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믿음에 굳게 서라
2026-06-18 09:23:16
홍기칠
조회수   14
설교본문 골2:1-23
설교자 홍기칠 목사
설교일 2026-06-17

20260617 수요설교

본문: 2:1-23

제목: 믿음에 굳게 서라

 

I. 서론: 무엇이 우리의 신앙을 뒤흔드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빠르게 변합니다.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야 성공한다", "이것이 행복이다", "이 정도는 믿어야 지성인이다"라며 끊임없이 가치관의 유혹을 던집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보낸 골로새 교회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한 교회는 아니었지만, 그의 동역자 에바브라를 통해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건강했던 교회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교묘한 말로 성도들을 속이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짓 가르침, 즉 이단 사상들이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골로새 성도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기록했습니다. 그 핵심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세상의 헛된 유혹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반석 위에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세워가야 할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II. 본론

1. 철학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라 (1~8)

바울은 먼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마음에 큰 고뇌와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깊이 깨닫고,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발견하게 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위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진리를 모르면 세상의 교묘한 말에 속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8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세상의 철학적 사조와 인간의 전통을 결합하여, 예수만 믿어서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고 더 고차원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단호하게 '헛된 속임수'이자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가짜 복음일 뿐입니다. 인간중심 철학은 세상의 초등학문에 불과하고 그리스도를 떠난 헛된 종교적 가르침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이나 은행에서 일하는 전문 위조지폐 감별사들은 신참들을 교육할 때, 위조지폐를 수백 장 보여주며 연구하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오직 '진짜 지폐'수천 번, 수만 번 만지고, 보고, 냄새 맡게 합니다. 진짜 지폐의 질감과 숨은 그림, 미세한 선들을 완벽하게 몸에 익히고 나면, 위조지폐는 슬쩍 만지기만 해도, 눈으로 흘깃 보기만 해도 단번에 가짜임을 분별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단 사상이나 세상의 헛된 철학의 종류를 다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에 완전히 젖어 있으면 세상의 가짜 가르침과 헛된 유혹이 다가올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가짜임을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거짓교사들이 말하는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사람들의 전통과 초보적인 원리를 따르는 것에 불과하므로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진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3절에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철학은 인간의 지혜를 자랑하지만 참된 지혜와 지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6-7절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나무에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나무가 강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뿌리가 깊기 떄문입니다. 성도들도 역시 말씀과 기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항상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바울은 그의 가르침이 올바른 것임을 인정하면서 한번 받아들인 교훈 즉, 하나님의 말씀과 한번 배운 믿음을 잊지않고 계속 그 믿음에 굳게 서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 십자가로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라 (9~15)

당시 거짓교사들은 예수님 외에 특별한 계시와 천사의 중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철학이 무익한 결정적인 이유는, 9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에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말씀으로충만해졌다고 선언했습니다. 더 보탤 것이 없습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얻은 구원의 은혜를 감동적으로 설명합니다. 과거에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해 늘 죄책감과 심판의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14-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 즉, 도저히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율법의 요구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14). 그리고 통치자들과 권세들, 즉 우리를 참소하던 사탄의 세력들을 무력화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습니다'(15).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을 때, 우리의 죄 문서, 영적 빚 문서 쪼가리는 완전히 찢겨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과거의 죄책감에 얽매이거나, 영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 선언을 공포했습니다. 이제 법적으로 모든 흑인 노예들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부의 어느 깊은 시골 농장에 ''이라는 늙은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너는 이제 자유다. 네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가도 좋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침 일찍 일어나 채찍을 두려워하며 밭으로 나가 평소처럼 땀을 흘리며 일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신분은 분명히 자유인이 되었지만, 그의 마음과 습관은 여전히 '노예의 근성'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 당신은 이제 노예가 아니에요! 자유롭게 당신의 삶을 사세요!"라고 소리쳐도 톰은 주인의 눈치만 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올드 톰'처럼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책감의 사슬을 끊어버리셨는데도, 여전히 "내가 과거에 이런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지 않을까?", "내가 부족해서 구원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영적 노예근성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기셨습니다! 그 승리를 믿고 십자가 안에서 참된 평안과 자유를 누리십시오.

 

3. 형식적인 율법주의와 신비주의의 껍데기를 벗어버리라 (8~23)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온전한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단들의 가르침에 흔들리고 있음을 알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단들은 크게 네가지입니다. 그것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입니다(8-10). 그들은 특별한 영적 지각을 소유함으로써 구원받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적 신비성을 강조하는 반면 육체적인 것을 타락으로 인정하여 금욕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인간들이 꾸며내거나 전해준 인간적인 지혜나 거짓된 교훈, 즉 사람들의 전통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초등학문이란 예수 믿기 전에 좇던 유치하고 초보적인 종교의식 즉 음식이나 특정 날짜나 할례 등과 같은 행위들을 말합니다. 인간의 헛된 이성에 기초한 철학에는 그 어떤 것도 충만함이 없으며 그리스도를 떠나면 공허와 좌절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사귐을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인 선과 진리, 의 등에 참여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권력과 권세 즉 천사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들 뿐 아니라 온 우주의 통치자와 지배자가 되십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실재를 부인하는 율법주의입니다(11-17).

여기에서는 당시 골로새교회에 혼합되어 있던 사상들 중 하나인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인들에게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요구함으로써 교회 안에 혼란을 야기시켰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손으로 행하는 할례 즉 육적인 할례 대신에 손으로 행하지 않는 할례 즉 그리스도의 할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의 할례란 회개하고 믿어 그리스도와의 사귐에 들어가는 영적 할례를 말합니다. 세례는 영적 할례의 외적 표현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사는 중생의 표적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고, 빚진 문서를 지워버리시고 없애 버렸습니다. 이제 율법은 완전히 폐기 되었고 율법의 규정을 강요하는 악한 세력들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었으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절기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과 연관된 문제로 더 이상 비판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특정 음식을 먹지 말고 특별한 절기를 지켜야 더 거룩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구약의 의식과 전통들을 향해 아주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17절입니다.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과 절기는 진짜 알맹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실체가 드러났는데, 왜 여전히 그림자를 붙잡고 옥신각신하느냐는 책망입니다. 그림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율법적 신비주의입니다(18-19).

골로새의 거짓 교사들은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무가치한 인간은 감히 예배드릴 수 없고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에 겸손한 체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대신 천사를 숭배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신비적인 체험을 부풀려 자랑하며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 치명적인 문제가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아니한데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무리 대단한 환상을 보고 천사를 만나는 체험을 했을지라도,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고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된 육신의 생각을 따라 교만해진 것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폐기하신 것을 주장하는 금욕주의입니다(20-23)

육체적인 자기 부정을 주장하는 금욕주의자들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와 같은 엄격한 금욕적 규정들을 따를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짓교사들이 내세웠던 제멋대로 만든 숭배와 거짓된 겸손과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유익할지 몰라도 실제로 육적인 욕망을 금하는데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겉모습만 경건해 보일 뿐, 인간의 속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종교적 껍데기일 뿐입니다. 세상의 철학도 종교적 형식도 인간의 규례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요 생명입니다.

 

어떤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가 산 길을 가다가 아주 예쁘고 단단하게 생긴 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할머니는 그 돌이 마음에 들어서 집으로 가져와 장독대 문을 고여놓는 '문고임 돌'로 수십 년 동안 사용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녀들이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 돌을 발견하고 혹시나 해서 보석 감정원에 가져갔습니다. 감정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돌은 가공되지 않은 수십 캐럿짜리 거대한 '다이아몬드 원석'이었습니다. 가치가 수억,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평생 엄청난 보물을 집에 두고도 그것을 알지 못해 그저 장독대 문짝이나 고이는 돌로만 사용하며 평생 가난하고 고단하게 사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대하고 값진 보물을 소유하고서도, 그 가치를 몰라 율법적인 의무감, 형식적인 종교 생활, 허무한 신비주의적 현상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보물이심을 알면, 우리는 다른 인위적인 의식이나 행위에 목매지 않습니다. 껍데기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알맹이이신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합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본문 6절과 7절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신앙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 속지 않고,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으며, 형식주의의 껍데기에 갇히지 않으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번 한 주간 우리가 삶 속에서 결단하고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말씀에 깊은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무가 가뭄과 태풍을 견디는 비결은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철학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휴대폰이나 뉴스를 보기 전, 10분 동안 구별하여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읽고 묵상하십시오. 주일에 들은 설교 본문을 교회 홈페이지를 찾아 주중에 최소 세 번 이상 다시 읽으며 묵상 노트를 기록해 보십시오.

 

둘째, '십자가 승리를 선포하십시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과거를 들추어내며 "네가 그러고도 집사냐, 네가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냐"라고 참소합니다. 그때마다 내 행위나 감정을 의지하지 말고 이미 승리하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낙심되거나 죄책감에 사로잡힐 때, 입술을 열어 크게 선포하십시오. "나를 정죄하는 모든 죄의 문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나는 예수 안에서 완전히 자유이요 의인이다!"라고 선포하십시오. 영적인 패배주의가 틈탈 때마다 이 승리의 선포로 영적 전쟁에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형식 대신 감사가 넘치게 하십시오.

형식주의와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 그리고 타인을 향한 정죄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경험한 사람의 특징은 7절 말씀처럼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율법의 굳은 껍데기를 깨뜨리는 복음의 망치입니다. 이를 위해 이번 일주일 동안 매일 잠들기 전, 하루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일기'를 쓰거나 스마트폰에 기록해 보십시오. 원망이 나올 자리에 감사를 채울 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삶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충분합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우리의 구원과 삶은 완벽하게 채워졌습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유혹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의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그 위에 견고한 순종의 집을 세워가며, 감사함이 넘쳐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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