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행1:1-11(마24:1-51)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4-12 |
260412 주일오전설교 (승천과 재림 사이를 사는 성도의 삶)
본문: 행1:1-11 (마24:1-51)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윤리나 종교적 체험이 아니라 구속사 위에 서 있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그 중심에는 세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속죄의 완성이고, 부활은 새 창조의 시작이며, 승천은 왕권의 선포와 통치의 개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완성하는 사건이 바로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지만, 승천과 재림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신앙의 핵심 축입니다. 승천과 재림은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종말론적 흐름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미(already) 이루어진 구원”과 “아직(not yet) 이루어지지 않은 영원한 천국 구원” 사이에 존재합니다.
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의 승천을 기록하고 있고, 마태복음 24장은 주님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두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오늘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며 승천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II. 본론
1. 승천은 끝이 아니라 사명의 시작이다(행1:6-8).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500여 성도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시고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의 물 세례는 회개의 표시로 받는 것으로서 거듭나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구원을 위한 필수요소로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할 때 받게 됩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며칠 후에 성령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때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의 압제에서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도 권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일단 그들의 꿈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꺾였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되자 그 야망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인지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때와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기 때문에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8절에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28:18-20절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인 세계복음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회복”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을 정치적 회복에서 영적 사명으로 바꾸셨습니다. 승천은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맡기시는 선포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그분의 사역은 끝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통해 계속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그날에 세상역사는 끝이 날 것입니다. 그날 성도들은 신령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승천은 예수님의 왕권 선포입니다. 동시에 교회의 사명 위임입니다. 교회는 “기다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인류구원계획을 모두 성취하시고 승천하시지만 이제 제자들에게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 사명은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만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영생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이 복음을 예루살렘으로부터 땅끝까지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복음의 증인들이기 때문에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 이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부탁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언젠가 주님 오시면 잘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우선 자기 주변에 있는 한 사람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주님께서 맡기신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승천 신앙은 전도와 선교로 나타나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하늘로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구름기둥으로 나타나셨고, 변화산에서 제자들 위에 임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본문 11절에 그들이 말하기를 “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가룟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기 전에 갈릴리의 어부와 세리, 목자 등이었으며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릴리 시골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언자가 나지 못한다는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위대한 사도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이 사라진 텅빈 하늘을 계속 쳐다보면서 혹시 주님이 다시 내려오셔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게 되기를 바라는 어떤 기대감에 쌓여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천사들이 나타나 그들이 본 그대로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이땅에 오실때는 초라한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영광 중에 구름을 타시고 천군천사들과 함께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승천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닙니다(행1:9-11). 이는 그리스도의 왕적 즉위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늘보좌에 오르신 것입니다. 승천은 그리스도의 선지자, 제사장, 왕의 세가지 직분 중 승천 이후 강조되는 것은 왕과 제사장의 직분입니다. 히7:25절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십니다. 또한 승천은 성령 시대의 개막을 알립니다. 승천은 곧 오순절의 전제입니다. 요 16:7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심으로 성령님이 강림하시고 그로 인해 교회가 드디어 탄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과거의 구원자”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지금도 통치하시는 왕”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두십시오. 기도할 때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십시오. 교회를 인간 조직이 아닌 “하늘 통치의 지상 표현”으로 보십시오. 승천 신앙은 그리스도의 현재 통치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2.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질 확실한 약속이다(행 1:11, 마24:30)
천사들은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그의 성탄과 죽음과 부활, 승천과 더불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분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단순히 성도들의 마음 안에 거하러 오시는 영적 강림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누구나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강림하실 인격적이고 육체적인 재림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재림의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나겠고,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고,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일이 극심해지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그 당시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모두 순교했고,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기 전까지 수많은 성도들이 온갖 박해를 받아 카타콤과 같은 지하 무덤에서 수십년씩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포위하자 성안에서 굶어죽은 유대인들이 너무 많아 시체를 치울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AD 70년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성을 함락하던 날 110만명은 죽고 9만 7천명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수님은 그 처참한 광경을 미리 내다보고 마24장 처럼 예언했을 뿐 아니라 마지막 때에도 일어날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지금도 저 북한과 중국 등 공산권과 이슬람 중동국가들에 사는 성도들과 선교사들은 온갖 핍박을 받아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거나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중동지역 무장단체들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지진과 홍수와 산불 등 자연재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외 뉴스를 보면 인간관계의 사랑이 식어져 폭력과 마약과 살인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전 우리 대구에서도 사위가 아내와 함께 장모를 살해하여 가방에 넣어 버린 것이 발각되어 지금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힌 현상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끝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재림의 신호”입니다. 재림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 일어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오십니다. 주님의 재림은 온 세계의 누구나 볼 수 있게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재림을 향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약의 종말론은 두 단계로 이해됩니다. 초림으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재림으로 아직 가지 않은 하나님 나라로 구분됩니다. 우리는 “긴장 속에 존재”합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한 것처럼 재림은 최후심판을 위한 인류역사의 종말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임하지만 갑작스럽게 임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주님을 공중에서 맞이하고 놀라운 구원이 완성되는 승리와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3. 승천과 재림 사이에서 재림의 주님을 고대하며 깨어 살아야 한다(마24:42-44)
예수님은 마24: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재림의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26:64절에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했습니다. 마24: 27절에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번개처럼 단 한번에, 순식간에 그리고 도둑같이 임하며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구절 중 하나인 22: 20절에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앞으로 일어날 주님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에 대한 예언을 다 기록한 후에 주님이 반드시 재림하시기 때문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재림을 고대했습니다. 고전16:20절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의미의 “마라나타”는 우리 성도들의 예수재림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나타내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준비하면서 120년 동안이나 심판에 대해 경고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몰두하며 세상쾌락과 욕망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도들도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정결한 신부로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처럼 노아의 때와 같이 이 땅위에서 건강하고 잘먹고 잘살고 오래 사는데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기다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항상 준비된 상태여야 합니다. 종말 신앙은 공포가 아니라 준비입니다. 신자는 미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성도 여러분, 재림 신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사소한 죄라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죄와 타협하지 않는 종말론적 윤리를 가지십시오. 오늘이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십시오.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십시오. 재림 신앙은 거룩한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준으로 재편하십시오. 고난 속에서도 종말적 소망으로 인내하십시오. 재림 신앙은 현재를 영원의 관점에서 사는 것입니다.
둘째, 세계복음화를 위한 전도와 선교의 사명자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24: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종말을 향한 필수 과정입니다. 교회는 두 가지 긴장 속에 존재합니다. 위로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밖으로는 세상 속으로 파송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 대기소”가 아니라 “복음전파의 전초기지”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경계 상태가 아닙니라 신앙의 지속성과 윤리적 긴장감과 종말론적 자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선교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정도가 그 순간의 우리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시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재림의 순간까지 재림을 준비하여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재림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은 현재 주님께 순종하며 충성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내가 주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더라고 주님이 오시면 마25:21절 말씀처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사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분명해야 합니다.
승천과 재림 사이를 사는 우리는 세 가지 축 위에 서야 합니다. 위로는 하늘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를 인정해야합니다. 앞으로는 재림을 바라보고 소망의 신앙으로 거룩함으로 준비해야합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선교신앙으로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는 이미 왕으로 즉위하셨습니다. 예수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하며, 거룩하게, 선교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결단합시다. 나는 어떤 신앙으로 살고 있는가? 단순히 교회만 다니는 신앙인가? 아니면 사명을 감당하는 신앙인가?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날에 주님께서 “잘하였다 충성된 종아”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개인 신앙을 넘어서 “선교적 삶”을 사십시오. 교회 뜰만 밟지 말고 헌신하고 충성하십시오. 일상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복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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