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히12:1-29 |
|---|---|
| 설교자 | 홍기칠 |
| 설교일 | 2026-08-16 |
20260816 주일오전설교 (믿음의 경주)
제목: 믿음의 경주
본문: 히12:1-29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마치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출발선에 섰을 때는 의욕과 열정이 넘치지만, 달리는 과정 속에서 예기치 못한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나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며, 때로는 다리에 쥐가 나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순간을 맞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은혜받고자 하는 히브리서 12장은 바로 이러한 인생의 경주장 위에서 지치고 피곤해하는 성도들을 향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뜨거운 응원이자 격려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 1세기 성도들은 극심한 신앙의 박해와 사회적 고립, 그리고 경제적 시련 속에서 영적 침체와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버리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강력하게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11장은 구약성도들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12장은 장차 다가 올 천국소망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거센 파도와 삶의 고단함, 뜻대로 되지 않는 가정과 일터의 문제, 그리고 여전히 반복되는 영적 결핍 앞에서 "내가 정말 믿음의 길을 끝까지 잘 달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영적 피로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히브리서 12장을 통해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 이미 승리한 수많은 증인들이 관중석에서 너희를 응원하고 있다.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목표점을 향해 끝까지 달려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과 소망의 경주를 완주하는 세가지 원리에 관한 말씀으로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세 가지 원리
1. 시선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하십시오 (1~3)
본문 1,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할렐루야!
1절에 ‘이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에서 믿음의 선조들이 믿음의 경주를 잘 했으므로 본서의 수신자들도 똑같이 경주를 잘 해서 동일한 영광을 누리자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의 믿는 자들이 마치 구름처럼 많은 증인들이 되어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충성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언하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 최선을 다해 경주할 것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거운 것'과 '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무거운 점퍼나 두꺼운 신발을 신고 달릴 수 없듯이, 우리 역시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세상의 근심, 과도한 탐욕, 불신앙의 염려, 그리고 반복해서 나를 넘어뜨리고 얽어 매는 죄의 습관들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경주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경주일 뿐만 아니라 끝까지 달려가기만 하면 누구나 영생의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경주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달리느냐 늦게 달리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참을성 있게 인내하며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인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선의 방향'입니다. 경주하는 선수가 발밑이나 주변의 관중, 혹은 옆에서 달리는 경쟁자만 쳐다보면 제 페이스를 잃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오직 결승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결승선은 누구입니까? 바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주'라는 단어는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는 단어는 우리 믿음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게 인도하시고 완성하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 믿음의 알파와 오메가 즉, 시작과 끝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자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그를 끝까지 바라보며 달려야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경주의 모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셔서 사람들 사이에 사시면서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견뎌내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그 유일한 목적은 타락한 온 인류가 구원을 얻은 것인데 십자가에서 이 목적을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사역을 성취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본래 영광스런 하나님의 지위를 회복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시련을 만날 때, 내 환경이나 자신의 약함을 바라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성도들에게 절망과 낙심을 하도록 유혹함으로써 경기를 포기하게 만들려고 하지만 모든 고난과 수치를 참아내시고 승리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피곤하여 지친 내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수영 역사상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인 네덜란드의 판덴호헨 반트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습니다. 그의 경기 영상을 분석한 스포츠 과학자들은 그가 경기 중에 단 한 번도 옆 라인의 선수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주변 선수들의 속도나 움직임을 의식하다 보면 자신만의 호흡과 페이스가 깨지고, 미세하게 저항이 생겨 속도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직 전방의 터치 패드만을 바라보며 헤엄쳤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그들의 삶을 두리번거리거나, 내 주변의 장애물만 쳐다보면 신앙의 페이스를 잃어버립니다. 우리를 위해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할 때,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인내력과 능력이 공급됩니다.
2.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징계를 기쁨으로 받으십시오 (4~13)
본문 4절부터 13절까지는 '징계'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본문 5, 6절에는 잠3:11,12절을 인용하여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 때 고난이나 시련을 만나면 흔히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왜 나에게 이런 비극이 찾아오지?"라며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난과 징계에 대해 전혀 다른 영적 시각을 제시합니다.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진짜 자녀'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부모는 길거리에 다니는 남의 집 아이가 버릇없이 행동해도 일일이 간섭하거나 징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사랑하는 친자식일 때는 바른길로 가도록 타이르고, 때로는 매를 들어서라도 바로잡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 삶에 고난이라는 '징계'를 허용하시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5-10절에서 하나님께서 징계하고 꾸지람하실 때에 낙심하지 말고 참고 거룩한 성품을 소유하도록 하시려는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회초리를 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당하는 징계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입니다. 잘못하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그는 친아들이 아니고 사생아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는 아들이 세상에서 훌륭한 시민으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잠시 동안 징계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자녀들이 천국의 훌륭한 시민으로 영원히 살수 있는 성품을 갖도록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순물과 죄성을 깎아내고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둘째, 본문 11절을 보면 징계를 통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징계의 순서는 고통, 연단, 열매로 되어 있습니다. 목적을 알지 못할 때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연단은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며 그 결과로 평화가 가득한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징계 당시에는 고통스럽지만, 훈련을 마친 후에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영적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 본문 12,13절을 보면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기 위함입니다. 영적 근육을 강화하여 더욱 바른길을 걷게 만듭니다.
본문 12절은 사35:3절을 인용한 것으로 피곤한 손이란 힘이 빠져 아무 일도 못하는 불구가 된 손을 말합니다. 연약한 무릎이란 마비가 되어 더 이상 일어서거나 걷지도 못하는 무릎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적 만성질환인 낙심은 믿음과 용기와 힘을 빼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여 결국 승리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힘은 기도에서 나오는데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죄와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길 힘이 없게 됩니다. 고난으로 인해 피곤해지고 죄악의 세력에 대항하다가 좌절에 빠져 만신창이가 되고 절뚝거리는 성도들에게 담대히 일어설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환난을 당하나 낙심하지 않고 용기있게 바른 길로 걸어간다면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줌으로 그들도 고침받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찾아올 때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를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조각해 가시는 아버지를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세계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대리석 원석을 가져다가 끊임없이 망치와 정으로 깨부수고 깎아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왜 그렇게 돌을 무자비하게 때립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돌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이 돌 속에 갇혀 있는 아름다운 천사의 형상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때로 정과 망치 같은 시련으로 우리 삶을 치시는 것은 우리를 부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세상의 불순물을 털어내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을 완성해 가시는 사랑의 손길인 것입니다. 징계 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발견하시길 축복합니다.
3.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소유하십시오 (14~29).
본문 14-17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지 말고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4절은 아무리 징계와 환난을 참고 견딘다고 해도 불화와 분쟁을 일삼고 부정한 자는 거룩하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려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막힌 담을 헐고 보혈의 피로 거룩하게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15-17절에서는 믿음이 약한 성도가 처하게 될 위험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은혜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쓴 뿌리를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죄의 쓰고 독한 뿌리가 다시 싹터서 믿음의 형제들을 이 독으로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세적인 것을 추구하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장자의 복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내던져 버린 에서처럼 되면 다시 축복을 받으려고 회개의 눈물을 흘려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문 18-29절은 새언약의 복음을 거역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시내산과 신약의 시온산을 대조하며 성도가 소유한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설명합니다. 시내산은 구약의 율법을 상징하는 것으로 불이 붙는 산, 어두움과 폭풍, 나팔 소리가 울리고, 접근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두려움과 공포의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낸 모세조차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요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 무서워 두렵고 떨린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시온산은 신약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요, 수많은 천사와 성도들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은혜와 축복의 산입니다.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은 수많은 천사들과 함께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축제의 잔치를 벌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제 더 이상 율법의 정죄와 두려움 아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거룩한 자녀들입니다.
본문 27, 28절에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을 보존하기 위하여 흔들릴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했습니다. ‘또 한번’이라는 말은 천지창조와 맞먹는 마지막 심판의 날을 의미하는데 불신자들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을 주지만 성도들에게는 한없는 위로를 줍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란 말씀은 예수 재림시에 실현될 새하늘과 새땅을 의미하며 그때에는 하늘에 있는 교회와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은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며 하나님 음성 듣기를 거부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엄격한 공의의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불의를 멀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금의 천지만물은 인류의 타락과 죄악으로 오염되었으므로 주님 재림시에 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 세상의 돈, 명예, 건강, 권력, 심지어 지구와 우주까지도 언젠가는 흔들리고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면 새하늘과 새땅이 실현되어 모든 소망이 성취되고 모든 영광이 빛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맺습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날마다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십시오.
인생의 마라톤을 달릴 때 피곤함이 밀려오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지 마십시오. 세상의 소문, 타인의 평가, 나의 연약함에 시선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활하셔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매일 아침 말씀과 기도 자리에서 예수님을 깊이 바라볼 때, 하늘로부터 새로운 힘과 인내가 공급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고난의 의미를 믿음으로 재해석하십시오.
지금 혹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시련이나 영적 징계의 통로를 지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진짜 자녀로 대우하시며, 나를 순결하고 거룩하게 다듬어 가시는 '사랑의 훈련 과정'임을 믿으십시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워 담대히 고난을 통과하십시오. 훈련 뒤에는 반드시 '의와 평강의 찬란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경건하게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통장 잔고 하나에도, 건강 검진 결과 하나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유한 하나님 나라는 그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나라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약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상의 헛된 가치관에 흔들리지 마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과 거룩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믿음의 경주를 마치는 그날, 우리 주님께서 따뜻한 손으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안아주실 그 영광스러운 날을 소망합시다. 주저앉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 마침내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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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 믿음으로 누리는 참된 안식 | 히4:1-16 | 2026-06-21 | 홍기칠 목사 |
| 117 |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 | 히3:1-19 | 2026-06-14 | 홍기칠 목사 |
| 116 |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라 | 히2:1-8 | 2026-05-31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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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 주님 안에 있는 행복한 가정 | 엡5:22-6:4 | 2026-05-10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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