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우리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
2026-07-26 21:40:59
홍기칠
조회수   8
설교본문 신5:1-33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7-26

20260726 주일오후설교 (우리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

제목: 우리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

본문: 5:1-33

요절: 5:32-33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5장은 성경 전체에서도 매우 독특하면서도 핵심이 되는 장엄한 본문입니다. 신명기라는 책의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계명을 다시 거듭 명령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듯이, 본문은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거친 후 요단강 건너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신세대(광야 2세대)에게 다시 선포되는 장면입니다.

 

당시 모압 평지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애굽의 종살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을 직접 경험했던 1세대 조상들은 가데스 바네아의 불신앙으로 인해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이제 모압평지에 모여있는 제2세대는 출애굽 당시 아주 어렸거나 광야에서 태어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시내산(호렙산)에서 불 가운데 임재하시며 십계명을 주시던 그 위엄과 두려움의 순간에 성인이 아니었거나 현장에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120세나 되는 노종 모세는 목이 쉰 소리로 외칩니다. 본문 2절과 3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아멘. 이 말씀은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지나간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조상들의 유산으로 내려오는 역사적 관습도 아닙니다. 40년 전 시내산에서 맺었던 그 언약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바로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맺어지는 실재적이고 현재적인 언약이라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자주 신앙을 과거의 기억이나 부모의 신앙, 혹은 오랜 교회의 전통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내가 옛날에는 기도 많이 했지”, “우리 부모님이 헌신하셨지라는 생각에 안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의 유물에 머무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살아 계시며,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 각자와 대면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전체는 신명기 51절의 세 가지 핵심 동사,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라는 명령으로 집약됩니다. 그렇다면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거룩한 영적 전쟁터에 들어갈 성도들이 오늘, 여기에서갱신해야 할 언약적 삶은 무엇입니까? 본문을 통해 그 해답을 발견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언약의 전제는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이다 (1~15)

본문 6에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본격적인 10가지 조항을 주시기 전에 계명의 위대한 서문을 선포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율법의 '서문' 또는 '구원론적 전제'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은 율법과 구원의 순서를 결정짓는 대단히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너희가 계명을 100% 지키면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내 주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이 먼저였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자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의 강한 손과 뻗은 팔로 구원해 내신 후에 이제 구원받은 거룩한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5:7절에서 15절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과 신명기 5장의 십계명을 비교해 보면,특별히 4계명안식일 계명에서 매우 눈에 띄는 본질적 차이가 드러납니다. 20: 11절은 안식일 준수의 근거를 하나님의 창조에 둡니다,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반면, 오늘 본문 5: 15은 안식일의 근거를 출애굽의 구원과 안식에 둡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뻗은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안식일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라면, 신명기 5장의 안식일은 구원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쉼의 나눔입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살 때는 주일도, 안식도, 휴식도 없었습니다. 오직 잔혹한 노동과 착취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놓아주셨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았음을 감사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내 집의 남종과 여종, 나그네, 심지어 가축에게까지 동일한 쉼과 자유를 베푸는 사회적 공의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 죄의 사슬로 얽매기 위한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 자유를 누리고 보호받도록 주신 '사랑의 울타리'입니다. 오늘날의 안식일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이 강조되어 주일로 발전되었습니다.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노예 매매가 이루어지던 노예 장터의 이야기입니다.

한 잔인하고 악독해 보이는 노예 상인이 어린 흑인 소녀 하나를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소녀는 공포에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신사가 다가와 상당한 액수의 금화를 지불하고 그 소녀를 샀습니다. 소녀는 '이제 나도 악독한 주인을 만나 평생 매를 맞으며 굴종의 삶을 살겠구나' 생각하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신사를 따라갔습니다. 신사는 관공서로 가서 노예 증서를 끊은 뒤, 그 증서를 소녀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너를 종으로 부리기 위해 산 것이 아니다. 너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너를 샀단다. 이 문서가 너의 자유 문서이다. 이제 너는 네가 원하는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단다.”

 

소녀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신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종의 신분에서 사서 자유를 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사가 돌아서서 가려 할 때, 소녀는 신사의 옷자락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를 종의 신분에서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자유인이지만, 평생 주인님의 집에서 주인님을 섬기며 살고 싶습니다. 주인님이 시키시는 모든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는 종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분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하는 것은 자유인의 신앙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 자유인입니다. 안식일과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감사와 사랑의 응답입니다.

 

2. 언약의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 (16~27)

5:16-21절까지는 인간을 향한 5계명~10계명들이 나열된 후, 22절부터 27절까지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선포되던 당시 백성들이 느꼈던 공포와 그들이 모세에게 요청한 중재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구름과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계명을 말씀하실 때, 산은 불에 탔고 우뢰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본문 26-27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아멘. 죄성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때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거룩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모세에게 자신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중재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에게 공포한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의 두려움과 중재자 요청을 기뻐하셨다는 점입니다. 28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 즉 그 말이 옳도다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중보자로 세웠지만 모세 역시 온전한 중보다 역할을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언제나 그분과 동행하는 축복과 특권을 누리게 됨을 예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속사적 사건은 궁극적으로 모세보다 뛰어난 참된 중보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8:6, 12:24).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불꽃 같은 임재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없습니다. 모세는 불완전한 인간 중보자로서 백성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완벽하게 화목시키신 온전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딤전 2:5절에 하나님은 한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요, 시내산의 떨림과 두려움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언약 백성의 삶은 나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는 겸손의 삶이어야 합니다.

 

율법의 엄중한 공의 앞에 불타는 시내산의 진노를 면할 길 없던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친히 중보자가 되셔서 율법의 모든 정죄와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중보자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성도는 결코 계명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않으며,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여 거룩한 삶을 갈망하게 됩니다.

 

3. 언약의 목적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누리는 복과 형통 (28~3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과 율법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조종하고 억압하여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문 29절과 33절에서 그분의 진심을 명확하게 드러내십니다.

본문 29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아멘

또한 본문 33절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요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아멘. 여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백성들의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같은 마음을 품는 것”, 내면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온전히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여호와 경외의 마음입니다.

 

신학적으로 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단순한 물질적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언약 관계 안에서 누리는 전인적 평안과 형통, 생명의 풍성함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위험은, 가나안의 우상숭배적 가치관에 물드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신들은 인간의 정욕과 탐심을 자극하며, 풍요를 얻기 위해서라면 윤리와 도덕을 버려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계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방식, 정욕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죽음의 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의 테두리 안에 거하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길이며, 나와 내 자손이 영원히 잘되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오직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32)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순종의 삶은,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자 하나님이 약속하신 참된 형통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밤바다를 항해하던 대형 함대의 선장이 멀리서 정면으로 다가오는 불빛을 발견했습니다. 충돌 위험을 느낀 선장은 즉시 무전으로 명령했습니다. “충돌 코스다. 즉시 오른쪽으로 20도 항로를 변경하라!” 그러자 상대방에게서 무전이 왔습니다. “불가능하다. 귀함이 즉시 좌현으로 20도 항로를 변경하라.” 자신감 넘치는 함대의 선장은 화가 나서 다시 무전을 쳤습니다. “나는 이 함대의 해군 소장이다! 명령이다. 즉시 항로를 20도 바꿔라!” 그러자 상대방에게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3급 해군 병사입니다. 소장님, 불빛을 보십시오. 저는 등대입니다. 소장님이 항로를 바꾸지 않으시면 암초에 걸려 좌초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과 세상의 가치관은 끊임없이 진리를 바꾸라고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성경 말씀을 수정하라", "너의 탐욕과 타협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거룩한 등대'입니다. 바다의 배가 등대에 맞추어 항로를 수정해야 살듯이, 우리 인생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에 맞춰 삶의 방향을 조정해야 합니다 본문 32절에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자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명령하신대로 지켜 행하고 좌우로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명령하신 그 모든 길을 따라 걸어가면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잘 될 것이며 오랫동안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내 삶의 절대 기준으로 삼고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안전과 복을 보장해 주십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신명기 5장의 말씀은 수천 년 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신 먼 옛날의 유물이 아닙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를 향해 선포하시는 생명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십계명의 조항들을 머리로 알고 있는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가나안과 같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떤 실천 전략을 세워야 하겠습니까?

 

첫째, 신앙을 과거의 추억이나 습관적 종교 행위로 만들지 마십시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오늘 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언약"으로 말씀을 받으시기바랍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펼치고 "하나님, 오늘 나에게 주시는 언약의 말씀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경건의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과거의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 새롭게 하나님을 대면하십시오.

 

둘째, 신명기 5장의 안식일 정신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타인을 향한 베풂에 있습니다. 주일을 세상의 세속적 욕망과 경쟁을 내려놓는 거룩한 구별의 날로 지키십시오. 나아가 내 주변의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정당한 안식과 인격을 존중해 주는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선포하는 안식일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말씀 중심의 삶을 사십시오. 가정과 직장, 에서 세상의 정직하지 못한 관행이나 탐욕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물질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정직의 기준을 선택하십시오. 세속적 타협이 주는 즉각적인 이익보다, 여호와를 경외할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형통과 복(33)을 믿고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언약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도를 행합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삶의 생명과 복, 그리고 우리와 우리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영원한 형통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 위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 위대한 언약의 축복이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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