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설교

새 언약의 대제사장
2026-07-19 20:12:17
홍기칠
조회수   10
설교본문 히8:1-13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7-19

20260719 주일오전설교 (새 언약의 대제사장)

제목: 새 언약의 대제사장

본문: 8:1-13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을 걷다가 삶의 풍랑을 만나고, 기도해도 눈앞의 현실이 당장 바뀌지 않을 때, 우리는 자꾸만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상의 처방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돈과 인맥과 성공과 세상이 주는 안락함이라는 세상적인 성취와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낙심하여 뒤로 물러가려는 유대인 개종자인 성도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 우리를 향해 영적인 메가폰을 들고 " 우리에게 이미 새 언약의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분이 하늘의 참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심을 믿으라!" 라고 외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의 대제사장보다 그 직무상에 있어서나, 본질적 실체라는 면에서, 그리고 새언약적 사역에 있어서 훨씬 뛰어나시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그림자와 모형에 불과한 세상의 껍데기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새 언약의 실제'를 소유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 본론

1. 참 성소의 대제사장 (1~5)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손으로 지은 성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하늘의 '참 성소'에서 사역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본문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아멘.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이 땅의 성막 안에서 사역할 때 절대로 의자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사가 끝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년 반복해서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려야 했기에 성막 안에는 의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불완전했고 끝이 없는 노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위에 있는 일시적인 성막 안에 있는 지성소에서 매년 한번씩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불완전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완전한 구원이나 소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하여 단번에, 영원히 자기 몸을 대속제물 삼아 속죄제를 드리시고 부활하여 하늘에 계시는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 보좌 우편"앉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늘나라 참 장막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모든 대제사장은 예물과 짐승의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 임명되었지만, 예수님은 직접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 삼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구속 사역이 완벽하게 성취되고 종결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레위 율법제도 아래서의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실제 원형인 제사장직의 모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늘로 승천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하늘 장막의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실체가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속죄제물로 찢으셨을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더 이상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는지성소가 필요없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로, 인간의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완전히 대체되었습니다.

 

5절에 언급되듯 지상의 성막과 제사 제도는 단지 하늘에 있는 참된 것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본 하늘의 모형을 따라 지은 복사본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건축가가 지은 멋진 아파트의 '모델하우스'가 아무리 화려해도 거기서 평생 살 사람은 없습니다. 실물 아파트가 완공되면 모델 하우스는 철거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율법과 제사 제도는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임시로 역할을 하던 모델 하우스였습니다. 이제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셨는데, 왜 다시 차갑고 생명 없는 모델 하우스의 그림자로 돌아가려 하느냐는 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경고입니다.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나오는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두운 동굴 벽면만 바라보도록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불이 켜져 있고, 그 불빛 앞을 지나가는 물건들의 그림자가 동굴 벽면에 비칩니다. 쇠사슬에 묶인 이들은 평생 벽에 비친 '그림자'가 우주의 유일한 실재(Reality)인 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풀려나 동굴 밖으로 나갑니다. 그는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진짜 태양과 진짜 나무, 진짜 생명체들을 목격합니다. 그가 다시 동굴로 돌아와 소리칩니다. "동굴 벽에 비친 것은 가짜 그림자요! 진짜 빛과 세계가 저 밖에 있소!" 그러나 동굴 속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조롱하며 여전히 벽면의 그림자에 집착합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와 율법의 형식, 그리고 이 세상이 제공하는 세상적인 보장들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유한한 물질과 율법적 형식주의라는 그림자에 묶여 살 존재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단번에 속죄를 이루시고 영원한 참 성소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찬란한 '실체의 빛'바라보며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더 좋은 새 언약의 중보자(6~10)

옛 언약이란 구약을 말하는데 그 핵심은 대제사장을 통해 희생제물을 드림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언약입니다. 새 언약이란 신약을 말하는데 희생제물을 드리는 행위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죄사함받고 구원얻게 된다는 언약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외적인 돌판의 율법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친히 새겨지는 '더 좋은 언약'중보자이십니다. 본문 6절을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아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인간 제사장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고 영예롭고 가치있고 뛰어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인류의 죄를 완전히 대속하시고 새언약에 기초한 예수님의 대제사장직분은 죄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했던 레위계통의 대제사장직보다 더 뛰어나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에 근거하여 세워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인 시내산 율법은 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타락과 연약함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율법의 돌판은 백성들에게 "행하라"고 요구만 했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내면의 "생명의 능력"을 공급해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조건에 머물지 못하고 말씀을 불순종하여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언약의 목적은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31:31-34에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시며,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새 언약'을 수립하십니다. 육신적이고 혈통적인 이스라엘과 유대집이 아니라 새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얻는 하나님의 영적 백성인 모든 성도들과 새언약을 맺으셨습니다.

 

10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아멘. 옛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차가운 돌판이라는 외면에 썼지만, 새 언약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라는 내면에 기록하십니다. 이 새 언약의 탁월성은 그것의 내적이고 힘있는 언약이라는 점입니다. 옛 언약은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함으로써 그 언약은 파기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법을 직접 그들의 생각 속에 넣어주고 마음에 기록하셨으며 그로 말미암아 더 이상 지워지도, 지울수도, 파기할 수도 없고 영원한 효력을 지닌 새 언약이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새언약은 자연히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새심령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옛 언약은 외적이고 강제적이고 징계를 위한 것이었지만, 새언약은 내적이고 은혜스럽고 자발적입니다. 이 새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롭게 회복되었으며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순종하는 새 언약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규칙의 주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본성이 우리 안에 이식되는 영적 심장 이식 수술입니다. 억지로 의무감 때문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과 자원함으로 순종하는 내면적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920년대 미국에서 시행되었던 '금주법'의 사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정부는 알코올이 가정 파괴와 사회 범죄의 온상이라고 판단하여 법으로 술의 제조, 판매, 운송을 완전히 전면 금지했습니다. 돌판에 새겨진 율법처럼 "술 마시지 말라"외적인 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결과가 어땠습니까? 술 소비가 완전히 근절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법을 피해 지하 밀매업이 판을 쳤고, 마피아와 같은 조직범죄가 급증했으며, 가짜 밀주를 마시다 실명하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등 사회는 더 타락하고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강력한 법률과 벌금으로 통제하려 해도, 술을 갈망하는 '인간 내부의 욕구'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법은 실패하고 폐지되었습니다.

 

이처럼 외적인 규제와 율법으로는 인간을 결코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외적인 환경이나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부패한 마음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메마르고 단단한 마음 가죽을 베어 내시고, 그 부드러워진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새겨 주십니다. 억지로가 아닌,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기쁘게 좇아가는 복된 은혜가 성도 여러분의 마음에 흐르기를 소망합니다.

 

3. 죄 사함의 완전성(11~1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이 새 언약의 백성들은 누구나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법을 마음으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므로 다른 사람에게 주님을 알라고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서 새 언약의 핵심은 우리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완벽하고 영원한 죄 사함에 있습니다. 본문 12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인간의 관계 속에서는 아무리 용서한다 해도 문득 문득 억울했던 감정과 과거의 서운함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 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 안에서 놀라운 선언을 하셨습니다. "너희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사법적인 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값을 완벽하게 청산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우리의 죄목을 더 이상 열어보지 않으시고, 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우해 주시겠다는 신성한 은혜의 약속입니다.

 

구약의 속죄 제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끌고 와서 피를 흘려야 하는 '일시적인 덮음'에 불과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오히려 내가 지은 죄의 목록을 뼈아프게 상기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 한 번의 제사로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완전히 '제거'해 버리셨습니다. 13말씀처럼, 이 완전한 새 언약이 등장함과 동시에 첫 번째 옛 언약은 낡아지고 쇠하여져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정죄감과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공포의 시대는 완전히 끝이 난 것입니다.

 

옛 언약은 사람의 몸이 늙고 쇠해지는 것처럼 효력을 잃고 폐하게 되지만 새 언약은 영원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효력을 지니게 됩니다. 옛 언약의 약속은 이제 새 언약안에서 성취되었고 대체되었습니다.

 

한밤 중에 방 한가운데 서서 온갖 괴물과 맹수가 들이닥칠까 두려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이는 품에 손전등 하나를 꼭 쥐고 겨우 방구석을 비추며 공포를 달래고 있습니다. 그 작은 손전등 불빛은 구약의 그림자 제사와 같습니다.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하지만 겨우 발밑을 비추어 주는 임시방편입니다. 그러나 아침이 오고 찬란한 태양이 창문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방 안의 모든 어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태양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더 이상 작고 희미한 손전등을 켜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태양 빛 앞에 손전등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우리 삶의 영원한 어둠과 정죄의 구름을 완전히 걷어내 버린 찬란한 아침 해와 같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귀에 다가와 속삭입니다. "너 옛날에 지은 죄 있잖아. 네가 그러고도 집사야? 네가 그러고도 구원받은 성도야?" 라고 참소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그 속삭임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의 태양 빛을 들어 올려 외쳐야 합니다. "예수께서 내 죄값을 완벽히 지불하셨다! 하나님은 내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사탄의 참소에 기죽지 않고, 나를 용납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의 품에 당당히 안기는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낙심해 있던 성도들을 향해, 모형인 행위 언약인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고 완전하고 아름다운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를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외쳤습니다. 새 언약은 지식으로만 동의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실제가 되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 우리가 삶 속에서 고백하고 결단해야 할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마음에 새기길 원합니다.

첫째, '생각과 마음의 일기'를 쓰십시오

하나님은 말씀의 법을 우리의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주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참 성소입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의 생각의 흐름과 마음의 숨은 동기들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정직하게 점검하십시오. 날마다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내 생각과 마음에 새기는 영적 습관을 시작하십시오.

 

둘째, 죄책감에서 벗어나 나와 '감사의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우리는 연약하여 때로 넘어지고 실수합니다. 그러나 넘어진 그 자리가 절망의 자리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던져주는 참소와 정죄의 덫에 빠져 영적 무기력증에 갇히지 마십시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여, 즉시 다시 일어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나의 완벽함이 아니라 주님의 완벽한 속죄를 의지할 때, 우리의 삶은 원망과 불안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감사와 찬양의 예배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셋째, 율법주의적인 판단을 멈추고 '긍휼과 용서의 다리'를 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아낌없는 은혜와 긍휼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 역시 형제와 이웃을 대할 때 옛 언약의 잣대, 즉 날카롭고 차가운 비판의 율법 돌판을 들이대서는 안 됩니다. 다른 이들의 과거의 실수와 허물을 끝없이 들춰내고 기억하는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셨던 것처럼 용서하고 품어주는 긍휼의 메신저가 되십시오. 우리의 가정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정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강물처럼 흐르게 합시다.

 

우리는 이제 낡아지고 없어질 옛 구습과 그림자의 세상에 얽매일 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도래한 완전한 새 언약의 영광스러운 백성입니다. 새 언약의 대제사장이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넉넉히 승리하며 살아가는 거룩하고 복된 새 언약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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