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주께 하듯 하라
2026-07-01 22:04:01
홍기칠
조회수   6
설교본문 골3:18-4:1
설교자 홍기 칠 목사
설교일 2026-07-01

20260701 수요설교

본문: 3: 18-4:1

제목: 주께 하듯 하라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주에 골로새서 3장 앞부분을 통해 위의 것을 찾으라는 바울의 강력한 권고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구원의 신비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이 말씀이,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을 도피하거나 가정과 직장생활을 대충해도 된다는 뜻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의 그러한 오해를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바울은 31절부터 17절까지 영광스러운 구원의 교리와 새로운 피조물의 정체성을 선포한 직후, 곧바로 18절부터 어디로 눈을 돌립니까? 바로 가장 세속적이고, 가장 치열하며, 가장 평범한 공간인 가정과 일터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이 진짜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진짜 천국 시민입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를 가장 먼저 어디서 증명해야 합니까? 바로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에게, 여러분의 자녀와 부모에게, 그리고 여러분이 매일 출근하는 일터의 상사와 부하 직원에게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가 마주했던 이단 사상 중에는 육체와 물질을 악하게 보고 영적인 것만 거룩하게 보는 영지주의적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혼만 구원받으면 됐지, 육신의 삶이나 가정생활이 무슨 상관이냐"방종하거나, 반대로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빠졌습니다.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유사한 영적 이분법에 자주 빠집니다. 교회에서는 천사 같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인데, 집에 가거나 직장에 가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이기적이고 거칠어지는 모순을 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영적 분열증을 치료하는 하늘의 처방전입니다. 본문은 당시 로마 제국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통용되던 가정 규칙을 인용하지만, 그 안을 흐르는 본질을 완전히 뒤엎었습니다. 핵심 키워드는 하나입니다.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예배가 될 수 있는지, 그리스도의 주권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주 안에서 온전한 연합을 이루는 부부 관계 (3:18-19)

본문18,19절에는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가장 먼저 부부 관계를 다룹니다. 18절을 보면 현대 여성들이 들으면 조금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복종하라"는 단어입니다. 당시 로마와 헬라 사회에서 아내는 남편의 종속물이나 재산처럼 여겨졌기에, 아내의 복종은 당연한 사회적 미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 결정적인 단서를 붙입니다.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복종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억압에 의한 굴종이 아닙니다. 이것은 군대식 서열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와 권위를 존중하며 '자발적으로 자신을 아래에 두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특히 바울은 이 명령을 남편에게 준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직접 주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던 여성들을 향해, 스스로 결정하고 순종할 수 있는 도덕적 주체로 인정한 놀라운 혁명적 표현입니다.

 

5: 22,23절에도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즉 아내는 남편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존중하여 가장으로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주님께 하듯이 온 맘을 다하여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에게는 무엇을 요구합니까? 19절에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그 희생적 사랑입니다.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요구, 아내의 복종 요구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명령이었습니다.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은 권위를 이용해 아내를 거칠게 대하거나 쓴 뿌리를 심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칫하면 남편은 가부장적인 권위와 무력적인 힘을 가지고 아내를 윽박지르거나 짜증나게 하거나 상처를 많이 주게 될 수 있습니다.

 

벧전3:7절을 보면남편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유리그릇과 같이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므로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면 그 기도가 막히게 되고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할 때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값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또 존중해야 합니다. 아내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격체로서 아내의 행복과 평안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의 권위는 아내를 조건없이 헌신적으로 사랑할 때 자연스럽게 확립될 수 있습니다.

5:25절에도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제물로 내어주심으로 그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신 그 아가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더 큰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부부 관계의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성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대할 때 머리 되신 주님을 보듯 존중하고, 남편은 아내를 대할 때 교회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위대한 부흥사 존 웨슬리(John Wesley)의 부모였던 새뮤얼과 수산나 웨슬리 부부의 일화입니다. 수산나는 가정예배를 통해 이웃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있어 자신이 교회의 지도자처럼 나설 수 있었음에도, 남편에게 사역의 모든 열매를 돌리고 다시 남편의 영적 지도력 아래로 기쁘게 들어갔습니다. 남편 새뮤얼 역시 가정에서 자녀들을 영적으로 양육하는 아내의 탁월함을 인정하고 고마워했습니다. 두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했을 때, 그 가정에서 자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영국과 세계를 뒤흔든 위대한 영적 거인으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부부 관계의 회복은 내가 손해 보지 않으려는 권리 주장이나 주도권 싸움이 아니라, 상대방 뒤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자발적으로 낮아질 때 시작됩니다.

 

2. 믿음의 유산을 전수하는 부모와 자녀 관계 (3:20-21)

두 번째 영역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본문 20,21절에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20 자녀들에게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행위는 단순히 윤리적인 도덕 행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정을 통해 배우는 훈련입니다. 부모와 자녀관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로서 십계명에서도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쳤고 예수님께서도 강력히 명령하셨습니다. 구약에는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무서운 형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에게는 장수하고 땅에서 잘 되는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시선은 곧바로 부모, 특히 아버지들에게 향합니다. 21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법에는 '부권'이라는 절대적인 권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노예로 팔 수도 있었고, 심지어 생사를 결정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었습니다. 감정의 배출구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바울은 부모들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자녀를 과도한 훈육이나 일방적인 명령, 감정적인 폭언으로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자녀들이 어떻게 됩니까? "낙심할까 함이라." 여기서 낙심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의욕을 잃다’, ‘영혼이 꺾이다라는 뜻입니다. 부모의 잘못된 권위주의가 자녀의 영혼을 죽이고, 자존감을 짓밟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권위마저 거부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부모는 자녀를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신 청지기적 기업'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모는 일방적인 권위가 아니라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올바르게 키워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청지기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가정 이야기입니다. 루터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고 가혹한 사람이었습니다. 루터가 법대에 가기를 원했던 아버지는 루터가 신학을 공부하고 신부가 되려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오랫동안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루터는 청년 시절 내내 "하나님 아버지는 무섭고, 정죄하며, 언제나 벌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무자비한 분"이라는 심각한 영적 강박증과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훗날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가정을 꾸렸을 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루터는 자녀들과 친구처럼 지내며 함께 찬송을 부르고,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도 감정적으로 매를 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루터는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들을 친절하게 대하지 않고 늘 찌푸린 얼굴로 대한다면, 아이들은 하나님 아버지도 그렇게 무서운 분으로 오해할 것이다." 부모의 따뜻한 품과 올바른 훈육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최초의 거울입니다.

 

3. 일터를 성소로 바꾸는 종과 상전의 관계 (3:22-4:1)

마지막 세 번째 영역은 일터, 즉 당시의 종과 상전의 관계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본문3:22-4:1절에서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 인구의 막대한 비율이 노예였습니다. 바울은 이 노예 제도를 당장 전복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제도의 근간을 영적으로 완전히 해체하는 선언을 합니다. 당시에는 사회신분제도가 엄격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로 간주되어 매매가 가능했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주인과 종이 취해야 할 태도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노예들에게 주신 명령의 핵심은 23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당시 노예들의 노동은 억지 노동이었습니다. 주인이 보면 일하는 척하고, 안 보면 꾀를 부리는 눈가림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의 진짜 상전은 눈앞에 있는 로마의 주인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밭을 갈든, 청소를 하든, 음식을 만들든 그것을 '주님께 드리는 예배'로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보답으로 세상 주인이 주지 못하는 "기업의 상"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24). 여기에서 충성스런 종들이 받게 될 기업의 상 즉, 상속재산은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특권을 말합니다.

 

동시에 바울은 상전(주인)들에게도 엄한 명령을 내립니다. 4:1절입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법적으로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므로 죽여도 무죄였습니다. 그런 주인들을 향해 바울은 "너희 위에 진짜 상전이 계신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주인이나 노예나 똑같은 죄인이며, 똑같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형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로마의 신분 사회를 뿌리째 흔드는 영적 대혁명이었습니다. 주인들은 자신들을 공의와 공평으로 대우하시는 하늘의 주인이신 주님이 하시듯이 종들을 공의와 공평으로 대우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공의와 공평으로 대우하라는 것은 사실상 종들을 형제처럼 영접하고 자유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의 직장 생활에 적용해 보십시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나가는 구걸자가 아닙니다. 사장님은 내 영혼의 최종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CEO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직장은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는 성소이며, 우리의 노동은 거룩한 직업이 됩니다.

 

과거 미국의 한 탄광에서 일하던 조지라는 신실한 크리스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지하 수백 미터 아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탄을 캐는 고된 노동을 했습니다. 동료들은 늘 신세를 한탄하고, 감독관이 보지 않으면 대충 일하며 욕설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조지는 늘 찬송을 부르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곡괭이질을 했습니다. 하루는 냉소적인 동료가 물었습니다. "이보게 조지, 주인이 우리를 알아주지도 않고 품삯도 쥐꼬리만큼 주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나? 대충 하자꾸." 이때 조지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친구여, 나는 이 지상의 탄광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네. 나는 매일 아침 석탄을 캘 때마다, 이 석탄 한 덩이를 예수 그리스도께 바친다는 마음으로 캔다네. 주님이 내 노동을 보고 계시는데 어떻게 대충 할 수 있겠나?"

조지에게 탄광은 어두운 감옥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사무실 책상, 여러분의 주방, 여러분이 운전하는 운전석, 여러분이 만나는 고객과의 자리가 바로 주님이 보고 계시는 예배의 현장입니다.

 

III.적용 및 실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골로새서 3: 18절에서 4: 1절까지의 말씀은 구름 위에 떠 있는 추상적인 신학이 아닙니다. 우리의 발에 흙을 묻히며 살아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신앙의 삶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얼마나 거룩한가보다, 우리가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갔을 때 어떤 모습인가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진정한 영성은 나의 가장 가까운 이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맛본 천국 시민으로서, 이 땅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제시합니다.

첫째, 무슨일을 하든지 먼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고 생각해보고 그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배우자나 자녀에게 화가 나거나 갈등이 생길 때, 즉각적으로 감정을 쏟아내지 마십시오. 속으로 세 번 숨을 쉬며 "내가 주께 하듯 대하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 하루 내가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종을 실천했는지 짧게 일기나 메모를 남기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둘째, 내일 아침 출근하시면, 컴퓨터 모니터 옆이나 책상 잘 보이는 곳에 "주께 하듯 하라 (3:23)"는 말씀을 적어 붙이십시오.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까다로운 고객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인격을 넘어 그 뒤에 나를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십시오. 눈가림만 하는 직업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을 다하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작업을 시작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말을 부드럽게 합시다.

오늘 본문 직전인 3: 8절과 9절은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권위를 가졌다고 해서 거친 말, 상처 주는 말, 조롱하는 말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아내를 향해, 남편을 향해, 자녀와 직원들을 향해 격려하고, 축복하며, 세워주는 언어 를 사용하십시오. 우리의 입술이 변할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영적 공기가 바뀝니다.

위의 것을 찾는 성도는 땅의 삶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위의 것에 계신 그리스도의 통치와 사랑을 가지고 내려와, 이 깨어진 세상의 관계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사람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로, 부모와 자녀로, 그리고 여러분의 일터에서 직원과 고용주의 모습 속에서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여, 여러분이 딛는 모든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거룩한 천국 시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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