레위 계통을 초월하는 멜기세덱의 우월성 (1~10)

히브리서 기자는 먼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리스도는 레위 제사장들 보다 더 위대하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멜기세덱은 장차 오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예표하기 위하여 창 14장과 시110:4절에 기록된 역사적 인물로서 갑자기 신비스럽게 나타나 시간의 단계를 넘어서 족보나 후손에 대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멜기세덱이 레위계통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여기서 논증합니다. 그러면 멜기세덱은 누구입니까? 본문 1절부터 3절은 창세기 14장에 나타난 멜기세덱의 정체를 요약합니다.

 

그는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평강의 왕이고, 그의 직책의의 왕입니다. 더욱이 성경은 그의 부모도, 족보도,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자로 묘사합니다.

 

살렘 왕이란 평화의 왕이란 뜻입니다. 통치자가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평화스럽게 통치할 때 백성들은 평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와 평화는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의가 없으면 평화는 결코 얻어질 수 없습니다. 의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멜기세덱이 의의 왕, 평화의 왕이라 불리우는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네가지 사항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요단에 침입한 그돌라오멜과 세 동맹왕들과 싸워 이기고 돌와왔을 때 멜기세덱으로부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당시 히브리 제도 아래에서는 복을 받은 자는 언제나 낮은 자이고 축복하는 자는 높은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보다 더 높은 자로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싸움에서 승리하여 얻은 가장 좋은 전리품 가운데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브라함은 그를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그의 신령한 지위가 자기보다 높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셋째, 멜기세덱은 부모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과 끝이 없고 생명의 끝도 없었습니다. 레위지파 제사장의 경우는 아버지는 아론 계통이어야하고 어머니는 레위지파 정결한 여인이어야 하며, 그들의 족보는 명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족보도 가족도 없었고 출생과 죽음에 대한 기록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끝도 없었다는 것은 한명의 제사장 자녀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닮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되고 그의 제사장직도 영원한 것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히 제사장직으로 남았습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임명받은 제사장으로서 사람들을 위해 땅 위에서 일시적으로 그 직분을 수행했지만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항상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영원히 남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영원하기 때문에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직도 역시 영원한 것입니다.

 

본문 5-10절에는 멕기세덱의 우월성이 십일조를 통해 다시금 강조되고 있습니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도 레위족속만이 제사장 직분을 맡을 수 있고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레위자손에게서 나지 않았지만 하나님깨로부터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고 그에게 축복했다는 것은 그의 우월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축복은 위에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레위 제사장들은 십일조를 받았어도 결국 죽은 반면에 멜기세덱은 계속 살아있다고 증거되기 떄문에 다른 레위 제사장들보다 더 우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레위 제사장들도 아브라함을 통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당시 레위인은 현실적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그 안에서 잠재적 존재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멜기세덱은 구약에서 그 위대성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갖는 신앙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그토록 절대시하던 레위 지파의 제사장 제도는 사실 영원한 제사장 직분그림자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아론의 제사장 직분은 혈통과 인간의 조건에 묶여 있는 유한한 제도였지만, 멜기세덱의 직분은 그 모든 혈통적 계급을 초월하는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레위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실 진정한 제사장 직분의 복사본이자 안내 책자였습니다. 그러나 복사본에 갇혀 있으면 결코 원본이 주는 생명력을 누릴 수 없습니다. 멜기세덱은 그 원본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신성한 원형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복사본인 눈에 보이는 제도나 형식이 아니라, 원본이신 영원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2. 율법의 한계를 폐하시고 세워진 더 좋은 언약 (11~19)

히브리서 기자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와 그로 인한 변혁의 필연성을 논증합니다. 11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라고 했습니다. 만약 구약의 제사 제도가 인간의 죄 문제 온전하게해결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시편 110: 4을 통해 예수님을 가리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또 다른 예언을 주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의 레위계통의 제사장은 인간을 온전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 자신도 죄인이었고, 그들이 드리는 짐승의 피는 죄를 잠시 덮어둘 뿐 근본적으로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의 제사장직은 일시적이었습니다. 레위계통의 제사장은 먼저 자기 죄 때문에 날마다 희생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들의 제사장직은 육신에 속한 율법 규정에 따라 의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를 밝히고 정죄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구원의 능력이 없으므로 율법 아래서 활동하는 레위 제사장직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온전하고 영원한 교제를 가지도록 하기에는 불완전했습니다. 레위 가문의 제사장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 직위를 승계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을 대변하는 일은 계속 방해받게 됩니다. 레위 가문의 제사장직의 율법이 인간을 온전하게 만들지못하자 율법과 그것에 기초한 언약도 자동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따라서 폐지된 제사장직을 대신할 더 나은 제사장직이 시급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 즉 예수님을 죄인들의 영원하고 새로운 제사장으로 바꾸셨으며 따라서 제사와 제사장들을 통제하는 율법도 새롭게 변해야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3-19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적합성에 대해 몇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유대지파에서 나왔습니다(13-15).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왕의 지파인 유다 지파에서 나셨습니다. 율법의 조항대로라면 예수님은 지상 성전의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유다지파는 제사장 가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유다지파에서 나셨지만 사실 유다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어떤 인간적 계통에서 오지 않고 하나님께로 부터 직접 온 것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레위 제사장들처럼 날마다 자신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멜기세덱과 같은 다른 제사장이심이 틀림없습니다.

 

둘째, 본문 16절 처럼 예수님은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 즉 육신적인 조건에 제한된 레위지파 계통의 제사장직이 아니라 없어지지 않는 생명의 능력, 즉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그리스도의 신성에 따라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적이고 신적이고 영원한 능력을 따라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110:4절 말씀처럼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제사장이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세로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심으로써 18절 말씀처럼 이전의 율법과 계명들은 무익하기 때문에 폐지되고, 더 좋은 소망이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결국 19절은 이 거대한 복음의 전환점을 선언합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하나님과의 완벽한 관계 회복, 즉 아무런 장벽 없이 그분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율법과 제사는 백성들을 성소 휘장 밖에 서 있게 만들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불멸의 생명의 능력은 휘장을 찢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지성소 앞으로 인도합니다. 레위적 제사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씻음 받게 될 것이라는 언약에 대한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은 우리에게 완전한 구속을 보장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기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을 연결하는 오래되고 낡은 나무다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 다리는 무거운 트럭이 지나갈 수 없고, 비바람이 불면 흔들려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주민들은 늘 불안해하며 겨우겨우 걸어서 건너야 했습니다. 이 다리가 바로 율법이자 레위 제사장 제도입니다. 그것은 계곡을 건너야 한다는 필요성은 알려주지만, 완전하고 안전한 이동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마침내 정부에서 그 옆에 거대한 콘크리트 교량을 건설하고 최첨단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노선을 깔았습니다. 이제 안전하고 신속하게 계곡을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다리가 완공되었다면, 목숨을 걸고 옛 낡은 나무다리로 돌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라는 낡은 다리를 폐하시고, 자신의 몸을 찢어 만드신 더 좋은 소망의 대로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율법의 제도에 대한 두려움과 한계 속으로 퇴보해서는 안 됩니다.

 

3. 불멸의 생명으로 단번에 이루신 영원한 중보 (20~28)

마지막으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이 가진 영원성단번의 성취를 찬양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과 예수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맹세가 있느냐의 여부입니다(20~22). 레위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직분을 얻었지만, 예수님은 시편110:4절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자존심과 신실하심이 예수의 제사장 직분에 걸려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죽음이라는 한계의 극복입니다. 23에 보면, 구약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므로 그 수가 많았습니다. 아론이 죽으면 엘르아살이 이어받고, 그가 죽으면 또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않습니다(24). 타인에게 양도되거나 중단되지도 않는 직분입니다.

 

이 영원성이 자아내는 위대한 결론이 바로 25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렇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아침에 제사를 드려도 저녁에 백성이 다시 죄를 지으면 또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기에 지상의 제사장들과 다릅니다. 그분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 제사를 성취하셨습니다(27).

 

그리고 지금도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가며 끊임없이 중보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24시간 365, 우리가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을 통과할 때에도 하늘 보좌의 끊어지지 않는 영적 통신망을 통해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기도할 힘조차 잃어버렸을 때,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은 내 열심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멈추지 않는 중보기도입니다. 26절에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영육간의 모든 필요를 정확하게 충족시켜 주실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 꼭 알맞은 분이십니다.

 

마지막으로는 27-28절에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점에서 레위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하심을 증거했습니다. 이 제사는 궁극적이고 완전해서 되풀이 할 필요가 없이 만족스럽고 최종적인 제사를 드리신 영원한 제사였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7장은 복잡한 구약의 족보와 법적 논증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심장이 터질 듯한 복음의 영광을 선포하는 장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인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지만, 율법 후에 하신 하나님의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유대인들처럼 나를 대신해 줄 불완전한 인간 중보자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거대한 복음의 진리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두 가지 실천적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영적 은둔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많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구약적 율법주의에 갇혀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내가 이러고도 감히 기도를 할 수 있을까?”라며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론의 제사장 직분 아래 있던 이들의 행동 방식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단번에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여러분의 행위의 온전함이 아니라, 제사장의 온전함을 의지하여 매일 아침 골방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떳떳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둘째, 세상의 모든 변하는 가치에서 시선을 돌려 영원한 것에 삶을 투자하십시오.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의 제사장들을 숭배합니다. , 명예, 권력, 건강이라는 지상의 제사장들은 언젠가 죽음과 세월 앞에서 그 직무를 내려놓고 우리를 배신할 것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소유한 하나님 자녀답게 영원한 복음의 가치, 즉 교회를 세우고 이웃을 사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십시오.

 

이번 한 주간, 이 위대한 더 좋은 소망이 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당당하고 성결하게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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