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 설교본문 | 요20:1-31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4-05 |
20260405 주일오전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본문: 요20:1-31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I. 서론
지난 주일은 고난 주간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창3:15절에 구원계획을 세우셨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 구원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으로 십자가에서 그 구원계획을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다시 하나님 만나게 되었고,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사탄과 죽음의 권세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해도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십자가의 고난도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이지만 그 완성은 부활에 있습니다. 십자가가 죄 사함의 사건이라면, 부활은 그 구원이 참됨을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요20장은 단순한 부활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예수님 부활의 증거와 부활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부활의 증거와 능력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증거
1) 예수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인류구원사건(시16:10)
구약성경에도 부활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다. 시16:10절에는 “ 이는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 도중에 이 시편16:10절을 그대로 인용하여 다윗이 벌써 예수의 부활을 구체적으로 예언했다고 보았습니다. 그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도 부활절 설교였습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여일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설교를 했을 때 많은 유대인들, 서기관, 바리새인, 랍비들이 듣고 있었는데 이 예수부활사건이 만일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아마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베드로의 부활 메시지를 듣고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가슴을 치며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통회자복하며 3천명, 5천명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아담 하와의 범죄 이후 창3:15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인간구원계획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사건입니다.
2) 예수부활은 예수님 자신이 예언하신대로 성취된 사건(마16:21-22).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이 하는 말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내용이 거짓이었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평소에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다면 그는 우리의 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창조주요 구주가 되는 것입니다.
요11:25-26절 말씀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오신 예수님이 그 여동생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인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했습니다. 이 마16:21절에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이 자신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이 모든 말씀은 거짓말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창세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이 아니었고, 그가 우리의 중보자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자신의 죽음, 부활, 그리고 부활 후의 활동까지 정확히 예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내내 자신의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없으신 분이셨기 때문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지만 살아나심으로 그의 무죄함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기에 그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스스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3) 예수부활은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역사적 사실(고전15:1-19).
4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가가 죽음과 부활을 자세히 쓰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날 아침에 무덤에 찾아 온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는 예수님의 시체에 넣으려고 방부제인 향품과 향유를 가지고 무덤으로 찾아 왔습니다. 무덤 문의 돌을 누가 굴러주겠느냐 걱정하며 갔는데 돌을 굴러 낸 천사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고 갈릴리 가셨으니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했습니다.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갔는데 거기서 세마포가 머리편의 것은 머리편에 발편에 있는 것은 발편에 가지런히 착착 개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 만약 누가 훔쳐갔다면 어떻게 그렇게 개어놓고 가겠으며 벌거숭이 시체를 어찌 훔쳐갔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한 표적으로 세마포가 착착 개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람들인지라 이들의 부활증언은 더 신빙성이 높은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위인들은 그들의 무덤이 아직도 남아 있으나 예수님의 무덤은 빈무덤이었고 그 무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것도 부활의 또 하나의 증거가 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눅24:39절에 보면 부활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들은 처음에 부활이 믿어지지 않아 그들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예수님의 육체가 아닌 영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42절에 구운 생선 한 토막도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영적 부활이 아니라 변화된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심을 증명했습니다. 왜냐하면 문을 열지 않고도 제자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 15:3-8절에서 “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고” 구체적인 증인들을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행1:4절에서도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이나 이들에게 나타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부활을 본 수많은증인들이 목격한 너무나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임이 4복음서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난 능력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믿는 성도들의 죄사함과 영생이 확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부활하셨습니까? 주님의 부활은 그분의 신성과 무죄성과 모든 믿는자들의 죄사함과 영생이 완성되었음을 보증하기 위함입니다. 롬1:4절에는 “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롬6:5절에도 “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기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 했고 8절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누구든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고 영생하는 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고 완전한 자로 당당히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고 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15:14-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증인으로 발견될 것이며/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가 전하는 복음과 믿음이 참되고 죄사함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죄와 사망과 사탄을 이기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2) 부활은 절망 속에 있는 자에게 소망을 주심(요 20:1–18)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에 방부제인 향품을 더 넣어드리려고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을 목격하게 됩니다. 무덤 문을 막았던 큰 돌이 옮겨지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즉시 제자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누가 주님의 시체를 옮겼다”고 오해합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활은 믿음 있는 자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다가 무덤 안을 들여다 보니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를 두었던 곳의 머리편과 발편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천사들이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하자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하고 뒤를 돌아보니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사들의 말과 같이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알려주면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즉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본문 16절에 단 한마디 “마리아야”라고 그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 눈이 번쩍 띠였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드디어 예수님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부활은 정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인식되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죽음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자리에 가장 먼저 찾아오십니다. 부활의 첫 증인은 사회적으로 연약한 여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들려 고통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여인입니다. 부활은 자격 있는 자에게가 아니라 상처 입은 자에게 먼저 임하는 은혜입니다.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는 눈물범벅이 되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 눈물이 기쁨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빈 무덤” 같은 순간이 있습니까?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을 때, 기대했던 일이 무너졌을 때,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없었습니까? 그러나 그 자리가 바로 부활의 시작점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이름을 친히 부르시며 찾아오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은 두려움 속에 있는 자에게 평강과 사명을 주심(요 20:19–23)
제자들은 문을 닫고 숨어 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자신들도 그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잡힐까 두려워했고, 예수님을 버린 죄책감도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문이 잠겨 있는데도 들어오셔서 첫 마디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하신 주님의 능력있는 축복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소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사명의 시작인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은 현재 상황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에서 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성도들과 교회를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즉, 부활은 두려움을 제거하고 사명을 부여하는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문을 닫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까? 실패가 두렵고, 사람의 시선이 두렵고, 미래가 두려워 문을 닫고 살아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본문 21절 말씀처럼 지금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 신앙은 숨는 신앙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이요 선포하는 신앙입니다.
4) 부활은 의심하는 자에게 확신을 주심(요 20:24–31)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 도마는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 찾아오셨을 때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자 본문 25절에 “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불신앙이라기보다 상처 입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8일 후에 다시 도마와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27절 처럼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이 도마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의 방식으로 만나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도마는 즉시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진정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도마는 부활한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그가 하나님 되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체험가능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의심하는 자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29절에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도마는 보고 믿었지만 우리는 말씀과 성령으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확신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도마처럼 의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내 삶에 역사하시는가?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는가? 라는 의문이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주님은 의심하는 자에게 찾아오셔서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의심을 정죄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끄는 은혜와 사랑의 놀라운 사건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죄와 죽음입니다. 이 죄와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전히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시며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됨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20장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부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생을 주시는 능력이 되었고,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절망에서 소망을,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에서 사명을, 그리고 도마에게는 의심에서 확신을 주시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의 절망 속에 부활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두려움 속에 주님이 들어오십니다. 여러분의 의심 속에서도 믿음이 자랍니다.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성도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며 “두려워하지 말라” “평강이 있을지어다” “나를 믿으라”고 선포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우리가 이 부활의 복음을 믿고 세상에 선포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통과한 후에 온 승리입니다. 지난 1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조사에서 만 19세 이상 7,647명을 심층면접한 결과 비종교인이 60%인데 51%가 과거에 개신교를 믿었다고 응답했습니다.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 호감이 가는 종교는 불교15%, 천주교 11%에 비해 개신교는 6%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교인들이 예수를 세속적 욕망충족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닌가 분석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자기욕망을 죽임으로써 주님의 부활을 다시 체험해야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부활의 복음을 주님 오실때까지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 108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 요20:1-31 | 2026-04-05 | 홍기칠 목사 |
| 107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 요19:17-37 | 2026-03-29 | 홍기칠 목사 |
| 106 | 하나님의 뜻 | 롬12:1-2 | 2026-03-22 | 홍기칠 목사 |
| 105 | 나는죄인인가? | 롬3:23 | 2026-03-15 | 홍기칠 목사 |
| 104 | 성령님은 누구신가? | 행1:1-8 | 2026-03-08 | 홍기칠목사 |
| 103 | 예수님은 누구신가? | 마16:13-19 | 2026-03-01 | 홍기칠목사 |
| 102 | 하나님은 누구신가? | 대상29:11-14 | 2026-02-22 | 홍기칠 목사 |
| 101 | 사도신경 신앙고백 | 마18:18-20 | 2026-02-15 | 홍기칠 목사 |
| 100 | 응답받는 기도 1 | 눅11:9-13 | 2026-02-08 | 홍기칠 목사 |
| 99 | 주기도 1 | 마6:9-13 | 2026-02-01 | 홍기칠 목사 |
| 98 |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1 | 딤전2:1-4 | 2026-01-25 | 홍기칠 목사 |
| 97 | 매일 말씀을 묵상하라 1 | 히5:12-14 | 2026-01-18 | 홍기칠 목사 |
| 96 | 두려워하지 말라 1 | 사43:1-7 | 2026-01-11 | 홍기칠 목사 |
| 95 |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라 | 엡6:10-24 | 2026-01-04 | 홍기칠 목사 |
| 94 |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 | 행14:1-28 | 2025-12-28 | 홍기칠 목사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