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엡5:18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3-11 |
20260311 수요설교 성령충만을 받으라
본문: 엡5:18
제목: 성령충만을 받으라
1. 서론
지난 주일오전예배에서 성령님은 누구신가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령님은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분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새생명과 능력을 주시고, 정결케하며, 말씀으로 계시하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셔서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보호하시고, 상담하시고, 변호하시고, 불의에서 건지시고, 치료하시고, 중보하시고, 사탄을 물리치시고, 복음을 증거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마디로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자요, 보호자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이유와 방법을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왜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까?
1) 성령충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며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은 인간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주권적 은혜입니다. 모든 성도는 처음 믿을 때, 성령으로 계속 충만할 수 있는 영광스런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한편, 이 성령충만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성도의 절대의무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지 말고 순종할 책임이 있습니다(엡4:30). 오늘 본문 엡 5:18절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엡 4:30절에도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3: 29절에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고 경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령충만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런데 성령충만은 절대로 완벽한 상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나의 모든 본성을 성령의 능력에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순종하는 것은 성령충만의 은혜를 ‘향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성령충만의 은혜로 ‘인한’ 책임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책임은 반드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은혜의 바탕 위에 있기 때문에, 결코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령충만을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령충만을 원치않고 육신의 소욕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2)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인의 내적 성화를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며,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성령충만의 결과입니다. 성도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고,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3) 성령충만은 세계복음화를 위한 외적 능력과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한 세계복음화 사명(마28:18-20)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릴 때, 놀라운 성령충만의 역사가 일어났고, 이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했을 때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선교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고, 선교하기 위한 은사를 받기 위해, 반복적으로 성령충만을 구하고 받았습니다.
2. 어떻게 성령충만 받을 수 있습니까?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성령충만 받기 위한 몇가지 순서를 소개합니다.
1)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그 속에 내주하게 됩니다. 물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깨달음과 감동을 주시는 분도 성령입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만 성령충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먼저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2) 성령충만이 우리의 특권이요 의무라는 사실이 확신될 때까지,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기 위하여 말씀을 묵상하면,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속 좋은 생각과 지혜, 영감과 메시지를 공급해 주십니다. 이러한 생각과 지혜를 따라 실천하다보면, 좋은 습관이 형성되고, 이 습관이 체질화되면 성품화 됩니다. 우리의 신앙인격은 습관화 된 몸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나 중심, 물질중심, 성공중심에 집착하다가 거기에 중독됩니다. 여기에 중독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능력조차 이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은밀히 이용하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3)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이 죄임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소욕에 따라 살기보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기를 더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성공과 행복을 얻기 위한 육신의 소욕을 채우는 방편으로 성령충만을 구한다면 결코 성령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복종하기를 거부했던 영역을, 성령이 깨우쳐주심에 따라 회개할 때, 성령충만이 임하게 됩니다. 회개는 성령의 능력을 지속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엡4: 30-32).
회개해야 성령충만 할 수 있고, 성령충만 할수록 더 깊이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란 전인격과 삶이 획기적으로 예수께로 방향을 전환 하는 것입니다. 몸의 행실이 바뀌기까지는 진정으로 회개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귀가 신자들을 타락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큰 죄보다 그들이 가볍게 여기는 작은 죄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죄를 통해서만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데, 이 죄를 끊어버리면 우리에게 더 이상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죄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음을 알고 성령의 능력을 간구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회개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대로 회개하면 됩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해주셨지만, 우리의 죄의 본성 때문에 늘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럴 때 마다 수시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주님은 얼마든지 용서해주시고 죄사함의 기쁨과 더불어 성령충만을 허락해주십니다.
4)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임을 공개하고,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께 절대복종하기로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은 방해를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께 전적으로 복종하기로 결단할 때, 매일 새로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적 복종이란 자신의 의지를 조건없이, 하나님께 복종시키고 개인적 야심을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님은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갈5:23).
5) 언약을 잡고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성령충만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이 오히려 우리가 성령충만 받기를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눅11:1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절박한 심정으로, 이 은혜를 구하는 사람만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에 대한 간절한 기대는 큰 믿음입니다(눅11:9-13).
성령충만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맺히는 성품의 변화뿐 아니라, 복음증거와 섬김을 위한 성령의 은사도 담대히 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 31절에는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에, 방언이나 신유은사 뿐 아니라 지식과 지혜의 말씀의 은사, 복음증거하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섬기는 은사, 위로하고 구제하는 은사 등, 성령의 은사들 중에 필요한 것을 구하시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 마음속에 전달하여, 그것이 우리의 소원과 갈망이 되게 하고, 그 소원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다시 올려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응답하심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에게 내려왔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신비한 영적 순환운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간구하는 기도는 결국, 우리 뜻을 주님 뜻과 조율하여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추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셔서, 우리가 그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이 간구를 통해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공급해 주시는 은혜로운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적신뢰와 의존을 통해 가장 영광 받으십니다.
6) 성령충만을 구했으면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성령충만이 반드시 감정적 체험일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충만을 구한 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본 후에야 성령충만을 받았다는 사실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요일5:14,15). 성령내주와 성령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건강상태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내가 성령충만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구하는 성도마다 받을 수 있습니다.
7) 성령충만 구했으면 주실 줄 믿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행5:32, 갈5:25)
성령충만을 간절히 간구했으면 주실 줄 믿고, 그 은사를 사용하기 위하여 과감히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성령충만의 증거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 수 없고, 전도현장에 나가서 행동으로 옮길 때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성령충만 받는 방법 7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들을 다 이룬 후에야 성령충만할 수 있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 자신을 비우고 양도해야 하는지 궁금해질 것입니다. 또 그 기준이 주관적이라 다 다를 것인데, 이런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일곱가지는 성령충만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순서라고 생각하고 각 단계마다 성령께서 인도해주시도록 기도하면 됩니다.
3. 성령충만 받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에 합당한 영광과 감사가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예배드릴 때 체험한 하나님의 임재를 가정, 직장, 사회 속으로 옮기고, 움직이는 성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과의 인격적 교제보다 능력과 은사를 더 원합니다. 이는 성령을 인격이 아닌, 이용대상으로 대할 우려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 중에 말씀을 통해 영적 임재를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충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놀라운 영적 감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참된 영적 감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열매 맺습니다. 거룩한 감정의 핵심은 사랑인데, 성령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수반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넘치는 사랑과 기쁨을 체험합니다. 이 성령의 기쁨은 예수님이 임재하는 기쁨, 죄로부터 구원받은 기쁨, 성도간의 교제의 기쁨,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 받은 성도의 입에서 감사와 찬송이 저절로 흘러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화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능력과 성품을 믿고 그분에게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가 열릴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신성한 포도나무의 진액은 성령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가꾸시는 대로 순종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 속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는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은 개인의 성품에 관한 열매이고/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은 인간관계의 열매이며/ 충성, 온유, 절제는 복음사역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아홉가지 열매는 절제라는 그릇에 담겨야 합니다. 절제가 없으면 모든 열매는 쏟아져 쓸모없게 됩니다. 결국 그 모든 열매는 영혼사랑이라는 전도와 선교로 연결됩니다.
4)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세계복음화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성령충만이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 15번 등장하는데 그 중에 누가복음에 4번, 사도행전에 10번 나타나고 에베소서에 1번 나타납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의 동역자인 의사 누가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성령충만이라는 용어가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은 성령충만이 전도와 선교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처럼 성령충만이 임할 때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성령충만한 사도와 제자들이 세계복음화한 기록입니다.
III.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령충만이란 우리가 성령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더 많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주하신 성령께 온전히 사로잡힐 때, 우리 삶속에 새로운 영적 영향력이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령충만이란 예수충만, 말씀충만이며, 예수생명, 예수능력이 충만한 삶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성령충만은 성화를 위한 내적 충만과 사역을 위한 외적 충만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내적 성령충만은 내주 하시는 성령께서 성도들의 성품을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도록 성화시켜나감으로,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게 하는 것입니다. 한편, 복음사역을 위한 외적 성령충만은, 성경에서 밝힌 방언, 신유, 능력 행함, 섬기는 일, 복음 전하는 일 등의 은사가 충만한 것을 말합니다. 성령충만은 이러한 성령의 열매와 은사가 균형을 이룰 때 세계복음화가 더 크게 확산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할 이유는 성령충만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의무이기 때문이고, 내적 성화와 외적 선교사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은, 먼저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충만이 성도의 특권이요 의무라는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해야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께 절대복종하기로 결단하며, 성령충만과 은사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구했으면, 믿고 사역현장으로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성령충만의 증거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적 감정을 체험하게 되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며,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세계복음화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성령충만 받아 흑암세력을 물리치고, 우리교회 올해 목표인 교대복음화와 남구복음화, 그리고 전인치유를 통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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