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 설교본문 | 출33:1-23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4-12 |
주일오후설교 260412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삶)
본문: 출33:1-23
제목: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삶
I. 서론
출애굽기 33장은 금송아지 사건(출 32장) 이후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이 장은 단순한 심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만을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가?” 이 질문을 중심으로 세 가지 대지를 통해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임재 없는 축복은 참된 복이 아니다(출 33:1-6).
지지난 주에 보았던 출32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간 머무르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직접 가담한 3천명이 죽임을 당하는 일어 벌어졌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로 나머지 백성들은 겨우 화를 면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오늘 본문에서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보다 앞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고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그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은 주시되, 하나님은 함께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가나안 땅은 약속된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축복과 자신의 임재를 분리시키셨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 5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므로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장신구를 떼어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완고한 백성이므로 가는 도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거나 교제할 수 없으며 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짓는 것을 그대로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끝까지키시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회개시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4,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그들의 죄를 청산하고 회개하는 의미에서 그들이 지닌 우상의 흔적인 장신구를 제거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회개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면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애통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동일한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건강은 원하지만 하나님은 원하지 않거나, 성공은 원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소홀하거나, 문제 해결은 바라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관심 없는 상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적 욕망일 뿐입니다. 진정한 영성이 부족할수록 화려하게 꾸민 의례에 더욱 힘을 쓰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도 내적인 성령충만보다 외적인 화려한 건물과 장식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성도들도 외형적인 친교나 행사에 더 신경을 쓴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더 사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얼굴입니까?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결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하십시오.
2. 하나님의 임재는 중보기도를 통해 회복된다(출 33:7-17)
이제 장면이 바뀌어 모세의 회막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본문 7절에 모세는 성막건설에 대한 규례가 주어졌지만 여건상 아직 건설되지 못했기 때문에 진 밖에서 임시천막인 회막을 세우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것은 곧 순복과 믿음과 은혜의 행위였습니다. 모세가 진 밖으로 나간 것은 순복의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 거룩한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계속하여 회개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소유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이같은 여호와의 거룩한 판단에 복종하고 있으며 주님이 더 이상 계시지 않는 그 장소를 떠난 것입니다.
다음으로 모세가 진 밖으로 나가는 것은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진 밖에 회막을 친 것은 참 신앙의 실천을 말합니다. 이미 금송아지 존재로 인하여 더럽혀진 진영 가운데는 여호와께서 거하지 아니하실 것으로 느끼고 진영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바깥에 회막을 만든 것은 바로 모세의 믿음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진 바깥에 장막을 친 것은 은혜의 행위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신구를 떼어내라고 하셨습니다. 즉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로 인하여 자신들을 낮추고 임박한 진노의 소식에 대한 엄숙한 말씀을 두려워하여 그들은 단장품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이와같이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했습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성은 그가 더렵혀진 진영가운데로 들어가는 일을 막았지만 여호와의 은혜는 백성으로 하여금 진 바깥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9,10절에 “모세가 회막문에 들어갈 때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예배하며”라고 했습니다. 회막문에 구름기둥이 내려온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백성들도 그 광경을 보고 예배했다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은혜로운 임재만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며, 우리가아무런 공로없이 오직 은혜를 받았음을 의식할수록 우리에 예배는 더욱 간절해지게 됩니다.
이 회막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이스라엘을 용서해주시고 함께 동행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모세 혼자만 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과 함께 마음을 합하여 드린 기도였습니다. 이러한 합심기도의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시겠다는 은혜로운 약속을 받게 됩니다. 이때 기도한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 강림하셔서 모세와 말씀하셨습니다. 11절에 보니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놀라운 관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는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친밀한 인격적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보자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됩니다. 잠8:30절에 의하면 성육신하기 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습니다. 성육신 하신 후에도 요5:20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예수님은 사랑과 친밀의 자리가 되는 아버지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모세와 같이 친밀한 친구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입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담대히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간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단순히 자신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13절에 “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라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17:9절에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현재 여호와의 임재와 미래에 대한 안식을 보증하신 말씀입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안식은 죄와 수고와 슬픔으로 부터의 안식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15절에서도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매우 중요한 신앙 고백입니다.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라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모세는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을 알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중요한 구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 가운데 계신 것은 그의 백성이 아닌 다른 세상사람들로부터 그들을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으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시니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자 여호와께서 17절에서도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모세가 목숨을 걸고 간절히 기도한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마침내 완전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었고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마침내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성도들의 하나님이 되심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은 “내가 친히 가리라”고 하신 동일한 보증을 우리에게도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여정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는 기도를 통해 회복됩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관계적인 기도를 드리십시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특히 오늘날 교회는 모세와 같은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가정을 위해 울며 기도하는 사람, 교회를 위해 씨름하는 사람, 민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3.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는 자에게 나타난다(출 33:18-23)
모세는 18절에서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갈망입니다. 모세가 처음 광야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만 드러냈음에도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물어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으므로 담대히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약의 대표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시내산에서 언약이 맺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성막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약속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내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그의 거룩한 성품을 더럽히고 온전한 인격을 훼손하는 것이므로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볼 수 없지만 모세를 반석 틈에 두고 하나님께서 지나도록 그 손으로 모세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면 모세가 여호화 하나님의 등을 볼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로 주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십니다. 출34:6절을 보면 “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여호와란 이름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습니까? 더 깊은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더 깊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십시오. 신앙의 최고 목표는 성공이 아닙니다, 형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3장은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임재 없는 축복은 참된 복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중보기도를 통해 회복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영광을 갈망하는 자에게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가나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주시는 축복입니까? 하나님 자신의 임재와 동행입니까? 모세는 “주께서 함께 가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보다 하나님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요 은혜인줄 알고, 주님의 임재를 날마다 사모하는 삶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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