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거듭난 사람
2026-04-26 19:11:06
홍기칠
조회수   4
설교본문 요3:1-18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4-26

20260426 주일오전설교 (거듭난 사람)

제목: 거듭난 사람

본문: 3:1-18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반드시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거듭나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지도자였으며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거듭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을 통해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II. 본론

1. 거듭난 사람은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이다(3).

1) 거듭남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당시 유대교의 규례를 엄격히 준수하고 성경의 외적 관습과 전통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예루살렘에 있는 71인으로 구성된 유대인들의 최고 통치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었습니다. 이처럼 신분과 지위가 대단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 온 것은 자신의 이런 명예나 지위에 손상을 입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찾아온 것은 예수님이 행한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메시아가 아닐까 그것을 직접 확인해 보고싶어서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때 본문 3절에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듭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 인간 본성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나서 그렇다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는 거듭남을 육신적인 차원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엉뚱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은 위로부터, 곧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다는 것은 학문이나 종교적 열심이나 선행 등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새생명인 것입니다.

한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나오려고 발버둥쳤지만 점점 더 가라앉았습니다. 그때 구조대원이 와서 끌어 올렸습니다. 그는 스스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것입니다. 거듭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건져 주셔야 하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2) 거듭남은 새로운 존재가 되는 사건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중생이라고도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재창조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바뀌고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아담의 원죄와 자신이 지은 자범죄로 인하여 죄와 사탄의 종노릇하며 지옥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신분이었는데 거듭난 후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정말 거듭난 사람인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에 다닌 신앙연수나 현재 교회 출석여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새생명을 얻었는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거듭남을 확신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시간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 지금 이시간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제 안에 새 생명을 주옵소서라고 진심으로 기도하시면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오셔서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십니다.

 

2. 거듭난 사람은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이다.

1) 성령이 거듭남의 주체이시다.

니고데모는 신학적 교양이 풍부하고 율법에 정통했지만 영적 통찰력이 부족하고 눈에 보이는 출생만을 생각했으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오해하여 사람이 어떻게 모태로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본문 5절에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거듭남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5절에서 물과 성령으로라고 하는 말은 성령세례를 말합니다. 세례는 죄를 회개함으로 죄씻음을 받고 옛 육신의 사람은 영적으로 죽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성령을 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 본문 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했습니다. 육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담의 죄로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날 뿐입니다. 반면에 성령에 의해 태어난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 즉 중생입니다.

 

2) 성령의 역사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바람과 영을 대조시켜 알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본문 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사람이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바람은 기압차로 불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도 사람의 의도나 노력으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거듭난 자는 성령이 그 속에 역사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영에 의해 거듭난 사람도 그 영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인도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느껴집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본문 13-17절에서 예수님이 앞으로 행하실 하나님 나라의 일, 즉 구속사업을 과거의 출애굽 역사 중에 일어났던 사건을 들어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 결과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는데, 모세가 구리뱀 하나를 만들어 높은 장대위에 매달아 놓았고 그것을 쳐다본 사람들은 모두 죽음의 형벌을 면하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구리뱀 같이 인자되신 예수님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십자가에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구리뱀 처럼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죽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리 뱀을 쳐다봄으로써 구원받았듯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죄의 삯인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5:24절에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약속을 믿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누구나 하나님 자녀가 되는 거듭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번 거듭나 중생하면 다시 받을 필요가 없고 그 구원은 세상 끝날까지 안전하게 보존됩니다.

 

한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가정도 깨지고 삶이 무너졌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술을 끊고 가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했습니까?” 그는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3. 거듭난 사람은 삶의 열매로 증명되는 사람이다.

1) 거듭남은 반드시 삶으로 나타난다.

거듭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과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집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세상과 동일하게 산다면 거듭났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겉모습은 나무지만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면 그 나무를 사과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열매가 그 나무의 정체성을 증명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죄를 싫어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매가 없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매일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 증거로 열매맺게 해달라고 라고 기도하십시오. 죄에 민감해지십시오. 작은 죄라도 즉시 회개하십시오. 말씀과 기도로 성령과 동행하는 것을 하루 일정 속에 반드시 포함 시키십시오.

 

2) 거듭난 사람의 열매

거듭난 사람들의 증거는 살전1:3절에 나옵니다.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세가지가 나옵니다. 믿음의 역사란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믿음대로 순종하고 행동해야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랑의 수고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도와주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소망의 인내란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소망으로 현재의 고난과 박해를 참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이 믿음, 소망, 사랑의 열매가 증거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거듭난 증거는 살전1: 7,8절 말씀처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것과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났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생활 속에서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실제적인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거듭난 성도는 위에서 말한 거듭남의 증거에 더하여 성령충만의 열매까지 맺게 되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5: 27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 첫 번째가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은 다른 8가지 성령의 열매의 기초이며,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가장 먼저 맺어야 할 덕목입니다. 사랑 외의 8가지 열매는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방법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성격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 자랑,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희락(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 자연스레 일어나는 만족감이 희락 즉 기쁨입니다. 로마서 8: 38-39절의 말씀처럼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때, 현실과 환경을 초월한 희락,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세상쾌락은 일시적이고 육체적인 것이지만, 희락은 영적인 것으로 오직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셋째는 화평(평화, 샬롬)입니다. 화평이란 그 희락를 가지고 사랑을 누리는 마음의 평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화평을 이루게 하셨고, 그 사랑으로 대인관계 속에서도 평화를 누리게 하셨을 뿐 아니라, 각 성도님들에게도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마음의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넷째는 오래 참음(인내)입니다. 오래 참음 즉, 인내는 부당한 취급과 시련을 당하고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데(고후6:6, 1:11, 3:12), 인간관계에서 사랑의 첫걸음이 오래 참는 인내입니다. 오래 참는 이유는 상대방에 관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자비(친절)입니다. 자비란 이웃을 사랑하여 불쌍히 여기는 친절한 태도를 말합니다. 긍휼이 필요한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나누는 친절한 행위가 자비입니다. 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저렇구나 하며, 마음속으로 가엽게 생각하여 어떻게든 저 사람을 돕고 살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바로 자비입니다.

 

여섯째는 양선(착함)입니다. 자비는 선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양선이란 선한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착한 행위를 말합니다. 자비는 양선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는 충성(성실)입니다. 충성이란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선이 사람을 향할 때는 자비가 되고, 양선이 됩니다. 선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는 충성이 됩니다.

여덟째는 온유입니다. 온유란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고 통제하시도록 내어드린 삶의 모습이 온유입니다.

 

마지막 아홉째는 절제입니다. 절제란 질주하는 육체의 정욕을 조절하는 브레이크요 자기관리 능력으로 성도로서의 균형있는 삶을 살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첫 번째 사랑이 뒤에 오는 8가지 성령의 열매의 바탕이 되었는데, 마지막 절제는 앞의 8가지 모든 성령의 열매를 담는 바구니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절제가 없으면 모든 열매가 쏟아져 버립니다. 마치 감귤처럼 그 안에 사랑 조각에서 충성 조각까지 여덟개 조각이 있고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 바로 절제입니다. 귤 껍질이 상하거나 흠이 있는 부분은 까보면 그 속도 상해 있듯이, 사랑에서 온유까지도 절제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게 됩니다.

 

III.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증거로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삶 속에서 실천하며 믿음의 본을 보이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거듭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지식이 아니라 생명이며 형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나의 삶에 이러한 성령의 열매가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거듭난 사람인가? 성령을 통한 내 삶의 변화가 있는가? 내 삶에 거듭남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가?를 질문하면서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십시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서 삶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저와 여러분 모두 가족과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로서 변화된 모습 보여주며 복음을 증거하는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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