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 설교본문 | 행17:1-34 |
|---|---|
| 설교자 | 홍기칠 목사 |
| 설교일 | 2026-01-21 |
20260121 수요설교 (바울의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선교)
본문: 행17:1-34
제목: 바울의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선교
I. 서론
지난 수요일은 행16장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전도하여 빌립보교회가 세워지자 그들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그리고 그리스 아덴, 즉 아테네까지 가서 선교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선교했는지 살펴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데살로니가 선교
본문 1-9절까지 데살로니가에서 선교한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마게도냐 지역의 수도인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그곳은 유대인을 포함하여 2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기 때문에 이곳을 복음전파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유대인 회당으로 가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강론하고 자녀들을 교육합니다. 그들은 예언서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언제 그 메시아를 보내주실까 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전도의 거점을 유대인 회당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구약을 읽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이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전도하기 쉬운 곳부터 찾아가서 해야 합니다. 혹은 자기 집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이웃사람을 초청하여 같이 성경공부하는 것도 전도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거기서 친해진 후에 교회로 연결하면 교회 오기가 더 쉽습니다. 앞으로 우리교회 성도들이 많아지면 각 지역의 가정 중심으로 성경공부 소그룹을 만들 예정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 들어가 세 안식일 즉 3주 동안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다고 했습니다. 관례대로란 바울이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 제자훈련 등 교회에서 정한 시간에 빠짐없이 참석했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이 성장하려면 교회에서 정한 집회시간에 빠짐없이 출석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유대인 회당에서는 그날 회당장이 성경을 읽고 누구라도 나와서 말씀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이때 바울이 나가서 구약성경을 풀어 강론하면서 구약에서 메시아로 오실 분을 예언한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소개하면서 본문 3절에 “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해를 받았다는 것은 시16:10절에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는다고 한 구약의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예언한 것임을 밝히며 바로 그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는데 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 보니 그 복음을 듣고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구약을 잘 아는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는데 오히려 구약을 모르는 이방인들인 헬라 사람들과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귀부인이란 당시 권력을 가진 남편의 부인으로 잘 사는 부유층을 말합니다. 이런 귀부인들이 많이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바울과 실라는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요즈음도 높은 지위를 가졌거나 재산이 많은 부자들은 아쉬운 것이 별로 없으니 예수를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전하는 복음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 5-9절을 보니 유대인들은 많은 사람들과 귀부인들까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 것을 보고 시기하여 시장의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야손의 집에 머물러 있던 바울과 실라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을 찾지 못하니 대신 야손을 읍장들에게 끌고 가서 거짓 고소를 합니다. 로마황제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고 말하며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도망가서 야손을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그들을 가두려 하다가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이 보석금 즉, 벌금을 내자 놓아주었습니다. 관리들은 야손을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하다가 보석금을 내니 순순히 풀어준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진리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바울과 실라가 3주 정도 전도했는데도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묵을 수 있도록 한 야손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생명을 걸고 바울 일행을 보호해준 사람들입니다.
살전1:2,3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3주 정도 전도했는데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 일행을 잘 도왔을 뿐 아니라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역사란 믿음으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 가운데 세워졌기 때문에 믿음으로 일하지 않으면 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수고란 서로 어려운 일을 사랑으로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든 것,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사랑으로 감당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망의 인내란 주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수고한다고 해도 금방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일할 때 주님께서는 반드시 일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살전1:7,8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되고, 그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고 바울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어려움이 닥쳐도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꾸준히 해나가면 주님께서 반드시 복음증거의 열매를 주시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2. 베뢰아 선교(10-15)
본문 10-15절에는 바울이 베뢰아에서 선교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비교적 조용하고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데살로니기에서 핍박을 당하자 밤에 성도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그곳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디모데는 빌립보에 남아있다가 후에 베뢰아로 와서 바울과 실라와 합류했습니다. 바울사도는 항상 유대인 동족이 있는 회당으로 먼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11,12절에 “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라고 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회당에 왔으니 구약성경을 계속 배워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대로 살고자 애를 써 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새로운 복음을 전하니 깜짝 놀란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정말 그러한지 다시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QT와 같이 스스로 말씀을 연구하고 적용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깊이 묵상하면 믿음이 커집니다. 그래서 회당에 나온 사람들 중에 일반인뿐 아니라 헬라 귀부인과 남자가 많이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이 말씀을 잘 받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믿는 사람이 많았고 구약을 잘 모르는 이방인 헬라 귀부인들도 믿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귀부인과 같이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거나 부자들그리고 지식인들은 예수를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성령께서 그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절을 보면 여기서도 데살로니가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복음을 전한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와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그곳 성도들이 바울을 바닷길을 따라 아덴으로 가게 하고,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 머물러 있도록 했습니다. 말씀이 강하게 역사할 때 사탄의 방해도 심해집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면 주변 가족이나 지인들이 방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탄의 방해를 물리치기 위해 늘 기도하며 성령충만해야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위험해서 속히 피하게 하고, 실라와 디모데는 남아서 형제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우리도 전도한 후에 반드시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본문 15절을 보니 바울을 피신시켜던 형제들이 그를 아덴까지 인도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아 있다가 나중에 바울이 자기에게 오도록 하라고 그 형제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핍박을 받을수록 더 어려운 곳으로 도전해 갔습니다. 베뢰아에서 핍박이 일어났지만 더 큰 계획을 세워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헬라의 수도 아테네까지 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바울처럼 핍박을 오히려 도전의 기회로 삼고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며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3.아덴선교(16-34)
본문 16절에서 34절까지는 바울이 아덴에서 선교한 내용입니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수도이고 문화와 철학의 중심지입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했다고 했습니다. 아덴은 세계적인 문화재가 많은 도시입니다. 문화재는 대부분 우상의 신전과 조각상들입니다. 아덴은 파르테논을 숭배하기 위해 세운 수많은 신전들과 조각품들이 있었는데 아덴 광장에 세워진 공중 우상들은 약 300개, 기타 신상만 해도 3만개 정도 되었다고 하니 마치 우상의 전시장과도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이 많은 반면에 소크라데스,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와 같이 세계적인 철학자들이 그 도시에서 강연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헬라의 예술, 철학, 문학 등 문화는 찬란했으나 정신적인 면은 너무나 유치하고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훌륭한 철학자와 예술가들도 인간정신을 올바르게 정화시키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에 화가 난 것입니다. 이곳에 사는 철학자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탐구하는 철학도 모르니 야만인 취급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을 사랑하고 지혜를 사랑한다는 철학자들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가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진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아덴과 알렉산드리아에 견줄만한 다소의 명문대학에서 수학하여 폭넓은 학문을 섭렵했으므로 모든 지식면에서 결코 아덴 시민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우상숭배에서 돌이켜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지식인들의 수준에 맞게 그들과 토론을 하고 변론을 한 것입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회당에서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토론하고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복음에 대해 쟁론 했다고 했습니다.
본문 18-21절을 보면 시장에서는 시끄러워서 안되니 재판도 하고 강연도 하는 장소인 아레오바고로 가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고 쟁론을 했습니다. 20절에 보면 그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학문에 대한 강한 지식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이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자들인 철학파 이름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자기행복에 두었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최고라 여기는 쾌락주의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죽는다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정반대 학파인데 범신론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만물을 신으로 보는 범신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일체의 사물이 신의 뜻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생각해서 나무나 돌이나 우상이든 무엇에든지 절하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신이라고 여겨 도덕적으로 살고 금욕하며 살아야 된다고 했으니 앞에 나온 쾌락주의 철학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철학파인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전하니 그들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이방신을 전하는 사람으로 보거나 어떤 이상한 것을 전하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아덴에 모인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듣고 말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2절부터 31절까지 그들에게 복음에 대해 설교를 합니다. 본문 22,23절에 “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아덴 사람들과의 접촉점을 찾아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 온갖 신을 다 섬기다가 혹시 빠지고 섬기지 못한 신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신이 화를 내지 않도록 빠진 신들을 종합해서 그 신들에게 바치는 단을 만들어 두었던 것을 화제로 삼아 그 알지 못하는 신들 중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전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작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다” 라고 분명하게 전해야 하는데 많은 신들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라는 소개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아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변론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전도할 때 그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죄인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 하나, 물에 빠지지도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건져주려고 하나라고 오히려 반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도 그들의 죄인됨을 바로 지적하지 않고 종교성이 많다고 슬슬 구슬려 가면서 복음을 바로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에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인간의 상상에 따라 제멋대로 자신의 신들을 만들어내고 건물이나 조각에 새겼습니다. 그런데 24절 부터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진 분이 아니며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 예배 받거나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관하시는 분이라 소개하면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존재하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새긴 우상의 모양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그냥 간과했지만 이제는 회개하라고 하셨는데 왜냐하면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여기서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설교하자 본문 32절에 “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나니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 무슨 소리하는거냐?”라고 조롱했습니다. 헬라인들은 불멸을 믿었으나 육체적 부활은 부인했고, 유대인들은 부활보다 불멸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두가지 다 믿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으니 다음에 다시 들어보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 말은 자리를 뜨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도 이 말쟁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라고 했는데 도데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4절에는 “ 몇사람이 그를 가까이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그 아덴 사람 중에 몇사람은 예수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덴 선교에 실패를 인정하고 아덴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다른 지역에서 보다 아덴에서 많은 결신자를 얻지 못한 것은 우상이 많은 것을 보고 즉흥적으로 전도했고, 지나치게 철학적인 강연을 했으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언급은 했으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여기서 충격을 받아 고린도전서 2:2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III. 적용 및 실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했는데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었지만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바울과 실라를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베뢰아로 가서 전도했는데 데살로니가 사람들 보다 더 너그러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많고 헬라 귀부인과 남자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시기하던 유대인들이 여기까지 몰려와 다시 바울과 실라를 핍박하자 아덴으로 떠나 거기서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아덴 사람들 중에 무신론자와 범신론자도 만나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 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그들에 맞게 복음을 간접적으로 전하다가 결국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전도할 때 열매 맺는 전도를 하려면 청중들을 너무 의식해서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로 간접적으로 전도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을 바로 선포해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면서 논쟁을 피하고 담대하게 순수한 복음 즉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반대자들 핍박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전도하기 전에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고 현장에 나가서는 담대하게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전도는 말재주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문을 열어주실 때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 번호 | 제목 | 설교본문 | 설교일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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