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행21:1-22:29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2-18 |
20260217 수요설교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
본문: 행21:1-22: 29
제목: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
I. 서론
지난 주 행20장에서 바울은 3차 선교여행으로 마게도냐와 헬라를 거쳐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3층 창틀에서 졸다가 떨어진 유두고를 살렸습니다. 그리고 밀레도로 가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그들에게 에베소 교회에 목회하는데 필요한 조언을 해 준 후에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핍박 속에서 바울이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1-16)
바울 일행은 밀레도에서 배를 타고 고스와 로도를 경유하여 바다라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다시 베니게로 가는 화물선을 타고 1차 선교 여행지였던 구브로 섬을 지나 두로에 잠시 상륙했다가 다시 승선하여 돌레마이를 거쳐 마침내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바울 일행은 육로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두로에 상륙하여 7일 동안 머물렀는데 거기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일부 신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기를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때 바울의 동역자들은 바울을 끝까지 돌봐주었고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떠날 때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서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가이사랴에 도착했을때 빌립 집사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빌립에게 딸 넷이 있었는데 쳐녀로 예언하는 은사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가보 선지자가 유대에서 여기까지 내려와서 장차 바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림으로 보듯이 생생하게 예언해 주었습니다. 아가보는 바울이 곧 체포될 것이며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리라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가이사랴의 성도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고통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런 제자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합니다. 바울을 그 경고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예언된 환난과 복음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뜻 중에서 서로 의견을 달랐을 뿐입니다. 마침내 바울의 친구들은 이 문제 앞에 모든 것을 단념하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2.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지도자 야고보를 만남(17-26)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04km 떨어진 거리인데 말을 타고 가면 이틀정도 걸립니다. 가이사랴에 있던 몇몇 제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동행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나손의 집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나손은 구브로 출신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때 회심했던 제자였습니다.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그곳 형제들이 기꺼이 영접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였습니다. 야고보와 장로들이 있는 곳에 들어가 그동안에 있었던 이방인 선교에 대해 자세히 보고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은 하나님이 이방인 가운데서 하신 일에 대한 바울의 보고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예루살렘에서도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수만명이 있는데, 문제는 이 유대인들이 다 율법에 열심이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본문 21절에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가르치되 그 유대인들의 아들들에게 할례의식을 무시하고 유대인들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거짓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구원이 율법을 지키는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고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지만 유대인들에게까지 그러한 의식을 하지말라고 가르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헛소문이 예루살렘에서 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 중에 나실인 서원을 한 네사람을 데려가서 할례를 행하고 바울이 그들의 후원자가 되어 그 결례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해주도록 권했습니다. 이 결례를 행하는데 7일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 유대인 열심당원들에게 바울도 율법을 지키고 할례의식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을 증명하고 열심당원들을 달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장로들의 권면을 받아들여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은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복음을 전해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 뿐이었습니다. 고전 9:20절에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명하게 장로들의 말대로 순응하기로 한 것입니다. 바울이 네사람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를 드릴 때까지의 7일간 결례기간이 끝난 것을 신고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비본질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사소한 문제나 전통들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바람에 분열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보다 바울처럼 복음의 본질은 견고하게 붙잡되 비본질적인 요소는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3. 체포된 바울(26-36)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관대한 행동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일단의 불신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그를 찾아내고 사로잡기 위해 무리들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은 결례를 지키는 동안 성전에서 지내던 바울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붙들고 폭도들처럼 바울이 이전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성전을 더렵혔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가리키는 헬라인은 드로비모였는데 그는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니던 에베소 사람이었습니다. 고소자들은 자세히 조사도 해보지 않고 바울이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했습니다.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성전 안쪽 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의 문들이 곧 닫혔습니다. 성전수비대가 그 문을 닫아서 폭도들이 성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입니다. 그 폭도들은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로마의 통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소동은 즉시 로마당국자들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곧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로마 천부장 루시아는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왔습니다. 루시아의 신속한 조치와 더불어 수비대가 아주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는 바람에 바울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무리들이 바울을 붙잡아 때리고 있었는데 로마군인들이 바울을 넘겨 받았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로마군인들에게 잡혀 결박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유대인 폭도들에게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결박한 뒤에 무리들에게 이 결박된 사람이 누구며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은 바울을 잡은 이유를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어떤 사람은 저렇게 말하니 천부장은 그 실상을 알 수 없어서 바울을 수비대의 영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바울이 군사들에 의해 들려가니 무리들은 더욱 분노하며 그를 따라가며 죽이라고 외쳐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빌라도 총독에게 잡혀갈 때 흉악한 폭도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외쳤던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복음을 전하려 할 때 이런 핍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탄은 복은 전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선포를 막으려 하는 것입니다.
4. 바울이 무리들 앞에서 스스로 변호함(21:37-22:29)
바울은 영내로 들어가면서 천부장에게 헬라말로 말함으로써 자기는 고등교육을 받은 교양인이지 거리에서 폭동이나 일으키는 그런 반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헬라말로 천부장에 관심을 끌자 천부장은 몇 년전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수천명을 이끌고 반란를 일으키다가 광야로 가던 애굽사람이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주후 54년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수천명이 일으킨 반란을 주도한 애굽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임을 자처한 그는 자기를 추종하는 열광적인 광신도들을 이끌고 근처에 있는 감람산에 은거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것은 로마제국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총독 벨릭스가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유대인 수백명이 죽거나 체포되었으며 이 분파를 이끌던 애굽인 우두머리는 광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루시아 총독은 바울을 바로 그 우두머리가 더 큰 소요를 일이키기 위해 다시 돌아온 것으로 단정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기회를 통해 그런 착각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이고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라고 소개하고 자기를 고소한 유대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자 천부장이 허락했습니다. 거의 폭동이 일어날 뻔한 상황에서 바울이 굳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불씨를 전하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자기에게 잘못된 죄목을 덮어씌운 누명을 바로 잡고 싶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분별력이 없는 자기 동족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전하려고 했던 갈망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형제들이 자신과 같이 구원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히브리말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전도대상자들에게 적절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성도들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본문 22: 1-21절까지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을 변론하는 연설을 합니다. 히브리말로 이야기 하자 유대인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함으로써 변론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유대인으로서 다소에서 출생했고 가마리엘 문하에서 율법에 대해 공부했고 그들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을 냈다고 했습니다. 가마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는 것은 누구보다 열심히 율법을 공부했고 그들처럼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각 회당에서 때리고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것을 유대인들도 다 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먼저 유대인 청중들의 열정에 대해 찬사를 보낸 다음, 자신도 그런 열심히 예수를 믿는 자들을 죽이기까지 하고 옥에 넘기고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와 형벌을 받도록 하려고 대제사장들의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자기도 율법에 대한 열심히 대단했고 예수를 믿는 교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함으로서 그들을 칭찬하고 친근감을 불러 일으키면서 자기에게 붙여진 잘못된 혐의를 풀도록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비치고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무엇을 해야되는지 물어보니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너가 해야 할 모든 것을 누가 말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광채 때문에 볼 수 없게 되어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가 아나니아를 만나 다시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듣지 아니할 것이니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에 대한 오해를 풀기를 바라며 했던 변론이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고 말았습니다. 그 말을 듣던 유대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런 자를 세상에서 없애 버리다 살려둘 자가 아니라 하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며 분노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할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에 분노한 것입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유대인들의 편견, 교만, 우월의식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로마의 천부장은 바울이 그와 같은 소동을 불러일으킨데 화가 났을 뿐 아니라 일종의 자백도 받아내겠다는 생각에서 바울을 영내로 데리고 가라 명하고 무슨 일로 그들이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너희가 로마 시민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않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니 백부장이 듣고 천부장에게 전했습니다. 천부장이 너가 로마시민이냐 나는 돈을 많이 주고 로마시민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 로마시민이라 하니 천부장도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과 사건들을 주권적으로 지배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시민권자가 아니었다면 복음전파가 얼마나 방해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바울은 그전에 복음 전하며 직접 증언을 하다가 여러 번 매를 맞기도 했고 심지어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부장 루시아가 여기서 지시한 매질을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채찍질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맞았던 것과 동일한 형벌이었습니다. 로마군인들은 뼈와 금속조각을 박아 넣은 짧은 가죽 채찍을 사용하였는데 한번 휘두를 때 마다 살들이 갈기갈리 찢겨졌습니다. 이 형벌을 받은 사람이 죽거나 영원히 불구가 되디 않았다 하더라고 회복되는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바울은 자신의 로마시민권을 들어 호소했습니다. 법적으로 로마시민은 정식 재판없이 처벌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심문할 때 고문이나 매질을 할 수 없었습니다. 채찍을 당할 찰나에 너무나 극적으로 바울은 “너희가 로마사람 된 자를 채찍질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불법임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위험천만하게도 엄격하기로 유명한 로마법을 어기기 직전까지 갔던 것입니다. 천부장은 자신의 시민권을 돈으로 샀다고 자백했는데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그는 바울의 신분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천부장은 자신이 그 법을 어기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깨닫자 심문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매 맞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로마시민권의 권리를 사용하여 형벌을 면한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바울은 3차 선교여행을 마치면서 각 교회에서 거둔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하고 하나님께서 로마 복음화를 위해 자기를 보내실 것을 기대하며 예루살렘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주의자들의 핍박을 받아 죽기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로마시민권을 사용함으로서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핍박과는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증거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바울처럼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현장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지혜롭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더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현장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는 현장에 바울에게 임하셨던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더욱 확산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 93 |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 | 행21:1-22:29 | 2026-02-18 | 홍기칠 목사 |
| 92 | 바울의 3차 선교여행 | 행20:1-38 | 2026-02-11 | 홍기칠 목사 |
| 91 | 바울의 에베소 선교 | 행19:1-41 | 2026-02-04 | 홍기칠 목사 |
| 90 | 바울의 고린도선교 | 행18:1-28 | 2026-01-28 | 홍기칠 목사 |
| 89 | 바울의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선교 | 행17:1-34 | 2026-01-21 | 홍기칠 목사 |
| 88 | 선교의 환상을 보라 | 행16:6-40 | 2026-01-14 | 홍기칠 목사 |
| 87 | 바른 복음을 전하라 | 행15:1-6:5 | 2026-01-07 | 홍기칠 목사 |
| 86 | 성도의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 엡5:22-6:9 | 2025-12-31 | 홍기칠 목사 |
| 85 | 성령충만한 삶 | 엡5:1-21 | 2025-12-24 | 홍기칠 목사 |
| 84 | 옛사람과 새사람 | 엡4:17-32 | 2025-12-17 | 홍기칠 목사 |
| 83 |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 엡4:1-16 | 2025-12-10 | 홍기칠 목사 |
| 82 | 바울의 기도 | 엡3:14-21 | 2025-12-03 | 홍기칠 목사 |
| 81 | 바울의 사명 | 엡3:1-13 | 2025-11-26 | 홍기칠 목사 |
| 80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새 인류 | 엡2:11-22 | 2025-11-19 | 홍기칠 목사 |
| 79 | 하나님의 선물 | 엡2:1-10 | 2025-11-12 | 홍기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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