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성도의 참된 삶의 자세
2026-10-04 21:49:38
홍기칠
조회수   12
설교본문 마6:1-34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10-04

20261004 주일오전설교

제목: 성도의 참된 삶의 자세

본문: 마6:1-34

 

I. 서론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산상수훈의 가장 깊은 정수인 마태복음 6장 전체를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세상입니다. 소셜 미디어(SNS)에 자기의 일상을 사진으로 올리고, 다른 사람의 '좋아요'와 인정에 목말라합니다. 내가 얼마나 멋진 삶을 사는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내 가치가 결정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누구를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사람의 인정을 구하느냐, 아니면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의 시선을 바라보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은 크게 두 가지 신앙적 위험을 경계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종교적 외식'과, 세상에서 살아가며 물질과 생존에 매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세속적 염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오류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진짜 '나의 아버지'로 모시는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는 ” 성도의 참된 삶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서라 (1~18)

본문의 첫 번째 대지는 종교적 의에 관한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경건함의 척도로 삼았던 세 가지 핵심 종교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제, 기도, 금식“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 가지를 하나씩 짚으시며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비판하셨습니다. '외식'에 해당하는 원어는 본래 '연극 배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 올라가 다른 사람의 역할을 연기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나팔을 불며 구제했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 어귀에 서서 중언부언 기도했으며, 금식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슬픈 표정으로 지으며 얼굴을 흉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교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찬사와 인정'이라는 박수갈채였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의 박수를 구한 자는 사람의 박수로 끝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상급도, 인격적인 교제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의 경건생활 중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구제, 기도, 금식에 관해 유대인들의 외식적 행위를 비판하면서 경건의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그 경건의 참된 원리로 "은밀함"을 제시하셨습니다. 즉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 구제와 기도와 금식할 때를 들어 교훈하셨습니다.

 

먼저 3절에서 ”구제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네 것이 아닌 것처럼 의식하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 구제할 때 사람들에게 떠벌리면 구제 받는 사람이 매우 불편해 할 수 있으므로 구제받는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잘 살펴보아야 하고,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정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는 것처럼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때에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반드시 그 선행을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전11:2절에 보면 ”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바로 구제하는 마음 자세를 일러 준 것입니다. 마치 빵을 물 위에 던지는 것처럼 아무 댓가를 바라지 않고 미련없이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구제를 통해 은혜받는 사람, 주님을 발견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그런 방향으로 구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6절에 ”기도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고 했습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을 끊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하나님과 자신의 개인적인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은밀하게 하되 무의미하게 중언부언 하지말라고 했습니다. 중언부언이란 주문 외우듯이 아무 뜻 없이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들으실 줄 믿으면서 간절히 여러번 중복기도를 하는 것은 중언부언이 아닙니다. 기도도 하나님 앞에서 바로 해야 기도가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 자체가 위선인 것입니다. 흔히 예배시간에 대표기도할 때 자칫하면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기도를 하거나,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 사람을 의식하면서 하거나, 기도를 설교하듯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표기도는 미리 많이 기도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본문 9-13절에 나타난 ”주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주기도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따로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주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 ”금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금식할 때 자신의 의로움이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슬픈 표정을 하고 얼굴을 흉한체로 하는 지극히 외식적인 경향으로 빠졌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보일 것은 오직 신뢰와 진실 뿐입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는 말은 무슨 특별한 화장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평소와 다름없이 몸을 단정히 하고 금식기도를 하라는 말입니다. 금식은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강제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기를 죽이고 순종하겠다는 목적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바르게 행하면 우리에게 큰 유익을 주게 됩니다.

 

여기서 '은밀함'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우리의 숨겨진 동기를 가리킵니다. 경건의 본질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누구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외형적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과 동기를 보십니다.

 

우리가 9-13절의 주기도문을 통해 배우듯이 기도의 우선순위는 '내 뜻과 내 이름이높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와 봉사, 헌신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십니까?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아버지만으로 만족하는 참된 경건의 자리로 돌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마음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19~24)

두 번째 대지는 물질과 가치관에 관한 것이고 헌금의 자세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19절과 20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고 했습니다. 여기 보물이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물질, 재능, 지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올려놓으신 후, 이제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물질관을 통해 진단하십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재물은 주로 귀한 의복과 곡식, 그리고 금은보화였습니다. 하지만 옷은 '좀(Moth)'이 먹고, 곡식과 금속은 '녹(동록, Rust/Ruin)'이 슬며, 보화는 '도둑'이 구멍을 뚫고 훔쳐갑니다. 땅의 보물은 본질적으로 변하고 불완전하며 부패하기 쉬운 것입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은 핵심을 찌르십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돈과 재물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무엇을 얻기 위해 내 물질을 투자하고 있는지를 보면 내 영혼의 상태와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정확히 드러납니다. 돈은 무서운 마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을 임의대로 노예로 삼아 그 마음을 땅에 두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곧 그의 신이요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딤전 6:10절에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22-23절에 계속해서 눈에 관한 비유를 드십니다. 성경에서 '성한 눈(Single eye)'은 하나님을 향해 단순하고 온전하게 집중된 마음, 즉 나눔과 헌신에 대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나쁜 눈(Evil eye)'은 탐욕스럽고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바라보려는 분열된 마음을 뜻합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면 온 몸이 전부 어두워지는 것처럼 영적 눈이 어두워지면 물질에 온통 정신이 팔려 캄캄한 영적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24절에서 예수님은 타협할 수 없는 선언을 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재물'에 해당하는 단어는 즉 '맘몬(Mammon)' 즉, 돈, 재물의 신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단순히 중립적인 교환 수단으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자리를 위협하고 인간의 경배를 받으려 하는 우상적 권력으로 의인화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맘몬은 절반씩 나누어 섬길 수 없습니다. 맘몬을 신뢰하는 사람은 재물이 나의 구원자이자 방패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반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은 내게 주어진 모든 재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 사랑을 위해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보물은 지금 어디에 쌓이고 있습니까? 땅의 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썩어 없어집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하늘 창고에 여러분의 재물과 마음을 드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염려를 버리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25~34)

세 번째 대지는 삶의 염려와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에 관한 것입니다. 25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종교적 '외식'을 경계하신 후, 이제 신앙인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실존적 함정인 '염려'를 다루십니다. 염려란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갈라지고 찢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신뢰하지 못할 때, 우리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사분오열 갈라집니다.

 

예수님은 염려에 빠진 우리에게 자연 만물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귀하지 아니하냐? 라고 했습니다. 28-30절에도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라고 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는 먹는 문제, 들의 백합꽃은 옷입는 문제와 관련됩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염려의 근본 원인은 30절에 "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염려는 단순한 심리적 불안이 아닙니다. 염려는 "하나님이 나의 신실하신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불신하는 죄"입니다. 32절에 보면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는 이방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을 책임져야 하기에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도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일이나 수고를 전혀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공중에 새도 스스로 먹이를 찾아 공중을 날아다녀야 하고, 들의 백합화도 양분을 얻기 위해 뿌리를 땅에 깊이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은 산상수훈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위대한 결론이자 대명령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할렐루야! 여기서 '먼저(First)'는 라는 말은 단순히 순서상의 우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가치관과 존재 목적의 근본적인 전환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이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내 생존과 욕망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갈 때 염려가 찾아오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을 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둘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먹고 사는 모든 필요한 것들을 '더하여' 채워주시는 창조주의 신실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는 부귀영화가, 신앙을 구한 청교도들은 자손만대의 축복이 덤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사는 성도들에게 후히 누르고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본문 34절에는 결론적으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일이란 단어는 부사가 아니라 인격화된 주어이므로 직역하면 “ 내일은 내일 스스로가 염려해 줄 것이기 때문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일은 내일만이 아니라 무한정한 미래적 개념까지 포함합니다. 여기서 괴로움은 생활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말하는데 범죄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 괴로움도 그날에 족할 따름이며 내일의 괴로움까지 미리 염려함으로서 무거운 짐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5만번 기도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염려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요, 참된 믿음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내가 내 사정을 염려하면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지만,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염려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사정을 책임져 주신다." 고 적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괴롭히는 인생의 염려는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간, 내 삶의 핸들을 하늘 아버지께 내어드리기를 바랍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6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 신앙의 중심을 점검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세 가지 커다란 신앙의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즉,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살아라/ 이 땅의 썩어질 보물이 아닌 영원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으라/ 내 삶의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최우선으로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배당 문을 나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이 말씀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세 가지 삶의 적용 전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하루 10분 '골방 기도와 은밀한 선행'을 실천하십시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신앙생활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 10분을 떼어 나만의 '골방기도'를 시작하십시오.

 

둘째, 물질 사용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십시오.

나의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습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아무도 모르게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작은 사랑과 구제를 실천해 보십시오. 그리고 매월 내 소득의 일정 부분을 구제와 선교, 이웃 사랑을 위해 먼저 떼어놓는 '하늘 보물 통장'을 만드십시오. 물질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릴 때 자유함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보시고 여러분의 영혼에 한없는 기쁨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금을 드릴 때도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 내 모든 재물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으로 드리십시오.

 

마지막으로, 염려가 밀려올 때 '마6: 33절 스위치'를 올리십시오.

내일부터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염려가 시작되거든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암송하며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감사의 기도로 바꾸십시오.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늘 아버지가 바로 '나의 아버지'이심을 선포하시고 성도의 참된 자세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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