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행16:6-40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1-14 |
20260114 수요설교 (선교의 환상을 보라/행16:6-40)
본문:행16:6-40
제목: 선교의 환상을 보라
I. 서론
지난 주에 바울과 실라가 2차 선교여행을 떠나서 더베와 루스드라에 도착했을 때 디모데를 만났던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이 함께 여러 성으로 다니며 전도하고 가르치니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성도수가 날마다 늘어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세 사람이 드디어 유럽선교의 문을 처음으로 여는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유럽선교를 위해 바울과 그 일행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도 선교의 환상을 보고 세계선교의 꿈을 갖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바울의 선교환상(6-10)
복음전파는 하나님의 전도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그 일정과 여행경로를 정하셨고 바울과 실라는 거기에 귀기울이기만 했습니다. 본문 6-10절을 보면 성령이 소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셔서 부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발걸음을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소아시아의 남동쪽에서 북서쪽 맨 끝까지 먼길을 돌아온 것입니다. 드로아 있을 때 밤에 환상이 보였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그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부르신 줄 알고 즉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거쳐 소아시아에서 유럽 땅인 네압볼리 항구에 내려서 16km를 내륙으로 더 걸어가 빌립보에 도착했습니다. 뱃길로 약 240km를 이틀만에 항해했던 것입니다. 빌립보가 마게도냐 지역의 첫 성이었습니다. 지금의 그리스 지역입니다. 이제 소아시아 선교에서 유럽선교로 방향이 전환된 것입니다. 10절에 “우리를 부르신 줄 알고‘라고 한 것을 보면 이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드로아에서 바울, 실라, 디모데와 함께 합류하여 네 사람이 동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지를 선택할 때 성령은 어떤 길로는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로 명령하십니다. 선교사 윌리암 캐리는 남태평양에 있는 폴리네시아로 가려고 계획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인도로 보내셨습니다. 그는 2년 동안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큰 일을 계획하고 나갔더니 인도선교에 상당한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큰 일을 계획하라, 그리스도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라”는 표어를 만들어 선교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리빙스턴은 중국으로 가려 애썼으나 하나님은 그 대신 아프리카로 보내셨습니다. 저드슨은 먼저 인도로 갔으나 후에 성령에 이끌려 미얀마로 갔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선교사들이 가야 할 선교지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때 첫째, 자신의 계획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성숙한 성도들에게 조언을 구해보아야 합니다. 셋째, 자신의 직접적인 동기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지 체크해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문을 열어주시고 다른 문을 모두 닫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빌립보 성에서 루디아를 만나게 됨(11-15)
바울 일행이 도착한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 로마식민지이지만 로마시민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시민들은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마도 누가는 빌립보가 고향인데 거기에 있는 의학학교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빌립보 성안에는 최소한 유대인 열명이 있어야 그곳에 회당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 회당이 없을 경우에는 강가에서 기도 모임을 모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바울 일행은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거기 가서 수일을 지나다가 안식일에 기도할 곳이 있는가 하여 강가로 나가니 여자들이 매주일 모여 강가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 선교사들이 그 여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자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가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제가 그 루디아를 만난 강가에 3년 전에 선교여행을 가보았는데 현재는 조그만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루디아를 기념하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로마 귀족이나 왕족임을 표시하기 위해 흔히 입는 값비싼 원단을 판매하는 자주장사로 부유한 여성 사업가였습니다. 루디아는 본문 14절에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신실하게 주님을 찾고 있었으며 주님은 그녀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영접하도록 그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녀가 최초의 유럽인 개종자가 되었으며 바울과 그 일행이 빌립보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그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환대했습니다.
이 사실을 볼 때 전도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면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기회있을 때마다 해야되는 것이지 좋은 기회 있을 때만 하려고 한다면 기회가 지나가 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도할 때 말을 잘하거나 잘 가르쳐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여시니 복음을 듣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전도하러 갈 때 반드시 성령께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현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본문 15절에 ”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루디아 가정의 식구들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구원을 통하여 가족 전체가 구원받도록 손을 내미십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하나가 되었다는 공적인 표시였습니다. 그 가정은 예수 믿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일행을 자기 집에서 대접할 기회를 달라고 간청할 정도로 복음에 대한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먼저 가족에게 전도하고 이웃에게 전도한다면 여러분도 선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다 선교지요,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선교사입니다.
3.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하고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16-18)
또 다른 안식일 날 바울 일행이 기도처로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났습니다. 당시 미래를 점치는 일은 헬라와 로마문화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미리 알려고 온갖 미신적인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이 어린 여종은 악한 영에 사로 잡혀 있었고, 그녀의 주인은 그 여종에게 징조들을 해석하고 미래를 점치게 하여 돈을 벌었습니다. 그 주인은 개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그녀의 불행한 상황을 돈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17,18절을 보면 그 여종이 바울 일행에게 좇아와서 소리를 지르되 여러 날 동안 ”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바울이 심히 괴로워서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니 귀신이 그 여종으로 부터 즉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귀신이 바울에 대한 진실을 공개적으로 떠들어댄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여종의 주인이 여종을 시켜 점치는 장사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하니 귀신이 즉시 그 여종에게서 나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 귀신들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기를 따라다니며 방해하는 귀신들린 여종 때문에 괴로웠지만 화를 참고 그리스도의 권능을 의지하여 그 여종을 치유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비록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이 있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하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십니다.
4. 간수와 그 가족이 구원받음(19-40)
드디어 여종의 주인은 자기 수익이 끊어지자 크게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가서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어린 여종이 사악한 귀신으로부터 치유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에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관원들에게 고소한 것입니다.
로마총독은 식민지에의 치안유지에 더 큰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에서는 법령으로 자기가 섬기는 신을 바꾸지 못하도록 정해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종의 주인이 이것을 빌미로 바울 일행이 자기들이 행치도 못할 그런 풍습을 전하는 자들로서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이라고 고소를 한 것입니다. 사실 그는 여론을 이용하여 바울일행을 쫓아내려고 선동한 것입니다. 로마관리들은 여론에 매우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고소한 내용의 정확한 사실을 알아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시민들의 여론이 나빠져 폭동이라도 나면 자기들이 책임져야하니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 주인의 말만 듣고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명령했습니다. 예수님을 재판하던 로마총독 빌라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귀는 언제든지 세상세력과 악의 세력을 이용하여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바울과 실라를 많이 친 후에 깊은 옥에 던져넣고 그 발을 착고에 채우고 든든히 지키도록 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태형으로 치는 매는 가죽에다 중간에 쇠를 박아두었기 때문에 한 대 때리면 그 쇠에 걸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39대 이상 때리지 못하도록 정해 두었지만 로마군인들은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렇게 심한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수는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처럼 감옥에서 신비한 방법으로 탈출했다는 소문이나 그때 지키던 간수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더욱 단단히 지켜려고 했을 것입니다. 착고는 두 개의 긴 나무토막에 구멍 두 개를 뚫고 거기에 두 발목을 고정시키고 쇠로 된 자물쇠를 채우게 되어 있었습니다. 때로는 손목과 발목을 한 개의 착고에 묶기도 했습니다.
25,26절에 보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니 죄수들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피곤하고 온몸이 쑤시고 두렵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상황을 주관하고 계신다고 믿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시50: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 약속을 굳게 믿고 그들의 고난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믿고 오히려 큰소리로 찬송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주님께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져 버렸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생각하고 자신의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자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자기들이 도망가지 않았으니 자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죄수들이 탈옥하면 간수들이 대개 도망간 죄수가 받았던 처벌을 대신 받게 됩니다. 때로는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쇠사슬이 다 풀어지고 옥문이 활짝 열렸음에도 바울과 실라뿐 아니라 다른 죄수들도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죄수들도 그 지진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한 것과 연관이 있음을 알고 두려워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대로 붙잡아두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해방된 그 죄수들도 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진 것입니다.
본문 29,30절에 보니 그 중에 간수는 괴로워하면서 등불을 들고 바울과 실라에게 달려와 엎드리며 무서워 떨면서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본문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하고 했습니다. 복음은 이처럼 간단합니다. 그 밤에 간수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그 가족들이 다 세례를 받은 후에 음식을 나눠주고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했습니다. 간수와 그 가족들은 구원받은 증거로 세례까지 받았으니 그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전도의 문을 여시고 확실한 전도의 열매를 주셨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가족이라는 단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간수의 온 가족이 믿었고 모두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온 가족이 예수 믿을 수 있도록 그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날이 새자 상관들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이 말을 전하니 바울은 37절에 ”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시민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며 와서 그 성에서 빨리 떠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당국이 직접 허락하지 않으면 로마시민을 매질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빌립보 로마관리들은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관리들은 만약 바울이 로마당국에 이 불법적인 행위를 고소하면 그들의 지위가 달아나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관들이 걱정하면서 바울에게 와서 공손하게 조용히 성을 떠나기를 간청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존귀한 대접을 받고 감옥에서 나온 것은 루디아와 성도들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고 복음의 권능이 얼마나 놀라운지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니다.
빌립보에서는 한 부유한 여성사업가 루디아와 그 가족 그리고 큰 문제를 안고 있던 불쌍한 귀신들린 여종, 그리고 간수와 그 가족도 모두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반면에 그 지역 로마관리들은 그들의 인생문제의 해답을 소유하고 있던 그 선교사들을 몰라보고 떠나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선교사 바울 일행에게 최초로 유럽선교의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들의 길을 세밀하게 인도하셨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새해에는 바울과 같이 세계선교를 향한 환상을 보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를 축복합니다. 윌리암 캐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큰 일을 계획하라, 그리스도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라”는 표어를 붙여놓고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러한 비전을 품고 기도하고 전도합시다. 전도현장에서 역경을 당한다 해도 기도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고 새로운 일꾼을 일으켜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해 우리교회 기도제목 중 하나가 세계복음화입니다. 우리가 비록 외국으로 나가 직접 선교하거나 선교사를 파송할 수는 없어도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선교사들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약 300만명이나 된다고 하고, 탈북민이 34,000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세계복음화의 일환이 될 수 있습니다. 올해 우리교회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면서 내가 세계선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찾아보고 작은 데서부터 헌신하는 것이 그 출발이 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 성도들 가정에 아직 예수 믿지 않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올해는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도록 합시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올 한해에는 가족 복음화, 대학복음화, 세계복음화, 전인치유를 통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한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
| 90 | 바울의 고린도선교 1 | 행18:1-28 | 2026-01-28 | 홍기칠 목사 |
| 89 | 바울의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선교 | 행17:1-34 | 2026-01-21 | 홍기칠 목사 |
| 88 | 선교의 환상을 보라 | 행16:6-40 | 2026-01-14 | 홍기칠 목사 |
| 87 | 바른 복음을 전하라 | 행15:1-6:5 | 2026-01-07 | 홍기칠 목사 |
| 86 | 성도의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 엡5:22-6:9 | 2025-12-31 | 홍기칠 목사 |
| 85 | 성령충만한 삶 | 엡5:1-21 | 2025-12-24 | 홍기칠 목사 |
| 84 | 옛사람과 새사람 | 엡4:17-32 | 2025-12-17 | 홍기칠 목사 |
| 83 |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 엡4:1-16 | 2025-12-10 | 홍기칠 목사 |
| 82 | 바울의 기도 | 엡3:14-21 | 2025-12-03 | 홍기칠 목사 |
| 81 | 바울의 사명 | 엡3:1-13 | 2025-11-26 | 홍기칠 목사 |
| 80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새 인류 | 엡2:11-22 | 2025-11-19 | 홍기칠 목사 |
| 79 | 하나님의 선물 | 엡2:1-10 | 2025-11-12 | 홍기칠 목사 |
| 78 | 바울의 기도 | 엡1:15-23 | 2025-11-05 | 홍기칠 목사 |
| 77 |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 | 엡1"7-14 | 2025-10-22 | 홍기칠 목사 |
| 76 | 모든 신령한 복 | 엡1:1-6 | 2025-10-15 | 홍기칠 목사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