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라
2026-05-31 19:19:19
홍기칠
조회수   6
설교본문 히2:1-8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5-31

20260531 주일오전설교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라)

본문: 2: 1-18

제목: 예수그리스도께 닻을 내리라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변하고, 또 수많은 가치관이 뒤섞인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그렇게 유별나게 믿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지혜다."라고 유혹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거센 파도 앞에서, 우리 신앙의 중심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밀려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바로 우리와 똑같은 영적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사회적 소외, 재산 압수, 그리고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상황이 힘들어지자, 그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옛날로 돌아갈까? 눈에 보이는 율법과 천사 숭배, 안전했던 유대교의 전통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찾아왔습니다. 뜨거웠던 첫사랑은 식어 가고, 신앙은 서서히 침체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1장에서는 천사보다 예수님이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2장에서는 이 영적 침체와 흔들림의 원인을 아주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선 예배와 순종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후반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흘러 떠내려간다'는 말은 배가 항구에 닻을 단단히 내리지 못해서, 거센 조류와 바람에 밀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 나가 버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격렬하게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나태해졌는데, 정신 차려 보니 믿음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이 영적 표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라고 다시 한번 선포합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때 우리 영혼의 닻을 오직 예수께 고정하고, 다시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본론

1. 들은 복음을 유념하고 구원의 가치를 기억하라 (1~4)

첫째로, 우리가 영적으로 표류하지 않으려면 이미 들은 복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 구원의 엄중한 가치를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2절과 3절을 보면 저자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을 비교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중보자인 천사를 통해 전달된 율법을 어겼을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한 보응과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물며, 천사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선포하시고, 성령의 표적과 기사로 확증해 주신 '큰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긴다면 어떻게 그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3절에 '등한히 여기다'라는 말은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방치해 둔다는 뜻입니다. 우리 집 안방에 수십억 원짜리 보물이 있는데, 그것을 한낱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먼지 쌓이게 내버려 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많은 성도가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구원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구원의 가치를 너무 가볍게, 당연하게 여기며 방치해두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해 들은 것을 더욱 명심하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죽은 물고기는 강물따라 흘러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만약 천사들을 통해 주신 율법의 작은 구원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마땅한 처벌을 받았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고 완전하게 계시된 이 큰 구원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그 처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강조합니다. 이 큰 구원이란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셨고. 직접적인 증인들인 열두 제자와 목격자들에 의해 표적과 기사와 성령의 능력으로 확증한 것이고, 하나님 자신까지 직접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큰 구원을 소홀히 하는 자들은 결코 그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고전 문학가이자 목회자였던 한 인물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그가 템즈강 변을 걷다가 배 한 척이 강가에 묶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공이 매듭을 대충 묶어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강물의 잔잔한 물결이 끊임없이 배를 툭툭 건드렸습니다. 거친 폭풍우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미세하고 부드러운 물결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그 배는 나루터에서 완전히 벗어나 강 한가운데의 거센 조류에 휘말려 바다 쪽으로 빠르게 흘러가 버렸습니다. 사공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를 붙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모습을 보며 큰 영적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단번에 타락시키지 않는다. 매일 찾아오는 조그만 세상의 염려, 게으름, '이 정도쯤이야' 하는 타협의 물결로 우리 영혼의 매듭을 조금씩 풀 뿐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은혜의 항구에서 멀어져 영적 조난을 당하게 된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영혼의 매듭은 지금 안전합니까? 주일 예배 한 번 빠지는 것, 기도 생활 조금 쉬는 것, 말씀 한 장 안 읽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보면, 우리 영혼은 어느새 세상 한복판으로 흘러 떠내려가게 됩니다. 들은 복음의 말씀을 심장에 새기고, 날마다 구원의 감격을 새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2. 낮아지심으로 영광을 얻으신 예수를 바라보라 (5~9)

둘째로, 우리가 영적 낙심을 이기려면 우리를 위해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셨으나, 결국 부활로 승리하셔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 5절부터 8절은 시편 8:4-6절을 인용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더 뛰어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에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지만, 그 후에 인간에게 우주의 자연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부여하시고 창조주의 통제를 받아 지정된 영역 안에서 이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주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영역과 권리의 한계를 벗어나 창조주의 권리를 침해하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결국 인간은 죄로 인해 그 통치권을 상실했고, 오히려 만물과 환경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8절 끝을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의 현실은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스럽고, 실패와 좌절이 가득합니다.

 

바로 그때, 영적 침체에 빠진 우리 눈에 들어와야 할 단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라고 했습니다. 현실은 사방이 막혀 있고 만물이 다 복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의 눈을 들어 보니 이미 승리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영광의 관을 쓰고 계신 '예수'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셔서 잠시 동안 천사보다 조금 낮춘 인간이 되셨지만 죄와 죽음을 정복한 승리자로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시고 하나님 우편 왕위에 오르셨으며 모든 피조물을 그 발 아래 두고 다스시리는 주권을 회복함으로 모든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그것을 보지 못한 이유는 아직 그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직도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이땅의 지배자처럼 행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다시 천국소망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천사보다 못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까? 9절 하반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분이 낮아지신 것은 실패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철저한 하나님의 신비요 사랑이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죄를 처벌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길이요 십자가의 도입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 시절,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어머니가 전쟁터에 나간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외아들이었습니다. 삶의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이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골방에 박혀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내 인생은 끝났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는다"라며 깊은 영적 침체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신실한 한 친구가 그녀를 찾아와 방의 어두운 커튼을 걷어 제치며 마당에 있는 커다란 참나무를 가리켰습니다. 작년 가을에 심한 태풍으로 기둥이 꺾이고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해진, 죽은 것만 같은 나무였습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친구야, 저 나무를 봐. 겉보기엔 완전히 꺾여서 죽은 것 같지? 하지만 보이지 않는 뿌리는 지금 대지의 영양분을 빨아올리며 봄을 준비하고 있네. 조금만 기다려 보게."

그리고 몇 주 뒤, 정말 그 꺾인 나무 기둥 사이에서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새순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 내 인생의 고난이 끝이 아니구나. 십자가에서 온전히 꺾이셨던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듯이, 내 삶의 고난 뒤에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계획이 있구나!' 그녀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낙심하고 계십니까? "왜 내 삶에는 진보가 없고 여전히 고통 뿐일까" 하며 눈물 흘리고 계십니까? 고난의 터널을 지나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그 주님이 지금 여러분의 삶을 쥐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낮아짐이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졌듯, 여러분의 고난도 반드시 찬란한 영광으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3.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대제사장을 의지하라 (10~18)

셋째로, 우리가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려면 우리의 연약함을 온전히 체휼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 예수를 의지해야 합니다.

본문 11은 가슴 벅찬 선언을 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죄로 물들고 냄새나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 "너는 내 형제다, 너는 내 자매다"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성도들은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서로 형제관계가 되었습니다. 본문 12-13절은 시편22:22, 8:17, 8:18절을 인용한 것인데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 한 형제가 된 밀접한 가족관계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4절과 15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혈과 육을 지니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 죄책감에 묶여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친히 죽음을 통과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 가득한 자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녀들이 그 부모와 살과 피를 나눈 것 같이 성도들과 함께 살과 피를 나누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과 같이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인간의 죄값으로 지불 하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죽음의 두려움 가운데 있는 죄인들을 완전하게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죄의 삯인 죽음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18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를 줍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성소 안에서 고고하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땅에 오셔서 배고픔을 겪으셨고, 배신을 당하셨으며, 육체의 극한 고통과 영혼의 아픔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파할 때 "내가 네 마음 다 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능히 도우실 수 있는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지만 대제사장이 속죄하면 백성은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자신은 죄가 없으시므로 화목제물이 되어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백성 대신 하나님 앞에 나간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백성의 죄를 속하신 것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이 겪는 모든 고난과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같은 시험을 받는 인간들을 능히 도와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까?

 

1차 세계대전 당시, 격렬한 참호전이 벌어지던 프랑스의 한 전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젊은 병사가 적군의 포탄이 쏟아지는 최전방 참호 속에서 공포에 질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동료들은 이미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어둠과 소음 속에서 그는 극심한 고독감과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때 누군가 기어 와서 그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어깨 계급장을 보니 놀랍게도 그 부대의 최고 지휘관인 장군이었습니다. 장군은 공포에 질린 젊은 병사의 손을 꼭 잡아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아들아. 나도 지금 무섭단다. 이 포탄 소리, 이 흙먼지, 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단다. 하지만 기억해라. 너 혼자가 아니다. 내가 지금 너와 함께 이 참호 속에 같이 있고, 우리는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장군이 자신의 안전한 사령부를 버리고 흙먼지 구덩이인 참호 속으로 들어와 손을 잡아준 순간, 병사의 마음을 집어삼켰던 모든 공포와 두려움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장군이 나와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승리할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저 하늘 보좌 위에서 "너희들 힘들지? 힘내라" 하고 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비참한 인생 참호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도 배신당해 보았고, 나도 채찍에 맞아 보았으며, 나도 십자가에서 외로워 보았다. 내가 네 아픔을 안다. 그러니 내 손을 잡아라." 이 주님의 손을 잡을 때, 우리는 어떤 시험과 유혹도 능히 이겨내게 될 줄 믿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히브리서 2장 말씀을 통해, 왜 우리가 세상 풍조에 밀려 표류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인생을 온전히 걸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번 한 주간 삶의 자리에서 실천할 세 가지 영적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매일 아침 '은혜의 매듭'을 단단히 묶으십시오.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날마다 닻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5분이라도 좋으니 휴대폰을 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선포하십시오. "하나님, 오늘도 나를 구원하신 그 큰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내 영혼이 세상 유혹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 말씀으로 나를 붙잡아 주옵소서." 아침의 짧은 기도와 말씀 묵상이 여러분의 인생 마차가 엇나가지 않도록 영적인 제동 장치가 되어 줄 것입니다.

 

둘째, 문제가 보일 때, 눈을 들어 '이미 승리하신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5~9절 적용) 이번 주간에도 우리의 가정을 흔들고, 일터에서 낙심하게 만드는 수많은 만물의 문제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물질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이 밀려올 때, 그 환경만 바라보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현실 너머에서 이미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시고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내 삶의 주인은 이 환경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이 믿음의 선포가 낙심의 자리를 찬송의 자리로 바꿀 것입니다.

 

셋째, 힘겹고 외로울 때, '참호 속의 대제사장' 주님께 솔직하게 부르짖으십시오.

혼자서 앓지 마십시오. 유혹이 찾아올 때, 죄책감이 밀려올 때, 고독이 엄습할 때, 우리의 연약함을 온전히 체휼하시고 도우시는 대제사장 예수님 앞에 나아와 모든 것을 쏟아 놓으십시오. "주님, 저 지금 너무 힘듭니다. 유혹에 넘어질 것 같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 즉시 자비로운 손길로 여러분을 붙잡아 건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치고 거센 풍파가 몰아쳐도, 우리에게는 구원의 창조자이시며 신실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번 한 주간, 표류하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반석 위에 깊이 닻을 내리고, 세상 속에서 당당히 승리하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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