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
2026-06-14 15:25:12
홍기칠
조회수   7
설교본문 히3:1-19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6-14

20260614 주일오전설교

본문: 3:1-19

제목: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

 

I. 서론: 왜 우리는 흔들리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변화의 속도는 우리의 숨을 가쁘게 만듭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의 감격을 누릴 때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삶의 고난과 광야 같은 현실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슬그머니 의심과 피로감이 찾아오곤 합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바로 그러한 영적 위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 사회에서 출교를 당하고, 재산을 빼앗기며, 육체적인 박해를 받았습니다. 고난이 길어지자 그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안전했던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이 찾아왔습니다. 신앙의 경주를 중단하고 낙심하려는 그들을 향해, 히브리서 기자는 단호하면서도 간곡한 어조로 외칩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리고 끝까지 믿음의 확신을 붙잡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습니다. 출발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을지 세 가지 영적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1~6)

히브리서 기자는 낙심하여 과거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자들에게, 본문 1절에서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집중하여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도이시고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사도로 호칭한 것은 신약에는 여기 뿐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보내심을 받아 사도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예수님은 모세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도이심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대 비해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대언하는 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직접 원수 마귀와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실 수 있지만 모세는 단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최고의 사도이시며 다른 모든 사도직의 원천이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만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모세의 형 아론을 연상케 합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아론의 직무를 겸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기 위해 사명을 주어 보내신 사도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수하시는 대제사장이시기도 합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신적 본성과 사역을 나타내고, 대제사장은 그의 인간적 본성과 사역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사도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동시에 대제사장으로서 인간의 아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위대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모세'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특히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주의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면 그들이 존경하고 흠모하는 모세보다 그리스도가 더 뛰어나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모세는 민족의 해방자이자 율법의 전달자이며, 신앙의 절대적인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수님이 모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신 분임을 선포합니다.

 

본문 3절에서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 5~6절에서도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였지만 하나님의 집인 이스라엘에서 심부름을 하는 '신실한 종'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집을 직접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그 집을 다스리시는 '아들'이심을 비교했습니다. 본문 4절에서도 예수님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과 만물을 지으신 그리스도는 그 집을 관리하는 종에 불과한 모세보다 훨씬 뛰어나시기 때문에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 흔들리는 이유는 주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성공자, , 권력, 명예, 혹은 경제적 부유함을 더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에서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려운 환경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사도이시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6절처럼 장차 온전히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을 소망하며 확신하는 자는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담대한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리라는 확신과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영원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끝까지 인내 속에서 견고히 붙잡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관광지인 런던 타워 브릿지가 완공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다리의 외관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리를 관리하는 경비원이나 안내원들의 친절함과 절차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리가 수많은 세월 동안 거센 템즈강의 물줄기와 수만 대의 마차, 자동차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안내원의 친절함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그 다리를 보이지 않는 강바닥 밑바닥부터 견고하게 설계하고 기초를 놓은 설계자와 시공자 덕분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다리 위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신실한 안내원과 같았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 다리를 설계하고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다리 위에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고 해서 안내원에게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다리 자체를 설계하신 설계자의 능력을 신뢰해야 다리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다리를 설계하시고 붙잡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2.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오늘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라 (7~11)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실패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기록한 시편 95을 인용하며 엄중히 경고합니다. 본문 7~8절에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지금, 오늘입니다. 오늘은 언제나 하나님의 시간이며 하나님께서는 내일이란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말씀하실 때가 바로 인간이 응답해야 할 시간이요 하나님을 만나야 할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천사나 모세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든 즉시 순종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으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마음이 완고해져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역했습니다. '완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마음의 문을 꽉 닫아걸고 빗장을 지른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그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도 마음이 항상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과연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지 시험하였고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그들의 불신앙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참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길을 알게 해주었지만 그들은 끝내 그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거부함으로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다가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불순종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믿음의 문제'입니다. 광야라는 척박한 환경 때문에 그들이 망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완악해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했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너희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고 하십니다.

 

도예가가 도자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흙의 상태입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공기 중에 바짝 마르고 단단해진 찰흙은 도예가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원하는 모양으로 빚을 수 없습니다. 억지로 힘을 주어 구부리려고 하면 툭 하고 부러져 버립니다. 반면, 수분을 가득 머금고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찰흙은 도예가의 손길이 닿는 대로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손길이 우리 마음에 닿을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세상의 염려와 자기 고집으로 바짝 말라 단단해진 완악한 상태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은혜로 촉촉하게 젖어 있는 부드러운 상태입니까? 날마다 기도의 눈물과 말씀의 은혜로 마음밭을 갈아엎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음이 단단히 굳어져 하나님의 안식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3. 공동체 안에서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을 이겨내라 (12~19)

신앙의 경주는 결코 혼자서 달리는 마라톤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개인의 믿음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본문 12~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악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죄는 교묘합니다. 처음부터 큰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유혹으로 시작하여 서서히 우리의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것이 '죄의 유혹으로 완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가장 큰 죄악이며 그 결과는 영원한 멸망입니다. 믿지 않으면 악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교묘한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처방전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혼자 있으면 넘어지기 쉽지만, 매일 피차 권면하고 서로의 영적 상태를 돌보아 줄 때 우리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모이는 일에서 멀어지지 말고 함께 모이고 서로 격려함으로써 경건한 삶을 이루어가도록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서 죄는 불신앙을 가리키는데 죄가 의인화되어 사람들을 유혹하여 불신앙의 죄에 빠뜨리게 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은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성도들의 믿음과 행위는 동료 성도들에게 자극과 도전을 줄 수 있습니다.

 

14절 말씀처럼, 우리가 믿기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에 참여한 자가 될 것입니다. 처음 믿을 때 가졌던 믿음의 확신은 때로 죄의 속임수와 온갖 시험으로 말미암아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믿음을 굳게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19절 말씀처럼,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천국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영적인 파수꾼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온전히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때는 그들의 조상들처럼 깊은 멸망에 빠지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나트론 호수에는 수백만 마리의 홍학(플라밍고)이 무리를 지어 삽니다. 이 호수는 강한 알카리성을 띠고 있어 다른 동물들은 접근조차 못 하는 척박한 환경입니다. 게다가 이곳에는 홍학을 노리는 하이에나와 자칼 같은 포식자들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혼자 떨어진 홍학은 표적이 되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홍학들이 생존하는 비결은 '함께 움직이는 것'에 있습니다. 그들은 수천, 수만 마리가 빽빽하게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날아오를 때도 일제히 함께 날아오르고, 잠을 잘 때도 서로의 몸을 맞대고 잠을 잡니다. 포식자가 나타나면 무리 중 한 마리가 경고 신호를 보내고, 전체가 일시에 반응하여 위기를 모면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사단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 혼자 고립된 성도는 사단의 가장 쉬운 먹잇감이 됩니다. 우리가 매일 피차 권면하며 영적인 무리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숯불 하나를 화로에서 꺼내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식어버립니다. 그러나 숯들이 함께 모여있으면 계속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와 멀어지고 성도들과 교제가 끊어지면 영적으로 믿음이 식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할 때 믿음의 불은 다시 타오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믿지 아니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모두 쓰러졌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약속받은 신약의 백성들입니다. 이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삶 속에서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이행합시다.

첫째, 아침을 주님을 바라보며 시작하십시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세상의 뉴스나 스마트폰을 보기 전에 단 1분이라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나의 사도와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 오늘도 주님을 깊이 생각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라고 고백하십시오.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비결입니다. 문제보다 주님을 크게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오늘 말씀을 통해 들리는 음성에 즉각 순종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말씀을 들을 때 즉시 순종하고 성령께서 깨닫게 할 때 미루지 말고 실천하십시오. 회개할 일이 있으면 즉시 회개하십시오. 큐티(QT)나 개인 기도 시간, 혹은 공예배를 통해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 "나중에 하겠습니다"라고 미루지 마십시오. 미루는 것은 마음이 완악해지는 지름길입니다. 작은 사소한 감동이라도 '오늘' 즉시 순종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영적 고립에서 벗어나 피차 권면하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 머무르십시오.

주일예배, 성경공부 모임에 적극 참여하십시오. 성도들과 교제를 지속하십시오. 낙심한 성도를 찾아가 격려하고 권면하십시오. 믿음의 동역자가 되십시오. 이번 한 주간 교회성도들이나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먼저 연락하십시오.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을 넘어 "요즘 영적 상태는 어떠세요? 함께 기도할 제목이 있나요?"라고 물으며 매일 피차 권면하십시오. 서로를 향한 격려의 한마디가 낙심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죄의 유혹을 끊어내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에서 넘어졌던 이스라엘의 길을 따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여 승리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광야처럼 거칠고 힘들지라도, 모세보다 뛰어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처음에 가졌던 그 순수한 믿음의 확신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아, 마침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안식에 모두 넉넉히 들어가는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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