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 설교본문 | 신1:1-46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6-28 |
20260628 주일오후설교
본문: 신1:1-46
제목: 하나님의 약속과 불신앙의 갈림길
I. 서론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흔히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과거는 단순히 흘러간 시간이 아닙니다. 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증명된 무대이자, 동시에 우리의 연약함이 폭로된 거울입니다. 신명기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불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살펴볼 신명기는 헬라어 70인역 명칭인 ‘제2의 율법'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율법을 두 번 반복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직접 보지 못했던 '광야 2세대'를 향해, 모세가 하나님의 언약과 역사를 재해석하여 선포한 '갱신의 말씀'입니다. 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1세대에게 주어졌던 시내산 언약인 십계명과 율법을 40년 광야생활 후에 그 1세대는 광야에서 다 멸망하고 율법을 듣지 못했던 출애굽 제2세대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다시 한번 그 율법을 다시 한번 반복하고 강조하여 설교형태로 재교육한 내용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이 책 제목은 히브리어로 “이것들은 말씀들이다”라고 했고, 헬라어 70인 역은 이를 번역하여 “제2의 율법”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은 한자로 “신명기”라고 표기했는데 “거듭 신, 명령할 명, 기록할 기라는 뜻으로 거듭된 명령, 즉 ”거듭 반복한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과거 역사를 회고하고 율법을 재해석함으로써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 1세대가 광야 40년 생활 중에 태어난 제2세대, 즉, 신세대에게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충성스러운 삶을 살도록 권면한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모세가 네 번에 걸쳐 한 설교를 통해 율법을 재교육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3개월 정도 걸려서 기록하고 생을 마쳤습니다.
오늘 본문 1장에서는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신세대들에게 40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났던 가나안을 정탐했던 12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의 정탐꾼 이야기를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극적인 실패를 회고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영적 진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 주소를 돌아보고, 약속의 땅을 취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기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I. 본론
1. 약속을 기업으로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1-21)
오늘 본문 1절에서 5절에서는 모세가 말씀을 선포한 시점과 장소와 설교를 듣는 대상을 명확히 밝힙니다. 본문 1절은 이 설교를 듣는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법으로 받아들이고 지킨 인류 역사상 유일한 민족이었습니다. 이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의 불신앙 사건 때 20세 이하의 새세대에 속한 자들이었는데 물론 2백만이 넘는 이스라엘 밸성을 다 모아놓고 설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에게 말했을 것이며 그들은 각자 속한 지파에 돌아가 모세의 말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설교가 행해진 때는 3,4절에 나옵니다. 애굽을 떠난지 40년이 되는 해 11월 1일이었고 이미 요단 동쪽에 있는 길르앗과 아셀 땅을 루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이후였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가 행해진 장소는 5절에 나옵니다. 요단강 건너편 모압땅이었는데 이곳은 아라바 즉 헤르몬 산에서 아카바만까지에 이르는 어느 광야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세의 마지막 설교를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 입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설교의 내용은 5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율법이었는데 여기에는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신명기는 율법을 제정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설명하고 해석한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 1년정도 지났을 때 하나님께서 호렙산 밑에서 진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입성에 대하여 본문 6절에서 하나님은 호렙 산을 떠나 행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호렙산 밑에서 11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건조했습니다. 1년 정도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배운대로 성막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속죄의 길을 배운 것입니다.
이제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라는 명령은 십계명을 받고 율법과 성막 제작을 완성했기 때문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는 축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먼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권자로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차지하라'는 말은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유산으로 물려받으라', '기업으로 얻으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나 자격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맺으신 신실한 '언약'에 기초하여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인구를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고(10절), 모세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번성케 하셨습니다. 조직을 정비하고 두령을 세워야 할 만큼 하나님은 신실하게 복을 부어주셨습니다(12-18절). 그래서 모세는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을 택하여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행정적인 일을 맡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판장들에게 공평하게 재판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는 모세에게 가져와 최정적인 판단을 받도록 행정과 사법조직을 정비했습니다. 이처럼 조직적인 체계를 갖춤으로써 일의 능률과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에 따라 체계적으로 질서있게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일은 모든 성도가 함께 짐을 지고 은사를 따라 순종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부흥케 하실 줄 믿습니다.
광야의 척박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신명기는 '역사적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뤄내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 바로 앞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모세가 외친 일성도 이것이었습니다. 21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미 주신 땅이니 믿음으로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아모리 족속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땅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곧 신속히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데도 신속히 하지 아니하면 대부분 순종이 좌절됩니다. 차자 하겠다고 하다고 못하고 맙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도 오늘부터 리딩 지저스 통독 일정대로 읽어야 하는데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결국 정해진 분량을 읽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루지 말고 깨달은 즉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깨달은 즉시 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Jimmy Carter)의 일화입니다. 그는 퇴임 후에 전 세계를 다니며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운동에 헌신했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이 왜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건축 현장에서 노년의 시간을 보내십니까?" 카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대통령의 직임은 유한하지만,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은 영원합니다. 나는 그 약속된 기업을 신뢰하기에 두려움 없이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붙잡았을 때 진정한 인생의 기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광야의 거친 바람이 아니라, 신실하게 역사해 오신 하나님의 언약이었습니다.
2. 인간의 계산주의와 불신앙을 경계하라 (1:22-33)
이스라엘은 지금 가데스 바네아에서 요단강만 건너면 그토록 염원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모압 평지에 서 있습니다. 출애굽 한 지 무려 4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런데 2절은 우리에게 매우 충격적이고도 아픈 사실을 고발합니다.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하루 길이었더라." 고 했습니다. 십계명을 받았던 호렙산 즉 시내산에서 단 11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던 160km 정도 떨어진 가나안 땅을 그들은 무려 38년 동안 헤매야 했습니다. 왜 11일의 거리가 38년의 유랑이 되었습니까? 무엇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까? 본문 2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제안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3장과 비교해 보면, 이 정탐은 겉보기에는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제안처럼 보였지만, 본질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한 '인간적 계산주의'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정탐꾼들은 그 땅의 과일을 가져와 땅이 좋다는 것은 인정했으면서도(25절), 이내 원망으로 돌아섰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고 했습니다. 성곽이 아무리 높아봐야 20m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늘에 닿았다고 했습니다. 꼭 이렇게 불순종할 때는 엄청나게 과장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낙자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아낙자손은 네피림 즉 거인을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사람같고 자기들은 메뚜기 같더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과장된 엉터리 말입니다. 12명 정탐꾼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왔는데 아무도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돌아왔습니다. 그것만 봐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분명한데 돌아와서는 이런 잘못된 보고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27절의 '원망'입니다. 이는 단순히 불평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은 27절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멸망의 음모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역하고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그 땅의 원주민은 강하고 자신들은 그들에 비해 메뚜기 같다는 불신앙적인 열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낙담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웅변합니다. 30절에는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 31절에는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신 하나님"으로 묘사합니다. 광야 길 내내 그들을 안아 나르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셨던 분(33절)이십니다.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걸었는데 신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옷이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니 덥지 않았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니 춥지 않았습니다.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눈앞의 거인 '아낙 자손'과 '하늘에 닿은 성벽'이라는 현실에 압도되어, 자신들을 품에 안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현실을 계산하느라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보지말고 문제 뒤에 있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계산하지 말고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거짓 확신과 불순종의 대가를 기억하라 (34-46)
하나님은 불신앙에 빠진 출애굽 1세대를 향해 진노하셨고, 오직 온전히 순종한 갈렙과 여호수아만을 제외하고는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35-38절). 심지어 지도자 모세조차도 백성들의 원망 섞인 거역으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37절). 이 엄중한 심판의 말씀을 듣고 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른 치명적인 죄를 범합니다. 41절에 그들은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경솔히 무기를 들었습니다. 이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들의 힘으로 만회해 보겠다는 '종교적 자해’이자 '거짓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42절)고 명확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리낌 없이 명령을 어기고 산지로 올라갔습니다(43절). 모세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다가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모리 족속이 벌 떼같이 나와 그들을 치고 호르마까지 쫓아냈습니다. 45절 말씀은 비극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순종은 '타이밍'과 '동기'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채 내 열정과 내 타이밍으로 행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반역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전쟁터는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가졌을지라도 패배할 수밖에 없는 무덤이 될 뿐입니다. 그들은 결국 가데스 바네아에 수많은 날 동안 머물러야 했습니다(46절). 전진이 멈춘 영적 정체의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확정된 하나님의 뜻은 순종하면 승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순종하지 않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승리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열매맺으시기 바랍니다.
19세기 나폴레옹 군대의 러시아 원정 사례입니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자신의 군사적 천재성과 막강한 군사력만을 믿고 교만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참모들이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과 청야 전술을 경고하며 "지금은 진격할 때가 아닙니다"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며 자신의 타이밍과 판단을 과신하고 진격을 감행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연법칙인 혹독한 추위와 대적들의 전략 앞에 무릎을 꿇고 60만 대군 중 대부분을 잃은 채 비참하게 퇴각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는 전진, 말씀이 떠난 확신은 이처럼 인생을 참패로 이끌 뿐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명기 1장이 보여주는 역사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 거울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11일이면 갈 거리를, 불신앙과 인간적 계산 때문에 수십 년째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의 비극은 아낙 자손이 강해서도, 성벽이 높아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광야 2세대에게 이 말씀을 전하는 모세의 심정은 절박합니다. "너희 부모 세대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 이제 요단강 앞에서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을 붙잡으라!" 고 호소합니다.
우리가 약속의 기업을 차지하고 영적 방황을 끝내기 위해 삶에서 실천해야 할 전략이 있습니다. 먼저, '원망'을 '기도'로 바꾸십시오. 이스라엘은 문제 앞에서 장막 뒤에 숨어 원망했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원망이 나오지만, 하나님을 묵상하면 찬양이 나옵니다. 이번 한 주간 내 입술에서 불평과 계산의 말이 나올 때마다, 나를 품에 안아 기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 기도로 바꾸어 선포하십시오. '앞서 가시는 하나님'보다 한 걸음 뒤에서 걸으십시오. 내 안의 조급함과 거짓 확신으로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 나가지 마십시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기 전에는 결정을 유보하십시오. 주님이 멈추라 하시면 멈추고, 주님이 가라 하시면 아낙 자손이 있어도 전진하는 영적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신앙의 전수자'가 되십시오. 신명기는 다음 세대를 향한 설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스펙과 계산법을 먼저 가르치기 전에, 내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신실한 구원의 체험을 들려주십시오. 부모의 믿음의 간증이 자녀들의 광야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우리를 품에 안고 인도하시는 신실한 아버지가 되십니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말씀을 붙잡읍시다. 광야의 끝에서 방황을 멈추고,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향해 담대히 걸어 나가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 109 | 하나님의 약속과 불신앙의 갈림길 | 신1:1-46 | 2026-06-28 | 홍기칠 목사 |
| 108 | 성막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 | 출40:1-38 | 2026-06-21 | 홍기칠 목사 |
| 107 |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더라 | 출39:1-43 | 2026-05-31 | 홍기칠 목사 |
| 106 | 성막의 외부구조 | 출38:1-31 | 2026-05-24 | 홍기칠 목사 |
| 105 |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를 짓는 사람들 | 출37:1-29 | 2026-05-17 | 홍기칠 목사 |
| 104 |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는 헌신 | 출36:1-38 | 2026-05-10 | 홍기칠 목사 |
| 103 |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들 | 출35:4-36 | 2026-05-03 | 홍기칠 목사 |
| 102 | 안식일을 지키라 | 출35:1-3(출20:8-11) | 2026-04-26 | 홍기칠목사 |
| 101 |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 출34:1-35 | 2026-04-19 | 홍기칠 목사 |
| 100 |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삶 | 출33:1-23 | 2026-04-12 | 홍기칠 목사 |
| 99 |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 출32:1-35 | 2026-03-29 | 홍기칠 목사 |
| 98 | 거룩한 부르심과 삶의 헌신 | 출28:1-29-29:46 | 2026-03-22 | 홍기칠 목사 |
| 97 | 성막기구들의 영적 의미 | 출25:10-31:11 | 2026-03-15 | 홍기칠 목사 |
| 96 | 성막을 지을 예물 | 출25:1-9 | 2026-03-08 | 홍기칠 목사 |
| 95 | 시내산 언약식 | 출24:1-18 | 2026-03-01 | 홍기칠목사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