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벨릭스 총독 앞에서 증언하는 바울
2026-03-04 21:55:46
홍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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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행24:1-27
설교자 홍기칠목사
설교일 2026-03-04

20260303 수요설교 (벨릭스 총독 앞에서 증언하는 바울)

본문: 24:1-27

제목: 벨릭스 총독 앞에서 증언하는 바울

 

I. 서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맹세한 결사대 40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로마 천부장 루시아의 군사적 호위와 보호 아래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이송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과 그를 고발한 예루살렘의 내려온 대제사장 아나니아, 장로들과 더둘로 변호사 앞에서 변호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의 증언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더둘로의 고소내용(1-9)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어떤 장로들과 더둘로 변호사가 바울에 대한 자신들의 거짓된 고소를 관철시키기 위해 로마정부의 청사가 있는 가이사랴까지 96km나 되는 거리를 달려온 것입니다. 그들의 암살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바울을 죽이려는 의지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본문 2-4절에서 더둘로는 고소에 앞서 벨릭스 로마총독에게 아부성 발언을 합니다. 이 벨릭스 총독은 사실 유대인들에게 포악하고 타락한 통치자로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더둘로는 본문 3절에서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는 태평은 고사하고 폭정이 난무했습니다. 벨릭스의 선견이란 로마정권 내에서 자신의 입자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선이란 칭찬도 백성의 희생을 통해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는 방법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아부성 인사를 한 후에 본론으로 들어가 5-6절에서 세 가지를 고소했습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첫째, 바울이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바울을 전염병 같은 자라고 했지만 너무 모호하여 법적으로 볼 때 기소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의 평화를 유지해야 할 로마 총독이 보기에 바울이 로마에 대한 반란을 선동하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고 설득하려고 한 것입니다. 치안유지가 총독임무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이를 문제 삼도록 한 것입니다.

둘째,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고소는 당시 유대교는 로마에서 공인된 종교였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종교는 유대교가 아닌 공인받지 못한 이단이라고 함으로써 그를 기소하려고 한 것입니다. 더둘로는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가 로마법에 어긋나는 이단 종교라고 고소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법에는 유대교 외의 이단종교는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한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단 당파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세속적 이익과 부귀영화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역자는 그 사역의 결과로 그리스도께만 영광이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굶고 헐벗었으며 사역할수록 자기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없었고 결국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순교의 제물로 바쳤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단이나 사이비 교주들, 그리고 일부 목회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신의 이익과 영광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 항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바울이 유대교의 성전을 모독한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독자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처벌 규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한 행21장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성도 네사람을 데리고 가서 예루살렘 지도자 야고보의 권고대로 그를 비방하는 유대인들의 시비를 피하고자 성전에 가서 유대인 관습에 따라 그들에게 결례를 행하고 그 비용을 대납한 적이 있었지만 성전을 더렵힌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성전지역으로 데리고 들어감으로써 성전을 모독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고소 내용을 수정하여 바울이 이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붙잡았다고 사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성전모독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고소자들도 실제적인 성전모독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전략을 바꾸어서 바울이 성전모독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그를 잡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로마법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 종교를 지키도록 허용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 다른 신흥종교는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더둘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멸시하는 어조로 기독교를 나사렛 이단이라고 불러서 복음을 이단적이고 이상한 것으로 보이게 하려 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단이 아니라 교단이나 교파가 다르다고 종종 비난하는 일이 있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 보면 더들로는 그런데 이 바울을 천부장 루시아가 자기들 손에서 빼앗아 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것을 바울을 심문해보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하니 장로들과 유대인들도 더둘로의 말이 옳다고 가세함으로써 바울을 잡아 엮으려고 했습니다. 언뜻보면 더둘로의 고소는 완벽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진실하지 않았습니다.

 

2. 바울의 증언 (10-21)

총독은 바울에게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고소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우선 10절에서 총독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이 된 사실만 간단히 언급함으로써 그가 훌륭한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뒤에 자신의 사건을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기쁘게 여긴다고 하며 변론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울로서는 그 사람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칭찬이었습니다. 비록 바울의 칭찬이 간단했지만 그 말 속에는 로마정부에 대한 존경심과 적법한 절차를 성실하게 준수해 준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고소내용인 소요를 일으켰다는 것에 대해 쉽게 입증할 수 있는 자신의 여행 알리바이를 언급함으로써 반박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지낸 지 며칠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요를 일으킬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예배할 목적으로 그곳에 왔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문제의 소요가 발생했을 때 거기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총독에게 자신이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 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본 목격자를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성전 모독죄로 고소한 자들이 아무런 증거를 제시할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고소내용인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습니다.본문 14-15절에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으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라고 증언했습니다. 바울은 고소자들이 이단이라고 부르는 도를 따르고 있다는 점을 시인했습니다. 그 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을 말합니다. 이 복음은 7:14절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과 요14:6절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이라고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기회를 빌어서 기독교 운동의 뿌리를 구약성경말씀과 연결시키려고 했습니다. 벨릭스 앞에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다는 자신의 확고한 신앙을 확실히 입증해 보였습니다. 바울은 고소자들이 믿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으며, 그들이 지키는 것과 동일한 도덕적 규범을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믿는 것은 신흥종교가 아니라 바로 구약의 모세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에서 완성되는 모든 것의 그림자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동일한 구약말씀을 믿지만 유대인들과 다르게 확신을 가지고 믿습니다.

 

그리고 부활과 심판의 문제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바울은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는 이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늘 거리낌이 없게 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과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완벽하게 연결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성전모독죄에 대한 반론을 제시했습니다. 본문 17-19절에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고발내용에 대해 증언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여러지역 성도들의 구제헌금을 모아 가지고 와서 전달했고, 자기와 함께 온 사람들의 나실인 서원을 드리기 위해 비용을 내고 그 곳에서 결례를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결례란 할례의식을 말합니다.

 

성전모독이라는 고발내용과 관련하여 성전 뜰에서 바울을 발견했을 때 그는 결례를 행하는 중이었고 고발내용과 관련하여 모임도 없었고 소동도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킨 것이지 바울이 일으킨 것이 아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들의 거짓 고소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소동이 일어난 것임을 증언했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더둘로가 제기했던 거짓 고발내용들에 대해서 모두 답변했고 이제 남은 것은 벨릭스의 판결뿐이었습니다.

 

본문 22-23절에서 벨릭스는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재판을 다시 하겠다고 재판을 연기하고 나서 바울에게 자유를 주고 수종드는 일을 금히지 않도록 했습니다. 벨릭스는 6년 동안 총독을 역임해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적인 생활방식이 이미 로마인들 사이에서 입증되어 있던 터라, 그리스도인들이 소요를 일으킬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총독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3. 벨릭스와 그 아내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음(24-27)

벨릭스는 재판을 연기해 놓고 그 아내 유대 여인인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불러 예수 믿는 도 즉, 복음을 들었습니다. 본문 25절에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사실 벨릭스에게는 가 없습니다. 의가 있다면 바울을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바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붙들고 있는가 하면 바울을 통해 뇌물을 받을까 하는 마음과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를 2년이나 더 구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의가 있어야 하고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9: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 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했고 26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최근에 대형교회 유명한 목회자들이 이 절제함이 없어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성도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든 행동에 절제할 줄 알아야합니다.

 

벨릭스 총독도 드루실라와 사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습니다. 드루실라는 헤롯 아그립바 왕의 딸로서 전 남편 왕 아지주스를 1년 만에 이혼하고 벨릭스와 재혼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유대법에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벨릭스도 성적으로 매우 음탕한 남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육체의 정욕에 대한 절제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바울은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직설적으로 그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과 관련있으며 벨릭스에게는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강론을 듣고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아주 개인적으로 다루지 않는 한 복음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부분까지 다루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거부감으로 저항하거나 그 자리를 피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전한 복음을 듣고 저항하거나 피한다면 틀림없이 그 복음을 개인적인 차원까지 전하는데 성공한 증거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께서 그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그가 주님 앞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벨릭스 총독은 틈이 있으면 바울을 다시 부르겠다고 하면서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바울에게 뇌물로 돈을 받을까 바라는 마음에서 바울을 더 자주 불러 이야기 했습니다. 아직 개인적으로 복음을 수용할 자세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후임 총독 베스도가 오기까지 2년 동안이나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복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명예와 출세와 재물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베스도가 후임 총독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베스도는 투옥된 바울사도의 소송건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은 로마총독 벨릭스 앞에서 유대인들의 고소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여 진실을 증언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흩어진 유대인들을 소동하는 자, 이단종교의 우두머리, 성전을 모독한 자라는 거짓증거를 들어 고소한 내용을 말씀과 사실에 근거하여 진실되게 변론을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소동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뿐이었고, 이단종교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으며, 성전을 모독한 적이 없고 오히려 성전에서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나실인 의식을 행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심문하던 로마총독 벨릭스와 그 부인에게 하나님의 의와 절제와 심판과 부활에 대하여 2년 동안 자세히 복음을 전하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부활에 대한 소망과 심판에 대해서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의와 절제와 양심을 지키며 실천하는 성도의 삶의 모범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말로만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복음적인 삶을 실천함으로써 그 복음이 진실됨을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바울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복음적 삶을 실천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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